[무국적시리즈1] 무국적자 문제와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2017년 1월 9일

 “고문보다도 원시적인 형벌이다” 

it is “a form of punishment more primitive than torture”

– EARL WARREN in 1958

LATE U.S. SUPREME COURT CHIEF JUSTICE

1958년 미국 최고법원의 수석재판관 EARL WARREN은 무국적상태가 마치 형벌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인 형벌에 무국적상태를 비유한 이유는 바로 무국적상태에서 개인은 국가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며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국적자는 국적이 없거나, 국적을 증명할 수단이 없다는 이유로 출생에서부터 합법적인 교육, 의료, 결혼, 직업의 선택, 심지어는 사망신고까지 인간 삶의 전반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와 존엄을 박탈당하고 맙니다.

앞으로 총 3번의 포스팅을 통해 무국적자 문제(Statelessness)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첫 번째 포스팅에서는 무국적자 문제에 있어 국제사회가 어디까지 논의를 진행해왔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두 번째 포스팅에서는 무국적자가 누구인지, 즉 무국적자의 정의를, 세 번째 포스팅에서는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무국적자 확인 절차에 대해 다루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1.무국적자 문제

무국적자란 ‘법 집행에 있어 어떠한 국가에 의해서도 국적자로 취급 받지 못하는 자’[ref] 1954년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 [/ref]로서, 국가와 개인간의 법적 구속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놓여있는 사람입니다. 무국적자는 법적으로 신분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수백만의 무국적 아동들은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취업이 어려우며, 설사 취업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적은 급여와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고 공공의료서비스 이용도 제한받습니다. 투표권, 재산권 등 사회·정치·경제적 참여 또한 불가능합니다. 무국적 가족은 거주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하루하루 체포와 구금, 추방의 공포에 떨며 살아갑니다.

무국적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국적 등록시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로서의 국적인정의 거부, 국가 승계 등의 공식적인 영토변경시의 국적박탈, 국가간 국적법간의 충돌 등에 따라 하루 아침에도 국적을 잃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련의 해체 이후 20년이 넘도록 6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국적 상태로 남겨져 있었고, 1982년 미얀마 시민법아래 미얀마 내 80만이 넘는 로힝야족이 국적인정을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2013년에는 도미니카공화국의 헌법재판소가 수만명이 넘는 아이티출신 자손들의 국적을 박탈하는 결정을 내리며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인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의 허점과 사각지대에서 바로 무국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나는 ‘투명인간’ 입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국적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가 태어날 때부터 어떠한 국적도 가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무국적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나거나, 무국적자 자녀에게 국적을 제공하지 않는 국적법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무국적의 문제는 부모에서 자녀에게로 계속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는 2014년 발간한 특별보고서를 통해 “전세계에서 무국적자가 가장 많은 5개국에서는 10분마다 1명씩 무국적 아동이 태어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ref]2014년 UNHCR Special Report “Ending Statelessness Within 10 Years” [/ref]. 무국적 상태는 아동의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평생토록 좌절과 포기, 차별을 느끼며 살게 합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무국적 아동들은 스스로를 ‘투명인간’, ‘존재하지 않는 사람’, ‘이방인’,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2. 무국적자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응

1948년 세계인권선언

무국적자 문제는 수세기에 걸쳐 진행되어온 오래된 인권문제입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19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국적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명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1948년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에게는 국적에 대한 권리”가 있고 “어느 누구도 국적을 함부로 박탈당하지 아니하며 국적을 바꿀 권리도 부정당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1951년 난민지위에 관한 국제협약

무국적의 문제는 1951년 난민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이 만들어지면서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난민문제의 범주 내에서 무국적 문제를 함께 다뤘습니다. 실제로도 난민으로 보호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무국적자들이 많았습니다.

[강제이동, 난민, 무국적자 2015 국제통계 – Figures at a Glance UNHCR ]

1954년과 1961년 무국적자 관련 국제협약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무국적자와 난민은 각자 다른 범주이며 원인 또한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해결에 있어 난민 보호와는 독립적인 접근이 요구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54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이하 54년 협약), 「1961 무국적자 감소에 관한 협약」(이하 61년 협약)이 만들어져, 무국적자 지위를 보장하고 무국적 인구를 감소시키기 위한 국제적 결의를 확대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2년 54년 협약에 유보조항 없이 가입하였으나, 61년 협약에는 아직 가입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 6 조에 근거하여 해당 조약은 국내 법의 일부로 간주되어 대한민국에서 무국적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주요한 근거가 됩니다.

1974년과 1995년 UNHCR 무국적 문제 공식위임

1974년, UNHCR는 1961 무국적자 감소에 관한 협약이 따른 무국적자를 지원할 것을 공식임무로 지정받았고, 더 나아가 1995년 유엔총회는 UNHCR에 무국적상황을 방지하고 감소시키며 무국적자의 권리를 보호할 것을 위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무국적 보호와 관련해서 유엔차원의 주목할만한 움직임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많은 나라들이 무국적자 문제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2011년 제네바 장관회의에서는 60개국 이상이 무국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노력을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기준으로 54년 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82개국 61년 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60개국이 되었습니다.

최근의 여러 국가들의 노력들

이러한 국제적 노력아래, 최근 들어 여러 국가들이 무국적자 문제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2008년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에서 국적이 없는 30만여명의 무하지르족(Urdu-Speakers)의 시민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있었고. 베트남에서는 캄보디아 무국적 난민문제 해결은 물론 외국인 남편의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무국적자가 된 수천명 여성들이 국적을 재취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2009년 이래로 60만명이 넘는 소련 국적자들이 키르키즈스탄의 국적을 취득했고, 15만명은 투르크메니스탄의 국적자가 되었습니다. 코트디부야르에서는 2013년 국적취득절차를 간소화하는 법개정을 통해 70만여명의 무국적자가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3. 2014년 UNHCR의 무국적자 보호를 위한 목표와 행동지침

무국적자 보호와 관련해서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2014년에 유엔난민기구가 야심차게 내놓은 #나는 소속되어있다(#IBELONG)캠페인입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유엔난민기구는 2024년까지 10년 안에 무국적 사태 종결(Ending Statelessness Within 10 Years)을 목표로, 구체적인 행동지침(Global Action Plan to End Statelessness)까지 내놓았습니다. 이 캠페인은 지금까지 유엔난민기구가 기존의 무국적자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무국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과 어떤 국제기구와 정부에서도 무국적자의 구체적 인구통계를 내고 있지 못하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출발하였습니다.

이 캠페인의 목표는 (1) 기존에 발생하고 있던 무국적의 문제를 해결하고, (2) 새로운 형태의 무국적 문제를 방지하며, (3) 제대로 추산되지 않고 있는 무국적 인구를 보다 잘 파악하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캠페인은 위의 세가지 목표달성을 위해 민간단체,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 무국적자 결사체 모두의 힘을 모으는 데 방점을 두고, 아래와 같은 10가지 행동지침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중 5가지 행동지침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향후 10년 안에 무국적 사태를 종결시키기 위한 10가지 행동지침

(1)   기존의 주요한 무국적 사태를 해결한다.

(2)   아이들이 국적 없이 태어나지 않게 한다.

(3)   국적 법에서 성차별을 제거한다.

(4)   차별적인 근거에 따른 국적의 부정, 소실, 박탈을 방지한다.

(5)   국가 승계에 있어 무국적의 발생을 방지한다.

(6)   무국적 이민자의 지위를 보호하고 귀화를 용이하게 한다.

(7)   무국적 예방을 위해 출생신고를 반드시 하게 한다.

(8)   자격이 있는 자에 대해 국적 서류를 발급한다.

(9)   UN 무국적 협약에 가입한다.

(10) 무국적자 인구에 대한 양적 질적 자료를 개선한다.

[Global Action Plan to End Statelessness (UNHCR 2014) 참고]

Action 1 : 기존의 주요한 무국적 사태를 해결한다

무국적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주로 국가 독립과정에서부터 특정집단이 배제되거나 차별에 따라 국적을 잃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관련 법과 정책 개정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구체적으로는 체류중인 무국적자 중 (1)영토 내에서 태어나거나, (2)특정시기 이전부터 살았거나 혹은 (3)부모나 조부모가 해당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 국적을 인정하는 식의 법 개정을 통해 해결가능합니다. 또한, 귀화의 요구조건이나 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무국적자가 보다 쉽게 국적을 취득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요구되는 거주기간이나 신청비를 낮추는 방향의 간소화가 가능합니다.

Action 6 : 무국적 이민자의 지위를 보호하고 귀화를 용이하게 한다 

  전세계에서 10개국 만이 무국적자 판단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외의 국가에서 무국적자들은 신변확인이 되지 않아 구금, 추방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민 국가들이 그들의 거주를 허용하지 않고, 본국에서도 다시 받아주지 않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가들은 54년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 가입을 통해 영토내 무국적자 판단 절차를 마련하고 무국적자 지위를 보호해야합니다. 또한 복잡한 귀화절차를 보다 간소하고 귀화와 관련된 정보에 쉽게 접근가능하도록 해야합니다. 이 때, 정부입장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무국적 이민자 수를 증가시킬 것이라 우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절차를 마련한 국가들을 보았을 때, 절차의 마련이 무국적자 이민을 증가시키지는 않았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Action 8 : 자격이 있는 자에 대해 국적 서류를 발급한다

  개인의 국적을 증명할 서류를 얻지 못해 무국적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이는 주로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에 의해 발생합니다. 최근 무국적 사태의 주요원인이기도 한데요, 실제로 20%이상의 사람들이 국적자격이 있음에도 실체적으로 증명할 서류가 없어 무국적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서류가 접근가능해야 하며, 비차별적인 방식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결과정에서 문제는 해당 인구에 대한 자료가 불충분하고, 이 인구는 문서화나 통계화가 되어있지 않아 측정도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 유엔난민기구는 국가들에 법적, 절차적, 싱행상의 장애를 파악하고 법 개정과 절차 개선을 도와줄 기술 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Action 9 : UN 무국적 협약에 가입한다

  UN 무국적 협약은 무국적자 판단부터 국적법 개정까지 전반에 걸쳐 국가의 참여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에 결정적입니다. 54년 협약은 Action 6에서와 같이 무국적자 판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61년 협약은 Action 2와 5와 관련한 국적법의 문제를 개선하는데 있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일부 국가의 경우, 인권과 관련한 국제 협약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10년 안에 국제적 합의를 도출하긴 힘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2024년까지 54년 협약에 140개국이, 61년 협약에 130개 국이 가입하도록 하는 것을 소기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Action 10 : 무국적자 인구에 대한 양적 질적 자료를 개선한다.

2015년말 기준, UNHCR은 전세계 무국적자 수가 최소 천만명 이상이라고 추산하였습니다. 그러나 78개국의 37만명만이 정부와 UNHCR에 보고되고 있습니다.[ref] 2015년 UNHCR Global Trend 2015[/ref] 무국적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고 전체 Action Plan의 진행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국적인구의 규모와 지리적 분포, 인구통계, 원인분석과 같은 양적 질적 분석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Action10에서는 인구조사에서 무국적 항목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통계시스템의 개선과 출생신고, 거주신고등의 등록을 의무화하고, 무국적 인구에 대한 종합 연구등을 시행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를 통해 (1) 무국적 인구에 대한 양적 자료를 150개국에서 공개적 이용 (2) 무국적 인구에 대한 질적 자료를 최소 120개국에서 공개적 이용’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4. 해결 과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해결과제는 국제사회의 정치적 의지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무국적자 협약 가입에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무국적자 문제를 발생시키는 국가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의 의지를 가지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의지는 시민단체, 언론 및 일반 시민사회 구성원이 무국적자 문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부에 변화를 촉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결국 무국적자 문제의 해결은 시민사회의 자각과 인권존중의 의지에서 출발합니다. 한국 사회에도 많은 난민과 무국적자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내 체류 중인 ‘무국적 탈북자’, ‘라이따이한’[ref]1960-70년대 베트남 전쟁당시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ref]과 ‘코피노’ [ref]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ref]가 한국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국내에서 십여년째 무국적 상태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61년 UN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물론 무국적자 보호와 사태 해결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는 지난 몇십년간 무국적의 문제를 제대로 공론화하지 않은 시민사회의 책임도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자각하지 못하는 동안, EARL WARREN의 말처럼 무국적자들은 고문보다도 잔혹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생을 넘어 자녀의 일생까지 걸쳐 ‘끝없는 형벌‘을 받아왔습니다.

인권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은 일상에서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위가 분명치 않은 무국적자들은 정치적 사회적 발언권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했음에도 스스로 국가에 부당함을 항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민사회가 무국적문제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할 때입니다. 투명인간처럼 우리 사회에서 불안하게 살고 있는 무국적자의 문제를 자각하고, 그들이 평생동안 짊어온 형벌의 부당함을 정부와 국제사회에 알려야합니다. 1부 포스팅을 통해 조금이나마 무국적자 문제에 대해 알아가셨길 바랍니다. 이어서 2부에서는 무국적자가 누구인지,  무국적자의 정의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럼 2부에서 다시 만나요 🙂

[ 공익법센터 어필 12.5기 인턴 김유라 작성 ]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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