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 – 이일 변호사

2019년 5월 22일

 
* 2019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518기념재단 주최로 열린 ‘2019 광주아시아포럼 : 학살과 난민 – 국가폭력과 국가의 보호책임’ 마지막 융합세션에서의 발제문을 옮긴 것입니다. 

 
난민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 
 
이일 변호사[1] 
 

  1. 들어가며 – 2018년 난민혐오가 공론장에서 표출하다

작년 중순경 무비자 제도를 통해 제주도로 들어온 500여 예멘 난민들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화두를 안겼다. 대한민국은 1994년 이래 난민제도를 시행해왔지만 제도의 존재와 사회적 인식은 분리되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난민들이 이번 상황을 통해 ‘보이는 사람들’로 강제로 공론화되었고, 광장에 세워진 난민들에 대하여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위험한 난민혐오 역시 공론장에서 표출되었다. 마지막 융합세션에서의 본 발제는 이민국가 – 다인종 – 다문화 사회가 아닌 한국에서 난민혐오가 발생하는 맥락을 간략히 탐구하고, 난민 혐오를 해결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 시민사회가 각국의 국내 역량,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려고 한다. 이로서 난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강제송환을 저지하는 전통적, 법적 운동과 별개로, 난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반차별 운동과의 연대 역시 중요한 운동임을 주장할 것이다. 
 

  1. 이민국가가 아닌 아시안권 국가에서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발생하는 맥락 – 제주 피난 예멘 난민을 기점으로 한 차별과 혐오는 왜 발생했는가

아시아는 하나의 아시아가 아니다. 이민국가를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나라는 없지만, 다양한 역사적 맥락 속에 이주자들 혹은 난민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겨지고 편입된 사회도 있다. 그 경우 오랜 역사속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국민으로 편입된 경우도 있고, 국민이 아닌 외국인으로서 편입된 경우도 있어 다양하다. 또한 단일민족 국가와 같은 형태의 단일성에 기반한 정체성을 표방하면서 이주자들이나 난민들이 완전한 타자로서 사회의 구성원 지위를 얻지 못한 채 사실상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요는 아시아를 하나로 규정하기가 이주 및 난민의 맥락에 관해서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 후자와 같이 단일성에 기초한 정체성이 중시되어 이주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되지 못한 사회다. 그런데 특히 역사적인 계기로 기억될 2018년 예멘 난민들에 대한 난민혐오 프레임 즉, 한국인 여성들을 위협할 잠재적 성범죄자, 위험한 테러리스트, 박해사유가 없는 가짜 난민과 같은 난민혐오 형태로 등장하며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타자로서의 이주자들의 취약한 이러한 지위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70만명에 이르는 난민추방, 난민법 폐지 취지의 청원은, 적폐정부를 청산한 민주적 주체인 ‘국민’들이 그린 한국사회의 모습에 난민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에서 작년 한해 난민혐오가 발생하게 된 맥락을 되짚어 보는 것은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발생하고 있는 난민 혐오의 다양한 종류의 가능한 배경들을 상상해 보는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첫째, 난민혐오는 한국에서 소수자 혐오가 발생하는 맥락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누적되어 왔던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적극적인 분노를 동반한 혐오의 형태로 가시화되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 여성, 장애, 성소수자와 같은 소수자 집단들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규정한 후 차별을 구조적으로 정당화하는 발언들 혹은 엄격히 규제되어야 할 수준의 발언 즉, 존재를 추방해야한다는 취지의 증오선동까지 등장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군필 남성, 비장애, 헤테로로 규정된 정상성의 표지는 그와 같은 표지를 갖지 않는 집단에 대한 분노의 정서를 동반한 강렬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소위 미투운동으로서의 여성운동, 퀴어퍼레이드를 비롯한 반차별 운동으로서의 성소수자운동, 탈시설 및 장애인 이동권을 비롯 다양한 의제에 관한 장애인운동과 같이 정당한 운동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침해되었던 권리를 회복하고 부인된 존재를 회복하는 그러한 과정이 ‘정상성 표지를 가진’ 자신들이 누려야할 배분적 정의를 침해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경향이 등장한다. 오히려 ‘역차별’ 담론, ‘피해자’ 담론이 왜곡된 형태로 생성되고 있다. 난민혐오는 이와 같이 최근 몇년간 점증한 소수자 혐오 중 가장 최신판본이다. ‘정상성’과 기존의 한국사회와의 유대 등 자신과 닮은 모습을 전혀 갖지 않은 가장 완벽한 ‘타자’인 난민들은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동심원 가장 바깥에 있는, 언제든지 추방되어 존재가 삭제되어도 될만큼 존재적 근거가 취약하다.

둘째, 난민의 취약성, 타자성도 난민혐오의 근거다. 급격한 경제발전 속 평등보다는 효율이 강조된 한국사회의 변화는 탁월성, 승리, 강함이 추앙 받는 승자독식, 적자생존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약함’ 자체는 적극적으로 배척되어야 할 경멸의 표지가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취약성(Vulnerbility)는 그 자체로 ‘나’와 적극적인 거리를 두어야 하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나’의 얼굴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완벽한 타자로서, 취약성 자체를 보호의 근거로 주장하는 난민옹호의 논리는 이들에게 매우 생경하다. 취약성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과거 일베(Ilbe)로 표상되었던 취약성을 혐오하는 집단들은 한국 사회 내의 수많은 재난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주장에 대해 지겹다고 하고, 그만하라고 하며 피해자의 얼굴로 나타나지 말라고 한다.

셋째, 한국사회의 강력한 단일성과 인종주의도 난민혐오의 근거다. 한국 사회는 ‘다양성’에 대한 적극적 가치를 이해해본적이 없다. 비단 민족주의 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다양성을 최대한 거세하고 경쟁 속 도태되지 않을 효율적인 인재를 양성하려는 교육현장, 다른 목소리를 모두 종북으로 매도하며 반북(Anti-Korea) 노선 하에 대오를 정렬하는 병영국가의 모습은 이러한 배경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다르다는 것은 오히려 집단과 다수를 거슬리게 하는 튀어나온 못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일대오를 흐트러트리는 난민 이라니. 문화적 동질성, 정착가능성이란 외피를 입고 새롭게 등장하는 신인종주의는 이러한 혐오를 부추긴다. 더욱이 한국의 인종주의는 한국전쟁 이후 ‘서구권 백인 남성’을 정점으로, 아시아권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자, 미등록체류자와 같은 순서로 형성된 위계적 구조를 갖고 있는데, 난민은 이중 가장 밑에 있다.

넷째, 타문화에 대한 완벽한 무지다. 작년 한국을 찾아 피신한 예멘 국적 난민들에 대한 낯섦은, 고질적인 인종주의 및 타문화에 대한 무지에 근거하여, ‘전쟁의 참화를 피한 보호가 필요한 난민’이 아니라, ‘언제든지 한국 여성들에 대해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정체를 알 수 없고 언제든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수상한 남성들’처럼 독해되었다. 한국 정부 역시 제주도에서 난민들의 출도를 우선적으로 제한하고, 가짜 난민 프레임에 동조하면서 이를 확대한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무시무시한 편견이 사회적으로 등장한 배경은 타문화에 대한 완벽한 무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생산되는 ‘국제’, ‘외국’의 담론은 모두 미국발 언론보도 뿐이다. 한국전쟁 때문에 남한을 구원한 존재로서의 미국은, 한국을 구원할 구원자일 뿐 아니라, 개인으로서도 미국 국적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은 반주변국가인 헬조선을 탈출하고 주류의 성원이 될 천국행 티켓이 된다. 이런 배경, 정게, 학계의 미국에 대한 종속은 WASP의 배경과 정파적 이익 속에서 생성된 특정한 관점의 미국 발 가치관 만을 정당한 것으로 수용하게 만든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 세계인구의 1/4을 이루는 ‘무슬림’이란, 담론적 차원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완벽히 모른다. 그런데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이 갑자기 솟아오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극우 종교집단의 이해관계, 타자에 대한 배척을 근거로 정치적 지분을 획득해보려는 일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부합하는 가짜 뉴스(Fake news)들은 사실관계에 대한 건강한 사회적 논의를 실종시키고 난민 혐오에 불을 질렀고 지금까지 그러하다.

다섯째, 성원권에 대한 민족주의적 믿음도 난민혐오의 배경이다. 한국사회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상흔을 통과하며 반식민지투쟁의 주된 운동의 동력 중 하나를 민족주의에서 찾았고, 단일민족으로서의 자부심에 관한 신화화는 군부독재시절 국민통합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강화되었고, 이후 형식적 민주화의 시기가 도래한 이후에도 본질적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에 유럽 등지의 극우정당[2]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서 한반도에 있는 공동체 즉, 한국사회의 성원권(Membership)을 가진 주체는 오로지 국민 뿐이고, 그 외의 비국민들은 국민들의 시혜적, 재량적 조치에 기대어 체류할 수 밖에 없는 이방인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의 박해의 위험을 근거로 한국에 영구 체류할 타자인 난민들의 존재는 공동체적 가치를 저해하는 원치 않는 성원들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1. 난민에 대한 환대의 배경이 없는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국제적, 국내적 역할은 무엇인가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맥락이 중첩된 상태에서 등장한 난민혐오는 한국사회에서 사실 ‘다수’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종래 구성원들 대다수가 전쟁을 거치며 난민이었거나 유사범주에 해당 했었던 기억을 갖고 있음에도 이례적으로 난민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 이에 기반한 환대의 맥락이 이상하게도 존재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일부의 강력한 혐오선동은 다수의 시민들에게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난민들의 법적 권리와 난민정책 자체에 대해서만 집중해왔고, 난민의 사회적 자리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알려올 기회가 없었던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대응하기 쉽지 않은 강력한 상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을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한국의 맥락에서 도출되었던 국내적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가 역할을 하도록 해야한다. 현 정부의 명확한 입장 및 태도를 촉구한다. 즉 정부의 ‘난민은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다’라는 취지의 선명한 정책기조 확립과 메시지 전달하는 것이 필요한데, 단기적으로, ①현안이 된 예멘 난민들에 대한 심사 및 다양한 공보기회, ②난민반대취지 목소리 중 증오선동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정당한 국민의 목소리’로 청취하지 않고 공존의 조건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도록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출입국외국인정책기본계획 내에서, 또는 새롭게 신설해야할 난민정책기본계획 내에서 ‘다문화교육’외에 난민에 대한 이해를 교육과정에 추가해야 한다. 난민혐오 자체를 규제하고, 이에 관한 주무부처를 명확히 하는 다양한 법제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예컨대 국제사회와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차별금지법의 제정 및 시행 검토 혹은 일본의 재일조선인에 관한 혐오선동금지에 초점을 맞추어 난민포함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선동’금지, 국가와 지자체의 방지대책 수립을 명시한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과 유사한 이른바 ‘혐오선동금지법’등을 참고해야한다.

둘째, 시민들에 대한 공보적 전략이다. 정치적 고려에 따라 난민혐오를 적극적으로 양산하는 극우적 집단에 대해서는 사회의 공존의 조건을 깨뜨리는 비합리적 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고립화를 시키고, 극우적 집단에서 생성 유포하는 가짜 뉴스, 문건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행동을 취한다. 난민에 대한 낯섦 때문에 극우적 집단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다수의 시민들에 대해서는 장기적 관점으로 난민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 나가야 한다.

셋째, 적극적인 연대의 확대다. 난민의 사회적 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제안을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하고, 이를 방해하는 안티테제들 즉, 차별, 단일민족, 혐오, 인종주의, 타문화배척과 같은 것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범위를 넓혀 싸워가야 한다. 이주난민분야에서의 연대 뿐 아니라, 반차별 운동진영과의 연대와 같은 연대의 확장, 의미 있는 연구를 쌓아갈 다양한 학과의 교수 및 연구자들과의 연대, 극우적 목소리에 영향 받지 않고 pro-난민의 입장에서 발언하고 법률을 개정할 국회의원 및 정치인들을 발굴 해야한다. 영구적인/부차적이지 않은 사회구성원인 난민의 존재성에 대한 질문은, ‘한국사회의 미래’가 ‘자민족끼리의 평화’의 기치하에 ‘엄격한 제한적 통제로 사회내 외국인을 2등국민으로 만들 것인지’, ‘다양한 문화, 국적, 인종이 존중받는 이민국가로 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던지게 된 계기임에 대한 공감대를 다양한 연대의 확장을 통해 넓혀가야 한다.

국제적 연대는 어떠한가. 난민의 혐오와 차별 자체에 대한 싸움을 이어나갈 연대를 확충해야한다. 2015년 이후 유럽 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반이민자 정서에 기초한 극우 정치인들의 지분이 확대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난민정책에 대한 입장 자체가 없었던 과거와 달리, 정치인들의 난민정책에 대한 의견과 입장이 유권자들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방치한 채 제도개선에만 집중할 경우 전체 난민옹호운동의 판도 자체가 뒤집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아태난민권리네트워크(APRRN)나 난민을 의제로 삼는 다양한 지역 인권네트워크들에서도 난민의 권리의 강조, 난민제도설계, 강제송환의 저지와 같은 급박하고 처절한 싸움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맥락에 부합하는 난민혐오와의 싸움을 중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논의를 축적해 나가야 할 것이고 차별에 반대하는 다양한 국제적 연대체와도 협력할 필요가 있다. 개별 국가 내 행사에 머물렀던 세계 난민의 날, 인종차별철폐의날과 같은 모멘텀에는 동시다발적으로 벌일 수 있는 설득력과 매력을 가진 큰 차원의 캠페인도 고려할 필요가 있고, 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제송환의 사례뿐 아니라 난민혐오피해에 관한 사례들에 대해서도 연대의 목소리를 함께 모아야 할 것이다.

[1]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아태난민권리네트워크 동아시아 실무그룹 의장, 한국난민인권네트워크 의장

[2] 독일민족을 위한 대안(AFD) “우리가 국민이다” 등을 구호로 내세우고 있음.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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