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국의 ESG 공시 의무 법제

2019년 8월 6일

최근 한국의 국민연금 책임투자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ESG(환경, 사회책임, 기업구조) 공시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기업들에게 ESG 공시를 어떻게 의무화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연합의 CSR 지침(2014/95/EU)
 
유럽연합에서는 CSR 지침을 통해 기존의 회계지침(2013/34/EU)을 개정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비재무적 정보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19a, 29a)과 다양성 문서를 발행하도록 하는 조항(20)이 추가된 것입니다. 이 중, 19a와 29a는 적용 대상이 다를 뿐 거의 동일한 내용의 조항입니다. CSR 지침 상에서 비재무적 정보 공시 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적용 대상: 근로자 500 명 이상의 공익실체(public interest entity) (19a), 근로자 500명 이상의 통합공익실체(consolidated public interest entity)(29a)  
B. 공시 내용: 최소 1) 환경, 2)사회와 고용 문제 3)인권 4)반부패와 청렴을 포함하여 해당 사업체(entity)의 1) 비즈니스 모델, 2) 관련 정책과 시행한 과정, 3) 정책의 결과, 4) 이러한 사항에 관련해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리스크와 사업체가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5) 관련 비재무적 실적 지표  
C. 공시 방법: 경영 보고서(management report)에 비재무적 정보에 관한 문서(non-financial statement)를 포함시키거나 별도 보고서 발행

이를 토대로 각 유럽연합 회원국은 국내 실정에 맞게 국내법을 도입합니다. CSR 지침의 큰 틀 안에서 각 국가가 어떻게 자율적으로 국내법을 입법하는지를 통해 한국에서도 ESG 공시 의무 법안이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고려되어야할 부분은 적용대상입니다. CSR 지침은 대형 사업체(large undertaking) 중 평균 근로자 수 500 명 이상의 공익 실체(public interest entity)와 통합공익실체(consolidated public interest entity)를 적용대상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각 국가는 “대형 사업체”와 “공익실체/통합공익실체”의 범위를 어떻게 지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둘째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은 공시 방법입니다. 기존의 경영보고서에 포함시켜서 발행할 것인지, 지속가능성 보고서 등의 별도 보고서를 발행할 것인지, 혹은 온라인에 게시할 것인지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셋째는 공시 내용에 관련한 사항입니다. CSR 지침은 최소 환경, 사회와 고용, 인권, 반부패와 청렴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CSR 지침은 원칙준수 예외설명(comply or explain) 원치과 세이프 하버(safe harbour) 원칙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칙준수 예외설명 원칙은, 명시된 사항들(환경, 고용 등)에 대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만약 도입하지 않고 있다면 비재무적 정보 공시 때 왜 그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 않은지를 명확한 근거를 들어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이프 하버 원칙은 해당 사업체가 국내법에 의거한 행정, 경영, 감독 기관의 판단 하에 협상 과정에서 어떠한 정보를 공시하는 것이 그 사업체의 경쟁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며, 그 정보가 누락되더라도 사업체의 성장, 성과와 경쟁성, 영향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그 정보를 누락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공시 의무 불이행시 불이익이 있을지, 만약 있다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업체가 하는 공시에 대한 감사입니다. 단순히 비재무적 정보가 공시되었는지 여부만을 따질지(문서 존재 여부, presence of statement), 독립적인 검증 기관이 문서 내용을 검증하도록 할지(문서 내용, content of statement), 법정회계감사나 감사법인이 경영보고서와 재무보고서의 내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법적 규정을 잘 준수하였는지, 잘못 기재된 부분은 없는지까지 확인하도록 할지(일관성 확인, consistency check)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러한 사항과 관련하여 2017년에 CSR Europe과 GRI가 공동발행한 보고서 “회원국의 2014/95/EU 지침 도입(Member State Implementation of Directive 2014/95/EU)” 중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각각 국내법을 어떻게 도입하였는지를 비교하는 표를 국문 번역한 것입니다. (전체 영문 보고서는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증권거래소 
유럽 외의 국가에서는 어떻게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을까요? 호주와 뉴질랜드는 국내법 외에도 각각의 증권거래소를 통해 기업들이 ESG 공시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ASX 2014 가이드라인의 권장사항 7.4에서, 뉴질랜드는 NZX의 기업 지배구조 강령(Corporate Governance Code) 2017 권장사항 4.3에서 각각 ESG 리스크 존재 여부와 리스크 관리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권장 사항”에 지나지 않지만 원칙준수 예외설명 원칙을 통해 상장기업들이 연차보고서에 각각의 권장사항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며, 만일 이행하고 있지 않다면 왜 그러한지를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상장 규칙으로 문서를 발행하지 않는 경우 상장 리스트에서 제외되는 등의 불이익이 따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도트 프랭크 법과 캘리포니아 공급망내투명성법 
미국은 유럽처럼 종합적인 ESG 공시 의무 법은 없지만 부분적인 공시 의무 법이 여럿 존재합니다. 그 중 비교적 많이 알려진 두 개를 소개해드립니다. 첫번째는 도트 프랭크 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 2010)입니다. 도트 프랭크 법의 섹션 1502는 콩고민주공화국(이하 DRC)에서 생산되는 분쟁광물을 소비함으로써 DRC의 인도적 위기 상황를 악화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기업들이 광물의 공급지와 관리 연속성(chain of custody)에서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를 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보고서를 온라인에 게시하고 독립적인 감사를 받도록 합니다. 만약 DRC 분쟁광물이 사용된 제품이 있다면 제품 설명, 이용된 시설과 생산국,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느 광산에서 생산되었는지를 명시하기 위해 들인 노력을 설명해야 합니다. 또한, 감사 이후 신뢰 부적합(unreliable) 판정을 받는 경우, 해당 규정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두번째는 캘리포니아 공급망내투명성법(California Transparency in Supply Chains Act, 2010)입니다. 이 법은 생산에서 유통, 판매까지의 공급망에서 현대노예제와 인신매매 리스크를 확인/방지하는 데에 목적을 둔 법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하고 있는 리테일이나 제조업체 중 연 1억 USD 이상의 세계 수입이 있는 기업은 온라인 홈페이지 혹은 공식 문서를 통해 공급망에서 현대노예제와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의 정보를 제공해야합니다. 공급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기업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이 법은 영국과 호주, 캐나다에서 도입되었거나 입법 과정 중에 있는 현대판노예법에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영국, 호주, 캐나다의 현대판 노예법 
영국은 2015년, 호주는 2018년에 도입한 현대판노예법(Modern Slavery Act)은 기업들에 캘리포니아 공급망내투명성법과도 비슷한 공시 의무를 부여합니다. 영국의 현대판노예법과 캘리포니아 공급망내투명성법에 관한 어필의 포스트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국의 현대판노예법은 현대판 노예제도와 인신매매에 적극적인 대응으로 큰 의미가 있는 법률이지만 동시에 공시 부분에 있어서는 도입된지 4년이 넘은 시점에서 그 한계점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각 기업의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문서를 한 데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Business&Human Rights Resource Centre가 발행한 보고서에서는 도입된지 3년이 지났지만 현대판노예법이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형식적인 문서를 발행하기만 하고 몇몇의 소수 기업들만이 진정으로 현대판 노예제와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호주에서 도입된 현대판노예법은 영국의 것과 달리 공시 문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정부가 문서들을 한 데 모아 누구나 온라인으로 열람 가능한 등록부(registry)를 운영하도록 합니다. 공시 의무 불이행 시, 정부는 그러한 사실을 공시할 수 있습니다. 한 편, 아직 입법 중에 있는 캐나다의 현대판 노예법은 공시 의무 불이행 시 처벌(즉결심판, 최대 250,000 CAD 벌금)도 가능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해외에서는 ESG 관련 공시를 어떻게 의무화하고 있는지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제도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에서도 기업들이 사업활동 중 환경이나 인권 관련하여 악영향을 끼칠 위험이 있는지, 그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국민연금과 같은 규모가 큰 투자자의 투자 결정에있어서는 수익을 올리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전 과정이 모두 책임감있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또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작성자 공익법센터 어필 17기 인턴 조진서]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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