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마에게[For Sama(2019)]” 리뷰 – 폭탄 떨어져도 울지 않는 아기… 한국서도 웃을 수 있길

2020년 1월 16일

사마에게 (2019)For Sama평점9.5/10
                 

다큐멘터리 영국 2020.01.23 (개봉예정) 95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와드 알-카팁에드워드 왓츠

 
 
타인의 고통은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인가

타인의 고통은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일까요. 저는 아픈 곳을 들추는 영화를 많이 보진 않습니다. 한국에서 쉽게 이해받기 어려운 난민들이 조금이나마 더 이해받을 수 있도록 인권활동가로서 사람들에게 책이나 영화를 소개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잘 챙겨보진 않습니다. 활동 속 쉴 새 없이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잠시나마 회피해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어느 윤리적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물음은 과연 ‘타인의 고통은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보다 나은 공감과 연대라는 목적이 타인의 고통을 감상한다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스스로의 사회적 민감성을 자찬하거나 그 순간을 쉽사리 소비할 수 있는 위험을 염려해서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저 너머에서 고통받는 사람과 대비되는 제 안온한 삶이 갑자기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과연 무슨 자격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지난 17일 저는 정식으로 개봉되기 전 시사회로 영화 <사마에게>를 보았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괴로운 질문을 품고도 작은 의무감으로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그동안 국내 상영된 시리아의 참상에 관한 영화는 거의 모두 봤다는 생각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보고 머리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잊혀진 공간으로서의 시리아를 다시 기억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는 감독이고 촬영감독이자 스스로 주인공이었던 와드 알 카팁의 시선과 목소리를 따라갑니다. 그는 전쟁 속에서 알레포 병원 의사인 함자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보물과 같은 딸 사마를 얻게 됩니다. 와드는 모든 순간을 계속해서 영상으로 쉴 새 없이 기록합니다. 기쁜 순간, 고통의 순간, 행복한 순간까지 모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 여기 이곳에서도 아이들의 일상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순간들도 집요하게 기록합니다. 누군가는 절규합니다. ‘제발 계속 찍어달라고, 이런 짓들을 벌인 놈들이 누구인지 다 알 수 있도록.’ 
 
▲ 영화<사마에게>스틸컷 (저작권 : 엣나인필름, 출처 : 다음 영화 페이지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0136) – 기록하고 있는 주인공 ‘와드-알-카팁’  
 
영화는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지만 주로 2016년 6월부터 알레포에 있었던 일에 주목합니다. 시리아 정부군이 알레포를 포위한 2016년 6월부터 그들이 알레포를 떠나기까지의 시간입니다. 와드의 가족은 정부군으로부터 알레포를 방어하기 위해 전투에 참여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의사 함자는 수많은 부상자들을 치료했고 와드는 이를 지켜보며 살얼음판 같은 시간들을 경험합니다. 
 
행복하고 소중했던 시간들은, 정부군이 알레포를 포위하면서 점차 고통의 순간으로 채워집니다. 폭격, 사망, 울부짖음, 치료, 실패, 울부짖음, 폭격. 정부군의 폭격과 직시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한 시신들, 무뎌질 정도로 반복되는 수많은 죽음. 이러한 무거운 순간들이 와드 가족의 일상을 밀어냅니다.  
 
<사마에게>는 알레포를 조명하며 ‘잊혀진 공간’으로서의 시리아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시리아가 잊혀졌다구요? 그렇습니다. 2011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전쟁은 지난해 말까지 1800만 명의 국민 중 약 40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습니다. 지난해 5월까지 590만 명이 국경을 건너 피하도록 만들었고, 610만 명이 국경을 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게 된 전쟁입니다. 또 민간인 살상과 금지된 생화학 무기의 사용 등 수많은 전쟁 범죄가 횡행하는 그런 전쟁입니다. 영화의 배경인 알레포는 이른바 ‘반군의 수도’라고 불리며 반군이 정부군과 격전을 벌인 중심지입니다.  
 
▲ 영화 <사마에게>의 배경인 알레포 
 
그런데 사실 국제사회로부터 시리아는 잊혀졌습니다. 전쟁은 전혀 종료되지 않았고 사람들의 고통스런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군의 상징이자 희망이었던 ‘알레포’가 2016년 말 정부군에게 함락됐습니다. 
 
전쟁은 국제전이 됐고 ‘시민들의 승리’라는 드라마가 희미해지자 국제사회는 관심을 거뒀습니다. 유럽 국가들의 부채의식이 반영이라도 된 듯, 알레포의 참상을 다뤘던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그즈음 수많은 상을 타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현재 정부군은 알레포 북쪽 터키 국경 이들립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반군의 최후의 항전과 같은 전선이 형성됐고,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국제사회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누군가에겐 매일이 생사의 갈림길이지만, 누군가에겐 반복되는 뉴스로 소비되는 상황입니다. 영화는 국제사회의 무책임한 무관심을 꿰뚫고 시리아를 다시 우리 눈 앞에 보여줍니다. 
 
삶, 일상, 행복, 아름다움, 웃음, 그런 것들의 언어를 넘어선 가치 
 
▲ 영화<사마에게>스틸컷 (저작권 : 엣나인필름, 다음 영화 페이지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0136) – 와드 알-카팁의 가족 함자, 그리고 알레포에서 태어난 사마 
 
영화 <사마에게>가 놀라운 이유는, 시리아를 주목하게 하면서 잔혹한 고통의 현장을 배경으로 현시하지만,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잔혹한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와드 가족과 친척들, 친구들의 삶, 일상, 행복, 아름다움,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마에게>는 유사한 주제를 다룬 다른 다큐멘터리처럼 굵직한 사건을 따라가거나, 연대기를 훑거나, 저항이란 남성적인 거대 서사를 쫓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와드는 철저하게 사랑스러운 아이 사마를 비추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순간들, 선생님이 아이들로 하여금 불탄 버스를 다양한 색으로 칠하게 하는 시간들, 가족들과 뛰어놀고 농담을 던지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을 계속해서 비추고, 전쟁 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하기 위해 격려하고 같이 웃으려 애쓰는 순간들을 기록합니다.  
 
잔혹한 전쟁 속에서도 우리네 삶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일상의 존엄과 평화를 지켜내려는 그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들은 전쟁의 부당성을 어쩌면 더욱 효과적으로 고발합니다. 또 그 고발을 넘어 언어로 담을 수 없는 근원적 가치들을 자꾸 떠올리게 합니다. 
 
죽음이 아닌 삶이란 왜 중요한가? 일상이란 왜 소중한가? 행복이 왜 가치로운가? 아름다움이란 왜 숭고한가? 웃음은 무슨 힘을 갖는가? 와드의 시선과, 알레포에서 존엄을 지키며 일상을 이어간 아이들, 시리아 알레포 시민들 모습들을 보면, 이런 질문들이 사변을 넘어서 가슴으로 곧장 묵직하게 들어옵니다. 중요하고, 가치롭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라고. 그 누구도 시리아의 시민들과, 알레포에서 살고 있던 아이들의 삶에서 이걸 앗아갈 권리는 없다고. 폭탄이 떨어져도 울지 않는 사마를 보고 와드는 오열하지만, 한편 그 안에서 천사와 같이 웃고 있는 사마로 인해 모두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한국에까지 연결된 모두의 삶을 위해  
 
영화 <사마에게>를 보고 저는 사실 말을 잠시 잃었습니다. 도무지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잔혹한 전쟁의 고통과 이를 이겨내려는 한없이 용감하고 놀라운 알레포 시민들의 위대성, 생명과 희망의 살아있는 상징으로서의 사마의 웃음, 한 가족의 개인적이고 숨결이 느껴지는 일상과 포기치 않는 희망은 잠시 말을 멈추게 했습니다. ‘고통을 감상한다’는 것의 형용모순에 다시 시리아를 직시 하길 주저했던 제게, 다른 삶이 새롭게 던져진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와드 가족은 영국에 정착하여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알레포에서의 고통과 희망의 역설은 스크린 바깥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명확하게 이어집니다. 와드 가족과 동일한 경험으로 연결된 시리아 난민들이 한국에도 1200명 이상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도적 체류라는 허울뿐인 이름의 지위를 받아 아무런 관계망이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빈곤선을 겨우 상회하는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마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은 건강보험을 해결하지 못하면 수백만원의 치료비를 내야만 출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필요조건으로서의 권리를 향유한 인간으로 살아가지 못한 채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시리아 안에서는 전쟁을 맞닥뜨리고, 시리아 밖에서는 차별과 냉대, 그리고 미래 없는 절망과 맞닥뜨립니다. 결혼과 사마의 출생, 소중한 신혼시기의 추억이 깃든 집을 떠나야하는 순간에 와드는 담장 옆에 있는 화분을 하나 챙깁니다. 알레포 밖에서도 과거를 기억하고, 전쟁 속에서도 꽃피우고 있는 생명을 계속 보기 위해.  
 

▲ 어필 유튜브 채널 난민여성의 이야기 네일쌀롱 4편 – 시리아의 평범한 대학생, 갑자기 난민되다(링크) 한국에서도 수많은 난민들이 이와 같은 참화를 피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찾아왔지만, 아직 수많은 과제들이 난민들에게, 그리고 난민들 곁에 서 있는 시민들과 활동가들 앞에 놓여있습니다. 영화 <사마에게>를 보고난 뒤 저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시리아를 다시 직시하고,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웃음과 아름다움, 삶과 일상의 숭고함을 강렬히 경험한 것은 정말로 소중했습니다. 법률가로서 난민들을 조력하고, 한국사회를 다양하게 조망하며 한계를 느낍니다. 그건 법은 형평과 균형을 다루고 분쟁을 멈추게 할 최소한의 도구일 뿐, 법으로는 인간의 ‘덕’과 ‘아름다움’, ‘윤리’를 일구게 하거나, 상상하도록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평화를 찾아온 난민들에게 평화는 멀리 있는 가상의 드라마가 아니라 여기서도 맛볼 수 있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여기서도 삶과 일상, 행복과 아름다움, 웃음을 찾아갈 수 있도록, 내가 다시 단단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가볍지 않은 책임감도 마음속에 가득 찹니다.  
 
알레포의 와드 가족과 한국에 있는 난민들, 그리고 저와 한국사회가 서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새롭게 기억합니다. 와드 가족은, 그리고 사마의 웃음은 지켜져야 합니다. 여기 한국에서도.  
 
 
 
(공익법센터 어필 이일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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