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0년 6월] #5. ‘출생등록될 권리’를 인정한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이 있기까지 – 전수연 변호사

2020년 7월 1일

 

  1. 아빠는 한국사람, 엄마는 난민

  의뢰인을 처음 알게 된 지도 벌써 2년 전이네요. 사무실로 문의이메일이 왔습니다. 본인은 7년 전에 귀화한 한국사람이고 아내는 A국에서 본국의 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탈출하였는데, 일본에서도 아내분의 반정부적 활동이 발각되어 주일본 A국 대사관에서는 아내의 여권갱신을 불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사실상의 무국적자가 되어버린 아내분은 일본에서 난민신청을 하였고, 현재는 일본에서 받은 인도적 재류비자를1 받아 체류중이라고.

 

  1. 미혼증명서가 없으니 혼인신고 못했고, 혼인증명서가 없으니 아이의 출생신고를 못했고.

  의뢰인과 아내는 한국에서 조촐히 두분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러 주민센터에 갔지만, 혼인신고신청서를 접수할 수 없었습니다. 부부 중 일방이 외국인인 경우에는 본국에서 미혼이었음을 증명하는 ‘미혼증명서’가 필요한데, 아내는 난민사유가 있어서 대사관에 출입할 수 없었고, 따라서 미혼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부부의 사랑스런 아가가 태어난 이후였습니다. 3년이나 기다려 만난 아가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주민센터에 갔지만, 출생신고 접수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출생신고를 정하는 관련 법령과 예규상, 출생신고를 하려면 부부의 혼인관계 증명서와 친모가 출산 당시 미혼임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의뢰인은 아이의 엄마가 난민사유가 있어서 위 서류들을 발급받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친딸과의 유전자검사확인서까지 제출하였지만, 담당자로부터 출생신고를 하려면 ‘법원에 가서 친생자출생신고를 위한 확인결정을 받아오는 방법 뿐’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1. 쉽게 쓰여졌을 1,2심의 판결문

  현행 가족관계의등록등에관한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 혹은 ‘동법’ 이라 합니다)상, 아이의 출생신고 의무자는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 부 또는 모’ 인데 반해, 혼인 외(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사실혼도 포함)의 출생자의 경우 출생신고의무는 원칙적으로 ‘모’에게만 있습니다.2

  다만 아이를 낳고 친모가 행방불명되는 등의 사유로 친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친부가 단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2015년도에 관련 조항(일명 사랑이법’,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이 개정되었습니다. 즉 친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친부가 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으며, 신고를 하면 자녀를 인지(認知, 자녀를 본인의 친생자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보겠다는 내용입니다.3

  의뢰인의 경우는 아내의 난민사유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출생한 아이마저 혼외자로 분류가 되고, 혼외자는 친모가 출생신고를 하여야 하나, 아이의 엄마는 유효한 신분증이 없어 본인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서류가 전무한 상태였으므로 이는 친모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준한다는 판단이 들었고, 이에 관할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에 근거하여 ‘의뢰인에 대한 친생자출생신고 확인신청’을 접수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1심의 결과는 기각이었습니다. 가사사건은 경우에 따라 심문을 진행하지 않고 재판부에서 서류만 검토한 후에 결과를 선고하는데, 이번이 그러하였고 심문기일이 잡히지 않았던 까닭에 판사님 얼굴을 마주할 겨를도 없이, 아래와 같은 기각 결정문을 받아들게 되었습니다.

                                  ▲ 1심 기각결정문 중 일부발췌_허탈한 주문과 더 허탈한 이유

     구구절절 적어낸 서면과 입증자료들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에 대해 항고를 하였고, 2에서는 다행히도 심문기일이 잡혀 법정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변론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또 기각.

  이번에는 (그나마 덜 억울하게) 판결문에 기각이유가 설시되었는데, 해당 사건은 ‘아이의 친모가 존재하고 확인가능하기 때문에 동법 제57조 제2항이 적용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동법 제57조 제2항은 아이의 엄마가 실종된 경우같이 소재파악이 안되는 경우라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또한, 혼인관계증명서 미비의 이유로 접수가 거부된 것이니,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하면 된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제가 제출한 서면은 확인하신 것이 맞는지요 재판장님! 서면에 아내분의 난민사유 때문에 필요서류 등을 제출할 수 없다고 썼고, 기일에 진술도 하였는데 말이지요)

 

  1. 대법원의 파기환송 소식, 꿈은 아니겠지.

  1,2심 법원을 거치며 이 사건은 판사들에게 ‘보통’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사안을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는게 맞는 것일까 고민되었습니다. 행여 의뢰인에게 헛된 희망을 주며 시간만 좀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맘이 무거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일명 사랑이법의 적용범위를 ‘친모가 소재불명’된 경우로만 엄격히 좁혀 해석한 1,2심의 판결은 사랑이법의 도입취지, 즉 좀더 많은 아동들이 출생등록을 용이하게 하여 아동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게 하기 위한 취지를 몰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만 별 기대 없이)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착한 문자 한 통. “대법원 (사건번호) 판결정본이 도착하였습니다.”

  전자소송 홈페이지에 서둘러 들어가 보았습니다. 결과란에 “파기환송”이라고 적혀있었죠. 처음에는 잘 믿기지가 않아 새로고침도 해보고, 로그아웃을 했다가 다시 로그인을 하면서 두번 세번을 확인하였는데, 정말 ‘파기환송’이라고 적혀있더라구요. 민법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 파기환송이 맞나. 보통 대법원은 법리적 판단만 하기에 대다수의 사건은 판결에 법리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후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고 있지요. 대법원에서 심리하는 사건이 22-23%4대 인 것을 감안하면,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는데, 2심 판결에 법리적 문제가 있으니, 다시 판단하라고 원심으로 되돌려보내는 결정이 나왔다니…  

  판결문의 내용(대법원 2020스575)도 저의 2년 묵은 체증을 싹 가시게 해주었습니다.

 “(동법 제57조 제2항의) 문언에 기재된 ’모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는 예시적인 것이므로, 이 사건과 같이 외국인인 모의 인적사항은 알지만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 또는 모의 소재불명이나 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발급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등과 같이 그에 준하는 사정이 있는 때에도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사랑이법의 적용범위를 대폭 늘려 보다 많은 아동들의 출생등록을 보장하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고민해주신 대법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 내 인생에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문을 받아보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1. 여전히 출생등록될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보편적 출생신고제의 도입을 소망하며.

  다만, 아쉬웠던 점은… 여러 언론들에서 위 대법원의 판결이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판결이라고 보도되었지만, 엄밀히는 아닙니다. 사랑이법이 적용되는 아동은 아빠가 한국국적자인 경우이며, 대법원이 최초로 확인한 ‘출생등록될 권리’도 오직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에게만 보장되는 것이지요.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경우에는 한국에서 출생한 아이라해도 출생등록될 권리5가 보장되어 있지 않아 여전히 교육, 의료 등의 보장체계에 접근이 어렵거나 범죄환경 등에 노출될 가능성도 많아지게 됩니다.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에 관하여는 이미 이를 규정하는 수 개의 국제협약들이 존재하고, 국제사회의 요구가 있어왔습니다. 2018.12.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해 한국 내 출생한 모든 아동이 국적 및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출생 등록이 되도록 보장6할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아동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신의 출생사실을 등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얼마 전 들었던 실제 사례 중, 출생신고가 되지 못한 아이들이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아이들은 애초에 출생이 기록된 적이 없기에 사망신고도 할 수가 없었다는 말에 가슴이 아릿하였습니다. 삶의 시작과 끝이 기록조차 되지 못한다면, 그 사이에 분명히 존재했던 삶은, ‘실제로’ 존재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보편적 출생신고제의 이슈는 단순히 아동의 권리보장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실재를 받아들이는 더 근본적인 지점에 가닿아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최초로 확인한 아동의 ‘출생등록될 권리’의 지경(地境)이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들에게로 확대되는 그 날을 꿈꾸며, 긴 호흡으로 담아낸 글을 마칩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전수연 변호사 작성)

1

우리 난민법상 ‘인도적 체류자’와 비슷한 비자이며, ‘인도적 체류지위 비자’는 난민불인정은 되었지만 난민신청인을 지금 당장 본국으로 송환시킬 경우에는 신청인의 생명과 신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허가되는 비자입니다.  2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 (신고의무자)  ①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의 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하여야 한다.  ②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  3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57조 (친생자출생의 신고에 의한 인지)  ①부가 혼인 외의 자녀에 대하여 친생자출생의 신고를 한 때에는 그 신고는 인지의 효력이 있다. [개정 2015.5.18] [[시행일 2015.11.19]] ②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부의 등록기준지 또는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제1항에 따른 신고를 할 수 있다. [신설 2015.5.18] [[시행일 2015.11.19]] 4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53165  2019.5.20.자 기사 “대법원, 지난해 심리불속행 기각률 ‘76.7%’… 역대 최고”  5

간혹 출생등록이 되면,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아닌지 개념을 혼동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출생등록과 국적취득은 별개입니다. 국적을 취득하려면 법에 정한 요건을 갖춰 귀화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6

보편적 출생신고제란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들이 힌국정부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최종수정일: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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