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들었노라! 받았노라! – 한국정부 자유권 규약 4차 심의 참가기

2015년 11월 21일

2015년 10월 22, 23일 양일간 유엔 자유권위원회에서 한국정부의 자유권규약 이행에 대한 4차 심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심의는 2006년도에 있었던 3차 심의 이후 9년만에 이루어진 심의로 한국의 자유권 상황이 지난 9년간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자유권위원회의 전문가들을 통해 평가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6시간의 심의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국에서, 그리고 1주일 전부터는 제네바 현지에서 준비를 했는데요, 지난 1년, 그리고 1년만큼 치열했던 제네바에서의 1주일 간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 2014년 9월, 시작된 여정  

2014년 9월 16일, 자유권 심의를 위한 사무국이 꾸려졌습니다. 어필은 민변, 코쿤, 참여연대와 함께 사무국으로 참여하였는데요, 자유권위원회에서는 본심의 전에 사전 쟁점목록을 채택하고 있어서 쟁점목록 채택을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2015년 초에 제출을 하였고, 쟁점목록이 채택된 이후, 이에 대한 답변을 중심으로 하여 본 심의를 위한 전체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 사무국에서는 관련 단체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정보를 받고, 정보가 안오면 또 연락을 돌리고 (독촉을 하고…), 받은 자료를 양식에 맞게 다듬고, 다듬다가 추가로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연락을 하고 (독촉을 하고…), 다듬은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고, 번역한 내용을 감수하고, 감수한 내용을 편집하고…하는 과정을 거쳐 전체 보고서가 작성이 되었는데요, 보고서 작성은 꼼꼼함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으로 최종 보고서 제출 전, 사무국 멤버들은 서울 모 처의 회의실에 갇혀 새벽 3시까지 작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8시간 이상 계속되는 회의 중, 몸을 풀고 있는 민변 모 변호사님

▲보고서에 기재되는 사항의 최종 확인을 위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 (당시 시각 새벽 1시경…)

전체 보고서 작성 및 제출 후, 어필과 어필이 참여하고 있는 기업인권네트워크에서도 전체 보고서에 담지 못한 상세한 내용에 대해 단독 보고서도 제출을 하였습니다. (자유권 위원회에 제출된 모든 문서와 권고는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이메일로 보고서 제출 후 굳이 하드카피 7부를 제출하라는 자유권위원회 사무국의 이해할 수 없는 요구에도 순순히 순응하여 제출된 7부의 보고서

   #미션: 담당 위원을 찾아라!    

보고서 제출 후, 사무국에서는 자유권 위원회의 위원들의 성향 분석 및 담당 위원을 찾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유권위원회는 총 18명의 인권전문가들로 구성이 되어있는데요, 1년에 3번,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션을 통해 자유권 위원회는 국가별 쟁점목록 채택, 국가별 심의, 후속조치 이행 확인, 개인청원 사건 심사, 일반논평 검토 등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게 됩니다. 한국 정부는 2015년 10월 19일부터 11월 6일까지 열린 115차 세션에서 심의를 받게 되어있는데요, 심의기간 동안 한국 외에도 6개의 국가에 대한 국가보고서 심의 및 많은 일정들이 있기 때문에 18명의 위원 중 5명이 한국을 담당하여 집중적으로 질의를 하고 보고서 작성에 관여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유권 위원회에서는 어떤 위원들이 한국 담당인지에 대하여 심의 전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권 심의 대응 NGO 모임의 명의로 모든 위원들에게 각각의 관심 분야로 보이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정보를 보냈습니다. (위원들의 관심 분야에 대해서는 위원들의 경력과 이전 세션에서의 질의내용 및 권고내용에 대해 리서치를 하는 것이 필요했는데요, 어필의 자원봉사자이신 서현승님이 리서치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네바 현지에서의 미팅을 요청하는 메일을 적극적으로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위원도 있는 한편, 사무국을 통해 개별 컨택을 하지 말도록 부탁하는 냉정한 답변도 들려와서 실망하기도 했는데요, NGO 모임의 멤버들은 모쪼록 제네바에 가서는 필히 이들을 일일이 붙잡고 로비를 할 것이라 더욱 굳세게 다짐을 하였습니다.   

# 빨레 윌슨 까페테리아 잠복 근무 

그리고 자유권 심의 대응 NGO 모임의 멤버들이 심의를 일주일 앞두고 제네바로 떠나기 시작하였는데요, 사실 제네바에 심의일보다 조금 더 일찍 간 이유 중의 하나는 3주간의 세션의 첫날인 10월 19일에 심의를 받는 국가들의 인권위원회와 시민사회에게 공식적으로 발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본 심의에서는 국가 보고, 자유권 위원들의 질문, 국가 답변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민사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발언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개회시의 이 시간만이 시민사회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공식 발언시간입니다. 한국 자유권 심의 대응 NGO 모임에서는 참여연대 백가윤 간사님과 민변 장영석 변호사님이 대표로 발언을 해주셨습니다 (감동의 구두발언문은 여기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자유권 심의 대응 NGO외에도 국제앰네스티, TRACK,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자 당사자인 이예다님도 각자의 이슈에 대해 발언을 하였습니다.   

▲비록 제네바에 도착하였으나 팍스 로마나 회의실에 갇혀 발언문을 수정하고 있는 멤버들

  

▲각 6분씩의 발언시간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을 하고 있는 백&장

   NGO발언을 마친 후, NGO 참가단의 멤버들은 빨레윌슨의 까페테리아를 본격적으로 점거를 하였습니다. 심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회의장과 까페테리아는 빨레윌슨의 긴 복도를 두고 양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저희 멤버들은 까페테리아 입구 정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을 점거하여 까페테리아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가 위원 혹은 위원의 어시스턴트로 보이면 재빨리 접근하여 ‘우린 한국 NGO인데 우리 이슈에 대해서 소개할 시간을 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작전을 펼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까페테리아에서 식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있던 워터발 위원(Margot Waterval)에게 접근하여 한국 NGO와 만나줄 수 있는지 물어봤고, 워터발 위원은 흔쾌히 우리 NGO와 만나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워터발 위원과 이렇게 어렵게 성사된 미팅에서 워터발 위원은 이미 이슈별로 한국정부에 제출된 질의목록 중에서 몇번, 몇번, 몇번이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이슈이니 코멘트가 있으면 달라고 했는데요, 그 중에서 외국인 구금과 인신매매 이슈가 있다는 사실에 저는 반가움을 금할 수 없어 만세를 불렀는데, 이걸 놓치지 않은 워터발 위원이 저에게 먼저 발언 기회를 주었고, 저는 외국인 구금 이슈와 인신매매  이슈에 대해 숨도 쉬지 않고 한국의 상황 및 위원회에서 받고 싶은 권고에 대해서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워터발 위원은 정부에게 질의를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데 실제로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과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자세한 정보를 요구하여 당장 정리해서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일주일 내내…항상 그 자리에…저희가 있었습니다★

  

▲로들리 위원과 까페테리아에서의 만남

워터발 위원 외에도 로들리 (Nigel Rodley )위원, 샤니 (Yuval Shany) 위원 등과도 별도의 미팅이 성사되었는데요, 이렇게 위원들과의 미팅 후 위원이 특별히 궁금해하는 사항 및 강조하고 싶은 내용에 대해서 콕 찝어서 정리한 위원용 맞춤형 쪽집개 로비문서를 작성하여 추가 제출을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자유권 심의 최고의 효자템! 따끈따끈하게 작성된 문서들을 USB에 담아, 회의장 옆 복사기에서 출력을 한 후, 스테이플러를 찍으면 쪽집개 로비문서의 완성!! 사실 저의 제네바에서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저 스테이플러 챙기기였습니다…!

   # 총칼 없는 전쟁

드디어 22일 심의 당일, 한국 정부의 심의는 오후부터였는데 심의 1시간 전, NGO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위원들을 만나서 이슈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비공식 NGO미팅을 마치고 회의장으로 들어가니 그 전 심의와는 다르게 회의장이 꽉 차 있었고, 자리가 모자라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NGO단은 다행히 OHCHR에서 인턴을 하고 계신 박인숙님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 앉아 심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의 심의가 볼만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는지 단순 참관을 위해 회의장을 찾은 학생들도 많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에서 무려 40명이나 되는 대표단이 파견된 것도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법무부차관의 기조 발언이 끝난 후, 위원들은 쟁점목록의 이슈 별로 질의를 했는데요, 사실 NGO 참가단은 심의 직전까지도 별도로 미팅을 한 워터발, 로들리, 유발 위원을 제외하고 한국을 담당하는 위원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그동안 NGO참가단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았던 이와사와 위원이 질의를 하는 대목에서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와사와 위원은 그동안 제출된 보고서를 정말 꼼꼼히 검토하여 매우 상세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는데, 이를 보고 그동안 찬 바람을 맞았던(?) 서러운 마음이 눈녹듯이 사라지기도 하였습니다.

  

▲심의기간 전에도 심의기간에도, 심의 후에도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는 멋쟁이 백가윤 간사님!!(심지어 어필 후원자!!)

  

▲열심히 로비한 내용을 위원이 제대로 질의하자 한이 풀린듯 눈물을 흘리는 백모간사님

   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비해 정부는 보고서에 제출된 내용에 대해 단순히 반복하거나 교묘하게 논점을 피해가는 식의 답변을 되풀이하였고, NGO 참가단은 답답한 마음을 위원회에 추가로 제출할 문서 작성에 모두 쏟아 부으며,  한국 정부의 답변에 대해 보강 및 정정할 부분과 추가적으로 제공할 정보에 대해 밤 늦게 까지 정리하여 사무국으로 송부하였습니다.

심의 이틀째에는 위원들의 질문이 더욱 날카로워졌는데요, 한국 정부가 보고서에 있는 답변 만을 되풀이 하자 로들리 위원은 “기존 보고서에 있는 내용을 되풀이 할 필요 없다”고 하며,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였고, 한국 정부가 유엔이 지속적으로 권고한 바 있는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대해 ‘국민적 합의’ 및 ‘여론’ 때문에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변명에 대해서는 “인권은 여론으로 정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코멘트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보다 자세한 전체 심의 스케치는 참여연대 백가윤 간사님의 오마이뉴스 기고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드디어 만난 너, 4차 권고

이렇게 폭풍 같은 6시간의 심의 후, 11월 5일, 한국 정부에 대한 자유권 위원회의 4차 권고 사항이 발표 되었습니다. 4차 권고는 그 동안 제출된 보고서와 로비의 결과가 대체로 잘 반영이 되었으며, 어필에서 다루고 있는 이슈 중에서 기업인권, 이주구금, 인신매매와 관련된 내용도 포함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권고를 받은 사항들에 대해 바로바로 모두 이행을 한다면 참 좋겠지만, 실은 시민사회의 역할은 지금부터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권 위원회가 과도한 무력 및 차벽 사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의 보장과 경찰관들의 무력 사용이 자유권 규약에 부합하도록 하라는 권고를 받은 지 채 2주가 지난지 않은 지난 11월 14일 서울 도심에 경찰이 설치한 차벽과 무분별하게 발사한 물대포는 정부가 자유권 규약의 이행에 어떠한 무게를 두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가며 지켜낼 수 있도록 힘을 내야할 때지 싶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내는데에 자유권 규약의 권고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정신영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