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1년 3월] #14. 난민 곁에서 대신 화내주는 변호사 – 이일 변호사

2021년 4월 8일


  “아니 계장님 그거 맘대로 하시면 안되고 접수거부예요! 왜 법에도 없는 거 요구하며 난민분 자꾸 오라가라 합니까.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러시는거냐구요!”

  점심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한 난민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 전화로는 수많은 난민분들이 전화, 카카오톡, 왓츠앱으로 문자와 연락을 주십니다. 예정된 업무시간에는 곧장 답을 못하고 전화도 잘 받기 어렵지만, 왠지 느낌상 받아야만 할 것 같은 타이밍의 전화들이 있습니다.

  맥락도 모르고 전화를 받으니 출입국공무원입니다. ‘이거 좀 내용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써오시라고 이분에게 안내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우선 서류 줄테니 내일 다시 써오랍니다. 제가 처음엔 공손하게 대화하다 갑자기 속터져서 화를 내며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러냐고 따지자, 알겠다고 우선 받겠다고 합니다. 잘못을 지적받았는데 도리어 큰 아량을 베푼 것처럼 얘기하고 전화를 난민분에게 돌려주는데, 이번엔 뒤에서 글씨를 못알아보겠다고 투덜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은 제가 좀 급격히 텐션이 올라서 좀 더 목소리를 높였는데, 끊고 나서 “아 오늘은 왜 좀 더 그랬지?”하고 되짚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엔 이 가족에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난민 면접 날자가 잡혀서, 난민분이 잡힌 날자 전날에 긴장해서 잠도 못자고 새벽같이 출입국 사무소를 찾아가니, 난민심사관이 갑자기 통역일정이 안되고 지금 밀린일이 너무 많으니 날자를 새로 정해줄테니 다시 오라고 했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제게 전화한 난민분의 목소리에 저도 너무 황당해서 난민심사관에게 “아니 그럼 미리 연락을 하던지, 통지를 해주셔야지. 아무 것도 모르고 긴장해서 준비해왔는데 바쁘니까 안되고 나중에 다시오라는게 말이 됩니까”라고 핏대를 올리자, 말을 이리 저리 돌립니다. 그러나 돌려도, 난민분에게 죄송하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이 난민 가정은 자신의 나라에서 독재에 맞서 인생을 바쳐서 싸운 투사인데, 존경하고 배워야만 할 분인데, 출입국공무원이 한없이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오라가라 하고 하대하는 것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작년과는 다른 공무원이었지만 그 가정이 또 부당하게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것 때문에, 저도 오늘은 순식간에 돌변했나 봅니다.

  이주민, 난민들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얼굴인 출입국공무원들에게 체계화된 ‘광범위한 재량 이란 단어로 어깨에 두른 완장’, ‘체계화된 인종주의’는 난민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긴 커녕, 한국의 체류질서를 해치는 범법자처럼 이해하고, 난민들에게 보장된 권리는 자신들이 시혜적으로 베푸는 은혜 같은걸로 여기곤 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모멸감을 난민들은 맞닥뜨립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난민들에게도, 저희들에게도.

  도무지 안되고 말이 막히면, 난민분들이 전화를 해서 “Mr.lee Mr.lee”하고, “무함미 무함미(아랍어로 변호사입니다)”라고 하면서 공무원을 바꿔줍니다. 전화기 바깥에서는 퉁명스럽게 “왜요? 누군데 전화기를 줘요”라고 윽박지르는 공무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영문도 상황도 모르는 전화통화 속 예의있게 내용을 파악해보면 결국 말도 안되는 요구로 민원인인 난민들을 함부로 대하는 소위 갑질의 내용이 태반입니다. 그냥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변호사가 끼어드니 귀찮은 일 생겼다며 공무원도 혈압이 오르고, “당연한걸 이걸 왜 이렇게 굳이 설명해야하지”라며 밀어붙이는 저도 혈압이 오릅니다. 난민들의 삶, 한국에서 맞닥뜨리는 제도, 일터에서의 고충, 모든게 어렵지만 공무원들이 법위에 선 것처럼 무시하며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볼 때면 분노를 참을 수 없고, 전화를 한번 하며 줄다리기를 할 때마다 수명이 깎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그간 제 안에도 해소되지 않은 분노와 스트레스가 쌓여버렸지, 공무원들이 툭 건드리면, 갑자기 터져나오고 잘 자제가 안될 때도 생깁니다.

  결국 해결이 되었는지, 난민분은 다시 전화를 주지 않고 집으로 가신 모양이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부당하게 대우 받는게 맞다고 느껴지는데, 한국어도 안되고 어떻게 지적하고 싸워야할지 알 수 없는 난민분들이, 기댈 곳으로 생각해 Mr. Lee를 찾아 주는 것에 어쩌면 저희들의 작은 또하나의 역할을 찾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화로 해결이 안되고, 서로 줄다리기가 길어지면 직접 달려가야 하는 일들도 생깁니다. 말도 안되는 일로 난민들이 구금되거나 비자를 빼앗기거나, 심지어는 정당한 요구인데 공무가 방해된다며 경찰을 불러 난민들을 ‘치워’버리려고도 하니까요.

  그나마 옆에서 싸워주고, 공무원이 갑질할 때, 옆에서 같이 핏대올려 주는 사람. 구조상 약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게 더욱 하대하는 한국 사회에서, 옆에서 함께 화내고 싸워주는 사람. 법정에서도 싸우지만, 실제로 옆에서 한치도 밀리지 않고 싸워주는 변호사. 작은 싸움에서 1cm 밀리면 그 밀림은 난민에게는 1미터의 후퇴가 되고, 결국 또 다른 난민들에겐 10m의 후퇴가 되는 일이 수 없이 생깁니다. 그래서 어느덧, 한국에서 난민들의 ‘곁’이 된다는 것은, 변호사로서 대신 목소리를 내준다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그런 작은 싸움들을 싸우는 것도, 지혜롭기도 해야하지만 부당한 일에 추상같이 내지르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워갑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이일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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