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모두 함께 나눈 밥상의 기억

2015년 5월 24일

임박한 박해로부터 급히 몸을 피한 국가에서 예정에 없게 한국에 도착하여 난민신청을 해야했던 파이잔, 아닐라(가명)씨 가족은, 어필의 도움으로 만삭의 몸으로 겪은 공항에서의 강제송환의 위협과 구금, 난민신청 후 초기 정착의 어려움 등을 뚫고, 얼마전 한국에서 건강히 출산한 예쁜 아기와 함께 난민심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이잔씨 가족에게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고 싶어 현지 요리를 포장하여 가져다드리기도 했었던 어필은, 아닐라씨에게서 ‘이보다 훨씬 맛있게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며’, 지금 요리를 할 수 없는 숙소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 주방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대접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었습니다.

느지막한 봄, 지난 토요일에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가 집으로 파이잔씨 가족을 초대하여 드디어 모두 아닐라씨가 준비해주신 음식을 먹으며 파티를 열게 되었습니다. 3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비리야니(Biryani)에서  풍기는 향신료의 향기가 아직도 진동하는 것 같은 그 따뜻한 현장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오늘의 요리 – ‘치킨 비리야니’ 너의 정체는 무엇인가]

▲ 구글에서 검색한 비리야니

파이잔씨 가족을 환영하고자 예쁜 레터링과 여러 장식으로 집을 꾸며놓으신 정신영 변호사의 집에 어필 사람들은 속속들이 도착하였습니다. 모두를 위해 아닐라씨가 자신있게 선보이신 오늘의 요리는 바로 ‘치킨 비리야니와 달카레, 샐러드와 난’! 오늘의 메인요리인 치킨 비리야니는 쌀에 여러가지 향신료와, 미리 양념에 재워서 볶아 놓았던 치킨을 넣고 찐 음식으로 남아시아권과 중동 전역에 널리 퍼져있는 볶음밥 같은 것인데요. 누구나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조리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보통 가정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열때 꼭 먹게 되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음식의 기본은 좋은 식재료! 오늘을 위해 파이잔씨 가족은 여러가지를 준비해주셨는데요. 본국에서 먹던 맛 그대로의 음식을 만들고 싶어, 파이잔씨는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태원까지 전철을 타고 가셔서 그 지방의 쌀, 여러가지 향신료, 양념, 야채등 다양한 재료를 직접 사오셨습니다. 정신영 변호사는 아침부터 집을 청소하고, 김종철 변호사는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커다란 상을 가져왔고, 김세진 변호사는 나눠먹을 과일을 사왔습니다.

▲ 비리야니 위에 올라간 달콤한 맛의 너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냐!

 

[식사준비시간]

파이잔씨와 아닐라씨는 3시간에 걸쳐 서로 도와가며, 양념을 만들고 닭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볶고, 밥을 찌고, 요구르트와 카레를 준비하며 잠시도 쉬지 못한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방에서 조리기구의 이용과, 여러 일들을 친절히 도와주셨던 정신영 변호사 내외를 제외하곤, 다른 이들은 도울 일을 찾기 어려워 멀뚱멀뚱 있다가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식사시간을 기다렸습니다.

    

3시간 쯤 지났을 때였을까요. 배가 고파오면서 풍겨오는 향긋한 향신료 냄새에 모두들 거의 정신을 잃어갈 즈음. 드디어 음식이 완성되어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모두에게 드러냈습니다.

  

▲ 완성된 비리야니를 열심히 섞고 계신 아닐라씨

  

[드디어 찾아온 식사시간!]

음식을 기다리던 모두는, 궁금한 마음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접시에 음식을 급하게 덜었는데요. 약간은 어색하게 음식을 더는 모습들을 지켜보신 아닐라씨께서 직접 음식을 담아 주셨습니다. 아! 지금도 이 순간이 생각납니다.

 

참! 밥상에 치킨 비리야니만 놓여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날의 점심식사는 거기에 더해 요구르트, 난, 카레, 샐러드까지 함께 곁들인 그야말로 멋진 정찬이었습니다. 치킨 비리야니를 한접시 가득담아, 달 카레를 올리고, 요구르트를 끼얹어 따스한 난과 함께 입에 넣어보자, 모두들 처음 느껴보는 따뜻하고 달콤하고 기분좋은 맛에 신이 나서 즐겁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정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요?

      

[함께 나눈 밥상의 기억]

어느 봄날, 함께 둘러앉아 나눈 밥상은 어필의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음식의 맛과 더불어 파이잔씨 가족의 따뜻한 환대를 경험하게 된 귀중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어쩌면 언젠가 어떤 식당에서 시험삼아 지나치듯 먹어보고 잊어버렸을 수도 있는 요리의 ‘사물’로서의 기억이, 앞으로 지워지지 않을 새로운 ‘우리’로서의 관계적 기억으로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 우리는 이날 함께 둘러앉아 나눈 밥상은 파이잔씨 가족에게도 매우 특별한 기억이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파이잔씨 가족은 작년에 한국에 도착한 이래 매섭게도 추운 한국의 겨울을 처음으로 보내고, 아이를 출산하기에 이르기까지 주변에 공항에서부터 인연이 닿은 어필 사람들 외에는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산 후 소식을 듣고 돕겠다는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유아용품도 감사하게 얻고(마침, 이날은 이제 아이가 많이 무거워져서 계속 안고 다니기 힘들어진 아닐라씨를 위해 감사하게도 소식을 듣고 기증해주신 유모차도 새로 얻게 되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친구라고 여길 수 있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런 파이잔씨 가족에게 서로 환대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눴던 이날의 기억은, 주말마다 함께 친척들과 밥상에 둘러앉아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예전의 고향에서의 기억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딸에게는 한국에 도착한 이후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없는 곳에 머물러야 했기에 반년이 넘는 시간동안 먹을 수 없었던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치킨 비리야니를 함께 둘러앉아 먹은 기억이 파이잔씨 가족에게도 그런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줄은요. 이날의 밥상은 그런 기억의 자리였습니다.    

따스했던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에 잠시 밖에서 미리 준비했던 비눗방울 장난감들을 갖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다 보니, 극히 작은 것만으로도 관계 속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난민들은, 그리고 난민을 옹호하는 활동가들은 국가의 냉혹한 얼굴과 법이란 날카로운 잣대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반복해서 세우는 경험을 합니다. 법은 요구하는 얼굴로 다가오지, 환대하는 얼굴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변호사들도 난민들도 법이 매개가 되면 서로 그런 얼굴로 만나게 됩니다. 그런 우리들 모두에게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 관계 속에서 맛있게 먹고, 서로 함께 웃고, 즐겁게 놀았던 기억들은 정말이지 봄날 햇볕처럼 따스한 행복이었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먹는가는 매우 중요하고, 누구와 함께 먹는가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모두 함께 둘러앉아 먹었던 비리야니를 둘러싼 서로를 환대한 따뜻한 기억이 앞으로 어필의 변호사들에게도, 그리고 파이잔씨 가족에게도 생생하게 지속되길 기원해봅니다.

      

(이일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관련 태그

관련 활동분야

난민 관련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