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2년 3월] #25.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싸움 – 이채은 로스쿨 실무수습생

2022년 3월 2일


 처음 어필에 들어와서 자기소개를 할 때, 제 자신을 메신저 이모티콘 중 “동그리” 캐릭터로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캐릭터처럼 눈과 얼굴이 동그란 탓에 많은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이어서, 그리고 제가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갈등과 싸움을 싫어했습니다.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되는 것인데, 타인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갈등과 싸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가 로스쿨에 입학하고 2년간 법 공부를 했을 때, 저는 법이 싫어졌습니다. 법이 사용되는 상황 뒤에는 항상 갈등이 있고, 법은 그 싸움의 승자와 패자를 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법이 그 싸움에서의 약자에게 너무 차가운 것 같다는 생각에 실망하였고, 이렇게 법과 싸움을 싫어하는 제가 평생 변호사의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필에 와서 저는, 법이 때로는 차갑게 보일지라도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또한 법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교적 박해로 본국을 탈출하여 한국에 온 지 5년 정도 된 한 가정이 난민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한국 어선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한 이주어선원이 내국인 선원과 동일한 기준으로 재해보상금을 받게 된 것도 다 법이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싸움, 타인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싸움도 있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 15주기 추모 기자회견에서 외국인 보호소 고문 피해자 M씨와 많은 시민들이 외국인 보호소 내 인권 침해 근절과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소리치는 모습, 공식적으로 난민을 불법으로 규정짓고 사실상의 살인을 묵인하는 호주 정부에 대한 레바논 국적 리나 님의 끝없는 난민 활동, 매우 저조한 난민인정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법원을 비판하기도, 설득하기도 하며 난민인정을 구하는 호사님들의 서면들. 이외에도 어필에 있는 매 순간순간 저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싸움들을 목격하였습니다.

 

 어필에 있는 동안, “어벤져스”라는 영화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어필에서 근무하시는 인턴분들, 팀장님, 호사님들 한 분 한 분의 능력과 전체의 하나 됨이 마치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들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계가 때로는 무관심하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하더라도 시민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우는 슈퍼히어로들의 모습과 우리의 이웃들을 지켜내기 위해 비틀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된 싸움을 하고 계신 어필 모든 분들의 하루하루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벤져스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모두 영화에 집중하고 슈퍼히어로들을 응원하듯, 어필과 난민, 구금된 이주민, 이주어선원의 싸움도 모두가 자기 일처럼 함께 싸우고 응원을 보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법과 훗날 제가 할 일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이 식으려고 할 때마다 어필에서 알게 된 법의 따뜻한 힘,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싸움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그것들이 더욱 넘쳐날 수 있도록 저도 함께 비틀거리며 살아가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로스쿨 실무수습생
이채은 작성)
최종수정일: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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