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터디] 미국 공공조달 공급망의 인권침해

2015년 8월 11일
# 어필은 지난 7월, 한국NCP 개혁방안 토론회와 공공조달 토론회에 참가하였습니다. 이후 기업인권 · 공공조달과 관련한 해외사례들을 좀 더 분석, 연구하기 위해 미국의 ICAR(International Corporate Accountability Roundtable)에서 2014년 9월에 발간한 ⌜공공조달 공급망의 인권침해를 다룬 보고서⌟를 주제로 지난 8월 11일에 밥터디를 진행하였습니다. 입추는 지났지만 아직 가시지 않은 무더위속에 채식 중국요리와 함께한 밥터디를 공개합니다.

1. [TURNING A BLIND EYE?] 보고서 소개

흔히 한국에서 올바르게 사용되지 못하는 정부 보조금, 국고사업을 ‘눈먼 돈’이라고 표현하는데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나 봅니다. 위 보고서 Turning A Blind Eye는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미국 연방정부 공공조달사업에 쓰이는 돈을 ‘눈먼 돈’으로 표현하고 정부의 감시활동을 통해 그 눈을 뜨게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공공조달 사업 인권침해 기업의 개선방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발간한 ICAR은 기업의 국제적 활동에서 발생하는 인권, 환경, 노동문제를 조사하고 법적 규제마련에 힘쓰는 미국 시민단체 네트워크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의 연간 공공조달 규모는 3500억 달러에서 5000억 달러로 단일 소비자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구매력을 가진 공공조달 구매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공급망 사슬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2. 연방 취득 규정(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미국 연방정부의 공공조달에 관한 규정인 FAR은 2000쪽이 넘고 500개가 넘는 세부분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간단히 접근하여 살펴볼 수 있는 FAR 규정은 목적부터 용어 정의, 계약실행부터 계약 종료까지 공공조달 계약의 거의 모든 부분을 세부조항을 통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FAR Homepage(링크)

이러한 세부조항을 마련하여 미국 연방정부는 공공조달시장을 관리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공공조달은 여전히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공공조달 공급망의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걸까요?

3. 공공조달 공급망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이유

(1) 낮은 입찰가 경쟁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급업체는 생산시간은 최대한 늘려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임금은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입찰가를 낮춥니다. 생산 최저가를 설정하여 빠르게 물건을 생산하고 납품하는 순환시스템이 수익성도 높고 즉각적인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FAR 또한 이에 맞춰 입찰 업체 중 기술적으로 수용할만한 가장 낮은 가격을 입찰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다는 원칙(lowest price technically acceptable, LPTA)을 세워 낮은 입찰가 경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2) 공급망 투명성

기업은 국제적 공급망을 통해 계약의 책임과 합리적인 계약 이행 가능성을 다른 불확실한 하청업체에 떠넘깁니다. 이와 같이 이중, 삼중으로 진행된 공공조달 하청계약은 최초 계약자와의 계약 내용을 흐리게 만들고, 재하청업체에게는 물품의 배달, 질, 가격, 배송 문제에 극도로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공공조달 계약의 인권, 환경적 측면을 악화시킵니다.

(3) 미국 연방정부의 공공조달 규모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미국 연방정부의 공공조달 규모는 세계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세계적으로 공공조달은 전체 수출의 82%를 차지하며 OECD 국가는 평균적으로 GDP의 20%를 공공조달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시장규모 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정부 공공조달은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타이 등 아시아지역과 아프리카, 멕시코 및 도미니카 공화국 등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공급망에서 공공조달 계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계약 업체가 멀리 떨어져 있고 계약 자체가 양적으로 많기 때문에 계약의 세부적인 내용이나 기업의 노동인권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알기 힘듭니다.

(4) 연방정부의 공급망 관리능력

그동안 정부가 그 구매력을 활용해서 기업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뒀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기업의 사회참여, 기업인권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급망들이 이제는 국제화 되면서 정부의 관리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로 전이되고 있는 점이 현재 공급망 관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정부의 관리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최저가 입찰경쟁을 통해 기업이 수익을 추구하게 되면 공급망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인권보장 수준이 바닥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기업이 최저가 입찰과 공공조달 계약체결과 빠른 물품순환만을 생각하니 재앙과도 같은 여파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4. 공공조달 분야별 인권침해 사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분야에서 어떤 형태로 공급망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날까요. 보고서를 발행한 ICAR은 쉽고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인포그래픽을 통해 사업 영역별 공급망 인권침해 발생실태와 문제점에 대해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인포그래픽을 참고하여 보고서에 언급된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며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보겠습니다.

1) 전자기기

2012년, 미국 연방정부는 1248억달러의 전자기기를 공공조달을 통해 수입했고, 이 중 사무용 장비로 776억달러를 중국에서 수입했습니다. 노동집약적이고 기술수준이 필요한 전자기기의 경우, 특히 시장규모가 큰 중국에서 공급망 인권침해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전자기기를 생산하는 중국 공장에서는 개인작업시간이 한달 286시간까지 이르기도 하며 한 생산업체에서는 가혹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8달 동안 17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지나친 생산 할당량에 대해 노동자가 항의하면 할당량이 더 증가하며 할당량이 증가하면 그나마 있는 휴게시간조차 쉴 수 없습니다.

작업환경의 안전위협으로 인한 사고도 빈번합니다. 2011년, 공급망의 한 공장에서 환기가 잘 되지 않는 환경에서 가연성 알루미늄을 쌓아둔 것이 폭발하여 3명의 사망자와 15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폭발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방치하여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민간 군사기업

밥터디를 준비하며 보고서를 살펴보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이 바로 민간 군사기업에 관한 부분입니다. 다른 영역의 인권침해 상황 또한 심각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부분까지 공공조달이라는 이름으로 하청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폐해가 제 3국에서 고용된 민간 군사기업 노동자, 군사작전이 주로 이뤄지는 분쟁지역의 민간인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국방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1600억 달러를 사용하여 미국 연방정부 부처 중 가장 많은 공공조달 계약을 발주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활동하는 미국 군대의 절반 이상이 미국 국방부 하청을 받은 군사기업 소속입니다.

민간 군사기업 소속 군인들은 스스로도 항상 위험상황에 놓여 있으며 지역 민간인에게도 단순히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총기 발포, 무력 사용, 고문 등 많은 민간인 피해자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민간 군사기업은 미국인 뿐 아니라 현지 또는 아프리카 등 제3국에서 사기, 강제노동 등을 통해병력을 고용하여 위험한 작전에 투입시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3) 의류

값싼 노동력과 원료가 필요한 의류산업 또한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산업분야입니다. 의류산업의 핵심적 인권침해는 낮은 임금과 위험한 작업환경, 아동 강제노동입니다.

2013년 방글라데시 다카 근교 사바르의 상업용 건물인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미국 정부에 납품하는 의류기업이 입주해 있던 이 공장은 지나치게 밀집된 작업환경, 건물 부실시공, 무리한 증축 등을 건물이 견디지 못하고 건물이 무너져 1130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최악의 건물붕괴 사고로 이어졌습니다.

(4) 농업

농업분야에서 핵심적인 인권침해는 노동조합의 단결권 침해와 역시 낮은임금, 아동의 강제노동, 인신매매 입니다. 멕시코와 캄보디아에서 노조를 조직하려던 근로자를 해고한 사례가 보고되었고 주로 아프리카 국가에서 수입하는 커피, 사탕수수, 코코아 농장에서 아동 강제노동이 일어나며 일하는 아동들 절반 이상이 작업 중 부상을 당합니다. 타이에서는 새우잡이 등 어선에서 인샌매매를 통해 강제노동시키고 일을 하지 않을때는 팔을 묶는 등의 이동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5. 공공조달 공급망 인권침해 개선방안

살펴본 바와 같이 공공조달이라는 거대한 시장규모 안에서 다양한 인권침해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공조달 공급망의 인권침해를 각국 정부가 간섭할 수 있을까요? 간섭할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 수많은 노동자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요? 보고서는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몇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1) 공공조달 계약 이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 위험 인지 범위 확장

FAR이 수많은 세부조항을 정하여 공공조달 계약을 관리하고 있지만 사실 공급망 노동 인권부분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모든 노동자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명백한 강제노동이나 인신매매는 금지하고 있지만 그밖의 노동인권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으며 미국 사법권의 영향이 미치는 미국 내 공급업체만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급망 업체에서 노동조합 탄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보호범위를 ILO 핵심 노동기준으로 넓혀 결사의 자유 등을 보호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한국 신안 염전노예사전에서도 드러나듯, 강제노동의 기준을 형법보다 폭넓게 해석하여 강제노동 피해자의 형식상 동의가 있더라도 사기나 열악한 환경을 남용하여 탈출하지 못하게 막거나 위협하는 경우 강제노동으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숨겨진 입찰가를 찾아라

공공조달 계약 입찰에 관해 앞에서 언급한대로 공급업체는 최대한 공급가격을 낮춰 계약을 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러한 입찰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낮을수록 생산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할 확률은 높아진다고 봅니다. 즉,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낮을수록 저임금, 아동, 강제노동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가격경쟁을 통한 입찰경쟁을 막기 위해 정부는 계약업체들이 계약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재정적, 시설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지 파악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또한 노동자의 업무환경에 대해서도 사전에 파악하여 인권침해될 여지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예방대책을 마련할 것인지를 사전에 파악해야 합니다.

(3) 공공조달 계약 시 인권침해 및 사고예방 조항 삽입

단순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성에만 의존하여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하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인권침해가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급망의 인권침해 예방을 위해 계약체결 기업 뿐만 아니라 하청업체에도 작업 중 사고방지를 위한 의무조항을 삽입하고 이러한 의무가 지켜지지 않을 때 계약을 연기하거나 취소, 다음 입찰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는 불이익을 구체화 시켜 기업의 적극적인 노력을 강제해야 합니다.

6. 마치며

미국 연방정부의 보고서를 분석하면서 한국 공공조달에서 상상하기 힘든 민간 군사기업의 인권침해 사례와 전세계를 상대로한 공공조달 계약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 세계를 상대로 공공조달 계약을 진행하면서 각 기업의 노동인권 상황을 개선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공공조달의 시장규모와 계약의 안정성, 지속성을 생각한다면 기업입장에서도 각 국 정부의 공공조달 시장은 놓칠 수 없는 거래대상이며 정부 규제를 강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열린 공공조달 국회토론회에서 한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조달에 대한 논의는 중소기업과 사회적 경제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좀 더 기여하는 중소기업과 공공조달 계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으로 열렸습니다. 당시의 공공조달의 개념과 토론회 주제가 중소기업 육성과 그에 따른 경제발전에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조금 더 발을 넓혀 공공조달이 작업환경 개선과 노동자의 인권보호 측면에서도 다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 [TURNING A BLIND EYE?] 보고서 원문은 아래에서 살펴보고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http://icar.ngo/wp-content/uploads/2014/09/Procurement-Report-FINAL.pdf

(어필 9.5기 인턴 박세호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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