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인터뷰] 정진 변호사, 어필의 ‘founding father’ 혹은 ‘아메바’

2015년 8월 30일

< 2011년 어필의 ‘1기 인턴’에서 2015년 어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까지 >

어필의 전수연 변호사는 어필이 이름도 없이 일하던 시절에 지금 사용하고 있는 책상을 만들고 ‘사포질’을 했다던, ‘어필의 founding father’ 혹은 ‘아메바’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중 한 분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많은 기대를 품었습니다.

어필 1기 인턴 정진 변호사는 당시 미국 조지타운 로스쿨 휴학 중에 어필 인턴을 하셨는데요. 지금은 미국 변호사가 되어 어필의 후원자로 돌아오셨습니다.

어필: 대학에선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셨는데,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진: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어요,  이와 관련한 것을 배우는 것이 정치외교학이라 생각했구요. 초반에는 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공부를 하면서 저에 대해 알아갈수록 학자보다는 실무를 하는 쪽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학부 1학년 말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1차시험은 전부 객관식임에도 불구하고 OMR 카드 마킹을 대신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1차시험 접수할 즈음에야 알게 되었어요. 행정고시는 국가공무원을 뽑는 시험인만큼 장애인에 대한 ‘편의제공’이 있을 것이라고 당연히 기대했어요.  

이런 과정을 겪다보니, 미국 로스쿨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필: 그럼 미국이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아무래도 그러한 편의제공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미국 로스쿨을 가게된 것인가요?

정진:  편의제공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저에게 실무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사람이 있었어요. 그 분도 한국사람인데 15살에 미국에 갔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전맹(全盲)’이었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 과정으로 공부하던 도중에 지도교수가 ‘월가’에 가서 일하라고 해서 박사과정을 그만 두고 월가에 가서 일을 했던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된 거에요. 충격을 받았지요. ‘월가’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최고로 경쟁이 치열한 곳이잖아요. 그런데 지도교수가 그분에게 “내가 네 재능을 볼 때 너는 ‘월가’에 가는게 좋겠다” 라고 한 거에요.

어필: 여기까지 이야기 들었는데도. 감동이 와서 소름이 끼치는데요.

정진: 저도 진로에 대해 학부를 마칠 무렵에 전공 교수님께 찾아가 상담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당시 교수님께서는 유학을 다녀와도 정치외교 분야에서 일을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면서 오히려 사회복지 쪽으로 나가보라고 하시는 거에요. 아까 15살에 미국에 갔다고 하는 분이 들었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거죠. 그때 저는 다른 사람 말을 듣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 조차도 우리 사회의 ‘선입견’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때부터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타인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결단을 내릴 때에는 제 자신 내부의 원동력에 의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물론 학부시절에 제게 조언해주셨던 교수님은 현실의 한계와 한국 사회의 선입견에 대해서 전문가로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셨던 것 같아요.

어필: 얼마전 정진 변호사가 졸업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만났는데,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냐 하면, 대학생들이 대학교 일 학년 때부터 학점에 내 인생이 걸려있다라고 생각하고 죽기살기로 공부한다고 해요. 미국 로스쿨 분위기는 어떤지요?

정진: 한국은 개인의 스토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여서 그런 것 같아요. 처음부터 네임벨류 높은 회사에 가야하고, 첫 직장이 좋지 않으면 그 이후에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 많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미국은 예를 들어 칵테일 만들다가 로스쿨에 들어와도 본인이 칵테일을 만들던 경험과 로스쿨에서 공부해야 하는 이유 등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다면 개인의 고유한 경험들도 인정을 해주는 분위기에요. 이런 맥락에서 한국에 로스쿨이 도입되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법률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점은 긍정적이라 생각해요. 개인의 스토리와 더 나아가 다양성이 인정되는 것이 결국 개인이 속하게 될 조직에도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어필: 어필인턴으로 지원하시는 분들도 그렇고, 어필 홈페이지를 보시는 분들 중에도 미국로스쿨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많은데 , 미국 로스쿨의 생활은 어떤가요? 한국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진: 미국 로스쿨에서는 모든 시험이 다 오픈북이었어요. 리걸 마인드(legal mind)를 키우는 데에 수업의 목적이 있죠. 예를 들면 교수가 어떤 사실관계를 주고 교수가 생각하기에는 15개의 이슈를 숨겨놓았는데 보통의 학생들은 10개의 논점을 찾을 수 있는 난이도인 경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때론 교수도 미처 짚어내지 못한 논점을 더 찾아내는 학생이 인정받는 시스템이죠. 또 사실관계를 변형하여 어떤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는지를 토론하는 것도 활발하구요.  수업에서는 주로 이처럼 사실관계 속에서 논점을 잡고 토론을 하는 것을 훈련받아요. 스스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법을 터득하게끔 하는 것이죠. 그러나 한국처럼 성적 때문에 목숨걸고, 자살하는 일들은 한국과 동일해요. 못견뎌서 중퇴하는 경우도 많구요.

그리고 미국 로스쿨을 다닐 때에는 제가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까, 교과서를 사서 그 영수증을 학과 사무실에 제출하면, 학교측에서 해당책의 출판사에 연락을 취하고 출판사는 책의 내용을 PDF파일로 제게 보내주죠. 저는 그 파일을 음성인식해서 듣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구요. 지금은 한국의 대학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예전 제가 한국에서 학부를 다녔을 당시에는 이런 편의를 제공해주는 곳이 많이 없었고, 있어도 제가 파일로 받아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힘들었거든요.  물론 한국이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등의 시설면에선 미국보다 장애인 친화적인 부분들이 많아요. 다만 미국은 시각장애인에게도 동일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절차면에서’ 섬세하게 신경써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필: 로스쿨 재학 당시 인턴은 어디서 했었나요?

정진: 미국로펌, 정부기관인 EEOC(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 고용평등위원회), 국회의 하원의원실에서 일했어요. 미국에서는 방학 뿐 아니라 학기 중에도 인턴을 할 수 있거든요. 실질적으로 미국의 변호사 시험은 2달 정도만 준비하면 붙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2학년때부터는 공부보다는 경력을 쌓으며 일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죠.

 어필: 각 기관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정진: 로펌에선 주로 자문을 했었어요. 미국에선 시리아랑 무역하는 경우에 일정한 제한이 있어서 시리아랑 무역을 하고자 하는 회사를 자문하는 일을 했어요. EEOC에서는 찾아오는 분들을 인터뷰하고 , 행정심판을 하는 곳이라서 결정문 초안을 잡는 일도 했습니다. 국회에서는 의원 발의 법안에 관해 리서치를 하거나, 공청회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 대통령이 하는 일들의 위법여부(예를 들면, 대통령이 군사행동을 의회의 승인없이 하는 경우 등)에 관한 의견서를 작성하는 일 등을 하였습니다.

 어필: 미국로스쿨 졸업 후에도 미국에서 일을 했지요?

정진: 11개월 정도 로펌에서 일을 했어요. 민사 , 형사 사건에 대해 소장을 쓰거나, 주로 배임, 사기, 주주 관련한 형사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어필: 어필에서는 2011년 3월부터 6월까지 1기 인턴으로 일하셨는데요, 그 당시에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정진: 그 당시에는 ‘어필’이란 이름도 없었던 때였죠. 지금의 어필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후원자 관련하여서, 당시 겨우 7~8명이 어필을 후원하고 있었는데, 제가 아는 분들께 삼고초려의 정신으로 찾아다니며 후원자를 16명까지 늘려놓고 나갔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사실 후원자가 너무 소수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었거든요. 하는 일들이 많아서 변호사는 더 들어와야 하는데 들어오는 돈은 없고 해서…

또 기억나는 것은 책상과 책꽂이를 손수 만들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날카로운 모서리들을 맨들맨들하게 만들기 위해서 옥상에 올라가서 사포질을 하다가 건물 주인 아주머니께 혼났던 기억도 나구요. 그 책상을 아직도 쓰고 있군요. (웃음)  그 당시 우리끼리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바로 ‘책상 배치와 책꽂이 배치’였죠. 당시 사무실은 좁은 방이 여러 개 있는 구조여서 배치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거든요. 날마다 배치가 바뀌곤 했죠. (웃음)

업무에 관한 기억 중에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사항에 관하여 유엔에 제출할 개인청원서를 작성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군대에서 ‘불온서적’ 목록을 지정한 것이 합헌이라는 결정이 나왔고, 당시 헌법소송을 제기한 법무관들이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그 법무관들을 대리해서 유엔 자유권 위원회에 개인청원을 제기하는 것이었죠.

또 개인적으로는 문서를 ‘듣는’ 작업을 통해 업무를 했었던 시작점이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눈으로 무언가를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죠. 더 이상 보고 읽는 것을 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음성인식을 통한 업무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어필에서 일했던 경험은 지금의 제가 법률가로 설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죠. 그 때 만약 들으면서 하는 변호사로서의 업무가 불가능함을 경험했다면 아마 전 로스쿨을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거든요.

  ◊어필의 포스팅을 찾아보니 사포질을 하던 정진 변호사의 증거사진이 있군요.  (좀더 자세한 이야기와 사진은 http://apil.tistory.com/669)

어필: 어필의 1기 인턴으로서 어필의 활동이 확장되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떠신가요?

정진: 무엇보다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 가장 기분좋은 변화에요. 어필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어필에 와서 합류하고, 또 어디에 가시든 잘 하실 분들이 어필에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보면 , 어필 초기에 펀드레이징에 힘썼던 것의 결실같아서 보람을 느낍니다.

어필은 잘 될 줄 알았어요 !

 어필: 초창기부터 어필의 후원구조에 관심이 많으셨고, 법무법인 지평에 취직하자마자 어필의 후원자가 되셨는데, 어필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정진: 공익의 꿈을 갖고 계신 분들이 어필에서 인턴 등을 하시면서 그 꿈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도 좋지만, 그 경계가 애매한 분들도 어필에 인턴으로 많이 오시잖아요. 공익하는 사람, 사익하는 사람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도 공익이라는 것이 멀지 않은 것이며 재미있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그런 기회를 어필이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프라이빗 섹터(private sector)에서 일하면서도 어필에서의 인턴 등의 경험이 헛되지 않고… 똑같은 일을 해도 공적 영역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크니까요.

어필: 정진 변호사님 장기적인 계획이 있나요?

정진: 장기적인 계획은 따로 없어요.(웃음). 사회 통념에 따르면 저는 ‘덜 경쟁적인 곳’이나 ‘사회복지와 관련된 공익적인 분야’에 가서 일해야 할 것 같지만, “그냥 자기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하는게 맞구나”라는 것을  입증해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정진도 그 곳에서 일했었지’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고 , 기회를 제공하는 ..제 삶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필: 앞에서 변호사님께서 미국 로스쿨을 가게 된 것이 무슨 편의시설과 같은 제도적인 차이를 봤기 때문이 아니라 월가로 가신 그 분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 것처럼, 정진 변호사님도 삶으로 다른 분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신 거죠?  또 퍼블릭 섹터와 프라이빗 섹터의 느슨한 경계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정진 변호사님이 로펌에서 일을 시작하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정진: 맞아요. 저의 경우에는 private sector에서 살아남는 것이 가장 공익적인 일인 거죠. 그러나 이마저도 제가 좋고 재미있어서 하는 일인 거에요. 타인의 시각을 뛰어넘고 극복한.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에도 정진변호사는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될 회사에서의 업무를 준비하기 위한 작업들을 하다가 저희가 퇴근할 즈음이 되어서야 함께 사무실을 떠났습니다. 종종 익살맞게 웃던 미소 뒤에,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치열함이 배어있던 정진변호사의 눈빛을 보며 저 또한 그의 인생을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실재’와 부딪치며 성장해나갈 정진 변호사에게 어필에서의 시간들이 햇살과 같은 따스함으로 그리고 때론 붙들고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기억들로 살아 숨쉬길 …

(전수연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