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영화 이름 혹은 공항 난민신청자의 운명

2012년 7월 17일

터미널: [명]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항공노선 따위의 맨 끝 지점, [형]구제불능의

-공항에서 난민신청한 자의 운명에 관하여

2004년 톰 행크스가 주연한 ‘터미널’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크로코지아’라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 JFK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는데, 자신이 본국을 떠나 온 뒤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돌아갈 수 도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입국을 할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운명인 거죠. 그렇게 공항 터미널에서 지내다가 아름다운 여승무원과 사랑을 하게 될 번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심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진짜 일어납니다. JFK공항이 아니라 인천공항에서 말이죠. 그것도 자주. 다른 것은 아름다운 여승무원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는 없고, 좁은 출국 대기실에서 나오지 못하며, 그 곳에서 열악한 처우를 당하다가 본국으로 강제로 돌려보내진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할 수 없습니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기다릴 때 주위를 살펴보면 여기 저기 난민신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안내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는 그런 안내문이 없을 뿐 아니라 난민인정절차를 규정한 출입국관리법이 공항에서는 난민신청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항은 물리적으로는 한국의 영토이지만, 난민인정절차와 관련해서 규범적으로는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이 난민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일단 규범적으로 한국의 영토에 들어와야 합니다. 즉 입국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입국허가를 받지 못한 외국인들은 전혀 난민신청을 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은 더 진정성이 있는 난민일 수도 있는데 이들이 난민신청을 할 방법은 없나요? 방법이 있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우선 ‘난민신청을 하기 위한 임시상륙허가신청’을 합니다. 그런데 이 신청이 잘 접수가 되지 않아요. 그러나 운이 좋아 접수가 되면, 임시상륙허가 여부에 대해서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심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 심사에서 임시상륙허가를 받으면 비로소 입국을 할 수 있습니다. 난민신청은 이렇게 입국을 한 후에 제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년 5월에 에티오피아에서 소수민족인 오로모 족 출신 로브리(가명)씨가 태국과 피지를 거쳐서 한국에 왔습니다. 로브리씨는 아버지가 오로모 반군이라는 이유로 정부군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탈출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난민신청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난민인정절차를 밟지 못하고, 로브리씨를 태우고 온 항공사는 법무부로부터 송환지시를 받게 됩니다. 위 항공사 측은 에티오피아 대사관에 연락을 해서 로브리씨의 여권을 발급 받으려고 했지만, 위 대사관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항공사 측이 로브리씨를 송환하기 위해 준비하는 2개월 반 동안 로브리씨는 폐쇄된 출국 대기실에서 살았습니다. 침대도 없어서 의자 위 누워 잠을 잤으며, 더러운 홑이불 하나를 그곳에 있는 출국대기중인 사람들과 돌려 덮었습니다. 가장 끔찍한 것은 하루 3끼를 모두 치킨 버거만 먹었다는 것입니다(아놔~ 토 나오려고 그래). 이렇게 비인간적인 처우를 당한 후 로브리씨는 결국 에티오피아로 강제로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로브리씨는 태국에서 다시 공항 구금소에 갇히게 됩니다. 태국에서 내려 에티오피아 항공을 갈아타려고 하는데, 에티오피아 항공사에서 로브리씨를 태울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사람인 것은 맞지만, 에티오피아 당국이 입국을 거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로브리씨는 다시 태국에서 7개월 동안 구금되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작년 12월에 로브리씨를 만나기 위해 방콕 공항의 구금시설을 방문했는데, 로브리씨는 인천 공항에 있을 때 거기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한국은 너를 원하지 않아. 네 나라로 돌아가. 네가 계속 이렇게 하면 여기서 치킨 버거만 먹으면서 영원히 살게 될거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이 로브리씨는 그 후 태국 유엔난민기구와 연락이 닿아 우여곡절 끝에 난민으로 인정을 받고 지금은 뉴질랜드로 재정착을 하였습니다.

(2012년 12월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가 태국 활동가와 함께 방콕 공항 구금소 혹은 출국대기실로 가는 중)

그런데 이런 일이 드물게 일어나는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사실 출국 대기실이라는 곳이 접근이 도무지 되지 않는 곳이라 그곳에서 무슨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1~2달 전만 해도 이란 출신, 모로코 출신, 나이지리아 출신의 난민신청자가 인천공항에서 난민신청의 의사표시를 하였지만 모두 난민절차에 들어가지 못하고 송환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법과 관행은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우선 난민신청의 의사표시를 한 사람에게 난민인정절차를 이용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제14조(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하여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비호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에 반합니다. 피난처를 구하고 비호를 향유할 권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난민인정절차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난민신청한 사람을 고문을 당할 곳으로 송환하는 것은 난민협약 뿐 아니라 한국이 비준한 자유권 규약과 고문 방지협약, 그리고 비준여부와 관계없이 적용을 받는 국제관습법상 강행규범인 강제송환금지원칙에 반하는 것입니다. 난민신청의 의사표시를 하였고 우리 영토 내에서 머무르고 있는 사람에게 의식주와 관련해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도 마련해주지 않는 것 역시 한국이 비준한 사회권 규약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공항 내의 출국대기실은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 일종의 인터내셔널 지역international zone이라고 하면서 위의 규범의 적용을 회피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똑 같은 주장을 하는 프랑스에 대해서 스트라스부르그의 유럽인권재판소는 소위 그러한 인터내셔널 지역을 설정한 것은 법적인 허구legal fiction이라고 일축한 바 있습니다.

현행법과 제도는 이렇지만, 최근에 제정된 난민법은 이와 관련해 어떻게 규정되어 있습니까? 우선 난민법은 공항에서도 난민신청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까지는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것에 대해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난민인정절차를 이용하게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제도입니다. 이제까지 난민신청에 대해서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은 난민으로 인정을 하든지 거부를 하든지 하는 두 가지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경우에 한 해서 일종의 허용요건admissibility 판단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적인 제한을 두었습니다.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후 7일 이내에 판단을 안 하는 경우에는 일반 난민인정절차로 가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사람이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으로부터 판단을 받을 동안 어디서 머물러야 합니까? 위 난민법은 위 신청자를 7일이 넘지 않는 한도에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난민협약에도 그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서 일정한 기간 동안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으므로 어떻게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였으나 신청을 한 지 7일 이내에 난민인정절차로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결정이 내려지고 그 결정에 대해 행정절차(과연 난민법상 규정된 법무부장관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지 여부도 의문이 있습니다)나 사법절차를 통해 다툴 동안 위 신청인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추가적인 행정처분 없이 7일을 넘어서는 공항에서 난민신청한 사람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위 난민신청자는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그야 말로 영화 터미널처럼 입국은 할 수 없지만 공항 터미널에서 이리 저리 떠돌며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공항 터미널에서 밤낮으로 지내는 이 사람을 출입국 당국이 그냥 보고 있을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위 신청인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일정한 행정처분을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침익적인(이익을 침해하는) 행정처분은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 나마 이와 관련이 되어서 법에 규정된 것이 강제퇴거처분을 내리고 그것을 집행하기 위해서 강제퇴거가 집행될 때 까지 구금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강제퇴거는 일단 입국이 허가가 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국이 거부된 이 난민신청자에게 강제퇴거명령을 내릴 수 없습니다. 난민법에서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은 다행입니다. 그러나 난민신청에 대해 신원확인을 한 후 일반난민인정절차로 가도록 하지 않고 허용요건 판단을 받도록 한 것은 잘못입니다. 이렇게 규정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꼬이게 되었습니다. 난민법이 시행되기 전에 이 부분을 다듬지 않으면 공항에서의 난민신청자의 운명은 지금과 같은 구제불능상태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입니다.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7~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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