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시리즈2] 무국적자의 정의

2017년 2월 21일

저는 제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거부’를 당하고, 제가 태어난 나라에서도 ‘거부’당했으며 심지어 저의 부모가 태어난 나라에서조차 ‘거부’를 당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당신은 우리에게 소속되지 않아’ 라는 말을 들으면서 저는 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 느꼈고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 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무국적자로서의 삶이란 항상 당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상실감을 느껴야 하는 삶입니다.

– 과거 무국적였던 라라와의 인터뷰 (UNHCR)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  

위 인터뷰에서 과거 무국적자 라라는 무국적자를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무국적자의 삶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상실감’을 느껴야하는 삶이라고 정의내립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 무국적자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을까요. 무국적자 문제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던 지난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무국적자의 정의와 이에 대한 법해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1부 보러가기: 여기

 1954년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

여러분, 무국적자 권리 보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제협약인 1954년「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이 기억나시나요? 1954년 협약은 무국적자의 지위를 규정하고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주요 국제법입니다. 54년 협약이 중요한 이유는 국제법상 최초로 무국적자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Definition)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1954년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

제 1조 (“무국적자”라는 용어의 정의)

1. 본 협약의 적용상 “무국적자”라는 용어는 어떠한 국가에 의하여도 그의 법률의 시행상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는 자를 말한다.

For the purpose of this Convention, the term “stateless person” means a person who is not considered as a national by any State under the operation of its law.

 

무국적자 정의 및 판단 기준은 바로 이 54년 무국적자 지위 협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54년 협약은 무국적자를 ①어떠한 국가에 의하여도 ②그 법률의 시행상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는 자라고 엄격하게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이 조약은 제1(1)조에 유보 조항을 허락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정의는 모든 체약국들에 구속력을 가집니다. 이에 따라 국제법상 개인은 54년 협약 1(1)조에 해당하는 순간부터 무국적자로서 그 지위가 인정됩니다. 그러나, 무국적자의 협약상 정의에 대한 법적 해석에는 이견이 분분합니다.

무국적자 정의에 대한 해석 차이

▶ 법률상 무국적자와 사실상 무국적자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무국적자 개념을 두 가지로 나눠서 접근합니다. 먼저 54년 협약에 해당하는 무국적자를 ‘법률상 무국적자‘로 정의내립니다. 한편, 형식적으로 국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를 증명하지 못해 실질적으로 무국적자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사실상 무국적자‘로 구분짓습니다. 무국적자에 관한 54년 61년 협약 모두 두 개념의 지위상 유사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나, 사실상 무국적자는 그 정의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그에 대해서는 구속력없는 최종의정서를 통해 보호를 ‘권고’하는 수준입니다.

– 각 체약국은 한 국가의 국적을 가진 자가 그 국가의 보호를 포기함에 있어 유효한 사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 본 협약이 무국적자에게 부여하는 처우를 그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호의적으로 고려한다.

[54년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 최종 의정서]

– 사실상 무국적자가 실효적인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가능한 범위내에서 법률상 무국적자로 다루어야 한다

[61년 무국적자 감소에 관한 협약 – 최종의정서 ]

반면, 최근 들어 제1(1)조의 정의에서 ‘법률의 시행상’이라는 문구에 대한 기존 법적 해석이 너무 보수적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 해석은 법률상 무국적자와 사실상 무국적자로 이분화한 접근방식을 비판합니다. 협약의 어디에서도 ‘법률상 무국적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기존 법 해석상의 사실상 무국적도 ‘법률의 시행과정‘에서 국적을 증명하지 못해 국적국의 이익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협약상 정의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상 무국적자에 대해서도 난민 협약에 준하는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UNHCR 법해석 가이드라인

이에 따라, 2012년 2월 UNHCR은 54년 협약에 대한 법적 해석을 명확히 하기 위해 무국적에 관한 법해석 가이드라인1을 발표하였습니다. 오늘의 포스팅은 UNHCR의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위 협약상 무국적자 정의를 아래와 같이 크게 두 가지 요소로 분할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중 법 해석 논쟁의 대상이 되는 ‘법률의 시행상’에 대해 중점적으로 짚어보겠습니다.

어떠한 국가에 의하여도 

그 법률의 시행상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1) 어떠한 국가에 의하여도 (by any state)

▶ 여기서 국가란 무엇인가요?

국가 판단에 있어 1933년 국가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협약(Montevideo Convention on Rights and Duties of States, 몬테비데오 협약)에서의 기준이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습니다. 몬테비데오 협약에 따르면, 하나의 독립체(entity)가 아래의 4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할 때 국제법상 국가에 해당합니다.

(a) 항구적 인구 (a permanent population)

(b) 한정된 영토 (a defined territory)

(c) 정부 (government)

(d)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 (capacity to enter into relations with other States)

[1933년 몬테비데오 협약]

더 나아가, 제1(1)조에 의해 독립체가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 UN 등 국제기구로 부터 국가로서 보편적인 인정를 얻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국제 사회에서 그 독립체가 국가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가에 대해서 이견이 발생하거나 정치적 이유로 인해 국가인정이 보류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헛리버, 몰로시아 공화국, 옘틀란트 공화국등 ‘초소형 국가체(Micronation)’가 바로 국제법을 근거로 독립국을 주장하나 국제사회에 의해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독립체에 해당합니다. ▶관련기사 :여기

▶ 어떤 국가들이 고려대상이 되나요?

  무국적자의 협약상 정의에서 “어떠한 국가”란 모든 국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개인이 그 영토에서의 출생이나 혈통, 혼인, 입양, 상시 거주 등을 통하여 어떤 형식으로든 “관계”를 맺은 국가만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례에서 이러한 요건은 오직 1개국 (혹은 국가가 아닌 한 독립체)로 조사 범위를 좁혀주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무국적자들이 한번도 국경을 넘어본 적 없이, “자국”에서 머물러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무국적 상황은 말 그대로 제 자리에서( in situ ) 발생한 것으로, 자신이 장기 거주한 국가에서 많은 경우에는 자신의 출생국에서 일어납니다.

2) 그 법률의 시행상

▶ 여기서 ‘법률’이란 무엇인가요?

‘법률’은 단순히 법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보다 광의적인 차원에서 부령(ministerial decrees), 규정(regulations), 명령(orders), 불문법 국가에서는 판례법(judicial case law), 필요할 경우는 관행(customary practice)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또한 제1(1)조의 무국적자 정의에서 “법률”의 의미는 성문법이 실제적으로 실행될 때 수정(modified)되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 법률의 ‘시행상’이라고 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는 성문법과 법의 실제적용 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협약은 무국적자 판단에 있어 법률 자체보다도 행정부의 결정과 같이 법률이 실제 적용되는 바를 반영한다는 취지입니다. 법에 따르면 국적자에 해당하지만, 법률의 시행에 따라 무국적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마다 개인이 법률의 시행상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는 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국적법이 개별 사례에 실제 어떻게 적용되고, 검토/이의신청 판결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를 철저히 분석해야 합니다.

▶ 어떠한 경우에 법률의 시행상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나요?

전통적인 법해석에 따르면 법률의 시행상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는 경우는 곧 ‘법률상 무국적’에 해당합니다. 법률상 무국적의 발생원인으로는 국적법 간의 충돌, 국가 승계과정의 무국적 발생, 여성의 혼인에 따른 국적 소실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는 명백히 국적법상 규정에 의해 무국적자가 되는 경우도 있으나, 시행과정에서 국적 자격이 있음에도 무국적자가 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를 사례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법 규정에 의한 무국적 

 우선 출생시 부터 자동국적취득 대상이 되지 못하고 무국적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 국적법상 부모 중 일방이 한국인이면 그 자녀에게는 일단 한국적이 부여되며, 한국에서 출생하였으나 부모가 모두 무국적이거나 부모를 알 수 없는 경우 한국적을 인정합니다.2 따라서, 한국에서 출생하였으나 부모 중 일방이 외국인이고 타방은 무국적이거나 알 수 없을 때, 해당 외국적 부모의 국적법이 이들의 자녀에 대하여 자국적을 인정하지 않으면 법률상 무국적자로 출생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혼인을 통한 간이 귀화 과정에서 관할 당국의 조사아래 국적 신청이 거부되거나 위장 혼인이 밝혀져 국적이 취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률의 시행상 무국적

– 행정 관행

과다한 관료적 형식주의로 인해 자격이 있음에도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 가능합니다. 행정비용이 너무 과다하거나, 신청 기한이 비합리적으로 짧거나 서류 발급이 되지 않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한 예로 말레이시야에서는 신생아 출생등록에 엄격한 기간 제한을 두고 있는데요. 이 때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전통혼례를 통해 태어나서, 출생시 바로 등록을 하지 않은 자녀의 경우 무국적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차별

  1966년에 채택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에 따르면 인간은 어떠한 차별적 근거로 인해 국적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와 같이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차별에 의해 시민권이 부정되어 무국적자가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행정 당국이 명백한 법적 근거가 없이 국적인정을 거부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인데요, 대표적으로 시리아의 쿠르드족과 미얀마의 로힝야족이 있습니다.

▶ 법률상 무국적자와 사실상 무국적자 사이의 회색지대

위의 두 사례는 국적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법률의 ‘시행상‘ 인정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특히나 신분증명서류가 없다는 점이 무국적의 근거가 되는 경우에는 이것이 법률상 무국적인지 혹은 사실상 무국적인지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의 여권은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등 많은 나라에서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해당 사례를 법률상 혹은 사실상 무국적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회색지대가 현실에서는 존재하는 것이죠.3

  우리나라에도 법률의 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유형의 무국적자들이 존재합니다. 북한 이탈 주민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의 신분 확인이 불가능한 자, 한국인으로서의 국적판정을 신청하여 그 판정시까지 대기하고 있는 자, 출신국의 증명이 없거나 확인이 어려운 난민신청자들이 바로 그 사례에 해당합니다.4 역사적으로는 일제시대 호적신고를 거부함에 따라 국적 증빙이 불가능해져 무국적상황에 놓인 항일운동가들 또한 이에 해당합니다.

결론

[▲ The Equal Rights Trust 2010 보고서]

많은 국가에서 54년 협약에 법률상 무국적자만을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협약의 최종 의정서를 통해서 사실상 무국적자 보호는 권고되고 있으나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나, 사실상 무국적자는 국가에 의해서 보호받지도 혹은 어떠한 협약에 의해서도 보호되지도 않기에 더욱 취약한 지위에 놓여있습니다.

법률상 무국적자와 사실상 무국적자의 이분법은 개인의 취약성에 관계없이 무국적자 인권보호상 차별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법률상 무국적자든 사실상 무국적자든지에 상관없이 인권은 보호되어야합니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법적 문서에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사실상 무국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법률의 시행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무국적자의 유형과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식하고 이들에 대해서도 난민협약에 준하는 보호를 제공해야합니다.

역사 속 무국적자 이야기

–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

한국 고대사 연구의 1인자이자 근대 민족사관을 정립한 항일 언론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은 오랜 망명 생활 끝에 중국 여순감옥에서 옥사함으로써 국적과 호적이 모두 상실된 대표적인 무국적 독립운동가입니다.

단재 선생이 무국적자가 된 배경

일제는 1912년 조선 통치를 위해 새 민법인 ‘조선민사령’을 공포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간의 족보가 모두 무시되었고 조선인은 호주와 가족사항을 새로 신고해야 했습니다. 단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신고를 거부했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국적부를 따로 두지 않고, 호적에 등재된 사람에게 모두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습니다. 당시 호적이라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강력한 증빙자료의 기능을 하였고, 호적이 없는 독립운동가들이 무국적이 된 것입니다. 단재 선생이 1936년 2월 중국 여순 감옥에서 옥사한 이후 유골은 충북 청주 남성면 향리로 귀향하게 되지만 무국적자라는 이유로 매장허가에 난항을 겪게 됩니다.

이후 단재의 후손들은 오랫동안 취적이 불가능해 각종 불이익과 불편을 감수해오다 1986년에야 비로소 호적을 신청,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재는 당시에도 국적이 회복되지 못한 무국적 상태로 남아있다 2009년에야 비로소 국적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석주 이상룡, 여천 홍범도, 부재 이상설, 노은 김규식 선생 등 무국적/무호적 독립운동가는 200-3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관련기사 : 여기

출처: http://www.apil.or.kr/2045 [공익법센터 어필 (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

최종수정일: 2022.06.19

관련 활동분야

무국적자 관련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