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후기(8.5기 이가연)

2015년 6월 2일

   따뜻하고 겸손하며, 부드럽지만 굳센 공동체. 인턴 후기를 쓰며 제가 어필을 묘사하기 위해 떠올리고 써 내려간 여러 단어들을 곱씹어 보며 어필이 제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어필은 제가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이상적인 공동체이자 삶의 방향성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해 준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런 어필에서의 두 달간 느낀 것들을 앞서 써 내려간 단어들을 이어 붙이며 풀어내려 합니다.   

   1. 따뜻하고 겸손한

‘처음 어필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김세진 변호사님이 절 맞아주시며 오는 길이 춥지는 않았는지 자상하게 물어보셨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그 때 마셨던 차에 온 몸이 녹는 기분이었죠. 그 따뜻했던 분위기는 인턴 생활을 하면서도 이어졌습니다. 출근할 때마다 오가는 인사에는 진심 어린 반가움이 맺혀 있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항상 관심 있게 들어주고 존중해 주는 분위기는 한겨울에도 어필 사무실을 항상 훈훈하게 데워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훈훈한 공기는 어필의 구성원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어필을 찾아오시고, 어필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로 퍼져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 분들의 따뜻함이 어필을 물들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지더군요. 

어필과 연이 닿았던 분들은 다들 얼굴에 ‘선함’이 뚝뚝 묻어나는 분들이셨습니다. 어필이 조력했던 난민 분이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며 피자 파티에 어필 식구들을 초대해 주셨던 날이 문득 기억납니다. 큰 눈에 형언할 수 없는 선함이 넘실대던 그 분은 어필 식구들이 피자를 먹는 것을 보며 자신이 먹는 것보다 행복해하고 기뻐하셨습니다. 제가 직접 도와드렸던 분이 아닌데도 그 분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이 분의 행복을 만들어간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제게 또 다른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어필은 따뜻함으로 누군가의 새로운 행복을 만들어 가는 곳이었습니다.

어필은 또한 겸손한 곳이기도 합니다. 어마어마한 능력자들이 존재하지만 다들 칭찬을 받으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수줍은 어벤져스 같죠. 겸손하기 때문에 서로의 능력에 진심으로 감탄과 존경을 표할 수 있고 서로가 동료임에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겸손한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누군가의 권리와 행복을 더 빨리 찾아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테니까요. 이러한 어필의 겸손함은 도움이 필요한 취약한 분들을 돕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뚜렷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효과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돕고자 어필 식구들은 자신이 아는 바에 자만하지 않고 항상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이주의 시대> 스터디나 토론, 해서웨이 스터디 등 다들 바쁜 와중에도 발제를 준비해 와 열띤 토론을 펼쳤던 스터디 시간들에서 바로 그 신념이 만들어낸 겸손과 열정을 봤습니다.   

   2. 부드럽지만 굳센

어필 식구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부드럽기만 한 사람들 같습니다. 실제로 변호사님들과 연구원분들, 인턴 분들이 부드럽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 부드러움은 ‘인권’이라는 하나의 목표와 만나는 순간 더할 나위 없는 강인함으로 변합니다. 난민 분들을 무작정 구금하고 성매매 피해자가 된 여성들을 나 몰라라 하는 등 인권 침해가 만연한 현실에 맞서서 사람으로 가지는 당연한 권리를 외치는 어필의 뒷모습은 커다란 바위를 보는 것 같이 굳세어 보였습니다. 그런 바위에 기대어 일하면서 매우 미약하고 여리다고 생각했던 제가 어느 새 단단한 조약돌이 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난민 분의 구금 해제를 위해 의견서를 쓰고 E-6 비자 네트워크 회의에 참여할 때, 내가 지금 찾은 자료가 어떤 사람의 자유, 어떤 사람의 안전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저는 차츰 단단해져 갔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게 되고 사회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리저리 고민해보기도 하면서요.

어필이 조력하는 분들 역시 누구보다 단단한 분들입니다. 난민 분들은 목숨이 위협받는 박해의 순간에서 용기 있게 탈출을 선택하신 분들입니다. 이제까지 본국에서 이룬 것들을 버리고 낯선 나라에서, 심지어 매우 취약한 위치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리스크를 감내하신 분들입니다. 제가 만난 난민 분들은 그런 용기를 지니면서도 새로운 나라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낼 줄 아는 강인한 분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일들에 대한 농담을 건네면서 웃는 난민 분과 함께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강인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만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3. 공동체

저는 그 동안 “너는 왜 인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라는 물음을 받으면 사실 ‘천부적인 권리라서’라는 굉장히 정석적인 답변과 함께, “‘너와 나’를 나누지 않고 ‘우리’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라고도 덧붙여 왔습니다. 나만 행복해서도 안 되고 너만 행복해서도 안 되니 그런 것을 구분 짓지 말고 우리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인권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 조건이 아니겠냐며. 그렇게 말해왔습니다.

어필은 제가 평소에 품어왔던 생각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공동체 같았습니다. ‘한국인과 외국인’, ‘남자와 여자’, ‘장애인과 비장애인’과 같이 서로를 구분 짓는 경계선에서 벗어나 ‘우리’, 그리고 ‘사람’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함께 행복해지고자 노력하는 공동체. 행복에서 강제로 멀어지게 된 사람의 손을 잡고 더 큰 행복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자신의 힘을 쏟는 사람들이 모인 곳. 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습니다.

4학년을 마치고 진로를 고민해 오던 저는 어필에서의 두 달 간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더

단단해진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소망하던 ‘함께 행복해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일하려고 합니다. 어필이라는 공동체는 제게 하나의 롤모델이 되겠지요? 마음이 향하는 바를 확신 있게 고집하지 못하고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던 제가 행복으로 향하는 길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은 어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8.5기 이가연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