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밀입국 난민신청자 구금에서 풀려나다

2015년 6월 25일

   A씨를 화성외국인 보호소에서 만나다

작년 12월 어느 겨울날,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A씨를 만났습니다.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고 난민심사를 받기 위해 난민신청을 하러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간 것 뿐인데, 갑자기 줄 서류가 있다고 공무원들을 따라가라고 알려주더니 체포되어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긴급보호와 강제퇴거명령 이유인 즉슨, A씨가 입국허가를 받지 않고 한국에 입국 즉, 밀입국하였다라는 것이었습니다. A씨의 사연을 들어보니 급박한 피난과정에서 도저히 한국으로 올 비자를 얻을 수 없어 도움을 받아 배를 타고 2-3개월에 걸쳐 한국에 도착했던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후 어디서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지를 찾다가 3주 정도 지난 후 자진해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가서 밀입국할 수 밖에 없었던 부득이한 사유를 설명하려고 했었던 것이었는데, 아무런 경위에 대한 설명도 듣지 않고 다짜고짜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을 받고 구금되었던 것입니다. 

      급박한 박해의 위험을 피해야하는 난민들에게는 부득이하게 위조여권으로 입국을 시도하던지와 같은 당국의 출입국관계법령을 위반하는 사정이 생길 수 있는 것인데요. A씨는 그와 같은 사정을 전혀 소명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채 구금되어, 별다른 법적 조력이 없다면 짧게는 1개월 길게는 2-3년동안 구금을 감내하며 난민인정심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매우 억울한 처지에 놓여있었습니다. 

사실 난민협약은 이러한 경우를 고려하여 당국의 출입국 행정과 난민신청자의 보호 사이를 교량하는 제31조에서 “Refugees unlawfully in the country of refuge”라는 표제로, 몇 가지 요건을 만족할 경우 당국으로 하여금 난민신청자에게 출입국관계법위반을 이유로 불이익을 가하지 않을 것을 강행규범으로 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국에서 난민협약 제31조에 대한 선례는 없었지만 A씨는 바로 정확히 이와 같은 난민협약의 보호를 받아야 했던 난민이었습니다.     

Article 31. – Refugees unlawfully in the country of refuge

1. The Contracting States shall not impose penalties, on account of their illegal entry or presence, on refugees who, coming directly from a territory where their life or freedom was threatened in the sense of

article 1, enter or are present in their territory without authorization,

provided they present themselves without delay to the authorities and show good cause for their illegal entry or presence.

   그래서 곧장 제기한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 취소의 소. 그로부터 약5개월, 구금되었을때로부터 7개월이 지난 얼마전 서울행정법원은 전향적인 판결로 A씨에 대한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을 취소하고 집행을 정지할 것을 직권으로 명하였습니다.  

서울행정법원 2015. 6. 18. 선고 2015구단50576 판결

비록 재판부는 A씨에게 적용될 난민협약 제31조를 직접 판결문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난민협약 제31조의 취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당국이 A씨에게 명한 강제퇴거명령이 재량의 일탈 또는 남용이라고 명확하게 판시하였습니다. 난민신청자의 특수성, 현행 출입국관리법 위반사범에 대한 최고도의 처분인 강제퇴거명령의 특성, 외국인보호제도의 성격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같은 쟁점에 대해 선례가 없었던 훌륭한 판결입니다(이 사건 수행에는 인하대학교 리걸클리닉의 홍민정, 김민경 님께서도 함께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멋진 법리적 판단이 내려진 주요 부분 일부를 그대로 옮겨봅니다.     

쟁점 : 난민신청자에게 가장 가혹한 처분인 강제퇴거명령

⑥ 피고는 출입국관리법 제12조 제1항을 위반한 자에 대하여 같은 법 제46조 제 1항 제4호에 의하여 강제퇴거명령을 할 수도 있고, 같은 법 제93조의3 제1호, 제101조 제1항, 제102조 제1항에 따라 벌금에 해당하는 금액의 통고처분을 하거나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 그런데 본국의 박해를 주장하며 피고에게 난민인정신청을 한 난민신 청자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면, 앞서 본 다른 조치를 받는 것보다 강제퇴거명령을 받 는 것이 난민신청자에게는 가장 가혹하다.

 

쟁점 : 난민신청자에 대해 발령하는 강제퇴거명령의 불확실한 공익

⑧ 피고의 주장대로 난민지위에 관한 소송이 종료될 때까지 강제퇴거명령의 집행 을 실제로 하지 아니한다면 소송 종료 이전에 강제퇴거를 명하는 실익을 찾기 어렵고,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전제로 보호명령을 발령하여 난민신청자가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난민 불인정이 되는 경우 강제퇴거의 집행을 원활하게 하는 공익일 것 이다. 그러나 이는 난민 불인정이 확정된 이후 즉시 강제퇴거명령을 발령하고 이를 신 속하게 집행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과 같이 난민신청 직후 바로 강 제퇴거명령을 발령하여야 할 공익상의 필요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원고의 경우와 같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어 난민인정신청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에도 난민 지위에 관한 소송이 종료될 때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강제퇴거명 령의 집행을 위해 보호를 명하는 것은 이를 통하여 달성하려는 행정상의 편의나 불확 실한 미래의 공익보다 이로 인하여 침해되는 난민신청자의 불이익이 훨씬 큰 것으로 보여 부당하다.

 

쟁점 : 신병확보 목적의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의 발령 재량을 넓게 인정할 경우, 장기화되는 부당한 구금을 감수해야하는 난민신청자들

⑨피고는 또한 원고가 대한민국에 일정한 주거나 연고가 없어 난민 불인정이 확 정되더라도 신병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신속한 강제퇴거명령과 이를 전제로 하는 보호명령이 필요하다는 취지로도 주장한다. 살피건대 해마다 많은 불법체류자들 이 체류기간 연장의 목적으로 난민인정절차를 남용하고, 절자 진행 도중에 잠적하여 소재불명이 되는 비율이 늘고 있어 이를 위한 신속한 강제퇴거명령이나 신병확보를 위 한 보호명령의 필요성은 충분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난민의 특성상 난민신청자들 이 국내에 일정한 주거나 연고지가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신병확보의 목적으로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을 무분별하게 발령하는 경우 아주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이 상 난민신청자는 모두 보호명령의 대상이 되어 사실상 거주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 태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를 난민인정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특히 국내에서 일정기간 체류를 하다가 체류기간 연장을 위하여 난민인정절차를 남용하는 사람은 국내에 일정 한 주거가 있어 보호명령을 받지 않는 반면, 절실한 난민 인정 필요성에 따라 본국의 박해를 피해 부득이 적법한 자격과 절차 없이 국내에 입국하여 즉시 난민인정신청을 한 실제 난민은 예외 없이 장기간 동안 보호명령의 대상이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 할 수 있다. 

  
쟁점 : 현행 외국인보호제도를 난민신청자에게 적용할 경우의 불합리성과, 아무런 심사없이 기계적으로 내려진 강제퇴거명령의 부당성

나아가 보호기간이 3개월을 넘을 경우 3개월마다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 도록 한 법 제63조 제2항 및 관련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위 규정에 따른 보호 명령은 일시적인 사유로 외국인을 즉시 송환할 수 없는 경우 3개월 내외의 단기간 동 안 그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라고 보아야 하는데, 이러한 장기간의 구금은 위 보 호명령 제도의 취지를 넘어 난민신청자의 이익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허용되 기 어렵다. 따라서 원고가 입국 직후 자진하여 불법입국사실을 알리며 난민신청을 하 였고, 원고 주장이 사실이라면 실제 난민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점 에 비추어 보면 난민인정 가능성, 도주 우려 등에 관한 면밀한 심사 없이 난민신청 직 후 기계적으로 내려진 이 사건 강제퇴거명령과 이에 따른 보호명령은 신병확보의 필요 성만 강조한 나머지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원고의 중대한 불이익을 도외시한 것으로서 더 이상 그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난민신청자에 대한 강제퇴거명령 발령의 제한

  

   위 판결로써, A씨는 약8개월만에 부당한 구금에서 풀려나 바깥공기를 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일주일이 멀다하고 사무실로 전화를 주면서 힘겨움을 호소했던 A씨.가을 바람을 맞아 찾았던 출입국관리사무소. 어느새 한여름이 되어버렸습니다. 보호소의 반장들은 “왜 귀국안해?”라고 물어보고, 소송결과를 마지막으로 기다린다는 말에 “소송 어차피 못이겨. 여기서 나간 사람 한명도 없어. 그런 희망 갖지말고 돌아가”라고 하였으나, 끝까지 기다린 끝에 신체구속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지요. 사무실에서 만나본 A씨의 밝은 얼굴은 예전과 전혀 달랐습니다. 

이와 같은 A씨의 사연은 간략히 언론 기사에도 소개되었습니다.  

► 언론 기사 : 서울신문 2015. 6. 25. 11면 “밀입국 난민도 무조건 추방 안 된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625011015

2013년말, 취업허가를 받지 않은 채 취업한 난민신청자에게 내린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을 취소한 두 건의 선도적인 판결(서울행정법원 2013구합13617, 2013구합13624)이후 난민신청자의 특수성을 인정치 않고 기계적으로 발령하는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에 제동을 거는 판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급심에서 엇갈리는 판결들도 있지만 점차 재판부들도 위헌적인 현행 보호제도의 덫에 걸려버리고 헤어나올 수 없는 난민신청자들의 특수성을 점차 인정해가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법리적으로 당연합니다. 강제퇴거를 하지 않고 체류해달라고 하는 난민신청자에게 내리는 강제퇴거명령, 그리고 어차피 난민인정심사가 모두 종료될때까지 집행할 수도 없는 강제퇴거명령의 확보를 위해 내리는 보호명령과, 보호제도 자체의 위헌성이 결합되어, 난민신청자에게 내리는 강제퇴거명령의 공익은 현저히 낮고, 침해받는 사익은 종기가 없고 사법적으로 다툴 방법이 없는 구금과 같은 지나치게 가혹한 형태로 나타나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 처분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당국의 실무 관행도 선례적인 판결이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지난한 난민인정심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 A씨를 다시한번 응원하며, 부당한 처지에 놓여 억울하게 구금되는 A씨와 같은 난민들이 더 나오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이일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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