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이 아니므니다. 이주민이니므니다. 이주민이 아니므니다. 사람이므니다.

2012년 11월 16일

난민이 아니므니다. 이주민이니므니다.

이주민이 아니므니다. 사람이므니다.

이주민의 분리와 차별을 넘어서 – 2012년 이주인권연대 정기 심포지엄을 다녀와서 (2012.11.14)

   어필에서 만나게 된 분들은 주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에 박해의 위험이 있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난민지위를 신청을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어필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찾아오신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과연 이분이 겪은 어려움이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에 해당하는 지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대만에서 참가했던 심포지움에서 한국 난민 R씨가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았는데, 한국단체들에게 솔직하게 할 말이 없는지 묻는 진행자의 물음에 난민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단체들이 열심이고 그런 노력에 대해서 감사하긴 하지만, 그 후의 삶 또한 많이 쉽지가 않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참석하게 된 이주인권연대의 심포지움에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R씨를 만났습니다. R씨는 김포이주민센터 스탭 분들과 함께 심포지엄에 참여하신 것이었습니다. 

      난민도, 결혼이주민도, 재외동포도, 유학생도, 외국인노동자도 모두 이주민이다.

언뜻 보면 당연한 것 같은 명제인데, 이 명제가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렇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난민은 난민이고, 결혼이주민은 결혼이주민이고, 외국인노동자는 외국인노동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이주와 인권 연구소의 김사강 박사님은 한국 정부의 외국인 정책에 책임이 있다고 짚어주셨습니다. 결혼이주민과 같이 정착을 허용하는 이주민들에게는 일방적인 “통합”을 강요하고 있지만, 고용허가제로 입국을 한 외국인노동자나 난민 등 정착을 불허하는 이주민들은 철저히 사회에서 배제하며 이들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삼고 있는 “그 자체가 모순일 수 밖에 없는 통합과 배제를 동시에 추구” 하는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정부 심지어는 외국인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들까지도 이러한 시각에 갇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이 아니라 입국 시의 비자로만 외국인들을 바라보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과 함께 모든 이주민들에게 필요한 체류권에 대하여 더욱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정책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체류권은 최소한 정해진 기간에라도 한국에 안정적으로 체류하고, 또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는 영구적 체류로 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인데 물론 체류권으로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체류권이 없다는 점에서부터 삶의 기본권에 대한 제약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든 이주민들에게 공정하고 동등한 기회를 통해 체류권에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비자 걱정 없는 미국인 교수님과 늘 조마조마해하는 조선족 이모들

로스쿨을 다닐 때, 학교에 계시는 미국인 혹은 외국인 교수님들이 비자 때문에 걱정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보호소에서 만난 조선족 분들은 가족들이 모두 한국에 있는데도 강제퇴거 대상이 되어 눈물을 글썽이시고 계셨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자연스러운지에 대해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던 상황에 대해서 이주와 인권 연구소의 이한숙 소장님의 한국 정부의 이주민 정책에 대한 평가를 듣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정부의 이주민 정책은 1980년대 후반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자들이 국내로 들어온 이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저렴하고 유연한 ‘외국인력의 활용’에 제한되어 있었으나 2003년 국제결혼이 증가하기 시시작하면서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열린 사회”라는 슬로건 하에 다문화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문화정책은 결혼이주민과 그 자녀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는데, 이들만이 정착이주민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2011년 외국인정책 시행계획 중 결혼이주민과 2세에게 60%이상의 예산이 배정되어 있고, 재외동포는 0.01%, 외국인단순근로자 및 내국인고용주에게는 0%가 배정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동시에 우수 외국인재와 투자자에 대하여는 우대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반면, 국내 이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및 CIS 동포,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등은 단순히 필요한 동안에만 활용하고 한국을 떠나야 하는 “단기순환 외국인력”으로만 여겨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정부는 ‘국익’에 따라서 이주민을 전문인력과 투자자, 선진국 동포, 결혼이주민, 중국 및 CIS 동포, 3D 직종의 이주노동자 순으로 자의적으로 구분하고, 대상 간 경계를 뚜렷이 설정하여 상호간 이동을 막고, 각 대상을 차별적으로 처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입국시의 부여된 특정한 비자가 있고, 이에 따른 처우가 다르며, 입국 후에는 비자 전환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러한 정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결혼이주민인데요, 결혼이주민에게 부여된 가족형성과 부양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에만 체류자격이 주어지고, 이들은 일을 하는 것이 허락되지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이주민은 이혼 후에도 본국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또 결혼을 하고도 이주노동자 혹은 유학생이 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매우 공감이 갔던 것은 정부의 정책이 외국인혐오증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정부는 결혼이주민과 그 자녀에 대해서는 원칙 없는 시혜 정책을 추진하고 이를 과장되게 선전하여 “다문화”에 대한 반발을 초래하였는데, 한 예로, 2011년 기초생활 보호를 받는 국적 미취득 결혼이민자 적용범위를 확대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였지만 실제로 증가한 수급자는 48명에 불과했습니다. (2010년 2,952명에서 2011년 3,000명으로) 또한 이주노동자의 장기체류와 정착이 가져올 사회적 부담과 갈등을 강조하며 근거 없는 염려를 확산시키고, ‘노동시장 교란’이라며 실제 대체효과가 미미할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간의 일자리 대체 방지 정책을 강조하여 저소득층의 반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미등록체류자에 대한 강제단속, 추방 위주의 정책으로 미등록체류자는 범죄자라는 이미지를 확산시켜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이한숙 소장님께서 하신 제언에 대해서는 소장님의 발제문을 직접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님께서 결혼이주여성 관련 법제도 현황과 쟁점에 대해서 발제를 해주셨고, 국적법 개정안에 도입된 영주자격 전치주의 문제점에 대해서 짚어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필에서도 법무부에 의견을 보낸 바 있습니다.) 또한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님께서는 인종차별철폐협약의 권고를 바탕으로 국제 기준에서 바라본 한국 이주민 정책에 대해서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협약 상 인종차별의 정의 자체가 없다는 점과 차별금지법, 인종차별 범죄화, 인종혐오단체 규제의 필요성 등 거시적인 틀에 대한 지적부터 이주노동자를 비롯하여 난민, 무국적자, 이주여성 등 취약한 외국인에 대한 처우에 대한 권고까지 다양하게 짚어주셨습니다. (인종차별철폐협약의 난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파트에 대한 권고문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오후 시간에는 통합적인 시각에서 이주민 정책과 쟁점을 바라보기라는 주제로 논의가 이어졌는데, 저녁식사 후의 논의는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기존에 주목을 받지 못했던 분들에 대한 사례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배 위에서, 농가에서, 중국집 주방에서

그 동안 이주노동자에 대한 논의가 제조업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논의가 주였다면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인 분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주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이 된 세션이라고 합니다. 선원이주노동자, 농축산업 노동자, 그리고 최근에 증가추세인 중국요리사들은 모두 근무처는 다르고 하는 일들은 다를 수 있어도 겪고 있는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장시간 근로 (하루 12시간 이상은 기본입니다. 선원의 경우에는 그물이 올라오면 며칠간 자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최저임금 위반, 불법 근로계약서, 신분증 압류는 어느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패턴으로 보였습니다. 농가의 경우, 특정 시기에 일이 없으면 사업주가 다른 농장으로 불법 파견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농장 안의 비닐하우스 기숙사 혹은 낡은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냉난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이주노동자들이 문도 잠기지 않는 기숙사에서 생활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많은 경우 농가들이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에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단체를 찾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합니다. 

도시에 있는 중국집에서도 사실 비슷한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주이주노동자센터의 오세용소장님께서 E-7 특정활동 비자를 받아 국내에 유입된 중국인 요리사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의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인요리사들은 거의 1천만원 전후의 높은 송출비용을 부담하고 한국에 오게 되는데, 이는 송입업체에서 모든 비용을 이주노동자에게 부담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송입업체에서는 사장님들에게는 “한 푼의 비용도 들지 않으며, 한 달에 120만원씩, 5년간 이직 불가능한 인력이기에 2~3명씩 채용하면 5년간 3억원 이상의 임금 절감을 할 수 있다”고 광고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장님들이 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방에서는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이 이어지며, 본래에는 체류자격에 해당하는 특정활동인 요리사로만 일해야하지만, 요리는 커녕 주방보조 및 설거지를 주로 맡기도 하고, 이탈보증금과 신분증 압류라는 전형적인 이탈 방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는 월급은 중국에서는 벌 수 없는 돈이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중국인 요리사들은 계약서와 더불어 위와 같은 말이 적힌 동의서에도 사인을 하게 됩니다. 사실 정책은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느냐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동의서의 저 문구에 머물러 있기에 이런 정책들이 시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난민 인정이라는 커다란 산을 넘은 후에도, 또 다시 넘어야 할 산들이 줄지어 있음을 보고 R씨가 한숨을 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이러한 정책과 정책을 만드는 우리의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처럼 보이는 마법의 법이나 정책은 세상을 바꿀 수 없고, 결국은 작은 마음의 변화들이 모여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R씨가 난민일 뿐 아니라 이주민이고, 이주민일 뿐 아니라 결국은 나와 같은 사람이기에 나에게 필요하고 내가 누리고 있는 권리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이주민을 대하는 자세는 인간관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경제적 효용가치로만 판단하고 “소모”해버리면서, 세상이 팍팍하다고 불평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우리 곁에 있는 난민들의, 이주민의 한숨과 눈물이 쌓여가고 있는 이 때,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일까 돌아봐야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받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소망을 향한 단서가 여기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 정신영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관련 활동분야

난민 관련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