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 다녀왔어요! 필리핀 인신매매관련 인권단체 방문

2012년 10월 5일

필리핀에 다녀왔어요!

어필은 인신매매에 관한 해외 입법례를 리서치 하던 중, 입양관련 단체인 트랙(TRACK*)을 통해 필리핀의 인신매매방지법(Anti-Trafficking in Persons Act 2003)이 인신매매방지의정서*가 잘 반영된 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7월 첫째주, 필리핀의 인신매매방지법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필리핀에 있는 인신매매관련 단체들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의 인신매매 상황

우리나라에도 필리핀에서 많은 여성들이 연예흥행비자나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가브리엘라라는 여성단체(Gabriella Women’s Party)에서 필리핀의 정치, 경제, 교육, 건강과 관련된 이슈들이 여성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을 들으니 왜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이주하게 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조차 힘든 상황에서 일용품 물가가 소득에 비해 너무 높고,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며, 생계를 위해 학업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지만 학비가 계속 오르고 있어서 여성들이 대학까지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상품화는 물론,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하루에도 3,000~4,000명의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도록 내몰리고 있습니다. 정부도 국내에서는 여성들의 일자리 해결이 되지 않자, 심지어 쿼타를 정해 여성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더욱 취약해진 많은 여성들이 자국 내에서 인신매매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여성과 함께 필리핀에서 가장 취약한 지위에 놓여 있는 그룹은 아동입니다. 유니세프에 의하면 현재 약 60,000 에서 100,000명의 필리핀 아동이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ECPAT* 이라는 아동 인신매매 방지 단체 활동가에 의하면, 마닐라, 보라카이, 세부, 투루앙킬리스, 사말, 오르목, 라푸라푸 등의 관광 지역에서 해외 성관광객들에 의해 아동들이 성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수가 한국, 일본, 중국 관광객이라고 해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심지어 한국 남성들은 더 폭력적이고, 변태적인 행위를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마닐라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성매매 업소만 100여 곳이 넘는다고 합니다. ‘코피노’ 라고 들어보셨죠?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필리핀에 사업 목적으로, 유학 또는 성관광으로 온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 숫자가 이제 공식적으로 10,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G20 개최, 경제대국 순위를 자랑하기 전에 이 부끄러운 숫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필리핀 시민사회의 활동과 역할

이러한 상황에서 가브리엘라(Gabriella Women’s Party)는 필리핀 사회에 변화를 가져 오리라는 믿음으로 여성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인신매매 방지법 등의 입법운동을 포함한 여성운동을 일으켜서 이런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CPAT*은 성관광과 관련해서 현재 필리핀 여행사, 관광지역의 호텔 등을 대상으로 윤리강령을 채택할 수 있도록, 또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통해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호텔, 여행사들과는 이런 협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ECPAT활동가들에 의하면 한국인들 성관광자 숫자가 가장 많지만 유독 한국 사람들이 현지에서나 한국에서 성관광으로 처벌된 케이스를 접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수사기관에 뇌물을 주는 것도 있겠지만, 한국 관광객들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 한국인이 운영하는 성매매 업소,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한국인이 운영하는 성매매 업소로만 다니고 있어, 필리핀 활동가들의 접근이 매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에 있는 시민단체들과 한국정부가 더욱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고 성관광을 예방하고, 성관광 참여자들의 처벌을 위해 함께 협력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PACT (Philippines Anti-Child Trafficking)라는 또 다른 아동인신매매방지 단체는 현재 필리핀 안에서 53개의 마을 커뮤니티와 함께 일하면서 마을이 스스로 피해 아동들을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정부나,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를 교육시켜서 피해 아동들을 위한 안정망을 더욱 두텁게 하는 일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밖에 인신매매 예방을 위해 심포지엄, 포스터/노래 대회, 퍼레이드, 필름쇼 등의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인식개선을 위한 인신매매방지 캠페인을 하고 있으며, 매년 53개 지역에서 모두 참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CATW (Coalition Against Trafficking in Women)라는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 성착취, 인신매매 단체도 방문했는데, 이 단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demand side” 를 교육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인신매매는 “demand”가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범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CATW는 학교나 대학에서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잘못된 남성상을 바로잡고, 여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을 하고 있는데, 여성들에게 큰 상처와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배우고 많은 남학생들이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국도 가장 큰 수요국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이 너무 필요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처벌과 보호를 위한 입법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인식변화, 그리고 교육을 통한 예방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필리핀의 인신매매방지법, 제정 후 있었던 변화와 어려움

필리핀은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활발한데, 많은 “좋은”법들이 거의 다 시민단체들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2003년에 통과된 인신매매 방지법도 위에 언급한 CATW를 포함한 여러 단체들이 함께 모여 법안을 작성하였다고 합니다. 필리핀의 인신매매방지법은 UN인신매매 방지 의정서가 최대한 반영된 흥미로운 조항들이 많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인신매매범죄를 국제결혼, 입양, 성관광, 무장활동을 위한 아동 모집까지 포함시키는 구체적이고 폭 넓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높은 형량, 인신매매법 이행과 모니터링을 위한 인신매매방대연대협회(inter-Agency Council Against Trafficking)의 설립에 대한 조항, 강제노동에 대한 폭 넓은 정의, 피해자의 동의 여부는 상관이 없는 것, 그리고 인신매매 피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등 시민단체들이 노력으로 만들어진 이상적인 인신매매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필리핀 인신매매방지법에 대한 더욱 자세한 사항을 보기 원하시면 “제1회 살롱드 어필 후기”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www.apil.or.kr/1173 )

하지만, 법의 집행 과정에서, 현지 공무원들과 경찰의 인신매매 가담, 경찰의 수사에 대한 지원 부족 및 부패, 법 집행자들의 인신매매에 대한 교육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적인 피해와 낮은 유죄판결 비율, 미결 상태로 계률 중인 많은 소송들, 긴 소송 기간, 조직폭력의 협박 및 돈을 줘서 소송을 포기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다고 합니다. 비록 필리핀에서는 이런 이상적인 인신매매 방지법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인신매매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의 수년간의 옹호 활동과, 인신매매방지법이 통과되고 제정되는 과정에서의 모든 노력들을 통해 시민들의 인식이 굉장히 많이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시민들에 의해 핫라인 콜센터에 인신매매 피해가 신고되는 숫자가 증가하여 2011년 한해 7000건이 넘는 신고가 접수되고, 약 70건의 소송 접수 및 11명의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본국 송환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OHCHR의 인권과 인신매매 가이드라인(4)에 보면, “구체적이고 적당한 인신매매법이 없는 것은 인신매매 방지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며,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각 당사국이 인신매매법을 제정하는 일은 시급하고, 이것은 인신매매 방지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빨리 의정서에 따른 인신매매방지법이 제정되어 현재 현행법에서 다루지 못하고 있는 범죄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피해자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보앙가의 어느 쉼터 이야기 (3.5기 인턴 진유선)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는 필리핀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의 중심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잠보앙가’ 도시로 이동했는데요, 필리핀 NGO 활동가들이 모두 안전을 조심하라고 당부할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인신매매의 전문가이신 ‘Marcy’*씨 박사님께서 여러 기관들을 방문하는 동안 동행해 주신 덕분에 다행히 별 일은 없었습니다.

잠보앙가는 인신매매자들의 환승목적으로 많이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인신매매가 내부에서도 많이 일어나지만 인신매매범들이 이 도시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피해자들을 많이 이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서는 인신매매 법이 제정된 후 인식도 높아지고, 지원도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 반면에 인신매매자들이 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해서 수사가 어렵고, 아직도 1년에 몇 백여 명의 피해자들이 구출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신매매범죄가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경찰, 사회복지사 그리고 검사 들이 잘 합력한 결과 유죄판결도 많이 받았습니다. 인신매매방지법 제정 이후, 첫 번째 승소 케이스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잠보앙가에서 가장 기억 남는 것은 아동 피해자들의 쉼터* 방문이었습니다. 약 10-19세인 26명의 아이들이 쉼터에 있었는데, 그 아이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값진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의 꿈에 대해서 물어 봤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 간호원, 사회복지자 등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쉼터를 떠날 나이가 되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아이들이 하나 둘씩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하는 말이 쉼터를 떠나기 싫고, 떠나게 되면 학교도 가지 못하고, 가장 슬픈 것은 쉼터에서 만난 가족과 같은 친구들을 잃어버리고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싫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가족들에게 돌아가면 또 다시 인신매매 범들에게 팔려 갈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아이들의 삶이 마치 생존을 위한 끝없는 몸부림인 것 같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몇몇 아동들과는 1:1 로 더 자세히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어떤 아이는 자신을 버린 엄마에게 복수 할 수 있는 길은 피해자들을 위해 간호사가 되는 것이라고 울면서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Marcy 박사님은 이런 쉼터를 계속 운영하는데 있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다고도 했지만, 이렇게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자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가르쳐주고 있는 이 곳은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곳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충분히 인간다움을 잃어버릴 만큼의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방문 전까지 인신매매에 대해 지식적으로만 알고 이해하다가 현장에서 아이들과 직접 만나면서 마음으로도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 공감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인신매매라는 범죄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필리핀 사회에 깊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듯 해서 처음에는 어떻게 이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을까 너무 압도적으로만 느껴졌지만, 시민단체들과 활동가들의 열정에서 희망을 본 것 같습니다. 미국무부의 Trafficking in Persons (TIP)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Tier 1이고 필리핀은 아직 Tier 2에 있지만,  NGO들의 이런 끊임없는 비전과 활동, 그리고 특히 피해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긍휼한 마음은 참 본받을 점이라고 느꼈습니다. 한국에도 이렇게 피해자 중심의 더 포괄적인 인신매매 법이 하루 빨리 제정되었으면 좋겠고, 진정한 글로벌 코리아, 세계정상 선진국이 되고 싶다면, 필리핀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국 성관광자들의 부끄러운 행위들부터 철저히 모니터링 하고, 인신매매에 대해 더욱 글로벌한 인식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UN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  Protocol to Prevent, Suppress and Punish Trafficking in Persons, Especially Women and Children, Supplementing the United National Convention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트랙(TRACK):  ‘진실화해를위한해외입양인모임’

*ECPAT:  END Child Prostitution, Child Pornography, Trafficking of Children for Sexual Purposes

*Dr. Marcelina Orguqe:  인신매매 피해 아동 쉼터인 탱글로 부해이 센터(Tanglaw Buhay Center),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서부 민다나오주립 대학 평화와 개발 센터(Peace and Development Center) 디렉터

*쉼터: 탱글로 부해이 센터(Tanglaw Buhay Center)

(어진이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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