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는 인신매매와 관련하여 어떤 법률이 있을까요? (Part 1)

2013년 5월 23일

호주에서는 인신매매와 관련하여 어떤 법률이 있을까요? (Part 1)

쉽게 쉽게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란 무엇일까요?

흔히 사람을 강제로 ‘납치’해서 팔아 넘기는 것으로 많이 알고 계시지요. 틀린 답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에서 규정한 인신매매란 그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누군가를 노예의 상태로 두기 위해 그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를 성노예 또는 노동노예로 착취하기 위해 무력이나 위협, 속임수나 상대의 취약성 등의 수단을 이용하여 그 사람을 이동시키거나 이동에 관여한 모집, 알선, 은닉 등의 모든 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신매매의 정의에 대해 먼저 말씀 드린 이유는 ‘인신매매’는 ‘납치’의 개념보다는 ‘노예’의 개념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주는 우리나라와 같이 별도의 인신매매법이 없기 때문에 형법에서 인신매매를 범죄화하고 처벌하고 있는데, 그 시작은 노예무역이나 타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에 대해 현시대에 맞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면서부터 입니다. 그리하여 1999년 ‘노예, 성적노역과 성적노역을 위한 사기적 고용(Slavery, sexual servitude and deceptive recruitment into sexual services)-270조’이라는 조항이 새로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인신매매 의정서를 비준하고 의정서의 기준을 반영하기 위한 입법으로 ‘인신매매와 채무노역(Trafficking in persons and debt bondage)-271조’에 대한 조항을 새로 추가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이 두 조항은 인신매매 의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고 2013년 3월 270조와 271조에 대한 개정안이 다시 한번 통과되었습니다. (Slavery, Slavery-like Conditions and People Trafficking Act 2013).

이번 포스팅에서는 먼저 270조의 개정 전 내용과 지금까지 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실제 케이스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271조의 내용과 두 조항의 어떠한 점들이 보안이 되어 올해 개정안이 통과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70조에 따르면 노예(slavery) 란 타인에 대해서 소유권이 있고, 이것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모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채무가 발생하거나 또는 계약을 맺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노예를 소유하는 자, 소유권을 행사하는 자 또는 노예무역을 한 자는 25년의 징역을 선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예와 관련하여 상업적 거래에 개입하거나, 이런 상업적 거래를 운영하거나 자금을 조달하는 자, 이러한 거래에 대해 미필적 고의를 가진 자는 17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조항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케이스를 하나 살펴 볼까요?

R v Kovacs 사건에서 인신매매범들에 의해 위장결혼으로 호주에 들어온 필리핀 여성은 피고 부부의 집과 가계에서 노예와 같은 조건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하고 매일 장시간 동안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물리적으로 감금되어 있거나 신체적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탈출을 시도했다가 강제로 붙잡혀 오거나 여권을 압수당했지만, 출입이 자유로웠고 본국에 있는 가족들과 의사소통도 가능하였습니다. 비록 임금을 받지 못했지만 가족들에게 어느 정도의 돈이 송금되고 있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자의 ‘자유’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non-exist or largely illusory’)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지배력과 소유권이 행사 된 것이라고 판결하였고, 피해자가 경제적 어려움, 영어를 할 수 없는 것과 호주에 아는 사람이 없는 점, 그리고 집과 가게가 외 딴 곳에 있었던 점을 언급하여 피해자가 더욱 취약한 상태에 있었던 것도 지적하였습니다.

다음으로270조는 ‘성적 노역(sexual servitude)’의 개념표지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성적노역’이란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며, 무력이나 위협으로 인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거나, 성적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소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협이란, 성적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강제추방이나 해로운 행동을 당할 것이라는 위협을 말합니다. 이렇게 타인으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또는 미필적 고의로 성적 노역을 하게 하는 자는 성적 노역 범죄에 해당하여 15년의 징역을 선고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적 노역과 관련된 사업을 운영하는 자 그리고 이것에 대해 알고 있거나 미필적 고의를 가진 자도 15년의 징역을 선고 받도록 하였습니다. 미필적 고의(reckless)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예를 들어 사업을 계획하는 자, 업주 또는 자금을 조달하는 자 등을 겨냥한 조항이지요.

2008년 Seiders v R, Somsri v R 사건에서 피고는 4명의 태국 여성들을 성적 노역상태로 성적서비스를 제공하게 한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여성들은 월급을 받지 못했고, 4만 5천불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피고들은 여성들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왔고, 자진해서 빚을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여성들이 비록 여러 가지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신체적인 폭력이나 위협은 없었지만, 여권을 압수당하고 모든 생활에 있어서 피고에게 의존해야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여전히 성적서비스를 그만두거나 업소를 자유롭게 떠날 수 없었다면 이것은 ‘성적노역’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적노역을 위한 사기적 고용(deceptive recruitment into sexual services)’의 경우도 270조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성적노역을 위한 사기적 고용’은 타인을 유인하여 의도적으로 성적서비스를 제공하게 할 목적으로  ‘성적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것, 제공될 성적서비스의 성격,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는 재량의 정도, 성적서비스 제공을 중단할 수 있는 재량의 정도, 자신의 거주지를 벗어날 수 있는 재량의 정도, 채무가 있을 지의 여부, 그리고 착취, 채무노역 또는 여권이나 신분증 압수 등이 있을 것’과 같은 사항에 대해 타인을 속이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경우 7년의 징역을 선고 받고,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18세 미만의 아동일 경우 가중처벌로 인해 9년까지 징역을 선고 받을 수 있습니다.

혹시 270조항을 보시면서 아쉬운 점 하나 발견하셨나요? 바로 노동착취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노예(slavery)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착취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이번 개정안에 추가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지요.

그리고 위의 두 케이스 스토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일어나고 있는 연예흥행 비자(E-6)를 통해 성산업에 유입되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사례와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인신매매 관련 조항들은 있지만 이렇게 누군가를 노예와 같이 부리는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노예법’은 따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호주에서는 270조와 같이 피해자가 착취를 당하는 상태에 대한 노예 조항과, 착취를 목적으로 피해자를 이동시키는 것에 대한 인신매매 조항(271조)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인신매매로 인해 발생한 착취가 아닌 경우 또는 착취는 증명할 수 있지만 피해자를 이동시킨 인신매매 행위를 증명할 수 없는 경우에도 처벌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똑같은 사실을 가지고 한쪽에서는 노예죄로 판결하여 4~8년의 선고를 받고 있고, 한쪽에서는 자발적이니, 사실상의 지배력 행사가 입증이 안 되느니 하면서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여성들을 노예와 같이 부리는 업주들도 ‘성매매 알선’으로 경미한 벌금만 내고 있는 실정이니 참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형법의 약취유인죄나 성매매 방지법의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죄와 같은 인신매매 관련 조항들은 공통적으로 “사실상의 지배력 행사”를 요건으로 하는데, 감금장치에 의한 감금과 같이 심각한 정도의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범죄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위의 두 케이스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호주 법원은 물리적 감금과 신체적 폭력이 없었던 경우,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출입이 자유로웠던 경우에도 피해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던 점 등 모든 생활에 있어서 피고에 의존해야 했던 피해자의 취약한 상태를 고려하여 지배력과 소유권이 행사 된 것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성적 서비스를 그만두거나 업소를 자유롭게 떠날 수 없었다면 이것은 분명히 성적노역, 곧 성착취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살펴볼 조항은 271조(인신매매와 채무노역) 입니다. 그리고 두 조항의 어떠한 점들이 보안이 되어 올해 개정안이 통과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위 포스팅은 형사정책연구원과 어필에서 공동으로 연구하여 발간된 “인신매매 방지 및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제화 연구” 에서 발췌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저자:어진이, 최민영, 발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더욱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www.kic.re.kr/html/pub_data/publication_list.asp)

(변호사 어진이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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