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내 이름은 욤비

2013년 1월 13일

콩고에서 온 욤비씨와 에코팜므의 박진숙 대표가 <내 이름은 욤비: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라는 책을 출판사 ‘이후’를 통해 냈습니다. 욤비씨의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도 감동적인지만, 한국의 난민제도 일반에 대해서 잘 배울 수 있도록 유익한 정보로 가득합니다. 아주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만든 거 같아요. 한번 읽어보시고 주위에도 추천해주세요.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의 ‘난민과 함께하는 환대의 공동체를 꿈꾸며’라는 글도 그 책의 마지막에 한꼭지 들어가 있답니다.

  

난민과 함께하는 환대의 공동체를 꿈꾸며

때로 우리의 현실은 영화보다 극적일 때가 있습니다. 2004년에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터미널>을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빅터는 ‘크로코지아’라는 나라 출신으로 미국 JFK공항에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합니다. 그런데 입국 심사를 하려는 찰나, 본국에 쿠데타가 일어나서 조국으로 돌아갈 수도 미국에 입국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런 빅터가 머물 수 있는 곳은 공항 터미널뿐입니다. 터미널에 머물면서 관리인인 프랭크와 갈등을 빚고 아름다운 여승무원과 사랑을 나누는 게 영화의 주된 줄거리지요. 황당한 이야기라고요? 글쎄,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바로 얼마 전, 우리나라 인천공항에서 벌어진 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공항 풍경

2011년 5월, 에티오피아에서 소수민족인 오로모 족 출신 로브리(가명) 씨가 태국과 피지를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로브리 씨는 아버지가 오로모 반군이라는 이유로 정부군에 박해를 받아 탈출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브리 씨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난민 인정 절차를 밟지도 못하고 공항에서 움쭉달싹 못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한국 법무부가 로브리 씨를 태우고 온 항공사에게 로브리 씨를 송환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항공사는 로브리 씨를 송환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대사관에 연락을 해서 로브리 씨의 여권을 발급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대사관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았습니다. 항공사 측이 로브리 씨 송환을 준비하는 데만 2개월 반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로브리 씨는 공항의 출국 대기실에 갇혀 있다시피 살아야 했습니다.

사연이 조금 다를 뿐이지, 오갈 곳이 없어 공항에 머물게 된 사정은 영화 속 빅터나 로브리 씨나 비슷합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여승무원과의 사랑이나 공항 사람들과의 우정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잔인했습니다. 로브리 씨가 머문 출국 대기실이라는 곳은 비행기를 환승할 경우, 혹은 환승을 잘못하거나 비행기를 놓치는 경우 하루 이틀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숙박 시설이라 볼 수 없지요. 로브리 씨는 2개월 반 동안 얇은 담요 한 장을 가지고 의자에서 쪽잠을 자야했습니다. 더 끔찍한 것은 공항 측이 그런 로브리 씨에게 하루 세끼 치킨버거만 제공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또 다른 영화 <올드보이>가 떠오르네요. 이렇게 비인간적인 처우를 당한 뒤, 로브리 씨는 결국 항공사가 제공해 준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로브리 씨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바로 국내 난민 인정 절차를 규정한 “출입국관리법”이 공항에서는 난민 신청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취지에는 정당성이 없습니다. 당장 영국만 봐도 히드로 공항에 내려 입국 심사를 받으려고 기다리다보면 여기저기서 난민 신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안내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도 현행법상 대한민국 안에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공항은 물리적으로는 대한민국 영토이지만 규범적으로는 대한민국 밖이라는 이상한 관행을 들이대며 사실상 공항에서는 난민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유럽인권재판소>가 입국 전 상태는 “인터내셔널 존international zone”이라는 주장이 법적 허구라는 판결을 이미 오래 전에 내렸는데도 한국 법무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로브리 씨처럼 ‘강제 송환’을 당하는 사례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통계조차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로브리 씨 사례를 전후로 제가 일하는 <공익법센터 어필>에 접수된 사례만 네다섯 건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대부분은 외부와 연락이 단절된 채로 대기실에 머물다가 아무도 모르게 강제 송환되기 일쑤입니다. 이는 “체약국은 난민을 (…) 생명 또는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한 “난민협약”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2013년부터 시행될 “난민법”은 공항에서도 난민 신청이 가능하다는 구절을 명문화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원칙상 규정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할 경우 예전에 없던 난민 신청 적격성 판단을 해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난민 인정 절차를 밟기도 전에 공항에서 곧바로 강제 송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더 우려되는 것은 난민 인정 불회부 결정이 일단 내려지면 당사자에게는 불복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12년 8월 30일, 한국의 전반적인 난민 심사 제도와 절차를 문제 삼으면서 이 조항에 대해 “한국 정부가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한 사람들이 난민 인정 절차를 제약 없이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강제 송환 금지 원칙을 준수할 것을 권고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빗장을 닫아 건 나라

저는 변호사가 되기 전에 <피난처>라는 비정부기구에서 자원봉사로 난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처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난민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삶에 매료되었습니다. 난민들에 비하면 저는 평생을 모범생으로, 겁쟁이로, 지루하게 살아왔습니다. 난민들을 만나며 그들의 드라마가 더 나은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계속 난민들과 함께하게 된 계기입니다. 그래서 <공익법센터 어필>이 탄생했고, 지금은 처음의 문제의식을 더 확장해 난민 말고도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구금된 이주자, 그리고 해외 한국 기업으로부터 인권 침해를 당한 외국인을 지원하고 변론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난민을 변론한다고 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에도 난민이 있나요?” 하고 토끼눈으로 물어봅니다. 그러면 저는 “예, 한국에도 난민이 삽니다”라고 답합니다. 2012년 5월 말 기준으로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294명,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4,515명입니다. 물론 누적된 수치이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한국에 체류 중인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 수치를 보고 “뭐야, 이 정도면 한국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아냐?” 하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의 난민 인정률과 관련해 “세계 평균과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난민 인정 비율에 우려하면서 주목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전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이 약 30퍼센트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2011년 1,011명이 난민 신청을 했고, 그중 340명만이 난민 심사를 받았으며 그 가운데 47명만을 난민으로 인정했습니다. 난민 인정률이 13퍼센트에 불과한 것이죠. 이 수치를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난민으로 인정된 47명을 보면 법무부가 1차 심사에서 난민으로 인정한 경우는 단 세 명뿐이었고 이의 신청을 통해 8명, 행정 소송을 통해 18명, 가족 결합을 통해 13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즉, 법무부 1차 심사의 난민 인정률은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난민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비율이 낮은 이유는 난민에 대한 국민과 정부 당국의 인식이 부족한 것도 한몫을 하지만, 난민 요건에 대한 입증 정도를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것이 큰 몫을 차지합니다. 바로 난민을 인정하는 절차상의 문제입니다. 특히 난민 심사를 위한 인터뷰를 하는 데 있어서 적법절차를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난민의 경우 맨손으로 출신국을 탈출하는 경우가 많아 객관적인 증거 자료를 확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난민으로 인정받는 데 진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난민 심사 과정에서 인터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는 난민 심사관(조사관) 가운데 일부는 강압적으로 난민 신청자를 대하고, 통역인도 제공하지 않고, 난민들에게 조서가 자신이 말한 대로 기록되었는지 확인하는 기회를 실질적으로 주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이에 대해 “난민 인정 절차에서 통역인들이 적절하게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파키스탄 출신 의뢰인의 인터뷰 날짜가 잡혀 저도 함께 동석했습니다. 그날은 통역인 없이 영어로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조사관이 “박해persecution를 당했나요?” 하고 물어보자 난민 신청자가 너무도 당당하게 “아니요!”하고 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의뢰인에게 들은 내용과 달랐기 때문에 깜짝 놀라서 심사관에게 다시 물어봐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난민 신청자는 “박해”라는 단어를 생전 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그 말을 “기소prosecution”로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욤비 씨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처럼 언어로 인해 발생하는 사소한 오해가 쌓여 심사 과정에서 난민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통역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난민법”에서도 난민 신청자가 요청을 할 경우 인터뷰 과정을 녹음하거나 녹화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차차 나아질 것이라 희망을 가져 봅니다.

국내 난민 인정 절차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점은 난민 신청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기까지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를 들으면 허탈하기 그지없습니다. 바로 난민 담당 공무원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난민 신청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수가 매우 적고 2012년 5월을 기준으로 진행 중인 난민 신청이 1,200개 이상이라는 정보를 접수했다”고 하면서 “난민 인정을 위한 절차를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게 하고 신청서를 심사하는 공무원을 추가적으로 임용하는 등의 방안을 포함해 절차를 더 신속히 할 것을 권고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난민 인정 절차가 길다는 것은 단순히 난민 신청자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난민 신청자에게는 합법적으로 생계를 마련할 방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계 지원도 전무하고 취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일을 하다가 단속에 걸리면 난민 신청자라도 강제 퇴거 명령을 받고 보호소에 구금됩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취업이 가능한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취업 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에 한정돼 있다는 것입니다. 난민 신청자가 취업 허가를 받으려면 우선 고용 계약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취업 허가를 받기 전인 난민이 취업을 해서 고용주와 고용 계약을 맺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입니다. 대체 어떤 고용주가 취업 허가도 없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고용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할까요?

상황이 이러하니 난민 심사가 장기화되면 난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기 십상입니다. 개중에는 신청을 포기하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출신국으로 돌아가는 난민도 나옵니다. 심사가 장기화되는 건 사실상의 강제 송환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역시 “난민 신청자들이 노동의 권리를 향유하고 그들과 그 가족들이 적절한 생계, 주거, 의료 서비스, 교육을 향유할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수단을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난민법”이 제정돼 난민 신청자의 사회적 처우가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 전망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난민 신청자의 생계를 지원해 주고 취업도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계 지원과 취업 허가 모두 재량 규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이 규정을 구체화할지는 계속 지켜볼 문제입니다.

왜 난민을 도와야 하느냐고요?

지금까지는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하는 외국인의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그러면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떤지 봅시다. “아니, 이 살기 좋은 세상에 외국에 난민 신청을 하는 한국 사람도 있나요?” 하고 의아해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한국 사람도 난민 신청을 합니다.”

캐나다에서 2011년 한 해에만 한국 사람이 난민 신청을 제기해 심사에 들어간 경우가 총 96건입니다. 그 가운데 20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한국 사람에 대한 캐나다의 난민 인정률은 20퍼센트가 넘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국내 난민 인정률은 참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캐나다 말고도 전 세계에서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거나 인도적인 이유로 보호를 받고 있는 한국 사람은 514명에 이릅니다. 대부분의 한국 출신 난민들은 한국에 체류하는 난민들보다 더 나은 대우와 조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우리나라도 어려운데 난민을 도와줄 여력이 어디 있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는 사람들은 ‘난민을 보호하는 것은 나라 재량에 달린 일이고 시혜적인 정책일 뿐’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난민을 보호하는 건 재량이나 동정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난민을 보호할 ‘법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에서는 정부가 비준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992년 난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난민협약”을 비준했습니다. 그러니 난민들을 위한 적절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입니다.

난민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꼭 법적인 의무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2011년 <유엔난민기구>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난민과 국내실향민이 약 4천만 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오히려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들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들 난민을 보호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번 살펴봅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2011년 세계 12위에 올랐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으며 <유엔인권이사국>에 세 차례나 선출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위상이나 국제적인 위상 면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그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할 윤리적인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은 과거의 빚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도 국제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한국전쟁 직후 <유엔한국재건단(UNKRA)>은 한국의 실향민들을 위해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한국 역시 난민에 준하는 국내실향민이 대량으로 발생한 나라였고 국제사회로부터 수혜를 받은 나라였던 것입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에티오피아 난민 로브리 씨는 한국을 떠난 뒤 어떻게 됐을까요? 로브리 씨는 태국에서 에티오피아 행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항공이 로브리 씨의 탑승을 거부했습니다. 로브리 씨가 에티오피아 사람인 것은 맞지만 에티오피아 당국이 입국을 거부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결국 로브리 씨는 태국 공항에서 7개월 동안 구금당합니다. 저는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함께 일하는 정신영 변호사와 2011년 12월에 로브리 씨를 만나기 위해 방콕 공항의 구금 시설을 방문했습니다. 로브리 씨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바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군요. 한국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고 합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국은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 당신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버티면 영원히 치킨 버거만 먹고살아야 한다고 조롱하기도 했고요.한국에선 <유엔난민기구>와 접촉할 수 없었지만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유엔난민기구>와 연락이 됐고 인터뷰도 받았습니다. 나에겐 한국보다 태국이 낫습니다.”

로브리 씨의 말에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그저 부끄러웠습니다. 참고로 태국은 난민협약국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난민에 대한 인권 감수성은 협약국인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습니다. 결국 로브리 씨는 태국의 <유엔난민기구>로부터 우여곡절 끝에 난민으로 인정을 받아 지금은 뉴질랜드에 재정착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오는 제 이, 제 삼의 로브리 씨에겐 이와 같은 운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같이 부끄러워하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의 난민 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난민 제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난민의 사회 통합입니다. 여기서 통합이란,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 사회의 핵심 가치를 수용해 적응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통합은 한 사회의 문화를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어 줍니다.

난민의 사회 통합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난민에게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합니다.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시혜의 객체에 머문다면, 난민들은 한국 사회에 섞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자신들만의 공동체에 머물 것입니다. 난민들이 자율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한다면, 그들은 한국 사회에 통합하려는 어떠한 동기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사회 통합의 결정적인 계기란 개인적인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환대의 마음으로 난민을 대하고 난민의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제가 난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지금껏 난민들과 함께해 온 것처럼 『내 이름은 욤비』를 읽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난민들의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인생을 걸고 장담하건데, 난민과 친구가 되는 일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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