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정신건강워크숍스케치(홍콩_2011.11.8)

2011년 11월 19일

홍콩에서 동아시아 난민 활동가를 위한 워크숍이 2011.11.9.부터 11.까지 열렸습니다. 이번 워크숍의 주제는 ‘난민의 정신 건강’입니다. 한국에서는 어필의 어진이, 김종철 변호사, 난센의 최원근 팀장님,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님과 국현정 간사님, 메디피스의 박현민팀장님, 심리상담가 서안남씨와 유엔난민기구의 정현정 실장님과 이현아씨가 참석했고, 난민을 대표해서 욤비씨도 함께 했습니다

욤비씨는 이번 홍콩 워크숍에 우여곡절 끝에 참석을 했습니다. 홍콩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하지 않아 여러 사람이 편지쓰고 전화하여 겨우 비자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인천에서 홍콩으로 출국하면서는 또 한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행증명서라는 것을 처음 본 출입국공무원이 욤비씨를 잡아 둔채 또 한번 ‘난민’ 인터뷰를 한 것입니다. 욤비씨는 6년전에 난민인터뷰에서 질리도록 들었던 질문들을 또 들었습니다. “왜 하필 한국에 왔느냐?”, “어떤 경로로 한국에 왔느냐?” 11월 불법체류자 단속이 대대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하는데, 출입국 공무원들은 모든 외국인을 체류 자격을 기준으로 합법체류자와 소위 불법체류자로만 구별해서는 안됩니다. 외국인 중에 취약한 자들이 누구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난민들, 인신매매피해자들, 정신적 혹은 신체적인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체류 자격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특별한 처우를 받아야 합니다. 

첫째날 워크숍은 연극으로 시작하였습니다(그 전날 밤 경찰 역할을 맡은 브라이언은 호텔방으로 찾아와 욤비씨에게 우리가 이런 이런 연극을 할 텐데, 괜찮겠냐요 물어봅니다. 난민들에 대해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네요). 독재정권하에서 군인들에 의해 고문을 당해 가족을 버리고 도망갈 수 밖에 없는 어느 교수 가족의 이야기를 난민 활동가들이 실감나게 연기했습니다. 매번 난민들의 진술을 통해 접하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연극으로 보니 그들의 어려움이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연극이 치료의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한국 난민들과 연극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3일간의 워크숍을 인도하는 에이드리언과 린다는 우리 청중들에게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무엇을 챙겨서 떠날것인가 물어봅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챙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즐겨 읽던 책, 가족 사진, 다른 나라에서느 쓸모 없을 자격증. 이정도가 전부입니다. 뜬금 없이 U2의 what you can’t leave behind라는 앨범의 walk on 이라는 노래의 가삿말이 생각납니다. love is not easy thing…(love is) the only baggge you can bring… (love is ) the only baggage you can’t leave behind. 

정신 건강의 측면에서 난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구별을 하네요. 1)전혀 문제가 없는 단계, 2)psychosocial problem 내지 psychological problem의 문제가 있는 단계 3)그리고 psychosocial disorder 내지 psychiatristic disorder의 단계가 그것입니다. 난민의 특수성으로 인한 입증 방식의 특수성(입증에 있어 진술의 정합성과 부합성)이 트라우마로 인한 기억력의 문제가 결합되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강의 중 특별한 내용은 난민의 트라우마 뿐 아니라 난민 활동가들이 난민들과 함께 일하면서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 한 점입니다. 강사는 활동가들이 어떻게 이러한 트라우마 내지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단전호흡, 명상, 간단한 운동방법 등을 소개하면서 참가자들이 그 자리에서 연습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과연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 하면서 따라했습니다(일기를 쓰는 것, 정기적으로 먹고 건강하게 먹는 것,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그러나 오늘 강의를 통해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문화가 어필에 정착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강의후 어진이 변호사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리더에게 분노를 퍼붓게 된다는 강사의 말을 상기시켜주네요. ㅋㅋ

이번 워크숍에서 가장 좋은 점은 욤비씨 등 일본과 한국에서 온 난민들이 참석해서 당사자의 입장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한다는 점입니다. 일본에서 온 난민분은 평소에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준 사람이 없었다는 듯이 마음에 담고 있었던 말들을 끊임없이 하시네요. 강사들은 처음에는 짧게 이야기를 하라고 하다가 그분의 심각한 정신적인 상태를 알아차리셨는지 진지하게 듣습니다(저는 듣다가 민망하게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습니다). 욤비씨는 몇 가지 아주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년에 수백명의 난민들을 상대하는 3~5명의 출입국 난민 담당 공무원도 난민들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하는 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치며 공감을 했습니다. 또한 욤비씨는 자신의 집의 베란다에서 먼 산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자주 그렇게 하는데, 부인은 욤비씨가 뛰어 내릴까 두려워 베렌다에 나가지 못하게 세탁기를 가져다 놓았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숩고 한편으로는 마음 아픈 이야기 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 몇 사람들이 욤비씨 이야기에 눈물을 훔치고 있네요. 늘 드는 생각이지만 욤비씨는 훌륭한 분입니다. 

워크숍 둘째날에는 일본에서 온 미안마 출신의 난민과 우간다 출신의 난민이 보이지 않네요. 강사는 이들이 자신의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워크숍에 참석하면 리트라우마타이즈(re-traumatize) 될까봐 상담을 보냈다고 합니다(글쎄요 하루 동안 상담이 제대로 될까요? 제가 볼때는 우간다 출신 난민이 두서 없이 워크숍 중간에 말을 많이해서 다른 곳으로 보낸 거 같네요). 

둘째날에도 욤비씨의 활약이 대단했어요. 가족이 겪은 어려움에 대해 솔직하게 나누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욤비씨는 결정적으로 한국에서 온 갖 어려움을 다 겪었지만 자신에게 한국은 이 인생의 학교나 마찮가지라고 합니다. 어려움을 통해 많이 배웠다구요. 욤비씨는 정말 트라우마를 내적으로 잘 통합하신거 같습니다. 트라우마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계속 정신적인 건강이 않좋은 반면 어떤 분들은 그것을 잘 극복할까요?

이런 것을 여기서는 resilience라는 용어로 표현을 하네요. 우리 말로는 뭐라고 번역을 할지 모르겠지만, 회복 탄력성이라고 하기도 한답니다.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트라우마적인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가? 트라우마를 당한 사람의 개인적인 성품/기질이 어떻한가?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하는 환경이 어떠한가?에 따라 취약성이 높아질 수도 있고 반대로 resilience가 높아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레질리언스과 관련되는 여러 요인들이 있는데요. 음식, 물, 주거, 신체적인 건강과 같은 물리적인 요소, 전통적인 활동을 지속하거나 함께 어울릴 커뮤너티의 존재와 같은 사회적인 요소, 도덕적으로는 용서하는 능력이나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산다는 감각과 같은 도덕적이고 영적인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결국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고, 건전한(?) 생활을 하면 레질리언스가 높아진다는 것이죠. 

트라우마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우울증, 불안 관련 장애, phychosis 뿐 아니라 somatization이라는 것이 생기기도 한다네요. 저는 이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데요. 정신과 마음의 병이 신체적인 장애로 나타나는 거래요. 난민들이 한국에서 있으면서 여기 저기 몸이 아프다는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이런 소마티재이션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이라는 것이 신기하네요. 

이번 워크숍의 강사는 앞에서 말한 아드리엔느 카터(aacarter9@shaw.ca)와 린다에요. 강의하는 방식이 독특하네요. 한 세션 씩 번갈아 가면서 인도하고, 상대방이 주도할 때에는 적절하게 끼어들어 도와주네요. 이분은 난민 뿐 아니라 누구나 상담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난민 활동가 뿐 아니라 정신과 의사들도 마찮가지라고 합니다. 의사들은 자신이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상담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의 알콜 중독율이 높다고 합니다. 형식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동료들의 모임은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를 상담하고 격려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일본에서도 ISS에서 심리 상담 서비스를 시작했고, 홍콩에서는 크리스찬 액션에서도 심리 상담 서비스를 하려고 하네요(무슨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가 하기 보다는 난민의 정신 건강에 관한 트레이닝을 받은 상담가들이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이런 분들을 트레이닝 할 수 있는 분들이 나오고, 이런 분들로 부터 트레이닝을 받은 상담가 그룹이 생기고, 심각한 케이스를 담당해줄 정신과 의사선생님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보노로 상담가와 정신과 의사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이분들에게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홍콩, 일본과 우리는 상황이 많이 다른 거 같습니다. 홍콩과 일본에는 최소한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의뢰인들을 보낼 곳이 있으니 말입니다. 워크숍 내내 어떻게 하면 변호사들이 의뢰인의 정신 건강과 관련된 필요를 잘 파악할 것인지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난민들을 보낼 곳이 없으니 트라우마틱한 사건을 겪었던 이야기를 들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1년 가까이 꾸준하게 무료로 난민들에게 치료를 해주시고 있는 문지현 선생님과 전진용 선생님이 더욱 고마워 집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난민 의뢰인들은 자신의 정신 건강의 문제에 대해 변호사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들도 난민들의 정신 건강과 관련해서 자세히 묻지도 않구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난민들은 리걸 서비스를 프로보노로 제공하는 변호사들에게 자신의 정신 건강상의 어려움을 이야기 함으로 인해서 추가적인 부담을 주기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들은 난민의 정신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이들을 소개 시켜 줄 만한 심리 상담가와 정신과 의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난민 의뢰인의 정신적인 문제, 특히 자살 충동과 관련된 문제를 알게 될 때 느끼게될 부담감의 가중도 변호사들이 의뢰인으로 부터 정신 건강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제 의뢰인 중에 자살 충동을 겪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그 분을 소개시켜 준 난민 엔지로로 부터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 때문에 그 사건을 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과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도 하고 상담도 했지만 자살 충동에 대해서 한번도 듣지 못했고, 저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볼 때 늘 그것이 두렵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연락이 제대로 안될 때는 안절 부절 하게 됩니다. 또 소송의 결과가 그 분의 정신 건강에 미치게 될 영향을 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의 안녕, 다른 말로는 그 사람이 더 나은 이야기를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인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신건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특히 난민의 경우에는 사회적이고 정신 건강의 문제가 법률적인 문제와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최근에 대법원에서 승소한 케이스의 경우 정신과 선생님이 써주신 진단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난민의 경우 난민신청이 불허된 주된 이유가 중요한 박해의 사건에 대해 정확한 기억을 하지 못하고, 박해의 사건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를 일부러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소송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그분을 정신과 선생님과 연결시켜 준 것은 아닌데, 정신과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보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의 경우 그 트라우마틱한 사건을 지우려고 하려는 경향 때문에 중요한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일부러 기억을 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민 사건의 경우 그 특수성 때문에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입증을 할 수는 없고 난민의 진술의 신빙성(진술의 정합성과 부합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박해의 사건 때문에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어 기억력 등에 장애가 있는 난민이 많기 때문에 그 점 역시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합니다.

결국 이번 3일간의 난민의 정신건강에 관한 워크숍의 핵심은 난민 변호사들이나 활동가들이 난민을 케이스로 보지 말고 사람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람으로 보고 그들의 사회적, 정신적 어려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U2의 walk on에서 사랑만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가방이고 사랑만이 우리가 두고 가서는 안될 가방이라고 했습니다. 그 노래 마지막 구절 처럼 우리가 사랑으로 한 것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두고가야 합니다.

Leave it behind   You got to leave it behind   All that you fashion   All that you make   All that you build   All that you break   All that you measure   All that you feel   All this you can leave behind   All that you reason  All that you sense   All that you speak  All you dress-up   All that you scheme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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