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어필 4인방 변호사 좌담회

2014년 1월 2일

송년특집 어필 4인방 변호사 좌담회

*문지안 백일기념 방문시 찍은 사진입니다 

어필이 만들어진지 3년이 지났습니다. 2012년 여름에 어필은 반포에서 현재 안국역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2013년 여름에는 옆 방에 ‘사이多’라는 공간을 얻게 되었고, 이일 변호사와 김세진 변호사도 합류하게되었습니다. 송년 특집으로 4명의 변호사(김종철, 이일, 김세진, 정신영)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앉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회자로 인턴 2명 정자윤, 김신홍이 참석하였습니다.

 

Q 김신홍: 우선 좀 기본적 것 부터 물어볼께요. 많이 질문을 받아 보셨을 텐데요. 공익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 먹게 된 계기는 무엇이죠?

김세진: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서 일하시는 박종운 변호사님의 도움을 받았는데, 박종운 변호사님의 공익 활동을 곁에서 보면서 공익변호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스쿨 합격 후 어필의 후원 단체인 법무법인 소명의 대표인 전재중 변호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풀타임 공익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로스쿨에 다니면서 어필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변호사시험을 마친 후에는 바로 어필에 펠로우를 지원하게 되었으며 펠로우 기간 동안 합격자 발표가 있어 합격 이후 정식 상근 변호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일: 공익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한 계기가 되는 특정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앞으로 계속 그러겠지만 현재도 계속 배워가고 있는 단계, 스스로 내면화를 해 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하는데요. 부조리한 것을 바로잡고,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하는 일. 그런일을 하는게 보람차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정신영: 저는 공익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적은 사실 한번도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로스쿨을 졸업하고 김종철변호사님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놀러갔다가 재미있어 보여서 인턴을 하게 되었구요, 인턴을 하다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눌러 앉게 되었네요.

 

Q 정자윤:  김종철 변호사님은 어필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셨는데요.  가장 기뻤던 일과 가장 슬펐던 일이 혹시 있으시면 말씀해 주실수 있나요?(그동안 하셨던 업무중에서요^^:;)

 

김종철: 난민재판 선고 며칠을 남겨놓고 난민 분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게 가장 슬픈 일 중에 하나였어요. 가장 기쁜 일이라…많이 있는데 올해 가장 기쁜 일을 꼽으라면, 좋은 동료들을 만난 것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안전하게 못 돌아올 것 같았거든요. 마지막에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순간 너무 기뻤죠.

 

Q 김신홍: 김세진 변호사님께서 어필 인턴 변호사님으로 활동하셨던걸로 아는데요.  어떤 계기로 어필에 오시게 되셨고,  2013년 어필에서 근무하시면서 어땠는지 그리고 올 한해 가장 어필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김세진: 한 마디로 굿~~서로 아껴주고 배려해 주는 동료들, 똑똑하고 성실한 인턴들,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구조, 일 자체에서 느끼는 보람, 경치 좋고 맛집 많은 사무실 환경…어필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에는 나름 포기와 희생을 결심한 것이었는데 이 곳에 와서 누리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지금은 감사만할 뿐입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저의 첫 의뢰인인 콩고 난민신청자와의 인터뷰입니다. 그 분은 저와의 인터뷰 말미에 “이 난민소송에 제 온 소망이 달려 있습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은 콩고에서 중국으로 유학 올 정도로 엘리트셨는데 콩고 정부로부터 반군으로 오인 받아 구속되었고 고문과 박해의 위험을 피해 콩고를 탈출하여 우연히 한국으로 오시게 되어 난민신청을 하셨습니다. 중국으로 유학 올 때는 지질학 전문가가 되어 콩고의 광물을 연구해서 콩고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던 열정적인 분이셨는데 지금은 고국의 의심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오직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에만 온 소망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그 분에게는 마지막 소망이라는 것에 동시에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Q 정자윤: 이일 변호사님은 군법무관으로 근무하시고  전역 후 어필에서 근무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역 후 많은 고민 끝에 어필에 오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공익변호사로 활동과 어필에 오게된 구체적인 계기나 동기가 있나요? 이변호사님도 2013년 어필에서 근무하시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어떤거죠?

 

이일: 아까전에 이미 말씀드린 것과 같은데요. 군법무관 시절에는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 문화, 성격을 배웠던 기간이었는데, 그 동안에는 판사지원도 고민했었고, 대형로펌에 가서 산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하고 변호사분들을 만나본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역 전까지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결국 제게 가장 잘 맞는 일은 지금 어필에서 하고 있는 이런 일이란 생각이 들게 되었구요.

인상깊었던 일들은 여러 일들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정리를 하자면 ‘어떤 고독한 순간’을 맞닥뜨릴 때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아.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하면, 이 분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겠구나’, ‘지금 여기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이 분께서는 계속 기약없이 갇혀있겠구나’하는 것과 같은 순간들을 여러번 맞닥뜨렸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의뢰인분들이 꿈에도 나오고, 고민하다가 잠을 잘 못이루기도 하구요. 모든 법률가들이 비슷한 고독함을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으시다고 생각하는데요. 고독하고, 어깨의 책임이 무거워지는 순간. 그런 찰나의 기억들이 많이 남아요.

 

Q 김신홍: 정신영 변호사님께서도  어필에서 근무하신지 오래되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계기로 어필과 인연을 맺게 되셨고, 또 공익변호사님이 되신 계기가 궁금하네요 어필에서 근무하시면서 잊지못할 순간이 있다면 말씀해주실수있나요?

정신영: 어필에서 제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기구한 사연을 가진 분들, 그리고 너무나도 멋지게 역경을 이겨내고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 울고 웃고 하게 된것 같아요. 그리고 저의 상식이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제 수준에서 이해가 안된다고 해서 쉽게 무시하거나 배척하던 태도도 많이 변한 것 같구요. 잊지 못할 순간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데, 저는 그냥 난민분들하고 소소하게 만나서 수다 떠는게 좋더라구요. 꼭 난민신청사유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또 재미있었던 일도 나누고 하는 시간이 참 소중하더라구요.

 

Q 김신홍: 공익변호사님으로 활동하시면서 어려운 점들이 많으신걸로 아는데요 특히 어떤 경우에 가장 힘드셨고 다가오는 2014년에는 어떤 점이 좀더 나아졌으면 좋겠고 특별한 바람있다면 말씀해 주실수있나요?

김종철: 저는 공익변호사의 자질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러나 저에게는 부족한 것들 3가지가, 공감하기, 성실하기, 상상하기라고 생각해요. 2014년에는 조금 더 이런 자질이 저에게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2013년 보다 더 재미있게 일하고 싶습니다.

김세진: 공익변호사로서의 어려움이라기보다 난민소송을 하는 변호사로서의 어려움입니다. 난민사건은 입증정도를 완화 해주는 것이 원칙인데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난민들에게 과도한 입증책임을 지우고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난민의 본국에 가서 직접 증언을 받아오거나 본국에 있는 친척들로부터 증거문서를 입수해 와도 법원이 증거로 채택을 해주지 않을 때도 있어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난민신청이 남용되는 것을 우려해서 그런 것 같은데 신청의 남용 문제는 난민인정절차의 신속한 처리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입증책임을 무리하게 지우는 것으로 해결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일: 힘들었을때는 ‘제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나. 제 능력이 부족한가’와 같은 생각이 들때였던 것 같아요. 승소를 예상한 소송에서 질 때, 논란이 있는 법률적 쟁점에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할 때들도 그렇지만, 아직 경험이 적은 저는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서 법률적 해결을 모색하려고 하는때가 많은데, 법률적인 해결만으로는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더라구요. 그런면에서 배포도, 여유도 부족하고 시야가 많이 좁다는 생각을 하는데, 앞으로 더 많이 배워나가려구요.

정신영: 한번은 난민신청자분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느끼는 불안감, 슬픔 들을 나눠주시는데, 저도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남편이 맹장수술을 하게 된 밤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나더라구요. 이전에는 문제 해결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힐링이 되는 것 같아서 그런 소소한 시간들이 더 많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Q 정자윤: 변호사님들이 4명이신데요 모두들 좋은 분들이여서 서로 불편하시는 점은 아직까지 보이지않는데요 서로들에게 칭찬해주실점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수있나요?( 이 질문을 받으시고 4분모두 서로 얼굴만 보시고 웃으셨습니다. 사회자의 끈질긴 질문으로 남자 변호사와 여자 변호사 대표로 1명씩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이일: 때론 장난스럽게 놀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 김종철 변호사님은 모든 면에 있어서 탈권위적이세요. 난민판 뿐 아니라 여러 실무적인 경험에서 선배님이신데도 불구하고 모든 의견을 동등하게 존중해주시고, 정이 많으셔서 인간을 대하시는 방법에 있어서 귀감이 많이 되요. 의뢰인들과도 실제로 친구가 되시려고 하시고, 조직과 일을 볼 때도 사람을 먼저 챙기고 집중하시는 면이 놀랍습니다. 김세진 변호사님은 인격적인 따뜻함과 배려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분이실 뿐 아니라, 저처럼 생각과 고민이 많아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민하다 휘청하는 경우가 있는 사람과 달리, 위기에 강하고 대범하신면이 있어요. 그런면에서 저를 돌아보고 많이 배우게 됩니다. 지금 한창 지안이를 돌보면서 휴직중이신 정신영 변호사님은 밝은 웃음과 격려의 수호신이에요. 정신영 변호사님과 같이 있으면 모든 일에 있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걸 경험할 수 있어요. 거기다가 풍부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부딪히는 난제들에 있어서 돌파구를 열어주실 때가 많이 있어요. 정말 감사하죠.

김세진: 김종철 변호사님은 개인적으로 감사했던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 하자면 제가 유럽 출장을 혼자 갔을 때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네트워크와 협력이 잘 안되어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저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네트워크와의 관계는 길게 보자고 하시면서 직접 카톡으로 한국음식점 위치를 보내 주시면서 힘들텐데 한국 음식이라도 먹으면서 힘내라고 하셨습니다. 김종철 변호사님은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력과 책임감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동료를 아껴주시는 덕장이십니다. 이일 변호사님의 탁월한 문장력과 빠르고 깔끔하며 지혜로운 일처리에 거의 매일매일 감탄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한테 일이 몰린다고 이일 변호사님에게 정말 일이 많이 몰리는데도 묵묵히 다 감당하십니다. 능력도 되고 책임감도 강하고. 그런데 일 잘하는 사람들이 흔히 일 중심인 것에 반하여 이일 변호사님은 사람 중심이십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시고 세심한 배려를 해주십니다. 정신영 변호사님은  최근 출산을 하셨는데요 출산전부터 어필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담당하셨습니다. 어필이 활기차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는데 정신영 변호사님의 공이 큽니다.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cheer up 시켜 주는 마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정신영 변호사님은 현재 육아휴직 중이신데도 어필의 의사소통 공간 중 하나인 페북에서 변호사들과 인턴들의 포스팅에 그 마력의 댓글로 우리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시고 계십니다.

 

Q 정자윤: 어필은 여러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는걸로 아는데요 그래도 운영하시는데 어려움이 없는지 조심스럽게 여쭙니다.

김종철: 변호사들이 후원을 받아 단체를 운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크든 작든 우리 후원자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직 재정 상태가 안정적이지는 않아요. 앞으로 계속 일을 더 잘하고, 그 일한 것을 더 잘 소통하면서 지지자들인 후원자들을 더 모아나갈 계획입니다.

이일: 짧게 말씀드리면, 완전히 안정적이진 않지만 후원자님 덕분에 견실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희 변호사들이 후원자님들의 후원에 맞게 저희의 일들을 구체적으로 나누고, 알리는 일들을 충분히 해나가지 못할 때들이 있어 죄송한데, 그 부분에서 더 노력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Q 정자윤: 다가오는 2014년 새해 난민 처우와 제도에 대해 어떤점이 좀더 개선되어졌으면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수있나요?

김종철: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구체적인 제도 변화도 중요하지만 대중과 당국에서 외국인, 특히 취약한 외국인들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상반기에 이런 취지에서 콘서트를 하려고 하는데요. 우리도 모두 이방인이다 we are strangers somewhere라는 제목이에요. 콘서트를 통해서 저희 자신도 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이방인에 대한 인식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곘네요

이일: 저는 난민의 구금 부분 문제입니다. 김종철 변호사님께서 선도적인 작업을 이미 다해놓으신 분야이긴한데, 구체적인 제도개선까지 나가려면 더 많은 소송과, 작업, 행동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공항만 출국대기실에서의 구금, 외국인보호소에서의 기약없는 장기구금등의 문제는 사실 위헌적이어서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타당성 자체도 찾기 어려운 부분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다퉈가는 노력들이 2014년에는 좋은 열매로 맺혔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Q 김신홍:  2014년 어필의 계획과 꿈은 무엇이나요?앞으로 어필이 어떤모습으로 가길 원하세요?

 

김종철: 신년 전략 워크숍에 가서 이야기 하면 더 구체적으로 나올텐데, 아직은…하지만, 어필이 구성원들이 일하기에 더 재미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는 것 쯤은 말할 수 있습니다.

이일: 어필이 이제 3주년을 맞았고, 그에 맞추어 현행업무와 더불어 여러가지 기획사업들을 맡아서 하게 되어 정신없이 바빠질 것이 예상되는데요. 지금 어필이란 단체가 갖고 있는 강점 즉, 창의력을 갖고, 따뜻하고, 서로 소통의 기회를 계속 찾아가며 서로를 존중하는 강점들. 어필이란 단체가 갖고 있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어필의 연수가 계속 늘어나더라도 쇠퇴하거나 회색빛으로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서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주의) 이 포스팅은 아기를 돌보느라 미처 함께 할 수 없는 정신영변호사를 포함하여,  모든 구성원들이 동시에 자리에 앉아서 진행할 수는 없었던 사정으로 인해 여러 시점에 나누어 진행된 것을 맛깔나게 편집한 포스팅입니다^^

(인턴 김신홍 정리)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