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트 미첼 이야기: 전세계의 구금된 이주민들이 풀려날 때까지 쉬지 않을 것 같은 그 사람과의 인터뷰

2015년 12월 21일

   

세계의 구금된 이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국제구금연맹 International Detention Coalition 의 대표 그랜트 미첼이 이주아동 구금 근절 및 대안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와 그랜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시아태평양난민네트워크에서의 이주구금 실무그룹에서의 활동을 통해 우정을 쌓아온 사이었고,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는 그동안 다양한 곳에서 그랜트의 강의를 들어온 바가 있어(일본, 말레이시아, 대만), 그랜트의 한국 방문을 맞아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는 자리를 마련해보았습니다. (그랜트는 인터뷰 후 정신영 변호사에게 “오프라 윈프리” 같았다며 닉네임을 선사한 바, 이하 정신영 변호사의 질문을 “정프라”로 적어두었음을 밝힙니다.)

   (정프라) 그랜트 씨 반가워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그랜트 미첼이라고 합니다. 저는 전세계에서 구금된 이주민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 스웨덴에서 사례관리자로 일을 했을 때가 21살이었는데, 다음 달 생일이 지나면 44살이 되겠군요. 벌써 이 분야에서 일한지가 22년이 되었네요.

(정프라) 세상에 많은 ‘인권 이슈’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주 구금’이라는 특정 분야에 열정을 갖고 일을 시작하게 되신거죠?

저는 호주의 사막 같은 작은 도시에서 자랐어요. 노동자 계급 인구가 높고, 또 그만큼 인종차별이 심했어요. 경계선이 짙었어요. 마을에 선이 그어진 게 있었는데, 안쪽에는 저희가 살았고 바깥쪽에는 선주민들이 살았어요. 이 상황이 어린 저에겐 강한 인상으로 남았죠. 그래서 나중에 선주민 청소년들이랑 만나는 일도 하게 되었고요. 또 대학교 때 정말 괜찮은 이란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난민이었어요. 전에는 생소했던 난민에 대한 개념과 어떤 고생을 거쳐 호주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면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대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갔던 스웨덴에서 르완다에서 온 친구를 지원하는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어요. 17살짜리 친구였는데, 르완다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일 때문에 할머니는 이 친구를 나무 밑에 묻어서 숨겨두고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고 해요. 그 때는 학부생이었으니 프로패셔널한 ‘사례관리자’는 아니었지만, 이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줄 수 있는 도움을 주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친구가 사라진 거에요. 한참을 찾아다녔는데 나중에 이 친구가 이주민들을 구금하는 시설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당국은 이 친구가 르완다 사람이 아닌 탄자니아 사람이고, 17세가 아닌 18세라고 하면서 구금을 하고 있던 거에요. 그때 이주 구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고 이후로 이주구금 시설 내에 ‘인권부서’ 라고 하면 말이 신기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부서에서 일을 하기도 했어요. 이 ‘인권부서’에서는 실제로 구금된 이주민들의 처우에 대해서 살피고 하는 일들을 했고 그러면서 경험을 쌓아갔어요.

(정프라) 그렇군요! IDC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IDC를 설립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하구요. 또 IDC가 호주에서 시작되었지만 비단 호주 문제 뿐 아니라 전세계의 이주구금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국제적으로 일하게 되셨는지도 매우 궁금하네요.

여러 곳에서 경력을 쌓은 것을 기반으로, 20대 후반에 호주의 한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구금 대안을 마련하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이후로 그 커뮤니티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머물게 되었는데 한 때는 40개 숙소를 관리해야할 정도로 큰 규모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하지만 예상하다시피 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5, 6명 밖에 안되는 스탭들이 40개의 숙소에 머무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필요한 모든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의미는 있지만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면서 이슈에 몰입되어 소진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느꼈고, 또 각 개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파악하고 지원을 하는 일을 매우 좋아하지면서도 이렇게 쌓은 경험들을 어떻게 정책에 반영을 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주 구금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메일링 리스트가 있는데요, 예전 동료가 그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전세계에서 이주 구금 이슈에 대한 네트워크가 필요하지 않겠냐,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연대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어요. 저는 그 이메일을 보자마자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답장을 보냈죠. 제가 가장 먼저 답장을 보낸 사람이었다고 하더군요. 그 메일을 보낸 사람은 지금 IDC 대표로 워싱턴에 계시는데요, 저희가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에요. 정부는 늘 우리보다 한 발 앞서있다는 거죠. 그들은 서로의 나쁜 관행들 (bad practices)을 우리보다 한 발 앞서서 공유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늘 뒤쳐질 수 밖에 없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시민사회도 좋은 관행들에 대해서 재빠르게 공유를 하고 서로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연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각 나라별로 라이벌시하는 나라들이 있는데요 프랑스와 벨기에가 그렇구요, 또 동아시아는 한국과 일본일까요? 이렇게 각 나라들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정부들도 궁금해 한다는 거죠. 얼마 전 프랑스 새 정부의 초청으로 이주구금 관련한 정책을 제언하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했는데, 처음에는 ‘다른 나라에 대한 얘기는 하지도 마시오’ 하던 사람들이 나중이 되자 ‘그래서 벨기에는 어떻게 하고 있죠?’라고 물어보더라구요. 이렇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 발빠르게 공유를 하고, 또 부정적인 변화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서 IDC에서는 전세계의 이주구금 문제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고, 또 각국의 상황에 맞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언, 특히 정책 제언을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일을 계속할수록 자국에 대한 생각은 늘 하게 되고 죄책감마저 느끼게 되요. 호주의 이주구금 상황은 정말 최악이거든요. 호주는 국민 심리상태가 매우 정신분열증적이라는 생각을 해요. 국제적이고 포용적인 면이 있는 한편, 오랫동안 국토 전체가 ‘감옥’으로 존재했었다는 역사와 무슬림 아시아 국가들에 둘려쌓여있다는 점 때문에 늘 고립과 침공에 대한 공포심이 있어요. 저는 인종주의가 일종의 심리적 불안증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러한 심리가 실질적으로 시민들에게 그리고 정치인들의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 번 호주에서 큰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아시아계 호주인들을 외국인인 줄 알고 구금을 해버린거에요.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아시아계 호주인들이 손해배상청구를 시작했고, 이후로 본토에는 이주구금소가 많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후로 정부가 구금소를 외딴 섬에서 운영을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다른 나라 정부에 돈을 주고 외국인들을 가두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너무 끔찍한 일인데, 인도네시아의 이주구금소에 호주정부가 돈을 주고 운영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거든요. 이런 구금소는 접근도 어렵고, 여기에 갇힌 이주민들은 전기채찍으로 학대까지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호주의 상황에 대해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IDC가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늘 있습니다.

(정프라) 그렇군요! 저는 사실 IDC에서 제시하고 있는 ATD(Alternatives to Detention) 전략에 대해 들었을 때 매우 참신했어요. 그 전까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정부와 대립하고 대치하는 것 confronting ways에 집중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정부가 채택가능한 대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득력있게 연구결과를 제시하는 방법이 참신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이런 접근 방법을 취하게 되었는지, 또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매우 좋아합니다. 매우 순수하고 열정적이죠. 그렇지만 너무 이슈에 몰입되어 있어서 이슈에 대해 적절하게 정부에게 정책을 제언하거나 하는 부분이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을 때가 있어요. 또 정부의 정책에 대해 수긍하고 제언하는 것 자체에 대해 타협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구요. 하지만 저는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고 저의 목표는 매우 뚜렷합니다.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거든요. 또 정부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적절한 때에 적절한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는 변호사는 아니지만 20년 동안 법을 다뤄왔어요. 그래서 사실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을 때가 있었는데 주위에서 ‘변호사는 이미 너무 많아! 이슈를 다방면에서 다뤄야지’ 라는 조언을 듣고 정신을 차렸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변호사와 맞지 않는 것 같구요. 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하게 사고하고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미 갖추어진 해석에 묶여가며 일을 해야하는 변호사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인권’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법에 대해 알 필요가 있고, 그것은 온라인 코스라든지 그런 식으로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 문제는 이 ‘인권’ 문제를 어떻게 현실에서 해결할 수 있는가에요. 구금된 아동을 풀어내라고 정부에게 이야기 하면서 ‘유엔 협약의 무슨 조항’에 대해 얘기를 꺼낼 수 있지만, 당국에겐 그건 그냥 ‘제네바 문서’에 불과해요. 정부는 그 얘기를 들으면 지겨워하고, 아이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거죠. 이슈의 무게를 어떻게 정부와 함께 질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을 많이 하죠.

황당한 이야기인데, 중국에 초청을 받았는데, 저를 불러놓고 물어보는 것이 구금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해야할지 알려달라고 물어보더라구요. 중국 전지역의 구금소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저에게 그런 얘기를 들려달라는 거에요! 고민을 한 끝에 결국 구금소에 다양한 단체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긍적적인 효과가 있는 지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했어요. 정부의 요구에 임하는 것에 대해 타협이다라고 비판을 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에요. 제가 그 자리에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자리를 뜰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중국 전지역에서 온 구금 담당자들에게 저와 같은 사람을 만날 기회는 또 오기가 힘들 거에요.

또 한번은 미국 국토안보국에서 저에게 3천 명의 구금자들을 인근 마을에 풀어준다고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정부가 우리의 제안을 받았구나 하면서 마냥 기뻤는데 자세히 듣고 보니 구금자들을 풀어주면서 이들에 대한 구금 대안을 사설 감옥을 운영하는 회사에 넘긴다는 것이었어요!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같이 일하는 단체들 중에서 ‘이건 너희 단체 이름을 팔아서 좋은 일 하는 척만 하는 거니 절대로 협력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3천명의 구금자들이 풀려난다는 것이었고 이들이 어떻게 해서든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고심 끝에 정부에 그렇다면 이미 전문성이 있고 뜻이 있는 자선단체들이 있는데 이런 단체들과 사설 감옥 운영회사가 하청 계약을 맺게 해서 실제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단체들이 이들을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을 했어요. 그렇게해서 정부에게 누가 가장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회사’를 끼고 큰 비용을 지불할 필요 없이 구금 대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과정에서도 저에게 정부의 정책에 협조하는 것 자체로 타협하는 것이라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다시 말하지만 저에겐 3천명이 풀려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에 제가 잘 할 수 있는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해요.

(정프라) IDC에서 발행하는 보고서나 비디오를 보면 다 너무 멋진데요! 이것도 ‘전략’ 의 일환으로 봐도 될까요?

저는 사실 캠페인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에요. 제 단점을 잘 알죠. 하지만 저의 동료들은 정말 다재다능하고 저는 그런 동료들과 일하는 것을 보람으로 느낍니다. 얼마 전에도 어필과 월드비전에서 이번에 제작한 ‘수지 이야기’ 영상을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보았는데 저희 사무실 캠페인 담당자가 저희가 만든 캠페인 영상보다 훨씬 낫다며 칭찬을 했어요! 구금된 아이들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저희도 런던 출신 영화 감독님과 함께 ‘Invisible Picture Show’ 라는 영상을 만든 적이 있는데 구금소에 있는 아이들과 통화를 해서 그 목소리를 활용해서 영상을 만든 것이었죠. (이 영상은 무려 2014년 구글 디지털 미디어상 수상작입니다!)

저희 단체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있어요. NGO에게 있어서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광고, 시장조사 같은 것들이 사실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의 캠페인의 대상이 누가 되어야 하는지 이런 분석에 있어서 정말 기가 막히게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NGO에도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고 이런 분들이 그 일을 정말 잘하는 것을 봅니다. 또 저는 정부 관계자들을 많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일이 전문적이고 세련된 것이라는 느낌을 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이야기를 들어주는 면이 있어요. 그래서 제작이 되는 모든 아웃풋에 통일감이 있는 세련된 디자인을 적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듣고 그대로 활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희 단체가 실제로 엄청 큰 조직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존재감이 큰 단체로 인식을 하게 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저 개인은 미적감각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전문가분들의 조언을 받아 프로패셔널한 단체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저희가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중 하나로 단체의 성과 보고서를 들 수 있는데요 이렇게 우리 단체가 어떤 분야에서 성과를 내었고 또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완전히 외부에서 평가를 받고 있어요. 이런 점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IDC의 업적에 관한 평가보고서가 웹사이트에도 공개되어있네요!)

   손을 겹쳐 날아가는 새를 상징한 IDC 로고 / 사진: IDC Facebook

   (정동재 교수) 구금소와 지원센터가 어떻게 다르죠?

미국, 영국, 호주 같은 영어권 국가는 지원센터가 없어요. 망명 신청자는 스스로 거주를 해결해야 해요. 반면 유럽은 스웨덴에서 그리스까지 전반적으로 지원이 문화적으로 자연스러운 편이에요. 정부가 이들의 상태에 책임을 지고 거주, 의료, 사회적 지원 등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죠. 스웨덴에서의 경험은 저에게 ‘탈시설화’적 접근에 대한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건 다른 게 아니라 사람을 기관에 가두는 게 아니라 풀어준다는 뜻인데, 예전에는 정신이상자부터 해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그냥 가두었던 반면 지원센터는 건물 안에 기관화될 필요가 없고, 공동체 안에 녹아 있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그리스는 요즘 시리아인들이 넘쳐나는데, 지방마다 지원센터를 다르게 운영하는 정책이 있어요. 그래서 창의적이고 상황에 맞아요. 심지어 어떤 섬은 지원센터를 ‘Welcome Village’ 라고 지었어요. 멋진 이름이죠!

(김종철 변호사) 매우 바쁘실 텐데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노트 정리는 방문 이후 곧바로 끝내려고 해요. 사실 이건 전세계 구금소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면서 생긴 저의 버릇 같은건데요, (목격담 1. 2010년 가량 화성보호소 방문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트 정리를 끝내는 것을 목격한 김모 변호사와 목겸담 2. 2015년 난민지원센터 방문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레포트를 끝내는 것을 목격한 김모 인턴의 증언). 제가 가끔 상상하는 것이 구금소 모니터링 앱을 개발하는 거에요. 그래서 아이폰으로 사진도 찍고, 체크리스트에 체크도 하면서 기록을 남기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하지만 어느 구금소에서 제가 아이폰을 키고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는 걸 허락해주겠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머리로 기억하고 있다가 나오자마자 바로 쏟아내는 거죠. 그리고 구금소에서의 기록은 보통 우울하고 무거운 일이 많기 때문에 한번에 쏟아내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한 번은 구금소 방문이 끝나고 기록을 해야하는데 앉아서 적을 곳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구금소 화장실에 들어가 3시간에 걸쳐서 기록을 정리했던 적도 있었어요.

(정프라) 마지막 질문인데요, 일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그리고 행복하신지 궁금합니다.

갑자기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기분이네요! 좀 생각을 해봐야겠는데요 (웃음).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희생 없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카페에서 일을 한다면 편하게 커피만 내리겠지만, 그 때는 또 세계를 여행하는 공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감사해야 하는 것 같아요. 힘은 일 자체에서 받는 편이에요. 어떤 기억들은 강하게 남아요. 예를 들어 호주에서 그 많은 아이들이 풀려나던 날을 저는 절대로 잊을 수 없어요. 얼마전에도 멕시코에서 아이들의 구금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가 되었는데, 너무 기뻐서 아는 사람들에게 다 알렸어요. 이런 변화들을 목격하고 생각하면 힘이 나지 않을 수가 없죠.

저는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각국의 상황을 살피고 있기 때문에 변화에 대해 좀더 잘 알아차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어필에서 일을 하는 것 처럼 한 곳에서 꾸준히 일을 하는 경우에는 변화를 느끼기가 어려워요. 이슈에 너무 몰입되어 있기도 하고 또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우 열정적이고 이상적이기 때문에 생각만큼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답답해하고 소진되는 경우도 많이 봐왔어요. 하지만 저처럼 외부에서 본다면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함께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우리가 일궈낸 크고 작은 변화들에 대해 일일이 나열하고 기억하며 함께 축하를 하려고 해요. 물론 제가 매우 낙천적인 사람인 것도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질문에 대한 답은, 네, 행복합니다! 저는 저의 상황에 대해 감사하고 있고, 또 행복합니다!

매일 찾아 오시는 새로운 손님과 간식 덕분에 소소한 축하와 기념이 끊이지 않는 어필은 이상적인 궤도를 그리며 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모든 NGO들과 인권단체들이 서로 힘이 되어주며 오랜 시간 인내하며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회문제를 다룰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꾸어봅니다!

(10기 김단비 인턴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관련 활동분야

구금된 외국인 관련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