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국제인권법강좌에서 운명처럼 재회한 어필

2014년 10월 4일

9월 30일 저녁, 서울대학교 법대 100주년 기념관으로 ex 인턴 지선(6.5기), 은솔, 근옥, (7기) 유연(7.5기)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일주일마다 한번씩 열리는 국제인권법강좌의 수강생들이었습니다. 이 날은 김종철 변호사가 ‘한국 난민의 법적지위와 실태’에 대해 강연하는 날로, 어필의 옛 인턴들은 이 강연을 손꼽아 기다려 왔는데요. 강연 40분 전부터는 수업 전 오랜만에 김종철 변호사를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은솔과 저(근옥)는 입구에서 목이 빠져라 그를 기다렸습니다. (ㅋㅋㅋ)

1. 강연 (19:00~21:00)

강연은 난민의 이야기를 살펴본 뒤 해당 난민과 연관된 난민의 법적보호와 실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종철 변호사는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난민(미리암, 알리, 이브로, 존, 메립 셍부)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강의를 시작하는 이유를 ‘난민 개인의 이야기를 아는 것이 난민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하며, 외국인 혐오발언이 스스럼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난민 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난민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이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알찬 강의 내용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

첫 번째 난민은 콩고에서 온 미리암(2013 연간보고서 수록)이었습니다. 그녀는 콩고 내 미국 보안업체에서 일하다가 정부에 의해 르완다 스파이로 몰리며, 그녀의 가족은 이 때문에 심각한 신체적 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미리암은 콩고를 탈출하여 한국에서 난민을 신청하고, 8년만에 난민 인정을 받게 됩니다.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2001년 처음으로 난민 한명을 인정한 이후 우리나라에는 누적적으로 약 7000명의 난민 신청자가 있었고 난민으로 인정된 숫자는 약 400명 정도에 불과하므로 미리암은 ‘운이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어떤 난민신청자가 난민 협약에 명시된 난민요건 5가지(1.외국에 있어야 하며, 2.돌아가면 위해를 당할까봐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길 원하지 않아야 하며, 3.두려움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며, 4.위해가 박해-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며, 5.인종/국적/종교/특정사회집단구성원/정치적 사유 중 하나 이상의 이유로 박해를 받아야 한다) 모두에 충족된다면 이는 정부의 인정과 별개로 ‘난민’에 해당되는데, 한국 정부는 이를 인정하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을 보류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미리암의 자녀는 가족 결합 원칙(대상: 난민의 미성년 자녀, 배우자)에 의해 난민으로 인정되었으나, 실제로는 난민의 가족이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으며 이들은 출생등록을 하지 못한 채로 한국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부모 모두 한국인이 아닌 경우 본국 대사관에서 출생등록을 하여야 하지만 난민의 경우 현실적으로 대사관에 출입할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난민신청자 자녀의 경우 최소한의 신분 증명에 필요한 외국인등록증조차 없으며, 이 경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실상의 무국적자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협약국 영토 내 모든 아동들이 출생등록을 하도록 규정하는 유엔아동권리협약(1991년 가입)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입니다. 또한 한국은 이렇게 발생한 무국적자를 보호하기 위해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지 50년이 흘렀지만, 무국적자 보호를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 수강생의 질문을 받는 김종철 변호사

다음은 소말리아에서 온 알리(2012 연간보고서 수록)의 이야기였습니다. 본국에서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유럽에 가려 했던 알리는 브로커가 그를 한국에 놓고 도주하여 인천공항에 덩그러니 남아있게 됩니다. 그는 공항에서 난민을 신청하려 했지만, 2013년 7월 난민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출입국항에서 난민신청접수를 받지 않기 때문에 알리는 공항에서 난민신청접수를 거부당하고 강제송환명령을 받아 송환대기실에 머물게 됩니다. (프랑스 역시 난민신청을 거부한 선례가 있었으며, 이는 유럽인권재판소에 회부되어 출입국항 난민신청거부는 법적 허구라는 판결을 얻어냅니다.) 

난민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난민법 유무와 관계없이 정부가 난민신청절차를 주관하며, 한국은 법무부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난민 심사 – 이의신청 –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난민신청절차는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예를 들어, 이의신청의 경우 대부분이 서면심사이고 2시간동안 100건의 난민을 심사를 하는 등 기계적·형식적)비판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으며, 특히 출입국항 난민신청자의 접수거부처분은 큰 문제가 되어 난민법 제정 당시 접수조항이 신설되었습니다. 하지만 출입국항 난민의 경우 출입국 담당 공무원의 회부 결정이 있어야만 일반 난민 인정 절차로 진입할 수 있으므로, 알리의 경우 난민신청접수가 거부되어 이에 대한 취소소송을 하여야 했습니다. 

이브로의 경우도 알리와 비슷하였는데요. 그는 출입국항에서의 난민신청접수가 거부되어 2달 반동안 송환대기실에 ‘구금’되어있으며 강제송환명령을 받고 본국인 에티오피아로 돌아가야 했지만, 경유지인 태국에서 항공사가 그를 태우지 않아 태국 공항에서 6개월동안 또다시 구금되어있었습니다. 이후 태국 UNHCR이 이브로를 난민으로 인정하여 그는 뉴질랜드에 재정착한 ‘재정착 난민’이 됩니다. 

다음으로 동성애자로 인해 나이지리아에서 살해 위협을 받고 한국에 입국한 존(2012 연간보고서 수록)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존은 한국에 오자마자 난민신청을 하러 출입국 사무소에 가서 갔지만, 소위 사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해 난민신청 접수가 거부되어 결국 미등록외국인으로 숨어지내다 발각,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습니다. 그는 구금된 상태에서 난민신청을 다시 하여 난민 소송 1심에서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존이 대법원에서 승소할때까지 보호소에서 존을 구금시켜놓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습니다. 이에 어필은 헌법소송, 유엔 자의적 구금금지 진정제기, 서명운동 등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존이 풀려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존은 고등법원에서 승소를 하여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난민소송에서 승소했을 때 난민을 보호일시해제하는 제도가 정착되었습니다.

   출입국관리법에는 구금 상한이 없으므로 외국인은 강제퇴거명령 집행이 가능할때까지 무기한으로 구금될 수 있습니다. 또한 외국인은 영장 없이도 출입국사무소장의 행정처분으로 쉽게 구금될 수 있고요. 감옥보다 열악한 외국인보호소에 정당하고 합리적인 사유 없이 장기간 구금된 외국인들은 정신건강이 극도로 나빠지게 됩니다.

김종철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미립 셍부(2014 어필 소개 영상 사례)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난민 중에는 국가에 의해 박해 받은 자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박해 주체가 다국적 기업인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립 셍부는 미얀마 출신으로, 미얀마 안에는 수많은 소수민족이 존재합니다. 미립셍부는 다수족인 버마족이 아닌 기독교를 믿는 카친족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카친 독립군 지도자였습니다. 미얀마가 중국 다국적 기업과 협정을 맺고 카친족 거주지 부근에 광산을 개발하기로 하자 카친족은 이에 반발하였으며 정부는 이에 개발지역의 카친족 부녀자를 강간하며 주민들을 폭행하는 등 심각한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미립셍부씨는 이렇게 위험이 가중되자 수소문 끝에 난민인정절차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난민신청을 하게 되었고, 입국 후 10년만에 난민인정을 받게 됩니다.

김종철 변호사는 난민 일을 하면 할수록 이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돈과 고급인력은 너무도 자유롭게 국경을 오가지만, 비숙련인력들은 필요에 따라 이동할 뿐 다른 나라에 정주하지 못하며 취약한 이들은 결국 smuggling을 통해 외국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난민이슈는 이러한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구요. 또한 김종철 변호사는 난민 이슈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아 다양한 것을 참지 못하는 한국에 살면서 난민 일을 통해 얻은 통찰들이 자문화중심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에 기여할 것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것을 자산으로 여기고, 취약한 사람들을 위한 감수성을 키우자’는 메시지를 끝으로 2시간여의 강연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난민의 이야기에 비추어 난민 실태를 공부하는 획기적인 강의 구성으로 6개월동안 배우고 접했던 난민실태에 대해 한번에 정리하고, 취약한 이주민들을 위한 인권감수성을 다시금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김종철 선생님 감사합니다 짝짝짝!! 😀

   2. 뒷풀이(21:30~)

알찼던 강의를 마치고 김종철 변호사와 수강생들은 뒤풀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국제인권법강좌 수강생인 어필 인턴 대선배 이지선님과 동천의 옛 인턴 김지윤님, 피난처 인턴 손연지님도 함께하여 더욱 풍성했던 뒷풀이! 7기 인턴 윤진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김종철 변호사를 보기 위하여 먼 길을 건너 서울대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변호사님은 정말 복받은 사람입니다. 저를 비롯한 ex인턴들 다수가 이 강좌를 수강하는 이유 8할은 김종철 변호사님의 강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윤진은 김종철 변호사를 마주하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는 와중에 연신 행복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사진 有)

   가벼운 발걸음으로 뒤풀이 장소에 도착한 우리들! 세상의 어떤 막걸리와 전, 해물떡볶이가 이만큼 맛있을 수 있을까요? 맛난 음식과 이야기로 뒤풀이는 시간이 가는줄 모를만큼 즐거웠습니다 🙂 뒤풀이의 주요 키워드는 연애와 사랑..! 연애와 사랑의 보편성과 특수성, 생애사적 관점에 대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콩달콩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답니다ㅎㅎ (자세한 이야기는 비밀★)

    

마지막에는 7기 인턴 윤진, 은솔, 근옥(왼쪽 앞에서부터), 7.5기 인턴 유연(오른쪽 앞)이 김종철 변호사와 함께 뒤풀이의 마지막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인턴들은 공통적으로 바쁜 일상속에서 지난 봄과 여름 어필에서 일했던 시간들이 더욱 그립고, 앞으로 어필의 무궁하고 영원한 발전을 기원한다는 덕담을 하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씐나고 즐거웠던 뒤풀이를 꼽으라 하면 저는 이 날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꿈과 미래를 공유하는 각별한 사이가 된 동료 인턴들, 롤모델 김변호사님과 누룽지막걸리, 알밤막걸리 등등의 막걸리를 쉴새없이 마셨던 행복가득한 자리였답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 싶을 만큼 즐거웠던 뒤풀이는 막차시간이 다 되서야 끝이 났습니다. 함께 했던 인턴들이 모두 모여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앞으로도 어필에서 나누었던 경험들과 추억들은 바쁜 일상에서 메마른 마음을 촉촉히 적셔줄 단비같은 존재로 남을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어필♥

(7기 ex 인턴 이근옥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