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추웠던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지난 1월 26일, 18회 살롱등어필을 위해 많은 분이 어필공간 사이多를 찾아주셨습니다. 새해를 여는 이번 살롱드어필은 ‘제네바에서 제주까지’라는 이름으로 제주다크투어 백가윤 대표님의 지난 10여 년 동안의 국제연대 활동부터 현재 제주에서 진행하는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 [ref] https://blog.naver.com/jejudarktours [/ref] 활동까지 알아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함께하지 못한 분들과 백가윤 대표님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백가윤 대표님은 유엔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며 수많은 아시아 NGO들이 제네바에서 로비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이 경험들이 대표님에게 아시안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유엔과 같은 국제적인 무대에서 한국인, 그리고 아시안으로써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인권 이슈들이 어떤 것들인가? 그러던 와중에 알게 된 포럼아시아(Forum-Asia) [ref] https://www.forum-asia.org/ [/ref]라는 인권단체에서 동아시아 담당으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포럼아시아에서 백가윤 대표님은 아시아 단체들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며 국내 인권 이슈를 지역적 차원으로, 지역적 인권 이슈를 국제적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데 노력하였습니다.
포럼아시아에서 국제연대 활동가로서 백가윤 대표님은 어떤 이슈가 어젠다에 놓였을 때, 인권침해에 대응하는 여러 가지 방법 – 미디어/SNS 활용, 현장 조사, 서명 운동, 보고서 발표, 국회 로비, 대중을 상대로 한 교육, 집회 개최, 예술작품 발표, 국가인권위원회 활용, 아시아 지역 및 국제단체 활용 등– 중 한정된 자원으로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슈의 특성에 따라 어떤 협력단체를 찾아야 하며 누구를 상대로 활동을 이어나가야 할지에 대해 말이죠. 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국제연대 활동가는 여러 나라의 이슈에 대해 넓고 깊은 이해는 물론,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전달할 책임을 가져야했습니다. 그렇지 못하여 사실관계 전달의 실수로 인해 국가의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현장에서 싸우는 모든 활동가의 노력과 피해자들의 고통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 방한,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방한 등을 도우며 쉴 새 없이 활동하였는데, 정작 아시아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지 못한 상황에서 함몰되는 일 속에, 아시아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을 하시게 되셨다고 합니다. 실제로 피해자를 만나지 못한 상황에서 심리적인 부담감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 자신의 이슈로 대변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 말입니다.
국내로 돌아와 연대활동.
현장에서 배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마침 자리가 있던 참여연대에서 국제연대위원회와 평화군축센터 간사로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백가윤 대표님은 활동가들에게 첫사랑 같은 현장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경험하는 수 많은 현장 중 잊지 못할 현장, 백가윤 대표님의 첫사랑은 바로 강정마을이었습니다. 강정마을의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졸속적으로 처리하고 수많은 이들이 연행되어 생긴 절차적 문제점, 연산호 군락지가 파괴된 환경적 문제점, 동북아시아의 전초기지로 쓰일 수 있다는 안보적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이슈에 대해 서명운동, 집회, 국회 앞에서의 기자회견, 유엔청원, 국회 로비, Inter-Island Solidarity for Peace와 같은 다른 지역 단체들과의 연대 활동, 대행진 등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였었고 지금까지도 매년 이어 나가고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강정마을 사건 때는 실제로 활동가들이 강정마을로 주소지를 옮겨 활동가와 주민이 하나 되었던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어떻게 보면 진 싸움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평화 활동가들이 주민으로 남아서 끈질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강정의 힘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활동 중 어떤 방법으로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다룰 수 있을지 백가윤 대표가 고민해야 하였듯이 이외에도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건, 무기박람회 반대 등 다양한 이슈들을 각각 다르게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갔습니다.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야한다는 것은 국제연대 활동가이던, 평화 활동가이던, 법조인이던 어떠한 이슈를 맞대고 있는 분이라면 고민해봐야 할 점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좋은 활동가는 서면작성도 잘하고 페이퍼워크도 잘해야하지만 또 집회에서 싸우기도 잘하는 것이고, 또 좋은 활동가는 집회에서 싸우기도 잘하지만 서면작성도 잘하고 페이퍼워크도 잘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이죠. 이번에는 서울에서 제주도로 떠난 다크투어.
그렇다면 육지를 떠나 백가윤 대표님은 왜 제주로 갔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요? 바로 강정마을 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하며 처음 접하게 되었던 제주 4.3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2017년 2월에 ‘제주다크투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크투어’ [ref]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84617 [/ref]라는 것이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상 아주 익숙한 개념입니다. ‘역사를 알아야 되풀이되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불행한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서 그 역사의 슬픔과 의미를 되새겨 보는 여행을 말합니다. 이처럼, ‘제주다크투어’는 제주 4.3 항쟁과 관련된 학살터, 잃어버린 마을, 비석, 주둔지 등 여러 장소를 둘러보는 여행이죠.
제주 4.3 머우꽈? 3.1 발포사건이 도화선이 된 제주 4.3 사건은 그 전부터 관료들의 부패, 오랫동안 이어졌던 수탈 그리고 미군정의 권력 행세에 대해 들끓고 있던 제주도민의 분노가 폭발하여 맞서 싸웠지만 처참하게 탄압된 사건이었습니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 중 경찰의 발포로 시민 6명이 죽었고, 이에 항의하는 제주도민은 총파업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사과나 조사는커녕, 파업의 책임자를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슬프게도 70년이 지난 오늘, 세월호 참사에 대해 우리나라 시민들은 아직도 책임자 처벌, 진상조사, 재발 방지를 이루어내기 위해 촛불을 들고 활도을 이어나가고 있죠. 그러던 와중에 통일된 한반도를 만들고 싶었던 제주도민은 1948년 5월 10일 예정된 남한 단독선거를 반대하기 위해 1948년 4월 3일에 무장봉기로 들고 일어났습니다. ‘무장봉기’라고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총이 아닌 죽창과 같은 무기였죠. 계속되는 탄압에 경비대와 무장대는 평화협상에 나서지만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무산이 됩니다. 성북청년단에 의해 일어났다고 하는 오라리 방화사건의 책임을 무장대에 돌려 군정은 더욱 가혹하게 제주도민을 탄압하고, 그 결과 무장대와 아무 관련 없는 시민들까지 포함하여 제주도민 3만 명이 무차별하게 살해됩니다. |
제주다크투어의 활동을 통해 좌우익 싸움에 살해된 힘 없는 희생자의 비극을 넘어서 오랜 수탈과 군정의 권력에 맞선 제주도민의 항쟁 정신도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안타깝게도 제주도에서 제주 4.3 사건은 아직도 쉬쉬하기도 하고 트라우마로 남아있지만 백가윤 대표님은 제주다크투어로 제주도민의 자긍심을 키우고자 합니다. 기대되지 않나요?
왜 우리는 연대해야하는가?
인권침해의 문제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섭니다. 70년 전의 제주 4.3 사건은 오늘의 한국의 강정마을과 세월호 참사이기도 하며 미얀마에서 박해받는 무슬림 로힝쟈의 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국가폭력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연대 활동이 필요합니다. 백가윤 대표님은 제주 4.3 사건을 알리며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곧 강정마을을 위해 계속해서 싸우는 것이고 세월호 참사 활동가들에게도 힘을 실어 주는 것이고, 미얀마의 로잉자 이슈 뿐만아니라 아시아 지역적 인권 침해 이슈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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