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영 변호사는 에버트 재단의 주관으로2018. 5. 28 – 6.1. 에 베를린과 제네바에서 진행된 <UNGP의 무역 및 글로벌 공급망에의 적용>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은 크게 두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전반부에는 UNGP 이행을 위하여 독일에서 NAP를 어떻게 만들고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후반부에는 UNGP 를 넘어서는 구속력 있는 조약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UNGP 외에 기업과 인권을 위한 어떤 규범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프로그램에는UNGP의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아시아 지역, 특히 베트남과 한국, 필리핀의 현지 활동가와 각국의 에버트재단 스탭, 그리고 아시아 지역 코디네이터인 싱가폴 에버트재단에서 참가하여 각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했던) 독일 NAP
사실 에버트재단에서 프로그램 참가 초청을 받기 전, KTNC Watch 회의에서는 기업과 인권 NAP에 관한 시민사회 안을 준비하기 위해 독일 NAP에 대한 리뷰를 했었습니다. 2016년 12월에 수립된 독일 NAP는 그동안 (문서 상으로) 살펴본 여러 국가의 NAP 중 가장 모범적으로 과정과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독일 NAP는 인권 점검 및 실사의무 (Due diligence in the field of human rights)가 무엇인지에 대해 범위 및 요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UNGP의 구조에 따라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가의 의무, 기업의 책임, 구제절차와 관련된 독일의 정책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과제들을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독일 NAP에서 인권 점검 및 실사의무의 요소로 명쾌상쾌하게 제시하고 있는 요소들.
타협의 산물(로 평가되는) 독일 NAP
독일 NAP의 수립과정에 대한 소개는 2013년에 발생한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사고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라나플라자 붕괴이후 독일 기업의 해외 공급망 및 해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인권,노동권 침해 등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2014년 외교부의 주도로 6개 부처와 기업측 대표 3인, 시민사회 대표 2인(인권/개발 각각 1인씩)과 노조 대표 1인, 그리고 독일 인권위 2인의 참관으로 운영위원회(Steering Committee)가 구성되었으며, 독일 인권위는 독일의 기업과 인권 상황에 대하여 기초평가(National Baseline Assessment)를 한 후, NAP 수립 과정에 대한 제안을 하였으며, 이를 반영하여 이후 전문가 공청회와 총 3회에 걸친 이해관계자 컨퍼런스를 통해 2016년 12월 독일 NAP가 발표되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모든 문서는 NAP 총괄을 맡고 있는 독일 외교부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가 되었습니다.
베를린에서 진행된 프로그램 전반부에서는 이러한 과정에 실제로 참여하였던 이해관계자들을 두루두루 만날 수 있었는데요, 에버트재단 기업과 인권 담당관을 비롯하여 KTNC Watch와 같이 외국에서 독일기업이 인권침해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감시를 하는 시민사회 연대체인German Watch 담당자, 독일 인권위원회와 NAP총괄 역할을 맡고 있는 독일 외교부의 담당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독일 NAP가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하고 있었으며, 이행을 담보할 수 없는 장치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시민단체에서는 이행을 하지 않는 기업들에게는 공적수출신용을 제한하거나 공공조달 입찰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등의 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도입되지 못하였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었습니다.
50-500-2020 compromise
방문 당시에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것은 NAP 이행에 대한 설문조사(survey)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독일 NAP가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는 없지만 이행 여부에 대해서 체크하기 위하여 도입한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5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독일 기업 중 50% 이상의 기업이 앞서 제시된 인권 점검 및 실사의무의 요소들을 기업의 운영에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고, 이 설문조사가 2018년도부터 실시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설문조사의 결과, 2020년 까지 50% 이상의 기업이 인권 점검 및 실사의무에 대해 이행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가 되는 경우 정부가 기업과 인권을 위한 구속력이 있는 법안 제정을 제정할 수 있다는 것이 NAP에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설문조사가 어떤 내용으로 누구에 의해 실시가 될 지에 대해 큰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이지만, 근본적으로 설문조사를 통하여 질적 조사가 어렵고, 5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6300여개 기업들에게 답변을 강제할 수 있는 기제가 없기 때문에 얼마나 유의미한 답변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불확실한 상황으로 시민사회와 노조에서는 설문조사의 결과에 대해 이미(!)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법안 제정을 위한 준비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 인권위에서 발행한 기업과 인권 관련 책자들. 독일 인권위에서는 기업에게 “Human Rights Due Diligence is Doable (인권 실사점검 및 실천은 할만하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교육을 하고 있으며, 정부에게는 구속력 있는 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손에 손잡고, 서로 지켜보며 하는 이행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NAP는 인권위의 기초평가(National Baseline Assessment)로부터 시작하여 이해관계자들을 두루 포함한 운영위원회의 설립을 비롯하여 구체적인 모니터링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여러모로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기업과 인권이라는 방대한 이슈에 대해 정부에서 일관성 있게 정책을 시행할 수 있도록 부처간 위원회 (Interministerial Committee)를 구성하였다는 점도 인상이 깊었습니다. 부처간 위원회에는 외교부에 새롭게 설치된 기업과 인권 부서의 총괄 하에 노동부, 법무부, 경제협력 및 원조부, 환경부, 경제부가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수립 과정부터 이행 단계인 지금까지 격월로 만나서 NAP 이행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한편, NAP 수립과정에 만들어진 운영위원회는 기존에 노동부 산하에 있던 CSR Forum과 병합이 되어 정부 산하의 실무그룹(Working Group)이 되었는데, 실무그룹 또한 격월로 만나서 부처간 위원회의 이행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권고를 모아 부처간 위원회에 전달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간 위원회의 회의에는 실무그룹 회의를 주재하는 독일 인권위에서 참가하여 논의사항 공유 및 의견 전달을 하고, 실무그룹 회의에는 부처간 위원회를 총괄하는 외교부 담당부서 대표가 참석을 해서 의견을 교환하며 NAP를 이행, 점검하고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일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CSR 사이트에서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페이지가 마련되어 있으며, 그곳에 기업과 인권 NAP의 이행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게시되어 있습니다. 독일 노동부에서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는데, (조회수 만으로는 크게 영향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NAP 이행에 관한 동영상도 제작하여 유포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지속가능성 담보는 외교부에서
사실 NAP 수립 논의 과정 중 NAP 총괄 부서를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동부에서는 기존에 CSR Forum이라는 정부와 노사간의 대화를 위한 포럼을
주관하고 있었고, 노동권을 이미 다루고 있는 부서가 노동부이기 때문에 노조와 시민사회에서는 노동부가 NAP를 총괄하기를 원하였지만, 기업 측에서는 이를 부담스러워하고 OECD 가이드라인의 홍보를 맡고 있다는 이유로 경제부에서 총괄을 하도록 제안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입장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결국에는 인권에 대하여 어느정도 이해가 있는 외교부에서 담당을 하기로 하였고, NAP가 수립된 이후 외교부 내에 기업과 인권 부서가 별도로 신설되어 현재 7명이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외교부가 NAP의 총괄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노동부처럼 노동감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도 않고, 기업에게 시정명령을 내릴 권한도 없는 기관이기 때문에 이행을 감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 담당자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원래 이행은 당사자가 하는것이라’고 하는 쿨한 답과 함께 UNGP 는 세계화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좋은 프레임워크이기 때문에 외교부야말로 이를 활용하기에 적합한 부처로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외교부에서는 NAP의 모니터링과 부처간 위원회를 주재하는 것 외에도 헬프 데스크를 설치해서 기업들이 NAP를 이해하고 이행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국가정황정보 및 인권 위험요소 등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각국의 대사관과 상공회의소 등을 활용하여 기업과 인권 지원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다는 계획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업과 인권팀을 이끌고 있는 Ms. Plank는 미팅 후에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외교부 건물 구석구석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습니다. 어찌나 친절하고 상세하게 안내해주시는지 미팅 시간보다 건물 구경한 시간이 더 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베를린의 명물 TV 송신탑도 잘 볼 수 있는 옥상에서 베를린 인증샷을 찍어봤습니다..
깨진 상상력을 일깨워준 베를린
사실 베를린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며 독일 NAP 수립 과정과 이행 과정 중에서 논의가 되고 있는 내용들을 듣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회용품과 에어컨이 없는 회의실이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면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에어컨 없이 회의를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베를린에서는 이런 회의를 체험하고 나니 새삼 대안을 향한 저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베를린은 그 두텁고 높던 장벽을 무너뜨린 도시인데, 철조망을 헐 수 있을지 않을까는 이야기가 시작된 한반도에서도 기업과 인권에 대한 보다 나은 상상력으로 NAP가 만들어지고 관련된 제도가 정비될 수 있도록 배운 것들을 잘 익히고 상상하며 일해야겠다 다짐하며 베를린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미팅 때마다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놓여있던 유리컵, 찻잔, 유리병과 병따개 그리고 뜨거운 물이 담긴 포트를 보며 홀로 감탄을…물론 설겆이는 누가하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정신영 변호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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