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어필에서는 <충돌: 아랍의 봄, 그 이후> 영화 관람과 함께 이집트 국가정황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2013년 군사쿠데타로 무함마드 무르시(전 대통령)가 축출된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무슬림형제단과 군부의 대립 양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무슬림형제단원 또는 무함마드 무르시 지지자들이 군부에 의해 받고 있는 박해 장면이 잘 담아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다소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이집트 난민인정자분의 영화에 대한 감상평과 본인이 직접 겪었던 생생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일 참석하시지 못한 분들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영화 상영 전에 발표했던 이집트 국가정황에 대해 다시 한번 간략히 소개하고, 이집트 난민인정자분의 경험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첨부하오니 필요하신 분은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2011년 2월,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간의 독재정치가 드디어 막을 내립니다. 퇴진 배경에는 이집트 경제의 장기불황, 불평등, 경찰의 횡포, 시민권 및 정치권 박탈, 그리고 오랜 독재정치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2011년 1월 25일에 있었던 ‘1월 25일 혁명’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독재정치 30년간 잠잠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1월 25일에 대규모 혁명이 발발하게 된 것일까요? 여기서 잠깐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2010년 12월, 튀니지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대학 졸업 후 일자리가 없어 채소행상을 하게 되는데, 경찰의 노점 단속으로 청과물과 수레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에 분노와 무력감을 느낀 청년은 분신자살을 시도하게 됩니다. 튀니지 역시 23년간 벤알리 대통령의 장기집권 하에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 2010년 12월 18일 튀니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2011년 1월 14일, 벤 알리 독재정권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 같은 혁명 성공소식은 SNS를 통해 이집트를 포함한 인근 국가들로 널리 확산됩니다. 민주주의를 열망해오던 대부분의 이집트 국민들은 생각합니다. “튀니지도 독재자를 물러나게 했는데, 이집트도 시위를 통해 독재자를 무너뜨릴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에 시위 장소 및 시간을 공지하고, 전단지를 배포하였습니다. 그리고 2011년 1월 25일 이집트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혁명이 발발합니다.
2011년 1월 25일 혁명에는 대부분의 이집트 국민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시위 과정은 매우 잔인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군부 및 경찰은 최루가스, 고무탄 등을 사용해 시위자들을 무력으로 진압하였습니다. 또한 인권옹호자, 온라인 활동가, 기자, 시위자, 물품보급 활동가, 부상자를 치료하는 사람들이 대규모 체포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많은 희생자가 나왔지만 시위 18일째 되던 2011년 2월 11일, 드디어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퇴진시킵니다.
그리고 2012년 6월, 무함마드 무르시가 첫 민선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무함마드 무르시는 무슬림형제단(MB, Muslim Brotherhood 이하 MB라고 칭한다)원이자 자유정의당(FJP, Freedom and Justice Party 이하 FJP라고 칭한다) 대표인데, 현재 압둘 파타 엘시시 대통령의 주요 박해 대상이 되는 단체이자 정당이어서 잠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무슬림형제단(MB)은 1928년 하산 알-반나 이슬람학자가 설립을 하였으며, 순니파 이슬람주의이자 보수주의 단체입니다. 후에 MB 구성원들이 몇몇의 정당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 중 하나가 바로 자유정의당(FJP)입니다. MB는 2013년 12월 테러단체로 선언되면서 자산이 몰수되고, MB 지도자를 비롯해 지지자 수 천 명이 구금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엘시시 정권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한편, 자유정의당(FJP)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MB가 2011년 2월 21일자에 FJP 설립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어 2011년 4월 30일, FJP가 설립되고 당대표로는 무함마드 무르시가 임명됩니다. 하지만, 2013년 12월 MB가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선언되면서 2014년 8월 FJP도 금지 및 해체됩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점은 MB 구성원이 항상 FJP 구성원인 것은 아닙니다. MB 구성원이면서도 FJP 구성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MB와 FJP는 독립적인 단체이자 정당이기는 하지만 MB가 FJP를 설립한 것이기에 관계가 매우 깊습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무함마드 무르시에 대해 이어 설명하겠습니다. 2012년 6월에 당선된 무함마드 무르시는 8월 12일, 압둘 파타 엘시시를 국방부 장관 및 군총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2013년 7월 3일, 엘시시는 쿠데타를 주도해 무함마드 무르시를 권좌에서 몰아냅니다.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무함마드 무르시의 축출에는 다양한 배경이 있습니다. 첫째, 국민들의 생활고가 심했고, 반무르시 성향의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둘째, 무르시는 엘시시를 지나치게 신뢰했습니다. 셋째, 2012년 11월 22일, 무르시가 헌법선언문(constitutional declaration)을 제정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검찰을 임명할 권한을 갖게 하고, 새 인민회의를 선출하기 전까지 모든 대통령의 결정은 최종적이고 반박불가하다’. 이에 이집트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시위가 발생하여 총선 이전에 선언문은 폐기됩니다. 넷째, 무르시는 IMF 대출 대가로 보조금을 삭감하게 되면서 가스, 전력, 음식, 세금 등의 가격이 인상됩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2013년 6월 30일,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임기 1주년이 되던 날, 무르시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어 7월 3일 엘시시가 쿠데타로 무르시를 축출합니다.
무함마드 무르시가 축출되고, 2013년 8월 14일, 라바아 알아다위야 광장에서 군사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합니다. 시위 진압 및 해산 과정은 참혹했습니다. 경찰은 최루탄, 고무탄, 실탄, 불도저, 장갑차 등을 사용하였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사망자를 최소 817명으로 추산하였으며, “최근 역사상 가장 큰 1일 시위자 학살이다”고 전했습니다.
2014년 6월 압둘 파타 엘시시는 대통령이 되어 2018년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습니다. 엘시시는 군사쿠데타에 반대하는 세력 및 무르시 지지자들, 그리고 MB 구성원들에 대한 탄압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엘시시는 “내가 대통령일때는 무슬림형제단 같은 것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제 그것은 마지막이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주로 압둘 파타 엘시시 현 정부, 경찰, 보안군 등이 박해의 주체이며,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MB, 시위자, 기자, 여성, 종교적소수자(콥틱교 기독교인, 시아파 무슬림, 바하이교), 성소수자, 난민, 이주자 등이 박해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박해 대상과 관련해, 한국 뉴스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선, 여성들은 시위 현장에서 인권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례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군부가 강제적으로 시위자들을 철수할 당시, 군사 감옥에 끌려갔던 여성들이 고문의 일종인 ‘처녀성 테스트’를 받았으며, ‘처녀가 아닌 것’으로 간주될 경우 성매매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종교적 소수자들 중 특히 콥틱교 기독교인의 경우, 이들에 대한 공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일전에는 27명의 목숨을 앗아간 교회 폭발 공격도 있었습니다. 성소수자의 경우, 성적지향성 및 성정체성에 근거한 1961년 10번 법에 의거해 ‘방탕(또는 풍기문란)’혐의로 체포, 구금, 재판 받게 됩니다. 난민 또는 이주자의 경우, 보안군은 이집트를 입출국하려는 난민, 난민신청자,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고 체포합니다. 일례로, 팔레스타인 및 시리아인들을 강제 송환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해의 종류로는 표현 및 결사의 자유억압, 임의적인 체포 및 구금, 강제실종, 고문 및 학대, 과도한 무력 사용, 불공정한 재판, 사형 등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집트 난민 신청인분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사례1. SNS(페이스북 또는 트위터)에 정부에 반대되는 성향의 글을 게시할 경우,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되고 체포됩니다. 이러한 글 또는 기사는 대부분 국가에 의해 삭제되며, 관련 사이트 역시 폐쇄됩니다.
사례2. 집, 거리 등 장소를 불문하고 체포영장 없이 체포, 구금됩니다. 무혐의 또는 거짓혐의가 씌워지며, 궐석재판으로 구금되며, 미결 구금기한이 2년인데도 불구하고 2년을 초과하여 구금됩니다. 그리고 수배자가 부재할 경우, 가족을 체포합니다. 그리고 수감 중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합니다.
사례3. 시위법(2013년 107번 법) 제12조에 의거하여 참가자들이 시위 현장을 떠나는 것을 거부할 경우, 보안부대는 물 대포, 경찰봉, 최루탄을 이용해 시위자들을 해산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해산 과정에서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합니다.
사례4. 미야다 아슈라프라는 여기자가 시위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경찰이 살해했다는 진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위자들에게 살해혐의를 씌었습니다. 이처럼 이집트 전역에 걸친 법원은 종종 날조된 혐의로 수 백 명의 MB 및 반대 활동가들에게 징역형 또는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이상 이집트 국가정황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집트 난민인정자분의 영화에 대한 감상평과 직접 겪었던 경험에 대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요약해보았습니다.
“사실 <충돌: 아랍의 봄, 그 이후> 영화는 단지 영화일 뿐입니다. 실상은 더욱 복잡합니다. 저 역시 영화에서처럼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차량에서 18시간 이상을 갇혀있던 적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차량 안에 무슬림형제단 지지자와 군부 지지자 사이의 대립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실상은 더 다양한 구성원들이 대립구도에 있습니다. 지금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마 한국의 광주민주화항쟁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집트는 1월 25일 혁명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찾는 듯 했지만, 여전히 정부와 군부의 힘은 막강합니다.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체포되고 있으며, 고문으로 인해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집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렇게 이집트 상황에 관심을 갖고 이렇게 귀중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익법센터어필 통역연구원 정수지)
*첨부파일: 공익법센터어필(이집트 COI 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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