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 10층 교육실 배움터에서는 “기본권으로서의 농민권리 : 실행과 연대를 위한 방안”이란 이름으로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이 주최한 제2차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2018년 12월 UN제 55차 본회의에서 의결 ・ 통과된 「유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UN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peasants and other people living in rural areas, 이하 「농민권리선언」)이 한국 사회에서 실효적인 권리로 구성되고 실현되게 할 방법을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나아가 한국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한상희 교수님이 발제를 해주셨고,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송원규 부소장님, (사)농어업정책포럼 먹거리유통분과 백혜숙 위원장, 강원도 홍천에서 오신 현윤정 농민, 마지막으로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의 대표이시자 건국대학교 교수님이신 윤병선 교수님이 토론에 참여해 주셨습니다.이 자리에 공익법센터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와 김종철 변호사가 함께했습니다.
토론회 후기에 앞서 「농민권리선언」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농민권리선언」은 2018년 11월 19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찬성 119표(반대 7표, 기권 49표)로 가결한 것을 2019년 12월 17일 유엔 제55차 본회의에서 최종 승인함으로써 그 규범적 효력을 획득한 28개 조문입니다.
해당 28개 조문은 전 세계적으로 농촌과 농민이 겪고 있는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파괴 및 부담, 인권 침해, 빈곤과 기아, 분배의 불균형 등을 인정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농민이 인류 발전과 생물 다양성 보존과 개선, 적절한 먹거리와 먹거리 보장에 대한 권리를 확립하는데 기여한 바를 인정하며 28개 조항, 100개가 넘는 세부 조항들을 선언했습니다. 선언문 본문과 한글 번역본은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원본 및 번역본 다운로드 링크
대한민국은 2013년부터 진행된 세 차례의 표결에서 당사자인 농민들과 제대로 된 협의 없이 국내법 일부 조항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 – 기권 – 기권’의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한국 정부가 인권이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개발과 생산성이라는 명분으로 목소리를 빼앗긴 농민들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상희 교수님은 이렇게 대표되지 못한 ‘우리’가 있기에 「농민권리선언」이 더욱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며 발제를 시작했습니다.
한상희 교수님은 농업 문제와 농민의 권리를 헌법화하기 위해 농업을 단순히 경제정책의 하위 개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국민 농업”의 체제를 구성하거나 농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를 위해 한상희 교수님은 다른 국가에서 헌법에 농업과 관련된 내용을 어떻게 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예시를 보여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헌법에 농민권리선언을 어떻게 다룰 수 있고 그 필요성은 무엇인지 분석했습니다. 특히 대한한국 헌법을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지만 아무것이나 포함하지는 않는 ‘대강주의’라고 표현하며 그렇기 때문에 시민 사회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권리 선언과 그에 따른 헌법 규정 논의가 단순히 농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며 발제를 끝맺으셨습니다.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는 우선 송원규 녀름 부소장님이 「농민권리선언」 이후 이를 실천하고 이행하기 위한 국제적인 동향을 정리하며 한국에서 역시나 이를 실천할 구체적 방안을 고민해 주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도 가장 강하게 주장하셨던 내용은 개별적이고 분산적으로 이루어지던 농민 운동의 요구를 어떻게 담아내는가? 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모을 수 있는 운동의 필요성을 말하며, 중요한 것은 획일적인 운동을 하자는 것이 아닌 통합적 대안운동의 방향성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백혜숙 (사)농어업정책포럼 먹거리유통분과 위원장님은 먹거리 소비자에게 있어 「농민권리선언」은 농민 권리가 보장되어야 먹거리기본권을 누릴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먹거리체계를 위해 생산자와 먹거리 소비자가 연대해야 하고 사람, 물자, 정보의 순환과 균형을 이루는 지역 상생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생산자의 언어와 도시 소비자의 언어가 다른 것을 언급하며, 둘 사이의 교각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시 농부”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울 등 도시 시민들의 지역 활동을 지원할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서울 활동도 지원해 궁극적으로 상호 교류 활동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도시 사람들이 생산물의 가격 책정 방식을 모른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레몬 마켓(Lemon Market)처럼 소비자는 농산물의 정보를 알지 못하고, 생산자만 해당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최선의 선택지를 찾는 것이 아닌 차악의 선택지를 찾게 되면서 질 좋은 농산물이 자리를 잡기 어렵게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로 저 또한 농산물의 원가와 정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농수산물을 고를 때 외관상 문제가 없다면 무조건 저렴한 것을 골랐습니다. 따라서 공영 도매시장 혹은 앞서 언급한 도시 농부들의 활동으로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말을 끝맺었습니다.
토론회 참가자들과 함께
다음으로 가장 인기가 있었던 토론인 현윤정 강원도 홍천 농민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귀농했지만 완벽히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은 현윤정 농민 분은 청년들의 선호 직종에 스님보다 아래 농민이 있었다고 말하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현윤정 농민은 사회적으로 농촌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해 농촌의 삶이 망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농산물 제값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더욱 열린 마음을 갖고,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아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젊은 세대와 함께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기성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듯, 그 반대의 노력도 필요하며 청년들이 농촌을 찾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현윤정 농민은 발표를 끝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의 윤병선 대표님은 역사에서 농업이 끊긴 적이 없는데 새삼스럽게 농민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발생했던 곡물 가격 급등은 45% 정도가 투기자본의 농간에 의한 것이었음이 밝혀져 이러한 주장을 더욱더 강하게 만듭니다. 이후 여러 국가가 해외자원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토지강탈을 했습니다. 팜유 플랜테이션도 이러한 흐름의 일종으로 농민 문제가 다른 환경 파괴와 인권 유린에까지 이어져 영향을 준 것으로 보면 농민 문제는 단순히 농민 만의 문제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나가며
「농민권리선언」이 등장한 이유는 단순히 농업의 후퇴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 또한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사회가 저지른 실수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대부분 사회에는 ‘시간제 노동’이라는 것이 주요한 노동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소수의 노동 방식 중 하나로 많은 노동자는 주문이 들어오면 일을 하거나, 농업과 같이 시간을 계산할 수 없는 방식의 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시간제 노동’이 노동의 오래된 개념처럼 바뀌었습니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에도 근로를 (정의 자체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하고 있지만) 시간이라는 기준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개념이 이렇게 확립된 순간, 시간으로 계산될 수 없는 수많은 노동이 소위 ‘자본주의로 얻을 수 있는 경제이익’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여기에는 장애인 노동, 청년 노동, 가사 노동을 포함해 농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에는 시간을 바탕으로 하는 월급의 개념이 없고, 강제로 시간의 개념으로 끌어와 월급을 주려고 한다면 다른 노동에 비해서 생산성이 낮아 보입니다. 가사 노동을 어떻게 시간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요? 자다가 아기의 울음소리로 깬 시간은 마치 출근 시간표를 적듯이 적어야 할까요? 농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봄과 가을에 더 열심히 일했다면 돈을 더 받아야 할까요? 두세 가지 작물을 재배했다면 월급도 두세 배가 되어야 할까요? 노동을 정의하기 위해서 지워진 농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이제야 표현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래서 자본주의, 시간제 노동이 틀렸고 악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시간제 노동이란 작위적인 개념을 마치 자연적인 것으로 소유하는 사회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포럼에 참석해 「농민권리선언」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강요된 보편성에 대한 일갈이라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농민은 물론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세울 필요를 느꼈습니다. 하나 아쉬웠던 부분은 농민분들이 직접 읽고 이해하기에 어려운 법률적 표현과 용어들이 많았기 때문에, 참여한 농민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안이 따로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성자 공익법센터 어필 17기 인턴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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