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12회 살롱드어필 : 지구인의정류장 김이찬감독님의 이주노동자 이야기

2015년 10월 3일

추석을 앞둔 금요일, 살롱드어필에는 이주노동자들을 ‘표현의 열차’에 오르도록 돕는 지구인의정류장 역무원 김이찬 감독님이 와 주셨습니다! 이주노동자, 특히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주로 해 주신 두 시간이 20분처럼 빠르게 흘러갔는데요, 후기를 통해 그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구인의 정류장은, 2009년 설립되어 세계화와 이주라는 지구 보편적 현상 속에서 다른 배경을 가진 문화권 사람들간의 상호이해와 유대강화요인을 탐색하는 탐사 다큐멘터리 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이주민의 생활과 결합된 미디어 활동을 지원하고, 미디어 창작활동과 인권교육, 노동권관련 인권상담활동을 하며, 이주노동자들의 거점쉼터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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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이찬감독님을 온몸으로 소개하고 있는 정신영변호사 “살롱드어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삶이 있다는것, 생각 해 보셨나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같지만 저는 이주노동자들을 ‘이주노동자 집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제 자신을 퍼뜩 깨닫고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젊은 청년들이 농업노동자로 취업해 입국합니다. (주로 고용허가제 E-9비자) 짧으면 3년 길면 5년에 가까운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는 이들. 어쩌면 저도 이들의 3~5년을 ‘일하고 돈 버는 시간’으로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청춘의 5년이 결코 숨쉬고 일만하는 시간이 아닌데도요. 청춘을 이루는 것들에 일 외의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서도요.

그런데 우리나라 이주노동자, 특히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정말 숨쉬며 일만하다 이 5년을 보낸다는 것, 그리고 이들을 고용하는 그 누구도 이들에게도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는것. 이것이 김이찬 감독님이 전해주신 이야기였습니다.

· 농업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삶을 잃어버리고 있나?

1) 우리나라에 하루 12시간, 월 336시간의 근로계약서도 존재한다니.

근로기준법 63조는 ‘근로시간,휴일,휴게시간’에 관한 적용이 제외되는 사업을 정해두었는데, 그 1호는 ‘토지의 경작,개간,식물의 재식,재배,채취 사업, 그 밖의 농립 사업’입니다[ref]근로기준법 제63조(적용의 제외) 이 장과 제5장에서 정한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1. 토지의 경작.개간, 식물의 재식.재배.채취 사업, 그 밖의 농림 사업. 2. 동물의 사육, 수산 동식물의 채포(採捕).양식 사업, 그 밖의 축산, 양잠, 수산 사업. 3. 감시(監視) 또는 단속적(斷續的)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자로서 사용자가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자. 4.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ref].

▶일 12시간, 월 336시간, 격주토요일의 휴무, 월 통상임금은 100만원 남짓.

농업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 월 336시간이나 일할 수 있는 이유지요. 이렇게 강도가 높다 못해 죽을 것 같은 노동으로 인해 사업장을 뛰쳐나와도, 사업주가 ‘이탈신고’를 하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건 한 순간입니다. 계약자체가 불법이나 마찬가지인데도, 구제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노동시간으로 인해, 농업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살고 있음에도 한국사회와 접촉점을 찾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공간만 한국일 뿐입니다. 아, 허망하다.  2015년 현재에도, 3년간 휴일이 하루도 없었다거나 1년동안 젊은 한국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거나, 2년간 전철을 타 본 적이 없다거나, 교통카드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모른다거나,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사장이 가지고 주지 않아서 밖에 나갈 수 없었다거나, 3만마리의 돼지가 자라는 사육장에 일하다 구제역으로 외출이 금지된다거나, 결혼일자를 잡아서 1주일 휴가를 요청하자 사장이 허위이탈신고를 하여 불법체류자가 되었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2)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농업노동자들의 숙소는 보통 밭에 부속된 검은 비닐하우스. 이곳은 생필품을 구매하는 장소로부터도 멀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외출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시내와 먼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이런 비닐하우스에 살면서 숙소 시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높은 월세를 임금에서 공제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화장실이 없거나, 연탄불을 때거나, 겨울에는 물이 얼어 샤워를 할 수 없고, 비닐하우스이기에 샤워를 할 때에도 문이 열리기도 합니다. 화장실이 비닐하우스의 맨 안쪽에 있고, 화장실 앞에 여성노동자 방, 그리고 그 앞에 남성 노동자 방이 있어 안전하고 안정적인 공간이 전혀 아닌 숙소에서, 많은 청년들이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어찌나 자기 가족처럼 편하게 생각해주는지, 노크도 없이 기척도 없이 아무때나 문을 열어제끼는 사장님들도 많이 계시지요.

* 언론에 보도된 이주노동자들의 기막힌 숙소

– KBS뉴스, 외국인노동자는 왜 컨테이너를 뛰쳐나왔나?

http://news.kbs.co.kr/news/view.do?ref=A&ncd=3084022

– 경기일보, ‘불나면 속수무책’ 주거용 비닐하우스.컨테이너-위험한 겨울나기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877166

 3) 더 이상 일할 수 없는데, 다른 사업장으로 갈 수도 없어요.  고용허가제법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특정 외국인이 특정 사업주와 계약하고 입국하는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예외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경우에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사유에 해당하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노동자가 이직할 수 없게 하는 것, 그리고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사유가 굉장히 협소하여 이주노동자들이 실제 사업장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포함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에 대해 2012년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고용허가제 재개정을 권고한 바 있고,2015년에는 더 구체적으로 재개정을 권고했습니다[ref]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짚어봤던 ‘이주노동자 노동권향상을 위한 세미나’후기http://apil.tistory.com/1804[/ref].

정당한 이유가 있다하더라도, 타국에서, 그것도 타국의 사법체계안에서 사장님을 상대로 무언가를 주장해야하는 건 이주노동자들에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참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4) 내 사장님이 아닌 사람의 일을 돕고 있어요.

많은 노동자들의 계약서는 같은 사업장임에도(일하는 장소는 같음에도) 사장이 다르거나(장소가 분할되어 여러 사람에게 속해 있다거나), 주소가 불명확하고, 가족과 이웃들간에 노동자를 마구 돌려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그 작업장을 떠나면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인신매매형 근로를 강요받고 있더라도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 또한 허다합니다.

▶ 멋진 역무원, 김이찬 감독님의 훈훈한 미소

· 이주노동자들을 표현의 열차로 안내하는 지구인의 정류장!

지구인의 정류장은 고충을 넘어서 고통을 겪는 이주민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김이찬 감독님은 이주민들이 핸드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자신의 삶을 드러낼 수 있도록 안내하고 교육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당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이 담긴 사진, 영상,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그린 그림은 열마디 말보다 더 그들의 삶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지구인의 정류장 노동상담에서 쓰이는 그림의 예. 그림이 이렇게나 좋은 표현의 도구였다니!

“현실을 좀 더 영향력있게 알리고 싶은 제작자의 마음이 있지만, 지금은 1차적으로 현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목소리를 기록하기에도 바쁜 상황”이라는 감독님의 말은,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비슷한 일로 비슷한 아픔을 겪고 살아가고 있을지 짐작하게 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땅에서 주체가 되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속에 있습니다.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환경을 개선해가기에는, 3년에서 5년간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미래를 위한 시간은 사치로 여겨질 정도니까요.

우리나라 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이 땅에서 내일을 꿈 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구인의 정류장을 지키는 김이찬 감독님을 보며 그런 날도 오겠지, 기대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10기 이슬 연구원 작성

*이 글은 2015.09.25 살롱드어필 강의내용과 배부자료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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