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차 유엔 인권이사회 참석기 2 – 세상에서 가장 짧은 2분

2015년 6월 26일

6월 16일, 정신영 변호사는 드디어 오전 9시부터 열리도록 되어 있는 인권이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의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영 변호사는 회의가 시간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시간표에는 초국적기업에 관한 실무그룹과 인신매매 특보의 공동 상호대화 시간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전 날 의제인 이주 특보와 소수이슈 특보의 공동 상호대화에 대한 국가들의 발언이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전 날 회의가 길어지게 되어 논의가 계속되는 것이었는데요, 결국 예정 시간이 2시간이 지난, 11시가 넘어서야 초국적기업과 인권에 관한 실무그룹 및 인신매매 특보와의 공동 상호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국적기업과 인권에 관한 실무그룹 마이클 아도 의장의 발제

△초국적기업과 인권에 관한 실무그룹 멤버들 (출처: OHCHR 홈페이지)

 세션 담당자들은 사전에 관련 문서들을 인권이사회의 웹사이트에 올려놓습니다. 아도 의장이 이번 세션을 대비하여 메인 레포트와 함께 2014년 8월에 이루어진 아제르바이잔 방문에 대한 보고서와 2014년 9월에 열린 기업과 인권 아프리카 지역 포럼에 대한 보고서, 그리고 매해 12월에 열리는 기업과 인권 연례 포럼에 대한 실무적인 경험을 반영한 보고서를 제출한 상태였습니다. 

메인 보고서는 지속가능한 개발 의제에 있어서 기업과 인권 이슈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지에 대한 논의였는데요, 포스트 2015 프레임워크 내에서 기업들이 개발 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의가 되고 있지만, 기업 활동에 의해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목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개발 영역에서 기업의 역할이 증가된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조치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인권이사회에서 이미 2011년에 승인한 ‘이행 지침 (UNGP, UN Guiding Principle)’은 이러한 조치를 위해 필요한 기반이 될 수 있으며, 유엔 전체 차원에서도 이행 지침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어서 아도 의장은 최근에 열린 G7 정상회담에서도 공급망에서의 인권 실사 의무에 대해서 강조가 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며, 이행지침이 이러한 노력에 있어서 기반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행지침이 이미 기업의 보고 및 글로벌 거버넌스의 확립 과정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제 투자와 관련해서도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실무그룹이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한편, WTO 등 무역 협정의 영역에서 인권에 대한 고려를 어떻게 반영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각국의 GDP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공조달 부분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세계은행 등 국제적인 금융기관이 개발에 대한 투자를 할 때 국제인권기준을 고려하여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였습니다. 

유엔의 실무그룹이 기업의 활동이 인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부분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이행지침이 보다 현실적이고 효율적으로 시행이 될 수 있도록 특히 포스트 2015 지속가능한 개발 과정에서 역할을 다할 것을 강조를 하며 발제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여성과 아동에 관한 인신매매 특보 마리아 그라지아 지아마리나로의 발제

  △인신매매 특보 (출처: http://www.osce.org)

2014년 7월부터 임기가 시작된 마리아 특보는 인신매매 특보로서 처음으로 참석하는 인권이사회라고 하며, 앞으로의 특별절차에 있어서 어떠한 점에 중점을 두고 진행을 할 것인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하였는데요, 최근 지중해와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비극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신매매에 분쟁, 분쟁 후 상황, 인도적 위기 상황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신매매와 이주, 분쟁, 분쟁 후 인도적 위기 상황과의 연관성에 대해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리아 특보는 인신매매가 분쟁과 인도적 위기 상황의 부산물 혹은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분쟁과 인도적 위기상황 자체의 한 요소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지적을 하며, 인신매매라는 개념은 우산 개념이며, 여기서 가장 핵심 요소는 ‘착취’의 요소이기에 이동 과정이나 도착지에서 발생하는 착취의 원인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한편, 복잡한 이주의 흐름과 인신매매의 연관성에 대해 지적하면서 최근 각 국에서 이주자들의 유입을 제한하면서, 비정규 이주자에 대한 처벌을 하는 정책은 결국 노동시장에 정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제한하기 때문에 착취의 위험을 높이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복잡한 이주와 인신매매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가령 비정규 이주민들을 처벌하거나 구금하고, 난민들에게 취업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의 조치들은 결국 이들을 출신국으로 밀어내는 요소로 작용을 하여 착취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인신매매 방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인식을 하고, 각국 정부는 효과적인 반인신매매 정책을 위하여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이주 및 난민 정책에 있어서 일관성 있게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노동 착취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으며, 취약성을 만들어내는 근본원인에 접근할 것과,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사적 영역의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일을 해나가겠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말레이시아 방문과 관련하여 성과와 과제에 대해 간단하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국가 발언 시간… 

이 후 국가 보고 대상인 아제르바이잔과 말레이시아 정부, 그리고 말레이시아 인권위원회의 간단한 보고가 있은 후부터는 참관국과 이사국들이 발언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는데요, 회의장 앞에 발언을 신청한 국가들의 리스트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 때부터 정신영 변호사는 등줄기에 식은 땀을 흘리며 회의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유엔에서 열리는 회의인 만큼(?) 시간을 잘 지켜서 당연히 오전 중에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4시 25분에 파리로 넘어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해 두었는데, 이미 예정 시간을 2시간이나 초과한 상태에서 회의가 시작되었는데, 국가 발언이 모두 끝난 후에 NGO의 발언 순서가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국가 발언 시간이 얼마나 길어지냐에 따라서 NGO들에게 할당되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아예 없어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기업과 인권 및 인신매매에 관한 각국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이 정말 수없이 많은 국가들이 발언을 계속하였고, 비행기 출발시간이 다가올수록 정신영 변호사의 초조함은 더해가게 되었습니다. 과연 몇분을 더 기다려야 할까, 공항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몇시까지 회의장에 남아있는게 합리적일까는 생각에 쫓기던 중, 2시가 넘어가자 비행기표를 새로 사면 얼마가 더 들까는 생각에 비행기표 검색을 하면서 초조함을 달래기도 하였습니다. 

회의 시작 후, 5시간이 지난 2시 경이 되자, 마지막 발언 국가 리스트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이 날 발언한 국가는 총 68개국이었습니다…) 정신영 변호사는 스탭에게 이 후에 NGO 발언 기회가 주어지겠냐고 문의 하였습니다. 오늘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혹시 모르니 한번 기다려보라는 말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비행시간을 2시간도 남기지 않은 2시 반이 지나서야 엔지오들이 있는 쪽에 스탭이 와서 오늘은 엔지오 발언이 힘들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회의장의 알록달록한 천장이 순식간에 노랗게 변하는 것을 보았으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정신영 변호사는 내가 이것 때문에 한국에서 왔는데 오늘 떠나야 하니 제발 한마디만 하고 가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였고, 다행히 소중한 2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순간 노랗게 변해버린 인권이사회 회의장의 알록달록한 천장 

   드디어 발언문 폭풍 낭독!!

드디어 진행화면에 Korea Center for Human Rights Policy 가 발언할 순서라는 안내문구가 올라오고, 정신영 변호사는 앞에 있는 마이크 버튼을 힘껏 누른 채, 발언문을 폭풍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2분이라는 시간 동안 준비한 내용을 최대한 발표하기 위하여 엄청난 스피드로 준비한 발언문을 읽어내려갔는데요, 얼마나 간절했는지 한번만 누르면 되는 마이크 버튼을 발언 내내 꾹 누른 채 발언을 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퍼져 진행요원에게 버튼에서 손을 떼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폭풍 발언 중인 정신영 변호사. 뒤에 대기 중이던 NGO 발언자들은 모두 다음 날로 발표순서가 넘어갔다는 슬픈 사실..

정신영 변호사가 발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경하는 의장님과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의 구성원 여러분,

한국의 경우 유엔 기업과 인권 지침에 따라 해외한국기업의 인권침해를 규제하기 위한 프레임워크가 부재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정부는 포스코가 인도에서 22,000명을 강제이주시키고, 생존권을 박탈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있는 것에 대해 식량권에 대한 특보를 비롯하여 국제사회의 비판이 일고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다른 케이스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목화를 조폐공사와 대우인터내셔널이 구매해서 가공을 하고 있지만, 한국정부는 한국기업이 연루되어 있는 이러한 인권침해에 대해서 아무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OECD 가이드라인에 의해 설치된 NCP는 다국적기업의 피해자에게 구제절차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신매매 특별보고관님,

한국은 인신매매에 관해 형법을 개정했지만 협소한 인신매매 정의 때문에 처벌되는 인신매매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연예흥행 비자로 들어온 필리린 여성들이 성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일이 또 발생했습니다. 이 문제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관련 권고를 내린바도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발표하려고 했던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HRC29_OralStatement_TNC(revised)

그리고 이 날 진행된 인권이사회의 회의록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크고 신뢰받는 확성기를 통해 이야기 하기

사실 2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내용은 지난 수 년간 기업인권네트워크의 동료들이 애써온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2분이 더욱더 짧고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권이사회 당일에도, 기업인권네트워크의 동료들은 제네바 회의장에 (온라인으로) 함께해주었는데요, 제네바 시간 9시인 한국 시간 오후 4시부터 정신영 변호사가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기업인권네트워크의 동료들이 유엔생중계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인권이사회의 진행이 늦어지고 정신영 변호사가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사실에 모두 함께 애를 태워주었고, 그 덕에 정신영 변호사는 비행시간을 1시간 남겨둔 시점까지 기다리면서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본의 아니게 유엔인권이사회를 생중계로 들으며 야근까지 하신 어필의 JC를 비롯한 동료들, 비행기 놓칠까 제네바 콜택시 번호를 보내주신 국제민주연대의 나현필 국장님, 제네바 반상근자로서 공항까지 가는 가장 빠른 노선과 시간표를 알려주신 민주노총의 류미경 국제국장님, 기업인권 카톡방에서 수백개의 카톡알람을 인내하며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유엔에서 무언가 이야기했다고 해서 일이 바로 해결된다면 지금까지 남아있는 인권이슈가 없을텐데, 아직도 할 일은 참 많고, 도대체 유엔이 뭘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의 꾸준하고 꿋꿋한 노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엔에서 발언을 한다는 것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고 있는 큰 확성기에다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특히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우리를 통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하고 꿋꿋하게 노력하는 어필이 되겠습니다! 

  

  

(정신영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