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유엔 농민과 농어촌노동자 권리선언 포럼 발족식 및 실천전략 토론회

2019년 7월 12일

 
2019년 6월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엔 농민과 농어촌노동자 권리선언 포럼 발족식 및 실천전략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날 농민단체, 연구자, 시민단체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유엔농민권리선언을 살펴보고 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실천 전략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농민과 농어촌노동자 권리 선언’의 채택을 결정하는 몇 년 간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국내법과 상충된다는 이유로 반대 혹은 기권의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이 유감스러운 선택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운동을 이어온 이들의 투쟁의 결과로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이 유엔농민권리선언이 최종 채택이 되었고, 이제는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 전략을 모색하고 토의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농민의 권리(rights of peasants)라는 용어는 비아 캄페시나의 인도네시아 회원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고, 2002년 비아 동남/동아시아 지역 총회에서 농민권리선언의 첫 초안이 작성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확대로 인해 식량 안보(food security)의 개념이 각 국가 또는 지역의 식량 자급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닌 수입을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농어촌 근로자들이 설 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물론, 지역 먹거리체계의 자율성 및 생태성에도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에 대항해 비아 캄페시나는 먹거리를 기본적인 인권으로 규정하는 ‘식량 주권’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각국[은] 문화적, 생산적 다양성을 존중 받으며 기본적인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국가적 권리”를 가진다고 밝혔고, 이는 농민권리선언이 탄생하게 된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표] 식량 주권과 유엔농민권리선언 비교 (출처: 윤병선, “유엔 농민권리선언의 배경과 내용 및 실천 과제”)

 

그렇지만 이 국제적 선언은 어디까지나 법적 강제성이 없는 ‘선언’일 뿐이며 한국 정부는 이 선언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시민 사회의 노력과 활동이 없다면 선언의 이행 노력 뿐 아니라 이 선언의 존재조차도 국내에 알려지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날 참석한 비아 캄페시나의 김정열 국제조정위원은 한국 정부를 비롯한 국민들에게 농민권리 선언의 의의와 중요성을 알려나가기 위해 농민단체들과 학계, 시민단체, 인권단체, 정당들이 함께하는 이 ‘농민권리 선언 포럼’이 가지는 책임감이 막중하다고 전했습니다.

 

이 날 간단히 포럼의 발족식 및 정기 총회를 끝내고 나서 본격적으로 실천 전략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토론 진행에 앞서 건국대학교 윤병선 교수와 비아 캄페시나의 김정열 국제조정위원이 유엔농민권리선언의 배경을 설명하고, 다른 나라의 적용 사례를 살펴보기 위한 주제 발표를 진행하였습니다. 전세계의 많은 농어촌 근로자들과 단체들이 정당한 권리의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특히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에선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에 관심이 많고,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권리 선언의 이행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화영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은 여성 농민의 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참석해, 유엔농민권리선언을 살펴보고 한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과 해결 과제들을 제시했습니다. 한국 농촌사회에서 여성 농민은 남성에 비해 여전히 불평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본인 명의의 농지를 가진 사람이 전체 여성의 37.3%에 그치고 있고, 가족 내 남성과 일하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주체적인 경영주로 인식하는 비중 역시 38.4%에 그쳤습니다. 이와 같은 농촌의 가부장제가 주는 억압은 농사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어져 다양한 폭력과 차별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유화영 사무총장은 여성 농민이 한 사람의 농민으로서 독립적인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정책과 실천 과제들을 제시하며, 여성 농민의 인권은 전체 농민인권이 보장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라, 전력을 다해 쟁취해야 할 하나의 온전한 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여성농민의 권리 보장이 전체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속 가능한 농촌 사회를 일궈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충남연구원의 박경철 책임연구원은 식량 주권 요소 중 특히 지역성에 초점을 맞춰 지자체 및 각 지역 단체 중심의 구체적인 정책 과제들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농민권리 증진을 위해서는 먼저 농정의 틀을 사업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며, 인권으로서의 농민권리를 논하는 장이 점차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체계적인 계획과 실천 아래 농민권리 증진을 위한 법과 제도적인 틀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농민단체를 자율적으로 조직하고 활동하며, 서로 연대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질의 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이 때 ‘지구인의 정류장’의 김이찬 대표가 국내 농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해 언급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지원하다 보면, 농민 고용주들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며, 특히 임금 체불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에게 몇 달 동안 임금을 주지 않아 직접 찾아가 봤더니 고용주가 생활고로 인해 자살한 뒤었다는 사건을 언급하며, 약자끼리 서로 다투게 하는 사회 구조 자체에 대한 고찰과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각자의 권리 만을 위해 주장하다가 상대적 약자를 향해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낳는 그런 불합리한 순환 구조를 이제는 끊어버려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거리는 인간이 생활하는데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고 하는 과한 욕심이 결국 누군가는 불합리한 현실을 겪도록 하며, 그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고착 시킵니다. 국내 농어촌 근로자들의 권리와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 및 대한민국의 식량 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접근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며, 본 포럼에서 논의했던 유엔농민권리선언이 중요한 초석을 놓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작성자: 16기 인턴/캠페이너 김영현]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