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2년 4월] #26. 엎드린 채로 부는 민들레 홀씨 – 임희조 인턴

2022년 4월 8일

  친애하는 _______에게


 지금 재미난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 펜을 들었어요. 방금 전까지 저는 멍하니 창밖의 봄볕 쬐고 있던 중이었답니다. 따스한 봄의 입김 마냥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웬 복슬복슬한 솜털이 눈앞을 둥둥 떠다니고 있지 뭐예요. 옷에서 뜯겨 나온 보풀이거나 아니면 이름도 모를 꽃가루인 걸까. 눈을 가느다랗게 찌푸린 채 생김새를 찬찬히 살펴보니 바로 알아볼 수 있었지요. 그건 민들레 홀씨였어요.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건 홀씨가 군데군데 찢겨있었기 때문이었고요. 

 

 “너는 어디에서부터 바람에 몸을 싣고 이곳에 온 것이니? 먼 곳이든 가까운 곳에서 온 것이든, 무사히 잘 도착했으니 안심하렴.” 저도 모르게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어요. 노란 꽃은 자신의 분신이 낯선 땅에서 무사히 뿌리를 내려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떠나보냈겠지요. 아니, 어쩌면 홀씨는 누군가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희망과 포용하는 마음 그 자체인지도 몰라요.

 저는 하얀 솜털을 손바닥에 잠시 가둔 채, 창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어요. 민들레 홀씨가 둥둥 떠다니며 지나갔을 법한 곳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는데, 그때 마침 솜털을 뿜어내는 노란 꽃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아 이 솜털은 저 민들레에서 뿜어 나온 희망이었구나 하고 알아차렸어요. 저 민들레 역시 떠돌던 시절을 거쳤겠구나. 분명 고단한 여정이었겠지요? 쏟아지는 비에 휩쓸릴 뻔하고, 때로는 바싹 마른 바람마저도 불지 않아 발이 묶이기도 했을 거예요. 먹혀 버릴 위험도 여러 번이었을 테고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멀리 떨어진 이 땅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꽃으로 피어나 씨앗을 품어낸 것을 보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상상을 마치고 다시 민들레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 곁에 몇 사람이 보였어요. 떨어지다 만 솜털을 둘러싸고 한두 마디를 주고받으며 꽤나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어요. 그러고는 땅바닥에 몸을 웅크리는 거 있죠? 조심스럽게 마치 민들레를 도와주는 것 마냥,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자연스럽게 숨을 불어 내더군요. 홀씨가 바람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꼭 춤을 추는 마냥 가볍고 신나 보이던걸요.

  

 저는 엎드린 채 홀씨를 부는 이 사람들이 꼭 어필 같았어요. 노란 꽃과 같은 이주민과 난민을 그저 지켜보고 묵묵히 돕는 어필 말이에요. 민들레를 함부로 꺾지도, 그들의 희망인 홀씨를 무심코 불어 날리지 않으니까요. 대신 자신의 몸을 잔뜩 웅크릴 뿐이지요. 그렇게 민들레 가까이 엎드린 채 홀씨를 불어요. 후- 하고 불어내는 큰 숨 안에 고통을 나누는 공감, 더 나은 내일이 되길 애쓰는 마음을 담아서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향한 관심과 희망이 누군가의 손안에, 혹은 한국의 어느 곳에 자리하길 바라는 마음 덕분일까요.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아주 조금은 바뀌어 가는 것 같아요. 저기 낮은 곳에서 불어오는 민들레 홀씨가 지금 제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었어요. 우리도 이들처럼 민들레의 홀씨를 불었으면 해요. 이주민들이 무사히 한국에 자리를 잡기를, 이주어선원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인권 피해자들이 무탈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래서 더 나은 사회가 될 거라고 믿자고요. 

 

봄이 왔어요. 민들레가 많이 피었네요. 

저는 손안의 홀씨를 날려보내며 이만 편지를 마칠게요.

2022년 4월의 햇살 좋은 어느 봄날, 

민들레 홀씨를 보며 편지를 부쳐요.

(공익법센터 어필 22기 미디어 인턴 임희조 작성)

최종수정일: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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