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열린 5회 APCRR(난민권리에 대한 아시아 태평양 컨설테이션) 참가기

2014년 9월 6일

어필도 회원 단체로 참여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난민인권네트워크(Asia Pacific Refugee Rights Network:APRRN)는 2년에 한번 컨설테이션(Asia Pacific Consultation on Refugee Rights:APCRR)을 개최하는데, 2012년 서울에 이어 2014년에는 9월2일부터 4일까지 방콕에서 열려 어필의 김세진, 김종철 변호사와 김다애 연구원이 참석하였습니다.

9월 2일 첫날에는 5개의 세션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세션]에서 네트워크 의장인 네팔 출신의 고팔Gopal과 사무국장인 아눕Anoop이 환영인사를 하였는데, 아눕은 난민보호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우분투Ubuntu’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분투는 ‘모든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뜻하는 남아프리카 말인데,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여러 차례 자신의 책과 연설에서 사용해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우분투를 가진 사람은…자신이 더 큰 전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다른 사람이 잘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모욕을 당하고 억압을 당하면 상처를 입습니다…우분투는 우리가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하는 것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난민보호라는 것이 큰 틀에서는 이방인에 대한 환대와 관련이 있고, 이방인에 대한 환대는 더 큰 틀에서는 ‘우분투’ 의식하고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겠죠.

고팔은 인사말에서 기부자들을 리소스 파트너resorce partner라고 부르면서, 이번 컨퍼런스의 특징 중에 하나로 리소스 파트너들의 참석을 들었습니다. 어필도 2015년 아젠다를 정할 때 후원자들을 초대하지는 못할 지라도, 오프라인 공간에서 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소개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두번째 세션]은 nothing about us without us 라는 멋진 제목이 붙여진 세션으로 난민분들이 나와서 자신의 삶과 활동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욤비 교수는 난민인정 받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인종 차별적인 한국에서 지내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말 중에 하나는 난민신청자로 지낸 6년 동안 6개의 ‘없어’ 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집 없어, 일 할 수 없어, 먹을 거 없어, 병원 갈 수 없어, 한국에 머물 수도 없어,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어”

욤비 교수의 뒤를 이어 이야기를 한 사람은 스리랑카 타밀족 출신 난민인 앤Anne이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타밀Tamil 공동체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앤은 최근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탁월한 자원봉사자에게 주는 Queen’s Service Medal을 받았지만, 난민으로서 다른 난민들을 대상으로 자원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여성 난민으로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뉴질랜드 같은 물가가 높은 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맞벌이도 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봉사활동까지 하려고 하니…펀딩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다른 NGO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 난민이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길 원하지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길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앤의 마지막 말에서 난민을 지원하는 NGO가 난민을 배제하고 활동을 하는 위험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필을 비롯한 한국의 난민지원네트워크도 nothing about refugees without refugees를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앤 다음으로는 파키스탄과 나이지리아 출신의 난민들로서 태국에서 난민 아동을 위한 교육 센터를 운영하는 암머와 아담 알리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란 점은 태국에 온지 1년도 안된 상태에서 Community Education Center를 세워 활동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그 성과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태국에서 난민으로 자기 자신 하나 잘 추스르고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른 난민들을 돕는 일에 오자 마자 뛰어 들어 이러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세번째 세션]은 그 동안 아시아태평양난민권리네트워크가 난민보호를 위한 비전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작업을 해왔는지(2013년 6월에 초안을 만들었고, 2014년 6월에 유엔난민기구와 협의를 거쳐서 발표를 함) 이야기를 하고 테마별로 나누어 비전에 걸맞는 행동계획을 세우기 위한 그룹별 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동계획이 구체화되면 그 행동계획을 뒷 받침해줄 수 있는 리서치 및 컨설테이션 전략(무엇을 리서치 할 것인지, 누구와 협의할 것인지에 관한 전략)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비전을 세운 후에 그에 따른 행동계획을 만들고 리서치/협의 전략을 짜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도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고 싶은 것을 주~욱 나열하는 것 보다는 평가를 염두에 두고 우선순위에 따라 배치하는 것이겠지요.

[네번째 세션]은 도시에서 (생존을 하기 위해) 고군 부투하는 난민 커뮤니티를 어떻게 역량 강화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태국의 Asylum Access에서 일하는 샤론은 난민 커뮤너티가 새로 태국에 온 난민들을 대상으로 Know Your Situation Training을 하고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에서는 난민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지 않아 그런 방식으로는 할 수 없지만, 난민 지원 네트워크 내지 변호사협회가 중심이 되어 난민들에게 비자, 난민인정절차, 취업, 교육, 의료, 도시에서 돌아다니기, 정신건강, 한국 문화 등에 대해서 트레이닝을 정기적으로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비슷한 일을 태국에서 파키스탄 난민인 알리가 하고 있었습니다. 알리는 태국에 2013년에 왔는데 1년도 되지 않아 Refugees Help Refugees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단체를 세워, 파키스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난민들이 난민을 돕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JRS(Jesuit Refugee Service)에서 일하는 라르스 역시 난민 커뮤너티 사이에 근거 없는 루머나 두려움이 만연하기 때문에 난민 커뮤너티가 다른 난민들을 대상으로 정확한 정보를 주는 일은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네 번째 세션의 마지막 발제자는 지난 6월 UNHCR 제네바 컨설테이션에서도 만난 바 있는 UK Refugee Studies Center의 리서처인 커스틴이었는데 아주 통찰력 있는 발제를 해주었습니다.

커스틴은 난민 지원과 관련해서 다른 난민 커뮤니티들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 3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입니다. 둘째는 돌보는 역할입니다. 여기에는 예를 들어 병원이나 학교를 갈 때 동행을 하는 등으로 감정적인 지지를 해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매개의 역할입니다. 예를 들어 집주인과 난민 사이,  당국과 난민 사이, 경찰과 난민 사이, 고용주와 난민 사이를 매개하는 것입니다.

난민을 지원하는 난민 커뮤니티의 역할이 이와 같다면, 기존의 난민 NGO들은 이런 역할을 하는 난민 커뮤니티를 돕기 위해 다음의 3가지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그들의 재정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일입니다. 스탭의 월급을 지원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둘째는 난민들의 목소리가 자주 공적인 장에서 묻히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옹호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들에게 신뢰를 보여주고 신뢰를 쌓는 것입니다.

커스틴은 난민 NGO들이 난민 커뮤니티와 신뢰를 쌓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는데, 1) 그들이 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해야 하고, 2) 그들에게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돈이나 시간이나 교통과 같이 실제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고, 3)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여 투명해야 하고, 4)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믿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섯번째 세션]은 ‘네트워킹’하는 것을 통해 어떻게 각 나라에서 난민을 위한 옹호활동을 강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님이 “한국에 있어 난민과 관련된 그 동안의 성과들은 NGO, 변호사 협회, 국가인권위원회, 유엔난민기구, 국회 등 다양한 단위가 함께 협력한 네트워킹의 열매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세션에서는 황필규 변호사님 이외에 네팔, 인도네시아, 파키스탄의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9월 3일 두 번째 날은 아침 8시부터 시작했습니다.

[사이드 세션]으로 이주 구금 이슈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온 Global Detention Project의 이자벨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2007년 이주 구금에 관한 think tank 역할을 하기 위해 문을 연 단체인데 최근에는 각국의 이주 구금에 관해 더 포괄적인 자료를 데이터 베이스화하고 있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IDC와 더불어 대표적인 이주 구금에 관해 전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GDP 웹사이트를 좀 더 활용하고, 한국의 이주 구금에 관한 포괄적인 보고서가 나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http://www.globaldetentionproject.org/

http://idcoalition.org/

[첫번째 세션]은 ‘법률지원 워킹그룹’과 ‘위기에 처한 여성 및 소녀 워킹구룹’이 연합으로 진행을 하였습니다. 이 세션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진행 방식이었습니다. 진행을 맡은 제랄드는 우선 그 세션에 참여한 70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10분 동안 돌아다니면서 한번도 인사를 하지 않은 성별이 다른 2명의 사람에게 가서 자신을 소개하고 난민법률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구체적인 젠더 이슈를 접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는 약 8명 정도가 모여 앉은 테이블 별로 빨간 포스트잇과 파란 포스트잇을 주면서, 빨간 포스트잇에는 법률지원 과정에서 젠더 이슈와 관련해 겪은 어려움을 파란 포스트잇에는 성과 내지 바람직한 관행에 대해 적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은 것을 한데 모아 범주화하여 벽에 붙인 후에 리포트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세션을 운영을 하니 일단 재미 있고, 참석한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고, 관련 이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쉽게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두번째 세션]은 무국적자 워킹그룹에서 지난 2년 동안의 Action Plan을 평가하고 앞으로 2년의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워킹그룹의 의장이며 무국적자였던 라라Lala가 진행을 하였는데, 올해가 1954년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 60주년이라 위 협약의 비준과 이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유엔난민기구에서는 60주년을 맞아 10년 내에 무국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멀티 미디어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고 9월 17일 헤이그에서 열릴 Global Forum에 대해서도 소개를 했습니다.

무국적자 보호와 관련해서 한국은 2가지 접근이 필요한데요. 첫째는 사실상de facto 무국적자도 그 보호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 무국적자 감소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미 한국이 법률상de jure 무국적자를 보호하기 위한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에 그 이행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법률상 무국적자 사례를 찾고, 어떻게 무국적자를 인정하는 절차를 만들 것인지 해외의 좋은 사례(최근에 헝가리 등 동유럽에서도 무국적자를 인정하는 절차를 만들었다고 함)를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사실상 무국적자들을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북한에서 한국으로 온 탈북자이지만 화교여서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고 중국에서도 국적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과거에 중국국적을 버리고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국적을 취득했지만, 위장 결혼임이 밝혀져 한국국적이 취소된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는 난민이나 체류자격 없는 외국인 부모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범주는 출생등록과 관련이 있는데요. 난민들은 출생등록을 하러 자국의 영사관에 갈 수가 없고, 체류자격 없는 외국인들은 영사관에 가도 출생등록을 해주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에 외국인 아동에 대한 출생등록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구요. 한국은 수차례 여러 유엔 조약 기구로부터 외국인의 출생등록 제도를 마련하라는 권고를 받은 바 있고, 의장국으로 활동하는 유엔난민기구 집행위원회에서도 2013년에 아동출생등록을 포함한 시민적 등록에 관한 결정(아래 링크 참조)을 내린 바 있으므로, 하루 빨리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http://www.refworld.org/pdfid/525f8ba64.pdf

위와 같은 2013년에 유엔난민기구 집행위원회 결정이 나온 후에 7개의 NGO들이 연합해서 그 내용을 다큐멘터리 필름(Register Me ! 링크)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의 모임’인 Track에서 한글로 번역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번째 세션]은 한국과 홍콩과 일본이 속한 동아시아 워킹그룹 회의 였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의장으로 멋지게 이 그룹을 이끌어온 어필의 김다애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회의를 주재하면서 지난 2년 동안의 활동을 평가하고 향후 2년의 액션 플랜을 세웠습니다.

논의 결과 2015년과 2016년에는 아시아태평양난민권리네트워크 동아시아 워킹그룹은 아래의 7가지 이슈 내지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1) 탈북 난민, 2) 난민의 정신 건강, 3) 난민 커뮤니티 교육, 4) 정기적인 온라인 미팅, 5) 구금, 6) 무국적자, 7) 난민관련 법제정과 개정

9월 4일 마지막 날입니다.

[사이드 세션]에서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난민법 등을 가르치는 게일라 교수가 가칭 ‘국제난민법률가협회Global Refugee Law Bar Association’를 제안하였습니다. 잠재적인 회원으로는 난민 변호사, 통역관, 난민인정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활동가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APRRN이 있고, 유럽에는 ECRE나 ELENA가 있지만 난민 변호사나 활동가들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활동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아직 없다고 하면서 위 협회를 제안한 것입니다(참고로 판사들의 경우 국제난민판사협회가 있음).

미국의 경우에도 1996년 전까지는 난민 변호사들이 어떻게 난민들을 지원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았었는데, AILA라는 이민변호사협회가 만들어져(http://www.aila.org/) 그곳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국제난민법률가협회가 만들어지면 1)조직화 되지 않는 나라에서 난민 변호사들을 조직화하는데 기여를 할 수 있고, 2)전략 소송을 할 때 이미 그러한 시도를 한 변호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3)난민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난민 보호와 관련된 좋은 관행을 공유하고 4)난민을 보내는 나라는 국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등의 유익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세션]에서는 주제별, 지역별 워킹그룹이 어제 논의한 것을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고, 네트워크 차원 및 워킹그룹 차원의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였습니다. 네트워크 의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네팔의 고팔 박사가 의장이 되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워킹그룹은 욤비 토나 광주대학교 교수가 의장이 되었고, 부의장은 일본의 히로시 미야우치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공식일정을 마치고 김종철 변호사는 에코팜므의 나비와 함께 파키스탄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피난해서 태국의 유엔난민기구에 난민을 신청한 분들의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 하였습니다. 나비는 2014년 봄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이 분들을 만났는데, 이번 회의에서 다시 우연히 만난 것입니다.

이 분들은 2013년에 와서 유엔난민기구에 난민신청을 하였지만, 인터뷰 하기 까지 2년이 걸리므로 2015년에야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하면서, 처음에 태국에 와서는 너무 기뻤지만 마냥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안전도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살이 계속 찌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이후에도 그 결과가 나올 때 까지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데, 재정착 하기 까지 걸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족히 5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는 말을 들으니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태국에 온 이후에 그래도 이 분들은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난민지원 NGO에서 수당을 조금 받으면서 통역인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받는 돈이 너무 적어서 사무실까지 전철을 타고 가지 못하고 버스를 3번 정도 갈아타고 2시간 넘게 걸려 출퇴근을 한다고 하는데, 그 날은 저희들을 위해 특별히 전철을 탔습니다.

개찰구에 전철 표를 집어넣으려는 순간 역사subway station의 스피커에서 태국 국가National Anthem가 흘러나오니 모든 사람이 일제히 가는 길을 멈추고 기다리는 초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처럼, 많은 난민들이 곧 제3국으로 재정착하여 날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천신만고 끝에 태국에 찾아 왔지만 결국 그들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주저 앉혀지고 만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1시간 정도 전철을 타고 다시 택시를 타고 가서 겨우 이분들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방 한칸에서 어머니와 이 두 분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희가 방문한다고 어머니께서는 없는 살림에 음식을 잔뜩 마련하셨습니다. 방의 반을 차지하는 침대 위에 예쁜 천을 깔고 그 위에 정성껏 파키스탄 빵 로티와 달과 소고기 민스, 예쁘게 장식된 샐러드와 디저트인 우르드 키르로를 차려놓았습니다. 세상에 어떤 음식이 이렇게 아름답고 맛있을 수가 있을까요?

이렇게 우리는 태국에서의 마지막 저녁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감동적인 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방인을 환대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김종철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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