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코리아 인터뷰, “열정으로 오늘을 삽니다”

2015년 2월 16일

지하철 입구에서 <빅이슈>라는 잡지를 파는 것을 보신 적 있으세요? 빅이슈는 홈리스를 지원하기 위해 발행되는 잡지인데요, 오직 홈리스들만 <빅이슈>를 판매할 수 있고요, 판매 수익금 중 50%(2,500원)가 판매원에게 돌아가고, 6개월 이상 판매하고 꾸준히 저축을 하면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주는 방법으로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에요~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잡지이지만 내용들도 참 유익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 전~혀 돈이 아깝지 않은 잡지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잡지 <빅이슈> 2월호에 어필에서 멋짐을 담당하고 계신 이일 변호사의 인터뷰가 실렸어요! 이일 변호사의 일과 가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겨 있는 인터뷰! 열정으로 오늘을 산다는, 주제 아래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공익변호사로의 선택, 현재 어필에서의 활동을 나누었는데요. 진솔한 인터뷰의 현장을 함께 공유합니다.  

  “열정으로 오늘을 삽니다.”

글 배용진

 

응애 응애. 생후 150일 된 둘째 딸의 울음소리는 이일 씨의 모닝콜이다. 밤새 아일 재우고 곤잠이 든 아내가 깨지 않도록 이일 씨는 몸을 일으켜 아이를 달래러 간다. 우는 둘째 옆에서 생후 37개월 첫째 딸이 자고 있다. 그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일 씨는 공익변호사다. 군법무관을 마친 재작년 5월부터 난민을 돕는 공익변호사단체 ‘어필’에서 일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그는 약자와 함께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은 행동이 되지 못하고 막연히 머릿속에만 머물렀다. 그사이 그는 법대에 갔고, 친구들이 그러했듯 자연스레 고시공부를 했다. 고시에 붙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서는 약자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마저 지워졌다.

“그때 전 취해있었던 것 같아요.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서 저도 판사나 검사를 해야 하나, 대형 로펌에 들어가 돈을 벌어야 하나 고민했죠. 공익활동에 대한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그 상태가 군법무관 시절까지 이어졌죠.”

그를 환기시킨 건 친구가 빌려준 책이었다. 인신매매나 성폭행 등 범죄 피해자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내용이었다. 그는 머리를 띵하고 맞은 듯했다. 진로 이정표에 공익변호사가 추가됐고, 많은 고민 끝에 이일 씨는 공익변호사의 길로 나아갔다.

“제 인생의 첫 번째 결단이었어요. 저는 굉장히 수동적인 아이였거든요. 부모님의 의견을 따라 법대에 진학했고, 타협하는 것만 같아 미루던 고시공부도 결국은 하게 됐으니까요. 당시 군법무관은 판사로 많이 갔어요. 부모님도 그걸 원하셨고요. 그런데 이번마저 미루고 3·40대가 지나면 언제 내가 원하는 삶을 사나 싶었죠. 더는 미룰 수 없었어요.”

선택의 결과 그는 대형 로펌의 3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급여를 받게 됐다. 대신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던 공익활동이 구체화되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일은 그에게 열정을 주었다.

“진로를 결정할 땐 겁이 났죠. ‘잠깐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평생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정말 부질없는 걱정이었더라고요. 실체가 없는 것을 두려워한 거죠. 그것 또한 머리를 띵하고 맞은 경험이었어요. 물론 급여가 법조인의 기대수익보다야 무척 낮았죠. 대신 매일매일 일을 하면서 얻는 보람이 훨씬 컸어요. 수준에 맞춰서 소비를 줄이니 생활이 어렵단 생각도 들지 않았고요. 사실 우리나라 평균 급여와 비교하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급여기도 해요. 가장 큰 골칫거리가 주거문제였는데, 운 좋게 장모님 댁에 얹혀살 수 있어서 해결됐죠. 장모님 존경합니다!”

이일 씨는 작년부터 공항에 있는 난민 신청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돕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인천공항에는 입국이 거부된 외국인들을 한데 모아 놓은 송환 대기실이 있다. 그들을 가둘 법적 근거는 없지만 공항 측에선 수상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구금시켜 놓고 대사나 영사를 제외한 누구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이일 씨는 그것이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가처분 결정이 내려져 현재는 담당 변호사의 접견이 가능하다.

“그들은 독재정권하에서 모함을 받아, 또 총을 들지 않은 민간인을 쏘지 못하겠다는 등의 이유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왔어요. 하지만 여기서도 받아주지 않아 국가와 국가의 경계에 버려져 있는 거죠. 도와 줄 변호사가 없으면 언제까지 구금될지 몰라요. 언어가 통하지 않고 잘 들어주려고도 하지 않으니 사연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죠. 그러다 보니 난민 신청하는 데에만 2~3년이 걸리기도 해요. 그동안 그들은 다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나날을 보내야 하죠. 돌아가면 죽을 위험이 크니까요. ‘Advocate’(변호사)는 남의 목소리를 대신 내준다는 뜻을 갖고 있어요. 어필에서 일하며 저는 ‘변호사가 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느끼게 돼요. 변호를 맡는 순간 저는 그 사람을 대변할 수 있는 지구상에 유일한 목소리가 되는 거죠.”

한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에 이일 씨는 소송이 시작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철저히 준비하지만 난민에 대한 법원의 기준이 협소하여 승소보다 패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낙심하게 되는 건 그도 어쩔 수 없다.

“난민 소송을 할 경우 애매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어떻게 파고들 건지 일반적인 소송보다 훨씬 노력하고 준비해요. 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고 그 순간마다 기운이 빠지죠.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지치지 않고 일을 해나가고 있어요. 몇 가지 요인이 있는데 우선 생각과 뜻이 맞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 덕분이에요. ‘우리가 다루는 일은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마저 힘들면 이 일을 오래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모두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려 하죠.”

어필 직원들은 퇴근 시간을 지키자며 오후 6시면 사무실을 나선다. 그러나 일이 많다 보니 결국은 집에 가서 다시 일하게 된다. 퇴근 후 이일 씨는 아이와 놀아주다 밤이 되면 다시 일을 붙잡는다. 덕분에 언제나 수면부족에 시달리지만 그는 현재 행복하다.

“저는 지금 올바른 길 위에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에요. 그전엔 항상 미래로 미루며 살았죠. 하지만 지금은 오늘을 살고 있고, 그래서 오늘이 행복합니다.” 

 

* 기사 출처: 빅이슈코리아 101호 (2015년 2월 1일 발행)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