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난민 이해하기: 김종철 변호사의 숭실 수요저녁렉처 후기

2013년 6월 11일

지난 6월 7일, 숭실대 수요저녁렉처에서 김종철 변호사는 “국내 난민문제의 실상과 대책”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단 한 글자도 없는 이미지 슬라이드로만 이루어진 파격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딱딱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참신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 강의 였습니다. 난민에 대한 어필만의 시각, 그리고 그 전반에 깔린 철학에 대해 배웠는데요, 어떤 내용이었는지 읽어보실까요?

1. 이야기로 시작하기

현재 한국에서 쓰이는 어려운難 백성民이라는 뜻의 ‘난민’은 사실 난민의 개념을 잘 담아낸 단어는 아닙니다. 영어에서 쓰이는 “refugee”나 “asylum seeker”의 피난처라는 함의도 없거니와, 오히려 이들을 너무나 쉽게 ‘가난한 사람,’ ‘힘든 사람’의 범주속에 가둬버리기 때문이죠. ‘난민’은 그 이름 뒤에 있는 훨씬 더 거대하고 풍부한 삶을 녹아내기엔 부족한 단어입니다. 김변호사가 제시한 난민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난민에 대한 올바른 정의, 법, 통계, 인정절차, 문제점도 아닌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김변호사 자신이 바로 이 개인적인 이야기로 인생이 바뀐 사람 중 하나입니다. 피난처라는 NGO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던 시절 접하게 된 난민들의 웃기고, 용감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은 김변호사를 매료했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이야기를 살게 된도록 법률가로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니, 더 나은 이야기를 위해 바꾸었던 인생의 경로가 오히려 자신을 더 나은 이야기를 살게 하고 있었다는걸 또한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깨달음이 어필의 ‘더나은이야기’라는 세미나와 연결됩니다. 사실 법 전문 단체인 어필이 난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세미나를 준비하는 것이 생소하게 보일 수 있는데요, 김변호사는 난민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법/제도 개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할 중요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얻기 위해선 난민을 도와야하는 당위성을 논하기보다는 먼저 난민들의 굴곡있는 인생사를 나누고 그 이야기의 힘을 경험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날 수요저녁렉처의 중심이 되었던 것은 또한 이 이야기들이었고, 이야기들을 통해 더 크고 포괄적인 난민 이슈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2. 그들의 이야기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콩고 당국에 의해 르완다 스파이로 오인을 받고 한국으로 피신하게 된 미리암. 그녀는 자신의 도주 때문에 자매들이 집단으로 박해를 당한 후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데, 이것으로 인해 진술 불인치 오인을 받아 난민신청을 받는데 어려움을 받았습니다.

소말리아 내전 당시 고아가 된 후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온 알리. 원래 알리를 미국이나 캐나다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던 브로커는 알리를 인천공항에 내버려둔채 알리의 여권을 가지고 떠나버렸고, 이런 상황에서 알리는 난민신청조차 거부당했습니다. 이후 도움을 받을 때까지 알리는 한달동안 하루세끼 치킨버거를 먹으며 출국대기실에 갇혀있었다고 합니다 (재밌는것은 이 출국대기실은 하루세끼 치킨버거를 먹이는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그리고 알리가 1달동안 갇혀있었다면 2년동안 외국인보호소에서 구금되어있던 나이지리아 출신 존도 있습니다. 나이지리아는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10개 나라 중 하나인데, 존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인위협을 받아 한국에 온 후 커밍아웃이 두려워 난민신청을 못한 채 불법으로 살다 외국인보호소 (이곳은 사실 구금시설이나 당국은 계속해서 기망적으로 보호시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에 2년 가량 구금되어 지냈습니다.

그런가하면 다국적기업에 의해 한국에 오게 된 미안마 출신 미립셍부도 있습니다. 아웅산수치 여사의 정치활동 재개 등에서 민주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미얀마 정부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 자본으로 미안마 동북쪽에 대규모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카친족들을 몰아내기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미립셍부는 아버지가 카친 반군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양곤에서 공부하면서 살았는데, 결국 그것이 들통이 나는 바람에 한국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3. 이야기로 난민 이해하기 

김변호사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난민의 정의와 난민에 관한 통계, 난민인정절차, 그리고 난민과 관련된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미리암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었던 콩고의 실태. 난민을 향한 우리 사회의 불신의 시선. 사실상 국제미아나 다름없는 법적지위를 가지게되는 난민 자녀들. 알리의 치킨버거 시절에서 알 수 있듯 난민절차상의 여러 문제. 존이 갇혀있었던 ‘보호소’가 사실상 ‘구금소’라는 사실. 그리고 난민과 또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다국적기업과 경제적 현실. 

 
난민은 ‘문제의 대상’으로만 객체화되어 논해지기 쉬운 주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난민 담론 또한 우리 사회 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날 강의는 이 담론의 주인공인 난민이 실체가 있는 사람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야기’라는 새로운 접근을 통해 거대한 주제들의 주인공이 피와 살을 가진, 각각의 인생 이야기를 가진 사람임을 아는 것의 중요함을 보여주었달까요. 난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앎게됨과 동시에 그들 자체를 조금 더 알게 된듯해 뿌듯했던, 즐거웠던 수요일 저녁이었습니다. 
 
(5기 인턴 김인애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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