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레이디 (The Lady) 후기

2012년 9월 11일

9월 6일 목요일 오후, 김종철 변호사님, 안홍균 시보님과 함께 씨네박스에서 개봉 첫 날! ‘더 레이디( the Lady)’를 보았습니다. 탈북자 분들을 다룬 영화를 찍으면서 어필과 인연을 맺은 고재웅 감독님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더 레이디는 아웅산 수 치[1]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미얀마[2]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그녀는 네 윈 장군의 군부 독재에 맞서다가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도 2010년 풀려나기 전까지 15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죠. 군부가 그녀를 죽일 수 없었던 까닭은 그녀가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로 국민의 뜨거운 지지를 얻고 있었고, 해외에서도 그녀를 구명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계속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아웅산 수 치의 남편이 노벨상 후보로 그녀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합니다. “아내가 국제적으로 유명해질 수록 그녀의 안전이 보장받게 되요” ) 갇혀 있는 동안에도 끈질기게 이어진 그녀의 비폭력 투쟁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오늘날 우리는 ‘아웅산 수 치’ 하면 첫번째로 민주화 투사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 거죠.

 하지만 영화가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아웅산 수 치의 모습입니다. 딸, 엄마, 아내, 친구로서의 모습이죠. 영화에서 그녀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남편(마이클 에어리스)을 미얀마 군부의 방해로 끝끝내 만나지 못 한 채 떠나보냅니다. ‘갇혀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영화는 두 시간 동안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당신 곁으로 가면 어떠냐고 한탄하듯 물어보는 수 치 여사,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며 말리는 남편. 부부의 서로를 향한 애정과 지지에 감동 받았고 그러기에 수 치 여사가 처한 상황이 더욱 가슴 아팠습니다. 결국 올 수 없다는 엄마의 전화를 끊은 막내 아들이 “엄마가 사랑한대요” 라고 전하던 장면이 얼마나 슬프던지……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려진 아웅산 장군의 암살도 영화를 보고 나니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국가적인 사건인 동시에 아웅산 수 치라는 개인의 삶을 바꿔놓은 아버지의 죽음이기도 하다고 말입니다.

그간 아웅산 수 치 여사를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위대한 투사라고만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그녀에게는 깊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친구이자 딸이고, 나중에는 엄마와 아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갇혀 있는 그녀가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 – 그녀는 캐논을 연주합니다. 감옥에 갇힌 동료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단식 투쟁을 끝내면서, TV로 갇혀 있는 자신을 대신해 노벨상을 받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때도 연주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며 의아해 하는 군인들에게 이게 ‘음악’ 이라고 말해주죠. 그리고 그녀는 간디의 비폭력 사상을 담은 글들을 커다란 종이 한 가득 써서 집 곳곳에 붙이며 글을 읽을 줄 아는 군인에게 읽어보라고 권하죠. – 이 마치 저나, 저와 가까운 사람이 직접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 치가 환하게 미소지을 때 저도 해방감, 그리고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힐링 체험이었죠.

 김종철 변호사님은 영화에 몰입하신 나머지 여러 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변호사님의 순수한 감성에 저와 함께 갔던 사람들은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답니다……!

영화가 끝나고 다같이 초대형 햄버거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두 감동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고재웅 감독님은 아웅산 수 치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에, 안홍균 시보님은 아웅산 장군이 미얀마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특히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러 갈 때쯤 살롱 드 어필을 준비하느라 필리핀 인신매매 방지법을 번역하고 있었는데, 그 중 강제구금이 왜 그렇게 힘들고 슬픈 일인지 영화를 보면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종철 변호사님으로부터 미얀마의 상황이 아직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얀마는 한 때 부유한 편이었지만 군부 독재로 국민들이 많이 피폐해 졌고, 최근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일부 소수 민족들은 과거 보다 더 핍박을 받는다고 합니다. 미얀마 국민 중에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다른 나라 신청자들과 달리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한국이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점을 알고 일부러 한국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양곤 지역 사람들이 많은데요(영화에도 양곤 대학 학생들이 아웅산 수 치를 지지하다가 끌려가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대부분 한국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고 합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 사람들인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소수 민족과의 갈등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미얀마의 다수 민족은 버마족이고, 미얀마인의 89.4%가 불교를 믿는데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 받는 민족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에 대한 박해가 심각해서 그들은 심지어 국가에 등록조차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필이 맡은 사건에도 로힝야족 출신 난민이 있었죠.

 하나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지는 게 사람이 모여 살면서 생기는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아웅산 수 치 여사도 정치적인 딜레마에 처할 때가 있겠죠. 미얀마인들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들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아웅산 수 치 여사와 미얀마인들의 민주화를 향한 투쟁은 우리에게도 힘이 되었으니까요. 그들에게서 받은 에너지로 그들을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뤽 베송은 레옹, 제 5원소, 택시 등으로 유명한데요, 그가 아웅산 수치의 전기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가 아웅산 수 치를 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비폭력 투쟁에는 그 어떤 액션 히어로에게도 없는 강력한 힘이 있었으니까요. 바로 ‘감동’ 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그녀의 한 마디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쓰인 문구이자, 김변호사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Use your liberty to promote ours.

(당신의 자유를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쓰라)

 (4기 인턴 권민지 작성)

[1] 아웅산 수 지, 아웅산 수 찌로도 불립니다. 아웅산 수 치가 공식 한국어 표기이고 수 지라고도 많이 부르지만, 원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 것은 수 찌라고 합니다. 어필 사무실에 있는 ‘아웅산 수 치의 평화’ 라는 책에서 참조했어요!

[2] 미얀마의 원래 이름은 버마입니다. 군부에 의해 미얀마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버마 역시 다수민족인 버마족에게서 나온 이름이기에 과연 어떤 이름을 써야 할 지 고민이라고 합니다.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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