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이 일하는 법_공익변호사 라운드테이블 발제문

2012년 11월 13일

(2012년 9월 25일 변호사교육문화회관에서)

지난 9월 25일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주최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공익변호사 라운드 테이블이 열렸습니다. 공감 뿐 아니라 동천, 희망법, 퍼블릭 법률사무소의 공익변호사들이 공익변호사 단체의 설립과정과 향후 계획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고, 로스쿨 학생들 뿐 아니라 공익변호사를 꿈꾸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어필에서는 김종철 변호사가 어떻게 일을 시작했고 지난 2년 동안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이야기 하였습니다.

   1.

“난민들에게 더 나은 이야기를 살도록 도움을 주는 것을 통해 내가 더 나은 이야기를 살 수 있습니다”

제가 공익변호사의 꿈을 구체화 한 계기가 된 것은 사법연수원 다닐 때 피난처라는 난민지원 NGO에서 자원 활동가로 일하면서 입니다. 저는 그동안 겁쟁이로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왔는데, 제가 만난 난민들은 한결같이 용기 있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난민의 이야기에 매료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이야기를 살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그 이후에 난민 변호사가 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깨닫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은 이야기를 살도록 도와주는 것을 통해 결국 내가 더 나은 이야기를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필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드머니를 선뜻 내어주신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어필을 세워 풀타임 공익변호사로 일하겠다는 제안서를 보고, 두 명의 젊은 변호사들이 각 1,000만원씩 시드머니를 내 놓았습니다. 시드머니 자체도 처음에 어필이 사무실을 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 분들이 보여주신 아낌없는 지지가 어필을 시작하기로 용기를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시드머니를 주기로 약속을 한 후에도 제가 풀타임 공익변호사를 할지 주저하고 있을 때, 그분들은 “그 동안 수고 했으니 네가 어필 안하고 그 돈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와도 좋다”라고 할 정도의 감동적인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2.

“우리의 삶은 감동이 있어야 하고, 일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냄새를 맡고 싶어 합니다”

어필의 문을 막 열었을 때에는 사뭇 비장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한 뒤에는 비장한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2년 동안 너무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어필이 지금 하는 일은 딱 5가지 그룹을 위한 것입니다. 난민들, 이주자들, 인신매매피해자들, 무국적자들, 다국적기업에 인권침해 당한 외국인들. 모두 심각한 이슈들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그 이슈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즐겁게 일하려고 합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 때에도 심각한 인권침해에 관한 것이지만 읽기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우리가 하는 일이 어렵고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일하자”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 어렵고 심각하기 때문에 즐겁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루는 사건 하나 하나가 전형적인 접근 방식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어느 사건 보다 더 상상력이 필요하고, 창조적인 접근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수직적인 관계,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그러한 창조성과 상상력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일터는 일종의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2012년 5월 23일 어필 사무실 앞에서)

   3.

“대안을 추구할 뿐 아니라 우리가 대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의 일부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일하는 방식 역시 대안적이어야 하고, 새로운 문화를 끊임없이 실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 사무실의 뿌리 깊은 변호사와 직원과의 이원구조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변호사들이 의견서를 쓰고 소송을 하는 것 뿐 아니라 실무적인 것도 다 맡아서 하는 것입니다. 크게 어필의 일을 프로그램과 홍보와 운영으로 나눈다면 그 세 가지를 변호사들이 조금씩 나누어서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출을 한 사람이 영수증을 철하고 지출 내역을 구글독스를 사용해서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한 사람이 많은 시간을 안들이고 그것을 쉽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블로그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그램을 직접 수행한 사람이 제일 생생하게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직접 블로깅을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뉴스레터는 그 블로그 포스팅만 모아서 편집을 하면 됩니다. 또 다른 예는 사무실을 사용하는 방식인데, 제가 설명을 장황하게하는 것 보다는 ‘어필 사무실 사용 설명서’라는 동영상을 보시면 이해가 쉽게 될 것입니다.

   4.

“기록하고, 공유하고, 피드백 하라”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가 쓰기 시작한 후로 우리의 모토가 된 말입니다. 구성원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 저희는 다양한 플랫폼을 사용합니다. 거의 시중에 나와있는 모든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으로 대부분의 의사소통을 합니다. 사무실에 방이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일을 할 때에는 침묵수행(?)에 정진하고, 의사전달은 페이스북으로 합니다. 페이스북으로 할 때 여러 장점들이 있는데, 서로 일을 부탁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형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피드백과 관련해서는 말로는 쑥스러워서 못하는 것을 페이스북에서는 호들갑을 떨면서 훨씬 더 쉽게 격려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재미있게 일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업무 환경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이 그런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진행되는 상황과 작업 중인 서면들은 에버노트를 통해서 공유를 합니다. 그리고 완성된 문서는 다음 클라우드에 보관해서 공유를 합니다. 또한 외부의 자원활동가나 프로보노 변호사들과 함께 콜래보래이션을 할 때에는 상호 서면을 수정하고 수정한 내용이 양쪽에서 볼 수 있도록 구글독스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모든 문서가 공유가 되기 때문에 꼭 사무실이 아니어도 모든 문서에 접근이 가능합니다.

  

(페북, 에버노트, 드랍박스, 다음 클라우드, 구글독스, 네이버메모, 메일침프, 쥐멜)

   5.

“우리를 사로잡은 언어의 깊이와 넓이를 깨달아 거기에 다양한 색깔을 입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여, 그 사람들 안에 이미 있는 그 언어에 공명을 일으키도록 하라”

이 말은 ‘도움과 나눔’의 최영우 대표가 한 것인데,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입니다. 우리를 사로잡은 비전과미션은 다른 사람들 안에도 이미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공명이 되도록 하려면 우리가 그 미션과 비전에 대해 깊이 있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프리젠테이션 하려고 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어필은 2012년 홍보 전략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로 잡았습니다. 개인적인 접근을 하기 위해 대량으로 이메일을 뿌리지 않고 손편지를 쓴다든지 (잠재적인)후원자 개인에 맞춘 편지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감각적인 홍보를 하기 위해 어필은 이름을 짓는데 아주 집착을 합니다. 연간보고서 이름이 ‘제법이다制法利多’입니다. 법을 사용해서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다 혹은 법적인 전문성으로 다양성을 구가하다입니다. 어필이 1달에 한번 하는 공개 강좌이름은 ‘살롱드어필(Salon d’APIL)’로 했고, 1주년 기념 행사의 제목은 ‘어필+더하기’로 했습니다.

   6.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사로잡은 그 언어가 조직을 지배하도록 거버넌스를 만들어라”

이 말 역시 최영우 대표의 조언입니다. 올해 어필은 법인허가를 신청하면서 정관을 만들었습니다. 정관을 만들면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저와 어필이라는 단체와 거리두기(detached) 과정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영우 대표의 조언대로 집행 파트와 의사결정 파트를 구분하였습니다. 급여를 받는 상근변호사 중에서 대표를 선출하였고, 기존의 운영위원회로 하여금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정관은 만들었지만 계속 고민이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구조이면서, 또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타락했을 때라도 안전한 조직이 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 저희들의 문제의식입니다.

   7.

“언어가 확산되어가는 메커니즘이 펀드레이징이고, 파트너쉽이 확산되어가는 메커니즘이 펀드레이징이다”

어필은 2011년 1월에 10명의 후원자로 시작을 했습니다. 법무법인 소명이 1년간 인큐베이팅을 해주었지만, 1년 동안만 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빨리 자립적인 체제를 갖추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금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팁을 얻기 위해 도움과 나눔을 찾아갔을 때, 최영우 대표가 해준 말입니다. 펀드레이징이라는 것을 단순히 프로그램을 잘 하기 위해 재정을 얻는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어필의 미션과 비전을 공유하고, 이슈에 대한 인식제고를 하고, 지지자와 협력자를 얻는 과정이라고 여기라는 것입니다. 10명의 후원자로 시작한 어필은 현재 260여명의 개인 후원자와 10여개의 단체 후원자가 있고, 매달 적자와 흑자가 교차하기는 하지만, 법무법인 소명의 인큐베이팅이 종료된 후에도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은 마련되었습니다(어필의 후원 상황과 수입지출 내역은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 됩니다). 후원자 뿐 아니라 어필에는 다양한 협력자들이 있습니다. 6개월 혹은 2개월 동안 일을 하는 인턴은 어필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분들입니다. 또 어필의 난민 의뢰인을 위해 무료로 일해주시는 정신과 선생님이 계십니다. 프로보노 변호사들과의 협력도 있으며, 온라인을 통해서 번역 등의 봉사를 해주는 분들도 계십니다(이분들과의 업무 지시과 의사소통 역시 쌍방향 인풋이 가능한 구글독스을 사용합니다). 펀드레이징에 대해 이렇게 바라 보기 시작한 뒤부터 더 뻔뻔하게(?) 모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필이 어떻게 법원용지난민의뢰인의 치과 치료와 안경기부노트북과 블라인드를 후원 받았는지 관련 블로그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연간보고서 디자인, @apil.or.kr의 이메일 주소, 팜플렛과 블로그와 명함 디자인, lawnb 역시 모두 재능기부와 후원을 받았습니다.

  

(2011~2012년 어필의 후원자와 수입현황)

   8.

 “웰비잉=웰고잉+웰두잉”

어필의 향후 계획이라는 것이 사실 구체적인 것이 없습니다. 더 재미있게 일하기, 더 다양한 실험들을 하기, 더 대안적으로 일하기, 구성원들의 역량이 더 세워지도록 일하기, 다른 단체들과 더 연대를 잘하기 정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어필은 ‘웰비잉’을 추구한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말씀 드리면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웰비잉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웰비잉은 웰고잉(well-going)과 웰두잉(well-doing)으로 이루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가 만들어 낸 공식은 아니고 미로스라브 볼프라는 사람이 한 말입니다. 웰비잉(인간다움을 누리기)을 위해서는 웰고잉(인간다운 대접을 받기)이 있어야 하고, 웰두잉(인간다운 대접을 하기)이 있어야 합니다. 나쁜 일을 도맡아서 하면서 일이 잘 풀린다고 그 삶이 웰비잉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착한 일은 열심히 하는데 일이 하나도 풀리지 않는 경우(웰고잉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웰비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익변호사의 관점에서 웰고잉이란 최소한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는 것(not being wronged)이고 나아가서는 돌봄을 받는 것(being cared)입니다. 그리고 웰두잉이란 최소한 남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not wrong doing)이고 나아가서는 남을 돌보는 것입니다(caring). 따라서 내가 웰비잉하고 있는지 알려면 내가 위와 같은 의미에서 웰고잉하는가(인권침해를 당하지 않고 돌봄을 받는가) 그리고 웰두잉하는가(남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돌보는가) 물어보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웰비잉하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웰비잉해야 합니다. 나와 일하는 동료들, 나와 동료들이 돕는 의뢰인들도 어필을 통해서 웰비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료들이 어필에서 일하는 것을 통해서 약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역할을 하여 웰두잉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한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부당한 헌신을 요구당하면 동료들은 웰고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웰비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의뢰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웰비잉의 공식은 우리가 싸우는 상대방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저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인권 침해자의 웰비잉을 위해서도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필이 하는 일을 통해서 인권 침해자들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나아가 그들의 인권 증진에 기여를 한다면(즉 웰두잉한다면), 인권 침해자들은 웰비잉에 한 층 가까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복할 수 없는 인권 침해가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인권 침해자들의 웰비잉까지 도모한다는 것이 너무 낭만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일할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필이라는 단체가 잘하고 있는지 여부는 나와 동료와 의뢰인과 싸움의 상대방이 웰비잉하고 있는가, 즉 모두가 인간다움을 누리고 있는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안을 위해 일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방식 역시 대안적이어야 한다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평화이지 누구를 이기려고 하는 것도 누구를 망하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2011년 3월 캄보디아 칸달주 메콩강) 

   (변호사 김종철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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