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5월의 기억, 광주에서 우즈벡까지

2013년 5월 16일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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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것도 많고, 기념할 일도 많은 5월이기에 굳이 5월이라는 이유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5월에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즈베키스탄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동 및 성인에 대한 강제노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이라는 국명을 들었을 때에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미녀’입니다. (이 사실은 어느 포털사이트나 들어가서 ‘우즈벡’까지 입력을 하면 자동완성기능으로 ‘우즈벡 미녀’가 뜬다는 것으로 검증이 됩니다.) 혹시나 경제신문 등을 자세히 보는 사람들 중에는 자원외교의 대상국으로 한국의 여러 기업들이 진출했다는 정도를 알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권단체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또 알고 있을 만한 것이 바로 대통령 카리모프의 독재와 국가의 중요한 산업인 목화 산업에서의 아동 및 성인의 강제노동이라는 이슈입니다.

<안디잔 학살 당시 거리에 즐비한 희생자들과 이들을 추모하는 시민들>   

2005년 안디잔의 5월

이야기에 있어서 맥락(context)만큼 중요한 게 없을 것 같은데요, 동일한 사건이라도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즈벡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22년간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장기집권 중인데요,<!–[if !supportFootnotes]–>[ii]<!–[endif]–> 이렇게 장기간 집권을 위하여 어떤 일들이 있었을 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카리모프 정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건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안디잔 학살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우즈벡의 동부도시 안디잔은 소액금융과 구호활동을 통해 이슬람 조직이 지역 주민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지역이었는데요, 우즈벡 정부는 무능한 정부보다 이슬람 세력이 더 커질 것을 염려하였는지, 이슬람 조직들에 대해서 탄압을 가하였고, 2004년 6월, 우즈벡 당국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는 이유로 안디잔 지역 주민 23명을 구금하였습니다.  이에 주민들은 구금 당한 이들은 지역 사업가일 뿐이라고 이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지역 법원의 근처에서 4개월 넘게 평화로운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석방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2005년 5월 13일, 무장세력들이 이들이 구금된 곳을 습격하여 23명의 피구금자들을 석방시키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정부에 대한 불만이 극도에 다다른 지역 주민들은 도심의 광장에 모여 당국의 부패와 반인권적인 관행,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평화로운 시위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우즈벡 당국은 이들을 향해 탱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고,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하여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우즈벡 당국은 사망자가 187명이라고 하지만, 인권단체 및 국제 언론에 따르면 1,500명 이상의 시민들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if !supportFootnotes]–>[iii]<!–[endif]–>

1980년 광주의 5월

가만히 살펴보면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드는데, 1980년 5월 한국의 남쪽 도시 광주를 생각나게 합니다.<!–[if !supportFootnotes]–>[iv]<!–[endif]–> 이런 충격적인 사건들이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물론 장기독재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 탄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if !supportFootnotes]–>[v]<!–[endif]–> 안디쟌 학살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이 카리모프 대통령을 만나고 있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즈벡의 하얀 황금

긴 서론을 접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요, 바로 우즈벡의 하얀 황금 (white gold)인 목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즈벡은 1991년 소련연방에서 독립을 했지만, 그 때 도입된 목화의 할당량 부과 제도는 폐지되지 않고 굳건히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2011년, 우즈벡은 세계에서 6번째로 목화를 많이 생산하였고 5번째로 많은 목화를 수출하여 그야말로 국가의 부를 가져다 주는 하얀 황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목화의 거래는 중앙정부의 철저한 통제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우즈벡 농부들은 정부가 통제하는 농장에서 수확한 원면을 자유시장에서 시장가격으로 거래할 수 없으며, 국가가 소유한 조면협회를 통하여 정당한 원가의 3분의 1 가격으로 판매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가공 처리된 린트(processed lint, 목화 씨를 둘러싼 부분)의 75%는 정부가 소유한 3대 무역회사에 의해 수출되는데, 농민들이 다른 나라에 목화를 개인적으로 팔게 되는 것이 적발되는 경우에는 밀수출로 벌금 및 징역형을 선고 받습니다.

<2011년 목화 수확기에 수확에 동원된 아동>   

목화밭의 아이들

중앙 정부는 각 지방 정부와 농가들에 목화 수확 할당량을 배정하고, 각 지방정부가 할당량을 책임지게 되는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하여 학교에서 아이들을 목화밭으로 보내도록 지시가 가고, 아이들은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기 위하여 수확기인 9월부터 11월까지 학교를 가지 못한 채 강제 노동에 동원이 됩니다. 우즈벡 전역에 걸쳐서 약 150~200만 명의 아동, 대부분 11세 이상이지만 몇몇은 불과 7세에 지나지 않기도 한 나이의 아이들이 강제노동에 동원된 것이 보고가 되었습니다. 수확 시기 및 나이에 따라 아동들은 매일 10kg에서 50kg 정도의 목화를 수확해야 합니다.<!–[if !supportFootnotes]–>[vi]<!–[endif]–> 매우 고된 일이지만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질이 안 좋은 목화를 딴 아이들은 야단을 맞거나, 체벌을 당하고, 감금이 되기까지 하거나 학교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는 협박을 듣기 때문에 아이들은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if !supportFootnotes]–>[vii]<!–[endif]–> 목화 농장 근처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귀가해서 쉴 수 있지만, 먼 지역에서 버스에 실려 동원된 아이들은 근처의 기숙사나 농가 혹은 학교 교실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생활 조건은 매우 열악 하여 관개수를 마시거나 물이 부족하여 샤워를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음식의 질이 매우 낮은 열악한 근로 및 생활 환경 하에 아이들은 쉽게 지치고, 건강상태가 악화되기 쉽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건으로 Smarkand 지역에서 2년 간 8명의 아이들이 죽은 사건이 있었는데 많은 아이들이 질병과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열악한 근로 및 생활 환경 때문에 내장 감염, 호흡기 질환, 뇌막염 및 간염과 같은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리모프의 아이들

사실 아동노동은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우즈벡의 아동노동은 국가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아동노동과 차별화가 됩니다. 결국 아동강제노동을 조직하여 얻게 되는 모든 이익이 국가 – 22년간 장기집권하고 있는 카리모프 대통령과 그 일가 – 에게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지폐

이러한 일들이 그저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 우리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즈벡에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있는데, 이 기업들 중에서도 목화를 가공하여 수출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공기업인 한국조폐공사에서도 대우인터네셔널과 합작으로 현지에 글로벌콤스코대우라는 회사를 세웠는데요, 이 회사에서는 아동들이 수확한 목화에서 추출한 면펄프를 처리하여 용지를 만드는데, 이 용지를 이용해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천원짜리, 오천원짜리, 만원짜리 등의 지폐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5월의 기억

그래서 기억할 것도 많고 기념할 일도 많은 5월이지만, 한국의 어린이와 함께 우즈벡의 어린이를 기억하고, 광주와 함께 안디잔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지금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와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5월의 기억은 우리와 우즈벡의 더 나은 내일에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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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supportFootnotes]–>[i]<!–[endif]–> 이 글은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가 2013.5.14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의 원문입니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132124565&code=990304>

<!–[if !supportFootnotes]–>[ii]<!–[endif]–> 카리모프 대통령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07년 선거에서는, 헌법에 명시된 3기연임 금지조항을 무시하고 18년의 임기 후, 7년 임기의 대권에 당선되었습니다. 우즈벡 카리모프 ‘독재는 계속된다’, 중앙일보, 2007.12.25.,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989882&cloc=>

<!–[if !supportFootnotes]–>[iii]<!–[endif]–> 구정은, [어제의 오늘]2005년 우즈벡 ‘안디잔 학살’, 경향신문, 2009.5.13.<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121805315&code=100100>, BBC 기사 (How the Andijan killings unfolded, BBC News, 17 May 2005  <http://news.bbc.co.uk/2/hi/4550845.stm>) 참조.

<!–[if !supportFootnotes]–>[iv]<!–[endif]–> 시인 정한용은 이 두 사건을 기리며 “광주에서 안디잔까지” 라는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http://www.poemcafe.com/zboard/zboard.php?id=scrap&page=8&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name&desc=desc&no=1050&PHPSESSID=2b6066fd7b4ce037efd2d33a65b53cbd>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if !supportFootnotes]–>[v]<!–[endif]–> 지난 10년 동안 고문 특별보고관 등을 포함한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한번도 우즈베키스탄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 더러 우즈베키스탄의 인권 상황을 보도한 언론인과 인권활동가들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11년에는 Human Rights Watch가 강제적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문을 닫고 활동가가 추방이 되었으며, 2012년 3월에는 영국의 BBC와 러시아의 Novaya Gazeta의 기자들(Natalia Antelava, Viktoriya Ivleva)이 추방을 당했습니다. Human Rights Watch, Uzbekistan: Activist Free but Crackdown Widening, 13 April 2012, <http://www.hrw.org/news/2012/04/13/uzbekistan-activist-free-crackdown-widening> (공익법센터 어필, [우즈벡]인권활동가에 대한 탄압, 2012.4.14., <http://www.apil.or.kr/1080>에서 재인용).

<!–[if !supportFootnotes]–>[vi]<!–[endif]–> Environmental Justice Foundation. White Gold, The True Cost of Cotton: Uzbekistan, Cotton, and the Crushing of a Nation. London. UK. 2005, p.21., available at <http://ejfoundation.org/cotton/white-gold>

<!–[if !supportFootnotes]–>[vii]<!–[endif]–> From the Field: Travels of Uzbek Cotton Through the Value Chain, Responsible Sourcing Network, July 2012, available at <http://www.sourcingnetwork.org/storage/FromTheFieldReport.pdf> (공익법센터 어필, 들판에서: 가치 사슬(value chain)을 통한 우즈베키스탄 면화의 여정, 2012.8.20., <http://www.apil.or.kr/1159> 에서 재인용).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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