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한 인턴들의 리유니온

2012년 12월 27일

어필은 초창기부터 6개월의 장기인턴과 방학을 이용한 단기인턴을 선발해서 함께 일해왔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공익변호사 단체의 빈 공간을 지난 2년 동안 인턴들이 충실히 채워주셨지요. 인턴들의 이런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어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필은 연말을 맞이해서 인턴들을 초대해서 아주 조촐한 파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후원자이신 조현삼 목사님이 어필로 전화를 걸어 예상치 않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제가 어필 식구들을 한번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오시면 부담스러우실 테니 맛있는 것을 드시고 저에게 청구하세요”. 이 말을 듣고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는 갑자기 계획하고 있는 파티를 위해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저희가 인턴들과 함께 파티를 한 후에 그 비용을 청구해도 될까요?”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조현삼 목사님이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조촐할 뻔한 파티가 어마어마 해졌습니다. 

1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아침에 집에 있는 접시와 포크를 잔뜩 챙겨왔고, 오후부터 “(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르면서도)인턴들이 이것을 좋아 할거야”라고 하면서 4기 인턴인 권민지, 박효주, 이재윤, 오신환씨와 신나게 장을 보았습니다. 떡집에 가서 디저트로 딱 좋은 ‘개성식 주악’을 사고, 딸기와 바나나, 레몬 케잌, 그리고 주먹밥과 초콜렛을 샀습니다. 여기에 더해 정신영 변호사는 닭강정과 북촌 손만두를 사왔습니다. 준비한 것을 모두펼쳐 놓으니 꽤 근사합니다. 

4시부터 반가운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습니다. 성무현(3.5기), 강태승(3기), 김단(2기), 진유선(3.5기), 정유인(1기), 정소정(1.5기), 송시은(3기), 김유진(3.5기).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넘게 못 본 얼굴 들입니다. 준비한 음식을 폭풍 흡입을 한 후에,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안 쓰는 물건 교환’! 새로운 선물을 사기 보다 집에서 안 쓰고 있는 중고 물건을 가져와 서로 교환을 하면서 그 물건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 해주기로 한 것입니다. 각자의 집에서 천덕꾸러기처럼 굴러다녔을 소품들이 알고 보면 저마다 그럴듯한 사연을 지니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의외로 귀한 선물이 될 수 있잖아요? 어떤 사연이 담긴 선물을 나누었는지 한번 볼까요?

군대에서 상관이 선물로 사줘서 2년 넘게 사용한 알람 기능 탑재한 복고풍 전자시계, 신혼여행 하면서 필리핀에서 공수해온 비누와 망고 젤리, 

자취의 로망을 꿈꾸며 야심 차게 구입한 머리 부분 없는 헤어 드라이기, 

(인사동이 아닌) 유럽에서 구입한 에펠탑 열쇠고리와 반영구적인 포스티 잇과 향수 미니어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러 헤이그까지 가서 구입한 책갈피와 ‘오래된 미래’, 결혼 전 남편에게 선물하여 결혼 후에 두 권이 된 책 ‘안창호’, 

로스쿨 면접시험 준비하면서 샀으나 읽지 않은 (그러나 소장가치가 높다고 한) 롤즈의 ‘정의론’, 중학교 때 선물 받고 책상 서랍에 있었던 지포 스타일 라이터.

오빠가 어릴 적 치던 총천연색 ‘실로폰’

급~ 필통에서 꺼냈지만, 교사들의 필수품 스테이플러 제거기, 겨울 분위기가 물씬 나는 대용량 스타벅스 컵, 

책상에 두면 돈이 잘 모인다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 들어간 2013년 은행 달력

이렇게 선물을 교환한 뒤에 올 한해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들이라서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딱 두분의 이야기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남들처럼 남자들을 미친듯이 찾아다닌 것도 아닌데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게 된 것을 봐도 그렇고, 제가 인권 분야에서 일을 하려고 예전부터 관심을 갖었던 것도 아닌데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봐도 그렇고…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것들은 애써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J씨),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배우면서 너무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많아 이번 학기에는 너무 위축되었습니다. 또 학교에서는 저널리즘을 굉장히 중립적인 위치에서 심지어는 기계적으로 수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그것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요. 그러면서 올 여름에 어필에서 인턴하면서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인터뷰 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갔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끔찍한 일을 겪은 아이들이었지만, 저를 신뢰하면서 자신들이 겪은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죠. 또 인터뷰가 끝난 후에 서로 포옹을 했는데 정말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잊을 수 없는 그런 포옹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그런 저널리스트는 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아주 인간적인 그런 저널리스트는 될 수 있겠다라면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Y씨)  

오늘 인턴 리유니온에서 인턴들이 한 해동안 살았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제가 광화문 글판에 실렸던 정종현 시인의 싯구절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김종철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