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2년 6월] #28.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랍니다 - 문찬영 인턴

2022년 6월 2일

‘아마추어 지식인’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프란츠 파농이 활용한 ‘지식인’ 개념에서 안토니오 그람시가 ‘유기적 지식인’을 착안해 내고, 이를 에드워드 사이드가 데려와 ‘아마추어’로 탈바꿈한 후 존 레이놀즈가 법 이론에 적용한…

아 너무 지루한가요? 죄송합니다. 학술 페이퍼가 아니라 ‘비틀거리며 짓다’였죠. 다시 해볼게요.

‘아마추어 지식인’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에는 기나긴 역사와 지적 변형이 담겨있지만,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겠죠. 요약하자면 이런 의미입니다. 지식인이지만 지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거에요. 한 ‘전문가’로서 특정 분야의 지식을 멋지고 권위 있게 휘두르지 않는 사람이죠. 그럼 도대체 뭐 하는 지식인이냐고요? 아마추어 지식인은 한 분야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여러 분야를 골고루 돌아봐요. ‘전문성’이라는 틀에 갇혀 한 분야만을 추구하며 그의 절대성을 피력하기보다는, 세상은 복잡하고 다면적이기에 여러 분야와 방법론을 아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지식을 사랑하지만 책에만 몰두하지 않고, 학교, 현장, 길거리, 기관 등을 누비며 세상을 공부하고 변화시키는 사람이 바로 아마추어 지식인이랍니다.

 

가상의 예시를 들어볼게요. 수학 이야기를 해보아요. 수학 ‘전문가’는 세상의 모든 것이 수학으로 설명되고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 과연 수학적 접근이 적절한가에 대한 생각은 못 할 수 있죠. 이에 반해 아마추어 수학자는 수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기에 공부하면서도, 그의 한계 역시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적재적소에 맞게 물리도 해보고(?), 화학도 해보면서(??), 다양한 지식을 공부하고 활용할 수 있는 거죠.

(아, 참고로 저는 문과랍니다.)

이는 ‘법’이라는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해요. 이번에는 실례를 들어볼게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고조될 무렵, 한 법학자는 다음과 같은 관찰을 합니다. 중대한 폭력과 인권침해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행해지고 있었는데, 국제법 사회 전반과 변호사들은 이 사태에 대하여 ‘국제법이 더 제대로 된 집행되어야 한다’라고만 주장하고, ‘법이 어떻게 현 사태의 구조적 억압에 기여를 하였는가’에 대한 논의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 사태에 있어 법이 과연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지, 혹시 법 자체가 부정의의 원인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그저 무조건적으로 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 반응이었습니다. 문제가 무엇이든, 법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신념이었죠.

 

그래서 이 사람은 법조인들에게 법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정의 실현’이 정말로 법의 존재 이유이고 그 종사자들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우리는 법이라는 획일적 체제에서 벗어나 정의가 주어지지 못한 피해 당사자들과 연대해야 하며, 법적 행동에서 멈추지 않고 정치적, 사회적 행동에 역시 참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마추어 변호사가 되라고 말을 해요.

 

저는 이 말에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나도 나중에 커서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하고 다짐을 했어요. 너무 멋있지 않나요? 법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살고, 법을 활용하지만 그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피해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이상을 실현시키는 삶이요. 정말 힘들고 지치는 삶이겠죠. 그래도 그런 인생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면 너무나 보람찰 것 같았어요. 너무나 막연하고 먼 꿈같았지만, 아마추어가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답니다.

그런데 말이죠, 최근에 엄청난 일이 생겼어요! 글쎄, 제 꿈을 현실로 살고 계신 분들을 만난 거 있죠? 바로 우리 어필 사람들 말이에요. 그저 ‘법’이라는 단어로 이분들의 일과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어필인들은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위해 법적 공방을 벌이면서도, 손수 길거리에 나가 그분들과 연대하여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합니다.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인권침해를 재생산할 때, 인식을 바꾸고자 학교와 강연장으로 뛰어들어요. 아무리 법의 보호를 실현시키려 해도 법 자체가 정의롭지 않을 때는, 그 법을 정의롭게 고치고자 활동합니다. 난민들을 위해, 취약한 이주민들을 위해, 그리고 모두의 인권을 위해, 어필인들은 자유롭게 분야를 넘나들고 수갈래의 길을 개척해나갑니다.

 

사실 언뜻 보면 어필이 뭐 하는 단체인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변호사인지, 활동가인지, 교육자인지, 유튜버(?)인지… 저는 근데 그런 게 어필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들의 이상을 위해서 사는데 왜 정답이 하나겠어요. 정의를 위해, 평화를 위해, 인권을 위해—법도 하고, 연구도 하고, 교육도 하고, 방송도 하면서, 저희가 만들고 싶어 하는 세상을 만들 뿐이에요. 그러는데 정도가 어딨겠어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하면 되는 거겠죠.

 

그래서 저는 어필 사람들이 정말 좋아요. 제가 꿈꿔오던 삶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찬 삶인지, 몸소 보여주시는 소중한 분들이거든요.

꿈을 위해 사는 아마추어들. 그런 아마추어가 되기 위해, 저는 오늘도 안국역으로 발걸음합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22기 인턴 문찬영 작성)

최종수정일: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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