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의 정신영 변호사는 the German-Southeast Asian Center of Excellence for Public Policy and Good Governance (CPG), Thammasat University 법학부, Hanns Seidel Foundation이 함께 Business and Human Rights Compliance – Challenges and Trends – 라는 주제로 2017 .12. 7 – 8 이틀간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하였습니다.
기업과 인권은 대세
기업과 인권이라는 조합이 생소한 것 같다는 시절을 지나 이제는 “기업과…” 의 연관검색어로 “기업과 인권”이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기업과 인”까지는 타이핑을 해야 연관 검색어로 보실 수 있긴합니다만…).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듯 컨퍼런스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패널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회의 참석 전에는 많은 NGO 활동가들을 만나기를 기대하고 떠났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학자, 기업의 지속가능성 담당자, 기업에게 컨설팅을 하는 로펌, 국제기구, 기자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기업 인권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다”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 “기업과 인”의 연관 검색어.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도 나오네요!!
컨퍼런스에 참석한 학자들은 기업 인권의 논의의 근거가 되고 있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이 새로운 기준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인권 기준들이 기업의 운영과 관련해서 적용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나 기업에게 요구되는 의무가 약하다는 것을 지적하였으며, 세계 각국에서 제정되고 있는 관련 법들이 – 캘리포니아 공급망 투명법, 영국의 현대노예법, 그리고 프랑스의 법까지 – 어떻게 적용될 지에 대해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위험의 실재
이처럼 기업에게 인권 준수를 강제하는 제도들이 각국에서 마련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과 인권” 업무는 단순히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홍보팀의 업무일 수 없다는 것 또한 참석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로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인권 규범들을 준수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하고 있는Herbert Smith Freehills LLP의Pamela Kiesselbach는 기업들이 인권 준수를 위험 관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인권 침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소송이나 사업의 철수, 발생할 수 있는 금전적 손해와 평판의 하락 등 법적, 운영적, 재정적, 평판 리스크에 대해 기업들에게 설명을 하고 이를 사전에 고려하고 준수하도록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위험요소에 대해 발제하는 파멜라. 하지만 기업들은 위험이 닥치기 전까지는 이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비용의 손실로 알고 시간도 돈도 아까워한다며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실제로 파멜라의 로펌에서는 시리아에 대규모 투자를 했던 기업에게 자금이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유입될 것을 우려하여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고, 영국의 설탕제조업체가 캄보디아의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에서 발생했던 강제수용 때문에 영국의 법원에서 고의로 타인의 재산을 박탈하는 불법행위(conversion)에 관한 집단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례를 제시하며 기업에게 있어서 인권 침해는 비용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백히 제시하였습니다.
대세이나 여전히 험난한 길
한편,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기업 인권과 관련한 여러 활동 및 평가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민주정부가 수립이 되었으나 아직도 군사정권 시절의 법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나 정부의 토지 강제수용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또한 동남아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는 외신 기자는 베트남에서 대만의 철강회사의 사업장 건설을 위한 토지강제수용 및 인권 침해 과정에 대해 취재를 하다가 강제출국을 당한 사건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Business and Human Rights Resource Center의 일본 담당자인 Saul Takahashi는 아시아 지역에서 인권옹호자들이 처벌을 받고, 노동운동이 탄압을 받는 일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기업들의 영향력은 커진 반면, 시민사회의 위치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한 예로, 내년 선거를 앞두고 시민사회 및 인권옹호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각하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캄보디아에서는 오랜 인권/노동 활동가인 Moeun Tola씨가 근거없는 횡령으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Tola씨를 위한 서명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난 7월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은 인권이사회에 기업과 인권 영역에서 일하는 인권옹호자들의 상황에 대한 보고서 를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룰의 준수와 이용 사이에서
한편, 태국의 대기업인 CP그룹의 지속과 커뮤니케이션 부대표인Netithorn Praditsarn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CP그룹의 노력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태국 기업들이 UN Global Compact의 준수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한 태국 UNGC 네트워크에 대해서 소개를 하였고, 인권 준수 의무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중소업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여 CP의 공급망에 있는 업체들까지도 인권 규범들을 준수할 수 있도록하고 있다고 강조를 하였습니다. 특히, 태국에는 인접국으로부터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인신매매가 되어 착취를 당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송출국에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물론 이 방법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주노동자에게도 태국 근로자와 같은 근로기준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실제로 적용이 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CP 그룹의 담당자가 발제를 마친 후, 플로어에서 “그런데 세븐일레븐 때문에 노점상들이 다 파산을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나요?” 라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사연인 즉슨, 최근 방콕에는 길 모퉁이마다 세븐일레븐이 있는데 방콕시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 소소한 장보기부터 시작해서 공과금 납부까지 – 세븐일레븐에서 해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방콕 거리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노점상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데 세븐일레븐의 주인이 바로 CP라고 합니다. 사정을 알고나니 담당자의 열정적인 발제에도 불구하고 블루워시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린워시에서 블루워시까지
사실 블루워시보다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그린워시(Greenwash)라는 용어입니다. 기업이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광고 등을 통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일컫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기업이 실제 운영과는 무관하게 UN Global Compact에 참여하며 인권, 노동권, 환경을 존중하는 기업으로 이미지를 세탁하는 것에 대해 유엔의 파란 깃발에 깃대어 블루워시(Bluewash)라는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Global Compact에 가입한 기업들 중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강제노동으로 생산한 면화를 사용하고 있는 한국조폐공사나 터키에서 노조설립을 막기 위해 대규모 해고를 한 포스코 등, 인권, 노동권, 환경 존중을 훌륭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기업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엔 Global Compact와 이행원칙 모두 자발성에 기초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현재 유엔에서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구속력 있는 조약을 만들어야한다는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엔의 조약이나 권고사항들이 강제력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어떤 규범을 만든다하여도 그 규범에 대해 실제로는 존중하지 않으면서 존중하는 척만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의 홍보에 오히려 역이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방콕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븐일레븐. 몇 미터 내에 몇 개인지 세어 보려다가 손가락이 부족해 포기해버렸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룰은 만드나
회의가 진행됐던 이틀간, 점심까지 잘 챙겨주는 주최측 덕분에 호텔 밖으로 나올 필요 없이 편하게 지냈지만 차가운 에어컨 바람때문에 방콕의 날씨를 느낄 틈이 없이 지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호텔 밖으로 나오니 12월의 방콕의 거리에서는 초여름같은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니 여전히 길목 곳곳에는 노점상들이 많이 있었지만, 꽤나 많은 수의 세븐일레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원한 호텔의 회의장에서 들었던 CP의 Global Compact를 위한 활동들이 진정 그 가치를 존중하고 있는지는 무더운 거리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유엔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조약이 목소리 큰 대기업들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또 다른 블루워시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 어필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들을 애써 찾으며 무더운 거리를 계속해서 걸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정신영 변호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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