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항은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출입국관리와 난민보호가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공간입니다. 더욱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공항은 무법의 공간입니다. 난민신청을 하여 보호를 구했음에도 위법한 강제송환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곳이며, 그러나 법적으로 이를 구제할 법원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손에 닿지도 않는 곳입니다. 난민네트워크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집필한 ‘2016 한국의 공항 그 경계에 갇힌 난민들 – 출입국항 난민신청 실태조사 보고서'(링크 하단 PDF 첨부)를 보면 구조적 문제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잔인한 국가의 얼굴을 금새 알 수 있습니다. 수개월간 버티고, 굶고, 믿고, 기다리고, 견뎌야 난민보호의 문턱에 도달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비행기에 태워져 어디론가 쫓겨나는 야만의 공간.
더욱이 최근 국내 언론들에서도 일부 보도되었듯, ‘난민임이 명확함에도 불회부결정을 내리고’, ‘법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소를 제기했음에도 송환해버리는 관행’, ‘재판을 운운하며 송환을 거부하는 난민들에게는 강제퇴거명령을 내려 구금하여 송환을 압박하는 관행’처럼 나쁜 실무는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과정에서 법원의 존재는 더욱 희미하기만 하다는 것입니다. 송환대기실에서 2-3개월을 재판날자가 잡힐때까지 구금된 상태와 송환의 압박을 견디며 버틸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가 2018. 8. 9. 배포 한 보도자료 – ‘비행기를 돌려라'(Turn the plane around)(원문)를 한번 보실까요?(어필 15기 정윤주 인턴 번역)
“ACLU는 목요일, 가정 폭력(DV)과 갱단에 의한 폭력을 피해 도망가는 이민자들에 난민보호를 거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무장관 Jeff Sessions의 새로운 정책에 대해 법원에서 다퉜다. 위 사건이 진행되면서 심리는 미국 지방 법원 판사인 Emmet Sullivan이 대부분 극심한 성폭력과 폭력에 도망쳐온 여성들과 아이들인 의뢰인들인 원고들의 추방을 막기 위해 긴급 명령을 내릴지 여부에 집중되었다.
판사가 체류를 심리하는 동안, 불안한 소식이 전해졌다: 목요일 아침, 트럼프 정부는 우리 의뢰인 중 두 명(어머니와 딸)을 보호시설에서 끌어내어 엘살바도르로 추방하는 비행기에 태웠다. 이것은 전날 공개된 법정에서 목요일 11:59pm 전까지 사건 당사자들은 반드시 체류할 것이라는 정부의 약속이 직접적으로 뒤집힌 것이다.
Sullivan 판사는 신뢰할만한 공포를 주장하고 있고, 변호사가 말 그대로 그녀를 대신하여 논쟁하는 동안 미국 법정에서의 재판을 구하는 사람을 쫓아내버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며 격분했다.
그는 정부에 “비행기를 돌리라”고 명령했다. 또한 판사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법무장관 Jeff Sessions을 시작으로 책임자들에 대한 모욕죄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추방당한 우리 의뢰인인, 카르멘과 그녀의 딸은 엘살바도르에서 20년 간 그녀의 남편으로부터의 끔찍한 성적 학대와 폭력적인 갱단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아왔고 이를 피하려고 도망쳤다. 카르멘은 그들이 떨어져 살 때도 반복적으로 성폭행과 스토킹을 당하고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아왔다. 2018년 6월, 그녀와 딸은 탈출하여 미국에서 난민신청을 했다. 난민심사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진실하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뢰할 만한 박해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는 이유로 기각결정을 받았다.
이러한 단절은 Jeff Sessions 법무장관이 제기한 새로운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로 모든 종류의 망명 신청을 거부하도록 잘못 지시하였고, 특히 가정 폭력 및 폭력 범죄에서 도망친 이민자를 위한 보호를 제거하였다. Sessions는 성을 근거로 한 박해를 망명보호의 기초로 인정하는 수십 년간의 국내, 국제법이 수립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런 유형의 박해가 망명 보호에 불충분하다고 묘사했다. 연방 법원은 또한 폭력 범죄와 관련된 다양한 상황에서 망명 신청을 인정했다.
ACLU와 성 및 난민 연구 센터는 화요일에 이 새로운 정책에 반하여 소를 제기했다. 목요일 심문기일의 결과로, Sullivan 판사는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원고의 추방을 일시적으로 막는 명령을 내렸다.
Carmen에게 발생한 일은 왜 체류(Stay)가 중요한지를 정확히 알려준다 : 이 행정부는 매우 여러번 가능한 한 많은 이민자들을 추방하기 위해, 법을 무시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무분별하게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것을 보여줘왔다.”
국내 언론에도 몇차례 ‘신기한 해외뉴스’ 같은 형태로 보도된 위 기사는, 난민보호와 강제송환금지의 의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의미가 가지는 무게에 대한 우리나라와의 현격한 격차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매우 놀랐습니다. 법체계에는 물론 차이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근본 규범과 가치는 다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다른 보도들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심리 중에 추방이 실행되는 줄 몰랐다며 쩔쩔맸다. 국토안보부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모녀가 엘살바도르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고 신속하게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밝혔다]고 까지 합니다.
‘난민을 어떻게 보호할지’가 아니라, ‘허위난민을 어떻게 색출할지’가 근본규범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회. ‘자칫 판사가 내릴 실수로 난민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송환결정이 이 초래할 위중한 결과(Grave result)의 무게’로 인해 입증정도와 방식을 완화하는 확립된 국제적 해석기준들과 ‘자칫 송환해도 문제 없는 난민을 인정하여 보호하는 실수를 초래할까봐 무한입증을 요구하며 털끝만큼의 불확실성도 용납하지 않고 보호를 거절하는 한국의 난민인정/재판실무’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걸까요?
‘지방법원 판사가 심리중 난민을 송환했다고 ‘격분하여 법무부장관을 법정 모욕죄’로 처벌하겠다며 ‘비행기를 돌려라’고 명령하는 실무’와 ‘난민이 송환되었다는 사실은 소각하사유로만 여겨질 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누구도 찾지 않는’ 차이는 어디서 오는걸까요?
위법한 실무관행에 제동을 걸며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할 법원의 역할을, 아니 심지어 그와 같은 역할을 제반 기관들이 하도록 강력히 요구하지 못했던 그동안의 난민옹호활동에 대해서 다시 곱씹어봅니다. 한국에서는 과연 ‘난민보호의 무게’, ‘강제송환금지원칙의 무게’라는 것이 어느정도였던가. ‘한국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인 난민’들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법체계 위의 부산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와 같은 무책임을 그대로 방치했던 것 아닌가. 난민보호를 위한 인권단체들의 더 선명한 싸움이 부족했던 탓이라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일 변호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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