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7월) 23일이었어요.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막 소리쳤죠. 이제 물이 오기 시작해서 도망쳐야 된다. 도망쳐야 돼! 그러면서 동시에 물도 막 함께 왔어요”
2019년 2월 20일,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대응 한국시민사회 태스크포스(이하 시민사회 TF)에서 주최한 현지조사 보고회에 다녀왔습니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와 관련하여 2019년 1월 11일부터 1월 24일까지 진행된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피해지역의 현지조사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였습니다. 사회는 이강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가 맡았고, 발표는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와 윤지영 피스모모 정책팀장이 번갈아 가며 했습니다. 아래에서는 보고회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라오스의 피해 실태
2018년 7월 23일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의 보조댐 5개 중 보조댐D가 붕괴되었습니다. 보조댐의 붕괴는 곧 홍수로 이어졌습니다. 라오스에서는 사망자 및 실종자 70여 명이 발생했고, 수천명의 이주민이 발생하였습니다. 홍수 피해는 라오스에 국한되지 않고 캄보디아에도 발생했습니다. 강 하류에 있는 캄보디아 북부에서도 사망자는 없었으나 15,000명이 피해를 당하고 5,000명의 주민이 임시대피소로 이동하였습니다.
피해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구호 부재
사고 직후에는 긴급 구호 지원이 충분했지만 점차 줄어들다 1월에는 아무런 지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라오스 정부가 구호단체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는 문제와도 연관됩니다. 라오스 정부는 현금이나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현물 지원을 선호하며 교육이나 의료 등의 지원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강력한 통제 권한을 갖고 있다 보니 정부와 NGO 간 방향성이 맞지 않아 피해 주민들은 교육이나 보건과 관련된 구호 및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피해 실태
세피안-세남노이 댐은 메콩강의 지류에 건설되었고 홍수의 피해는 하류에 있는 캄보디아 북부까지 이어졌습니다. 다음날인 7월 24일 캄보디아 수자원 기상부에서 세콩강 범람 경고와 함께 대피 안내를 했습니다. 지역 정부에서 군대와 경찰을 파견하여 긴급 대피를 지원하여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4개 코뮨에서 15,000명의 주민이 피해를 입었으며 그중 5,000명의 주민은 임시대피소로 이동하여 1~2주간 거주했습니다. 지역정부에서 모기장, 쌀, 간장 등 긴급 구호를 지원했지만, 국제사회의 지원은 미미했습니다. 더욱이 침수로 인해 농작지가 황폐해졌는데 이에 대한 보상은 없으며, 황무지가 된 토지를 다시 농경지로 만드는 것도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아 식량 공급이 큰 문제입니다.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라오스와 달리, 캄보디아 북부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음에도 도움도, 제대로 된 보상도 받고 있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사고의 원인
라오스 정부는 사고 원인 조사를 마친 상태이지만 조사 결과에 대한 검증을 이유로 발표를 3월에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의 공식적인 원인은 발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파이핑 현상으로 댐이 붕괴되었다고 판단합니다. 즉 압력을 받으면 균열이 생기고 이 균열로 물이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파이핑 현상이 발생한 것은 동남아시아의 토양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인터뷰한 스탠포드 공대의 부교수이자 댐 전문가인 리차드 미한에 따르면 열대지역에 있는 돌이 매우 약한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붕괴된 보조댐이 잘 부러지고 힘을 주면 균열이 생기는 홍토로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한편 댐의 균열과 이로 인한 침하는 한국 서부발전이 제출한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고 전인 20일에 댐 상단부 10개소에 균열이나 침하가 발생했으며, 중앙에는 약 11cm가량 침하까지 이뤄졌습니다. 물론 자체 중량 때문에 침하가 일어나기도 하고 이를 안정화 과정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안정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침하는 1~3cm에 불과합니다. 이번 사건처럼 11cm에 달하는 침하는 안정화 과정이 아니라 전형적인 파이핑 현상, 즉 댐에 균열이 일어나 댐 안쪽의 물과 댐을 구성하는 토입자가 누출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댐의 균열은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예상의 범위를 벗어나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였을까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의 가능성
SK 건설은 예상할 수 없는 폭우로 인한 범람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민중의 소리에서 보도한 WMO(세계기상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아티프 지역 일 강수량이 110mm가 넘은 적은 8번 있었고, 가장 많이 비가 온 날인 2008년 5월 16일에는 202mm의 강수를 기록했습니다. 사고전날인 22일 아티프 지역의 강수량은 122mm로 댐을 건설할 때 충분히 고려했어야 하는 수치에 해당합니다. 더욱이 사고 당일인 23일은 강수량이 32mm에 불과하고 사고 직전에는 비가 그쳤습니다. 예상치 못한 폭우도 아니었기에 폭우로 인한 댐의 붕괴는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예상할 수 있었던 강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댐의 균열이 일어나고, 이후의 댐 붕괴가 수많은 인명피해로 이어진 이유에 대해 무리한 공사 기간의 단축, 관리비 및 이윤의 비율을 높이는 과정에서의 설계 변경, 대피 과정에서 전달 문제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2018년 국정감사 당시 김경협 의원실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댐 건설 공사가 예정보다 7개월 늦게 시작되었음에도, 늦지 않게 완성되었습니다. 즉 공사 기간이 7개월이나 단축된 것인데, 시공건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안정성 문제로 댐 건설은 보통 공사 기간을 단축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열대 지방의 토양이나 돌이 약하기에 동남아시아 댐 공사에서 공사 기간 단축은 SK가 최초였다고 합니다.
또한 설계변경으로 인한 문제도 존재합니다. 처음 계약했을 때는 관리비 및 이윤을 12.2%로 계약을 했으나, SK 내부에서는 관리비 및 이윤을 15%로 높여서 계획을 세웠고 이에 따라 보조댐 높이가 기본설계보다 낮추어 설계되었습니다.
대피 과정의 문제도 존재합니다. SK가 사고 당일인 23일 오전 11시에 경고 공문을 발송하고, 12시에는 관련 관공서에 연락하여 주민 대표에게 대피 실시를 요청하고, 13시 50분 경 관공서가 주민대피 요청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시민사회 TF팀이 현지에서 만난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마을 5개의 주민들은 모두 댐 붕괴로 인한 대피를 전혀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라오스 정부, 한국 정부, 기업의 책임
라오스 정부는 무엇보다도 진상 규명 결과를 공정하게 발표해야 합니다. 또한 피해주민들의 피해 정도에 따라 공정한 피해 보상을 해야 하며, 세계 각국에서 모인 기부액을 투명하게 운영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사고원인이 시공사에 있다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한국 법원에 소를 제기하거나, OECD나 NCP(국가별연락사무소) 에 진정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은 민관협력방식으로 공적자금원조로 이루어졌기에 한국 정부 역시 1차적 의무 부담자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구성된 공적자금이 투입된 사업이기에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라오스의 피해 상황에 대해서는 인도적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조사를 통해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 파악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라오스 정부가 아직 사고 원인에 대해 발표를 하지는 않았으나, 사고 당시 강수량, 시공 정황, 대피 상황을 고려할 때 댐 붕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면 SK 건설은 민,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하고, 피해자 피해 배상 및 보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사고 원인이 자연재해일 경우 보험사가 책임질 텐데 이때 보조댐의 붕괴이기에 전액 보상이 되지 않기에 부족분에 대해 대비해야 합니다.
나가며
피해 주민들은 댐이 붕괴된 사실조차 모른 채 가족과 집, 생활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는 보고회를 마무리하며 두 가지 바람을 말했습니다. 첫째로 피해 주민들이 과거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 둘째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지켜지기 위해서 라오스 정부, 한국 정부, SK 건설, 서부발전 등 댐 건설과 관련된 각 주체의 진실 규명에 대한 노력과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한편 문제 해결에 있어서 단지 숫자와 통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시민사회 TF는 물론이고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도 있을 것입니다.
*카카오 같이가치(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60866)에서 시민사회 TF가 제공하는 사고와 관련된 내용을 접할 수 있습니다. 모금을 하지 않더라도 관련된 기록과 기억을 함께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공익법 센터 어필 동계 실무수습 공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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