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6일 오후, 어필 사무실 사이다에서는 19번째 살롱드어필이 열렸습니다. ‘강제이주와 토지강탈: 인도네시아로부터 배우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살롱드어필에서는 단순히 ‘돈을 벌러’ 한국으로 온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주노동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인도네시아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왜 이 먼 곳까지 올 수 밖에 없었을까요? 인도네시아의 시민단체 인디스(Institute for National and Democracy Studies, INDIES)의 대표 쿠르니아완 사바(Kurniawan Sabar) 연사는 팜유 플랜테이션에 땅을 빼앗겨 가난에 시달리다 결국 이주를 선택한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삶에 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와완이라는 별명으로 불러 달라 하며 강연을 시작한 쿠르니아완 대표는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토지 독점(land monopoly)과 부당한 토지 점유(land grabbing)로 꼽았습니다. 와완 대표가 말하는 토지 독점이란, 몇몇 개인 혹은 기업이 그 지역의 나머지 인구보다 불균형적으로 많은 토지를 실질적으로 지배(control)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대부분 땅이 기업 혹은 국가에 속해 있으며, 그런 경우 그 지역 주민은 사유지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불균형적인 토지 분배, 그리고 토지 독점은 비단 최근 만의 일이 아닙니다. 토지 독점 문제는 수백 년 동안 계속된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 역사에서부터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식민주의와 토지 독점의 역사
인도네시아는 1509년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시작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에 일본까지, 430년이 넘도록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가 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대부분의 지역을 약 350년 동안이나 지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여러 섬의 왕국들이 인도네시아라는 근대적 국가의 기반으로 통합이 되었으나, 여러 섬에서 발생한 플랜테이션 사업 등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착취에 취약해지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이 세계 2차 전쟁에서 패하며 독립한 후에도 토지 독점은 계속되었습니다. 독립 후 독재 체제를 수립한 수카르노(Sukarno) 대통령은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여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65년, 반공적인 군부세력의 쿠데타가 발발하여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수하르토(Suharto)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많은 해외 기업이 광업과 팜유 산업, 벌목 산업을 추진하였고, 이러한 기업들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땅을 빼앗긴 주민들은 살 곳을 잃고 이주민이 되었으며 때로는 살 곳을 찾기 위해 다른 부족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 가장 큰 예로 세계에서 가장 큰 금 채굴 기업 중 하나인 프리포트 맥모란(Freeport Macmoran) 기업의 광산이 있습니다. 분착자야(Puncak Jaya)산 근처의 프리포트 금광으로 파푸아섬 사람들은 오랫동안 대를 이어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큰 섬 5개 중 하나인 자바(Java)섬은 대부분의 지역이 이러한 거대 기업들의 소유입니다. 땅을 일구며 농부로 살아가던 자바 사람들은 기업들에 밀려 땅을 잃어버린 후 수마트라(Sumatra)섬이나 칼리만탄(Kalimantan)섬 등 다른 곳으로 일을 찾아 이주노동자가 되어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들이 땅을 잃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친기업적인 정부의 역할이 큽니다. 네덜란드 식민지배 시절에 시작된 이주정책(transmigration program)은 독립 후에도 계속되어 땅이 없는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수하르토 정부는 땅을 잃은 주민들에게 다른 섬으로 이주하면 땅과 집 등 물질적, 경제적 지원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말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 사람의 손길조차 닿지 않았던 숲 한가운데에 버려졌고, 살아남은 이들은 그 후 플랜테이션을 확장하려고 온 기업들에 채용이 되어 플랜테이션 이주노동자가 되었습니다. 플랜테이션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관습이 되어 오늘날에도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입니다.
해외 이주노동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또한 풍부한 노동력을 국가 주도적으로 ‘수출’을 하는 정책을 세우며, 9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한국을 포함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이주노동자로 송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보이는 이주노동자의 모습 뒤에 있던, 그들이 이렇게 먼 곳까지 와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플랜테이션 산업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해나가기 전, 인도네시아 주민들은 숲으로부터, 대지로부터 필요한 것을 모두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숲이 파괴되고 땅을 빼앗기며 사람들은 삶의 터전과 생계 수단마저 잃어버렸습니다. 플랜테이션에 고용되어 일하더라도 여전히 하루하루를 꾸려나가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던 삶의 방식을 빼앗긴 후, 많은 이들은 플랜테이션에서 받는 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졌습니다. 하루 먹을 식량과 필요한 물건 등을 사기 위해서는 플랜테이션에서 일해서 받는 임금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받는 임금으로는 하루 필요한 것들을 모두 구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란데다 플랜테이션에서는 이주노동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일을 구하기 위해서는 땅을 포함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이주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의 농부와 이주노동자는 더욱더 취약해집니다. 강제 이주는 기업들의 토지 독점을 더 쉽게 하고 이것은 또 다시 사람들이 이주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가며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노예가 아닌 노동자로서 존중받길 원하는 것이라고 와완 대표는 말합니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기업의 토지독점이 종식되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토지를 분배받는 것이야 말로 이주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보며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생각하기는 쉽지만, 그들이 이곳까지 오게 된 배경과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만 우리 사회가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나 이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기업들이 생산한 팜유 등으로 우리가 매일 라면과 과자를 먹고 바이오디젤 차를 운전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생산되고 유통되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더 잘 알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지금의 한국 사회에 있는 모든 사람이 어떤 역사와 경험을 지나 현재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두의 경험은 개인적이지만 또 그것을 만드는 사회적, 구조적 흐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살롱드어필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많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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