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금요일 오후, 어필은 작가로, 환경 운동가로, 동물권 활동가로 부지런히 활약하고 있는 김한민 활동가를 살롱드어필에 초청해 이야기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날 강의의 결론은, 작가의 책 이름처럼 “아무튼 비건”이었지만, 그렇게 결론 내기까지 타자화와 공감 사이에서 생각해보고 돌이켜보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비건이란 단지 개인의 건강을 위해 실천하는 식습관 정도였기 때문에, 사회운동으로서의 비건을 알게 되고, 타자화에서 비롯된 식습관을 발견하는 것은 신선하고 놀라운 시도였습니다.
현재로써 우리가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지배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욕심이 많은 동물인지 먼저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 지구 상에 남의 젖을 먹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우유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갓 태어난 암컷 젖소는 생식 기능이 가능하게 되자마자 강제 인공 임신의 과정을 겪습니다. 포유류는 모성애가 남다른 동물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 젖소는 새끼를 낳자마자 생 이별로 떠나 보내고 곧장 착유기에 젖이 물린 채 더는 나오지 않을 때까지 젖이 빨려 나가는 고통도 맛봅니다. 그렇게 1년을 주기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반복하는 이 젖소는, 젖소의 보통 기대 수명인 20년에 조금도 미치지 않는 5년 정도를 살다가 생식 기능을 비롯한 건강이 다 망가져 더는 쓸모가 없다는 판단 아래 도살장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합니다. 이런 일이 어느 특정 농장에서만 일어나는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낙농업계에서 소의 젖으로 이윤을 남기기 위해 ‘보통’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 인륜적인 일들이 단지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고 그들은 동물로 태어났기 때문에 별 죄의식 없이 생산되고 소비되어 왔던 것입니다. 대단한 육식가로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알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는데, 조금만 속을 파고 들어가니 차마 다시 눈을 감아버릴 수 없는 어둡고 곪은 현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비단 우유 뿐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길러지는 생물들의 현실은 다 잔혹하고 암울하기 짝이 없었는데요, 돼지 살 처분 장면을 찍은 사진 속에서 놀라고, 공포를 느끼고,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돼지 한 마리, 한 마리의 표정을 보고 나니, 인간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고기를 할 수 있는 만큼 만들어내고 마음대로 죽이는 권리는 어디로부터 난 걸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동물과 동급임을 나타내는 표현은 흔히 욕설로 쓰이곤 합니다. 동물을 나로부터 완벽히 타자화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김한민 활동가는 설명하는데요, 요즘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혐오와 차별의 맥락을 봤을 때, ‘완벽한 타자화’는 비단 동물권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더 있는데요, 김한민 활동가가 어렸을 시절, 교실 뒤편에는 학급 공용 연필깎이가 있었는데, 학생들이 워낙 함부로 대하니 어느 날 “내 것처럼 소중히 쓰자”라는 문구가 붙었다고 합니다. 그 때 ‘남의 것처럼 소중히’가 아니라 ‘내 것처럼 소중히’라는 게 통용되는 문화에 받은 충격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남이 처한 현실을 상상해보는 일, 한 번 쯤 공감해보는 일이 잘 연습 되고 실천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골머리를 앓는 문제들의 상당수가 해결을 위한 길목으로 접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비건 생활 양식도 그 연습과 실천을 위한 사회운동이었음을 이날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소비하고 섭취하는 동물성 제품을 위해 몇 마리의 동물이 상상을 초월하는 부당한 삶을 살다가 죽임을 당했을까 한 번 더 상상해보고 그 소비 메커니즘에서 최대한 벗어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죠. 하지만 식탁 위에 고기 반찬이 없으면 식사를 거부하는 어린이였던 저에게 식단 전면 개조는 막막한 과제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김한민 활동가가 전한 하나의 희망은, ‘어차피’가 아니라 ‘최소한’의 원리입니다. 쉽게들 말하는 “아무리 네가 그렇게 해봐도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 앞에 무너지는 생활 실천형 운동들이 많은데요, 개인이 ‘최소한’ 이것은 하자며 생활 실천을 지속해갈 때 그 실천들이 연대하여 결국엔 세상이 바뀌더라는 용기의 말을 전해 들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다짐하고 꾸준히 실천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날 어필리언들도 다같이 강의를 듣고 나서, 최소한 하루 한 끼, 함께 먹는 점심에는 동물성 식품의 소비를 줄여보자고 다짐하고 실천하고 있는데요, 그 한 끼가 점점 늘어나고,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최소한’의 힘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비건 생활 양식에 국한되지 않고, 만약 ‘어차피’의 원리에 못 이겨 발을 내딛지 못하고 계신다면, ‘최소한’이 가지는 연대의 힘을 믿고 용기 내보시길 응원합니다.
[작성자: 16기 인턴/캠페이너 김영현]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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