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2일, 제2 미국 연방 순회 항소 법원(2nd US circuit court of appeals)에서 한 사건을 파기환송 했습니다. 2018년 지방 법원에서 기각했던 소송을 재심하기 위해 돌려보낸 것인데요. 해당 소송은 2016년 수단에서 온 난민들이 BNP 파리바 은행(BNP Paribas, 이하 ‘BNP 은행’)을 대상으로, 자신들도 영향을 받은 수단 정부의 학살, 집단 강간과 같은 잔혹 행위에 BNP 은행이 연루되어 있었다는 혐의로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기각 판결이 파기되고 환송된 것은 난민 발생 원인에 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로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운데요. 이 사건의 흐름을 한번 알아보았습니다.
2015년 5월 1일
2015년 BNP 은행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에 의거해있던 수단 경제 제재 정책을 위반한 혐의, 그리고 적성국교역법(TWEA, Trading With the Enemy Act)을 위반한 혐의에 대한 합의금 및 벌금으로 89억 달러를 지불했고, 준수 절차와 정책 개선 명령을 지시받았습니다. 당시 BNP 은행은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인정한다고 말하며 유죄를 인정해, 이 사건은 미국 경제 제재 위반 사건에서 국제 은행이 유죄를 인정한 첫 사례가 되었습니다. 특히 자금 융통 사실 뿐 아니라 자신들이 융통한 자금이 수단 정권의 잔혹 행위에 사용될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인정한 점이 주목할 만 했습니다.
미국 정부 기관은 BNP 은행이 사실상 ‘수단 정부의 중앙은행’ 역할을 해왔고, 초기 법 집행 과정에서도 자금 융통 내용을 숨기는 등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몰수한 89억 달러 중 38억 4천만 달러를 2004년부터 2012년 사이 수단, 이란, 쿠바에 의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 비용으로 책정한다고 발표했지만,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몇 피해자들이 있어 이에 대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U.S. v. BNP Paribas SA, U.S. District Court, Southern District of New York, No. 14-cr-00460)
2016년 4월 29일
위 판결 이후, 2016년 4월 29일,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수단 출신 난민 16명은 BNP 은행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표당사자인 카셰프(Entesar Osman Kashef)는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재산을 빼앗은 잔자위드(Janjaweed militia)의 재정 지원을 BNP 은행이 보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카셰프를 포함한 16명의 고소인은 BNP 은행 서비스를 통해 자행된 수단의 인권 침해 피해자 수백명을 대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수단이 제공된 미국 달러화를 (지금은 미국 시민이며 영주권자인)고소인들을 포함한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인종 청소에 사용할 것을 BNP 은행은 완벽히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BNP 은행이 수단 경제의 85%를 차지하는 원유 수출과 관련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단이 폭탄, 탱크, 자동소총, 헬리콥터와 같은 군사 물품을 사들일 수 있었고 수단 정부군과 민병대를 이러한 무기로 무장시켜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들을 만들고 수천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2017년 1월 2차 수정안 까지 포함해 뉴욕주(州) 법을 바탕으로 20건의 혐의(아래 참고)로 BNP 은행을 고소했습니다.
∙ 과실불법행위(negligence per se)
∙ 구타 모의 및 방조
∙ 공공업무 혹은 지휘권 행사에 있어서 구타 모의 및 방조
∙ 폭행 모의 및 방조
∙ 불법 체포 및 불법 구금 모의 및 방조
∙ 불법 재산 수탈 공모 및 방조(conspiracy to commit & aiding and abetting conversion – wrongful taking)
∙ 불법 재산 억류/사용 및 처분 공모 및 방조
∙ 의도적 정신적 고통 가함
∙ 정신적 고통 방치
∙ 악의적 업무 과실(commercial bad faith)
∙ 부당 이득
∙ 불법 사형 공모 및 방조
2018년 3월 30일
하지만 2018년 3월 30일, 해당 소송을 기각 판결이 나오는데요. 그 이유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1) 본 소송은 국가행위론(Act of State Doctrine)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해당 소송을 맡았던 연방 법원 앨리슨 나단(Alison Nathan) 판사는 BNP 은행이 구타, 폭행, 불법 체포 등을 모의 및 방조한 이차적 책임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본 법정이 당시 수단 영토 내에서 수단 정부가 수단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한 행위를 뉴욕주 법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는 국가행위론 원칙에 어긋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특히 다른 판례에서 “모든 주권 국가는 다른 모든 주권 국가의 독립성을 존중할 의무가 있으며, 한 국가의 법원은 다른 주권 국가의 영토 내에서 행해지는 정부의 행위에 대해 심판하지 않는다.”는 부분과 사적 단체에 제기된 소송은 “피고의 행위와 원고의 피해 사이 일반적인 연결고리를 결정하면서 해외 정부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면” 제한될 수 있다는 내용을 가져와 본 소송이 진행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원고 측이 학살과 같은 인권 범죄는 정부의 공적인 행위로 치부할 수 없고, 이미 2015년 판결에서 미국도 비판한 부분이라고 주장했지만, 판사 측은 인권 탄압 문제를 국제법하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뉴욕주 법에 따라 보통법을 바탕으로 다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법에 기반한 주장은 무효하다고 적었습니다.
2)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
또한 판사는 박해 당시 미성년자였던 원고의 경우는 성년(18세)이 된 이후 3년 까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박해 당시 성인의 경우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말했습니다. 원고가 주장하는 공소시효 7년은 ‘원고가 피고가 인정한 범죄의 직접 피해자인 경우’인데, BNP 은행이 인정했던 범죄는 “소득세 신고에 있어서 중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변조했다는 것”이기에 이에 따른 직접 피해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공소시효 7년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원고 측은 정신적 외상과 미국 법률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점을 참작해달라고 했지만, 판사는 원고들이 겪은 고통은 이해하지만 원칙을 고수해야한다며 이를 반박했습니다. 이렇게 ‘국가행위론’과 ‘공소시효’를 바탕으로 20개 기소 사항 중 18개의 기소 사항을 기각시키고, 나머지 2개의 기소 사항도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기각시켜 결국 BNP 은행은 해당 소송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2019년 5월 22일
위 사건이 제2 미국 연방 순회 항소 법원에서 파기환송한 사건입니다. 항소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위 판결을 파기하고 환송시켰습니다.
1) ‘국가행위론’
하위 법원에서 수단 영토 내에서 수단 정부가 수단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한 행위를 뉴욕주 법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은 “다른 모든 주권 국가의 독립성을 존중할 의무”를 위반하고 “한 국가의 법원은 다른 주권 국가의 영토 내에서 행해지는 정부의 행위에 대해 심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국가행위론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지만, 항소 법원은 해외 국가 행동의 타당성이 소송의 요지가 아니라면, 중요한 것은 해당 문제 행위가 실제로 발생했는지 여부일 뿐 국가행위론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를 파기했습니다.
특히 국가행위론이 해외와 관련된 사건이나 논란이 생길 때마다 이에 대해서 법원이 판결하는 것을 막는 단정적인 제외 규칙이 아니라고 말하며, 국가행위론이 “새롭고 잘 알지 못하는 분야로” 가볍게 확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인용하며, 하위 법원이 사적 단체에 제기된 소송은 “피고의 행위와 원고의 피해 사이 일반적인 연결고리를 결정하면서 해외 정부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여기서 문제 삼는 부분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꼬집었습니다.
추가로 국가행위론은 다른 국가의 “공식적인 활동(official act)”의 타당성을 질문하는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고 못 박았습니다. 따라서 수단 정부의 학살이 수단의 공식 정책이라는 증거가 없고, 오히려 수단 자체 법률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원고의 주장을 “무효”라고 결정할 수 있는 “공식적인 활동”이 없었다며 국가행위론을 기반으로 기각한 본 사건의 문제점을 언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살, 집단 강간, 인종 청소와 같은 잔학 행위를 국가행위론을 위해 ‘유효’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jus cogens norms (국제법의 강행규범) 위반이라며, 국가행위론 원칙 적용을 지양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2) ‘공소시효’
항소 법원에 따르면 원고가 언급하지 않은 뉴욕 C,P.L.R.(Civil Practice Law and Rules) 215(8)(a)에는, 1) 범죄 행위가 있었고 2) 같은 피고를 대상으로 하고 3) 발생한 민사 사건의과 동일한 행위 혹은 거래와 관련이 되어 있다면, 공소시효는 피고가 선고받은 날을 기준으로 최소 1년까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BNP 은행이 미국을 대상으로 유죄를 인정한 사건 선고일이 2015년 5월 1일이고 본 소송 접수일이 2016년 4월 29일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Kashef et al v BNP Paribas et al, 2nd U.S. Circuit Court of Appeals, No. 18-1304)
맺음말
이번 사건은 어떻게 보면 BNP 은행이 유죄를 인정하고, 인정한 내용 중에 BNP 은행이 수단 정부 내 잔혹 행위를 알고 있었음도 인정하고, 그런데도 거래를 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파기환송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난민 발생 원인 중 기업의 책임, 그것도 이번 사건의 경우는 자금을 융통한 금융권 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해외의 사건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국가행위론 원칙을 기반으로 무작정 기각되는 것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와 판례가 마련되었다는 점도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어떤 국가의 법이, 국경 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인권이 침해되었음에도 이를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국민의 권리보다 인간의 기본권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이 되어야 인간의 기본권도 지켜질 수 있다는 점, 즉 국민됨이 인간됨을 만드는 모순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인식해, 국민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 뿐 아니라 보편적이라고 인식되는 ‘국민’과 ‘인간’의 개념을 해체하고 재정립하려는 노력도 학문의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참고 기사>
https://www.reuters.com/article/us-bnp-paribas-settlement-sentencing/bnp-paribas-sentenced-in-8-9-billion-accord-over-sanctions-violations-idUSKBN0NM41K20150501
https://www.courthousenews.com/refugees-blame-bnp-paribas-for-genocide/
https://www.courthousenews.com/bnp-paribas-beats-claims-over-sudanese-genocide/
https://www.reuters.com/article/bnp-paribas-sudan-lawsuit/update-1-bnp-paribas-must-face-revived-lawsuit-over-sudanese-genocide-u-s-appeals-court-idUSL2N22Y0XR
[작성자 공익법센터 어필 17기 인턴 박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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