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국에서 당신은 나중입니다” :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정책이 이주민들에게 주는 메세지
-보편적 긴급재난지원금의 논의는 이주민들에게도 확대되어야 한다
지난 19일, 중앙재난안전본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추진방향 및 계획’을 밝혔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다소 완화하되 긴장을 풀지 말자’라는 골자로 보도되었던 당일 브리핑 내용 중 눈길을 잡아 끄는 문장이 있었다.
“아울러 국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국내에 장기체류하고 있으나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그간 공적 마스크를 구매할 수 없었던 외국인(약 46만 명)의 경우, 4월 20일(월)부터는 약국과 우체국, 농협하나로마트 등에서 공적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다.”
▲ 4. 19.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보도자료 중 정책 변경 안내 해당부분 ⓒ 공익법센터 어필
그간 코로나 19라는 재난을 동일하게 맞닥뜨렸으나 가장 기초적인 방역물품인 마스크를 구매할 방법이 없었던 ‘46만명의 이주민과 난민’들에게 주목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정책 변화였다. 공적 마스크 구매의 과정에 양보와 불편을 감내해야 했지만, 구매 자격 자체가 봉쇄 되진 않았던 ‘우리 한국인’들에게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지금인가? 애초 식약처 대변인은 지난 3월 11일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공적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지만, 일반 마스크는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없는 외국인도 살 수 있다”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사실 그런 차별의 타당한 근거는 찾기 어려웠다. 공적마스크 공급의 재원과 건강보험의 상관관계는 희박하다. 언론에는 ‘소위 관광으로 방문한 단기 체류외국인의 구매 방지’를 의도한 것이라는 정부관계자의 발언이 언급된 적도 있었는데 이 역시 근거가 아니다. 설령 이를 만약 의도했다 하더라도, 체류기간은 외국인등록증으로 확인이 가능하고 건강보험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로 인해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은 건강보험 가입이 차단된 이주민들, 즉 ‘유학생’, ‘난민신청자’, ‘미등록 외국인’들이었는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십 수년까지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바로 19일 브리핑에서 언급된 “46만명”이고, 사실 미등록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크다. 모두에 의한 모두의 감염가능성을 차단해야 할 초기 방역대책의 실패로도 귀결될 수 있었던 공백은 왜였을까?
결국 초기에 마스크를 구매할 수 없도록 했던 정책 목적은 결국, 정책 시행 초기 희소재(稀少財)였던 부족한 마스크를 배분해도 될 사람과 배분하지 않아도 될 사람 사이에 어디선가 선을 긋는 기준을 가져온 것 뿐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는 명확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 정부가 시작한 ‘차별’이다.
▲ 공적 공급마스크 구매 관련 안내문 ⓒ 공익법센터 어필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사회 구성원의 범위가 노출되다 1 :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자격
그간 이주민과 난민들은 아무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무서워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서도 “당신은 살수 없습니다”듣고 돌아서야 했다. 인권활동가, 노동활동가들이 마스크를 어렵게 구해 이주민과 난민들에게 전달해왔고, ‘평등마스크’ 사업으로 단체들이 지역 공단마다 주말에 마스크를 살 수 없던 이주노동자들에게 배분해왔다. 한국 정부의 대놓고 하는 차별적 정책과 공공성의 부재 속에. 이주민과 난민들은 그렇게 뭐라도 방법을 찾아왔고, 어떻게든 버텨왔다.
▲ 난민과 이주민들에게 배분될 마스크를 포장하는 활동가들 ⓒ 공익법센터 어필
그런데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도를 조금씩 완화해가기 시작하고, 시민들이 체감하기로도 더 이상 줄을 오래 서지 않아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마스크 대란이 이제 조금 사그러들자, 이때서야 “슬그머니” 정책이 바뀐 것이다. 브리핑의 핵심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슬그머니”에 브리핑 말미에 등장한 내용이 당황스럽다. 이건 분명히 계획된 시점의, 계획된 슬그머니였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정부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누구인지를 “마스크 구매 자격”의 차별로 보여줬다. 건강보험보험료 내고 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수 없게 차단된 외국인들에게는, 마스크를 어쩔 수 없이 판매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그때는 안되고 이제는 갑자기 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단지 마스크 수급이 조금 원활해진 것이 유일하게 달라진 상황일 뿐이다.
한국 정부가 이런 일련의 정책을 통해 발화하는 메세지는 “차별”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인 이주민과 난민들이, 약국에서 “당신은 살 수 없습니다”라고 돌아가야 했을 때 느꼈던 차별과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 이번 정책 변화에서 전달된다.
이를테면 한국정부가 마스크를 살 수 없었던 이주민과 난민들에게 일련의 정책을 통해 던진 메세지는 잔인하게도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선 내국인 먼저야. 한국 오래 살아봐서 알잖아. 어쩔수 없어. 이거라도 감사해야지”
“너희의 노동력은 필요하지만. 너희는 두번째야. 그간 알아서 살아남으라 했었는데 잘 버텼지? 이제 우리 한숨 돌린 것 같으니 나눠줄께”
“그간 배고팠지? 이제 우리 밥 먹을만큼 먹어서 배부르니, 너희도 나눠줄께”
“외국인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손님이지 여긴 너희 집이 아니야”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사회 구성원의 범위가 노출되다 2 : 긴급재난지원금의 대상
긴급한 때 드러나는 차별의 언어는 긴급재난지원금 논의에서도 반복된다. 지난 16일 정부에서 발표한 안에 따르면 “외국인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결혼이주민 등 내국인과 연관성이 큰 외국인과 영주권자는 지원대상에 포함”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역시 애초 공적마스크 제공 대상에서 건강보험 미가입 외국인을 제외한 것과 마찬가지의 차별이다. 한국과 비슷하고도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는 지난 18일 ‘장기 체류 외국인’들에게도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방침을 밝힌 것으로 보이는데, 외국인도 주민등록 체계 안에 편입한 외국인 체류관리에 세부적 차이는 있으나, 제도 자체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이런 소식은 사실 ‘기사화될일이 아니지만 기사화되는 것 자체’, 그리고 이걸 “신기하다”는 톤으로 국내 언론사에서 보도한 사실” 그 사실이 정확히 지금 우리의 자리를 보여준다. “이건 당연한거 아닌가?”라고 막연히 생각하게 된 사고, 그곳이 우리 한국사회가 멈춰선 자리다.
한국에서도 총선이 종료되고, 국회로 긴급재난지원금의 범위를 설계할 공이 넘어갔다. 지금 단계에서 정부가 공적마스크에 이어 또다시 이주민은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라고 차별하는 메세지를 주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실무적으로 말하자면 긴급재난지원금의 “보편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설계할 때 소득하위70%에서 100%으로만 늘리는게 아니라 90일 이상 체류로 외국인등록이 된 외국인을 포함시키면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포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배제해서는 안되고 배제할 근거도 없다. 이주민이나 난민은 세금을 안 내지 않나? 아니다. 걷어가는 세금은 동일하다. 무임승차 아닌가? 아니다. 체류자격별로 양상은 다르지만 고용허가제로 합법적 노비가 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합법적인 저임금 고노동의 착취가 이미 한국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 ‘한국사회 혹은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도’ 그런 것을 정량적으로 평가할수 없지만 기여도에 바로 나와 외국인의 차이를 둘 아무런 요소가 없다. 의무는 동일한데 권리는 없다.
거기에 더해 한국의 난민들 모두 취업허가 받아 단순노무업에만 종사하는 비정규, 계약직, 취약노동자들이다. 필요성? 코로나 19로 인한 삶의 붕괴, 실업. 사회안정망 바깥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게 미치고 그 대상 중엔 한국 사회의 제도적 장치는 물론 사회적 문화적 자본도 없는 이주민과 난민들도 포함된다.
사실 한국의 인종주의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차별금지법도 아직 상황 속 정부의 정책에도 “외국인의 차별”은 당연하다라는 형식으로, ‘국적에 의한 차별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이다’라며 뿌리깊게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도 차별하지 말라라는 메세지나 신호를 선도적으로 보내긴 커녕 오히려 차별의 중요한 주체로 기능한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 “외국인은 제외되지만 영주권자와 결혼이주민은 포함시키기로 했다”라는 멘트는 사실 국제적으로 볼때 매우 생경한 것이고,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차별이다.
인권의 기초를 세금납부기준으로 논한다면 너무 슬프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상한 것 아닌가? 모든 체류자격의 이주민과 난민 모두를 포함한 세금에 관한 통계는 아직 찾기 어렵다. 그러나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에 이주노동자만 한정하여, 약 56만 명이 낸 근로소득세는 7707억 원, 이주민 종합소득세는 3645억 원으로 이미 1조원이 넘는다.
긴급재난지원금의 논의 속 “시민의 평등한 권리”라는 원칙으로 다시 확인해야할 한국사회의 성원권(Membership)
코로나19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재난이다. 누구도 전례 없이 맞닥뜨려야 할 재난이고, 심지어 정부 당국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미증유의 비상상황인건 맞지만, 오히려 이렇게 급할 때 맨얼굴이 드러나게 된다.
▲ 코로나로 인한 해고로 직장을 잃은 난민가정 등에 발송한 긴급지원 식료품 ⓒ 공익법센터 어필
모두가 고통스러운 이때, “누가 더 고통스러운가”를 외치는 고통의 경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선의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는 당국자들을 질책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국사회는 재난의 시기 앞 ‘공동체의 선을 누릴 시민들의 평등한 권리’라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는 ‘국적에 따른 차별은 안된다’라는 것이지만, 한편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이다. 자신을 어떤 권리의 주체인 “집단”으로 인식하는 계기는 그 외부가 있을때 이뤄지는데, “국민”이란 주체성이 인식되는 순간은 별로 흔하지 않다. “외부”를 볼 계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대한민국 국적자로만 구성된 사회인가? 일본의 극우집단에 의한 재일조선인들의 차별은, 한국 내에서 모든 외국인들에게 이뤄질 경우 차별이 아닌가?
2018년에 예멘 난민들의 피난시 “국민이 먼저다”라는 위험한 구호가 오프라인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었는데 이는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계기였다. 한국에선 스포츠 경기 같은 비일상적 상황 외엔 잘 인식되지 않는 희미한 “국민”이란 기표가 완전한 타자인 ‘난민’을 만나자 차별을 정당화 할 근거로 내세워 졌다. 난민을 국민과 충돌하는 “외부”로 인식하자, 그 전까지 국민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에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며 쓰였던 국민의 권리가, 처음으로 “비국민”에 대해 “우리가 먼저다”라며 배타적인 형태로 쓰일수도 있음이 한국사회의 오프라인에서 확인된 순간이었다. 유럽 지역에서 인기를 얻어가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극우정당들이 아닌 이 곳에서도. 법무부도 이에 발맞추어 엉뚱하게도, 명확한 난민들에 대해 ‘엄정한 심사’를 공언했고, 이주민에 대한 존중이 배제된 차별에 근거해 이들을 관리한다.
그런데 2020년 또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우리’들은 동일하게 닥쳐온 재난의 무게와 심각한 비상상황 앞에, 모두가 “보편”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차별”도 인식하게 되었다. 자신이 30%에 들지 않는다면 부당하지 않는가 하며 차별의 부당함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오히려 어쩌면 기회일지 모른다. 이건 세입, 세출의 계산과 같은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한국사회의 깊은 차별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새롭게 틀을 짤 흔치 않은 첫 기회이기도 한 순간이다. 한국사회의 이주민은 약 250만 명으로, 한국 사회의 4.9%에 달하고, 그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국사회는 국적으로만 정초될 수 있는 사회가 더 이상 아니다.
차별의 경험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잔인한 상흔을 남기는데, 이는 어쩌면 보다 보편적으로 공감하기 쉬운 급식에서, 교육에서, 학급에서 차별을 경험한 학생들에게만 남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 사회의 구성원인 이주민과 난민들에 대해 정부가 보여준 차별적 본심은 언젠가 다시 회복해야 할 상흔으로 남는다. 보호받아야 할 목숨의 우선순위에서 드러난 “그간 가려졌던” 한국사회의 잔인한 서열을 해결해야 한다. 이미 당면한 함께 사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사고 할 때 2등 시민으로 이주민과 난민들을 만들어 구성원에서 배제하는 것은 거부해야 한다. 국적에 따른 차별의 기초 위에 서지 않는 한국 사회를 긴급재난지원금의 편성에 앞서 질문해야 한다.
(어필 이일 변호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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