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재판소 판례 소개: 난민신청 절차에 접근할 권리[AFFAIRE A.E.A. c. GRÈCE (Requête no 39034/12)]

2020년 5월 24일

지난 2018년, 유럽인권재판소는 “난민신청 절차의 접근권”에 관해 매우 중요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난민의 권리 보호에 난민신청절차에의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판결이었는데요, 난민협약상 난민의 권리는 그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법적 지위 없이 보호받아야 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의 난민 지위를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그 권리를 보호받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즉, 어떤 난민 신청자가 본국에서의 박해로 인해 귀환하면 그 즉시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하더라도 보호국의 국가로부터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난민협약이 제공하는 보호를 모두 누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보호가 필요한 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소개 해드릴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에서는 그러한 난민신청절차의 중요성을 확인하며 절차에의 접근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 유럽인권조약 제13조(실효적 구제를 받을 권리)와 함께 고려하여 제3조(고문의 금지)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판결문의 전문(프랑스어)은 여기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hudoc.echr.coe.int/eng#{%22itemid%22:[%22001-181818%22]}

  1. 사건 내용

원고는 수단 국적의 남성으로 수단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다 정부에 구금 당하고 고문당한 일이 있은 후, 이집트에서 정치적 활동을 계속한 뒤, 2008년 터키를 거쳐 2009년 그리스에 도착하여 난민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는 2009년 아테네에 도착한 이후 계속 노숙자로 생활하였고, 2011년 유엔난민기구로부터 유엔난민기구 위임 난민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2012년 Greek Council for Refugees는 원고가 난민신청절차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던 점을 고발하였고, 그리스의 NGO 단체인 Metadrasi는 원고가 수단 정권에 반하는 활동을 한 바 있으며 수단에서 체포되어 고문을 4 차례 받은 경험이 있음을 확인하는 보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원고는 NGO의 조력하에 2012년에야 난민신청을 접수할 수 있었지만 2013년 난민불인정 결정을 받았고, 항소 후 2015년 기각되었습니다.

당시 그리스 아티카에서는 난민신청을 매주 토요일, 20명~30명만 할 수 있었습니다. 신청 접수 자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은 탓에 난민신청을 하고자 하는 80~200명의 사람들이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부터 줄을 서서 노숙해야하는 처지에 놓였고, 토요일이 되면 경찰이 20여명을 골라 난민신청을 접수하고 나머지는 해산시켰습니다. 난민신청 접수가 되는 건물 자체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고 길 위에서 계속 줄 서 있어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특히 취약한 아동과 여성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체류자격이 없는 이들은 난민신청 접수를 하지 못해 언제든 체포, 구금 및 출국 당할 위험에 놓여 난민신청자의 생명과 자유가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본 사건의 원고 또한 그가 3년 동안 난민신청을 접수하지 못한 것이 유럽인권조약의 제13조와 함께 고려하여 제3조를 위반한 처사였다고 진정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에 관한 판결문의 일부를 아래에 발췌`번역하였습니다.

 2. 판결문 내용 요약

44. 조약의 제3조와 제13조에 의거하여 원고는 그리스 당국의 난민 인정 심사 시스템의 흠결이 있음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특히, 그의 난민 인정이 3년(2009년 4월~2012년 7월) 동안 접수되지 않았다는 것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언급된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3조 (고문의 금지)

어느 누구도 고문,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취급이나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

제13조(실효적 구제를 받을 권리)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와 자유를 침해당한 모든 사람은 그 침해가 공무집행 중인 자에 의하여 자행된 것이라 할지라도 국가당국 앞에서의 실효적인 구제조치를 받아야 한다.

79. MSS c. Belgium and Greece 판결에서 법원은 그리스 행정명령 81/2009의 시행 당시 난민신청 심의에의 접근 관련 등을 포함한 난민신청 시스템의 흠결에 주목했던 점을 상기한다. 이러한 면에서 법원은 다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난민신청자에게 앞으로 이어질 절차에 대한 정보 제공 부족, 아티카 경찰서 건물 접근의 어려움, 통역인 부족과 개인 면접을 진행할 직원의 전문성 부족, 난민신청자가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을 어렵게 하는 법률구조 시스템 부족, 난민신청결과를 받기까지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

83. 법원은 유엔인권선언문을 포함한 국제법과 국내법 모두 “난민 신청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이와 관련해 그리스 법률의 2005.12.01 directive du Conseil 2005/85/CE 제6조(유럽연합 회원국에서 난민지위를 부여 또는 철회하는 절차의 최소 조건에 관하여)의 이행법률이기도 하면서 이 사건에 적용가능한 행정명령 114/2010은 난민신청을 접수하는 관할관청이 “모든 성인이 신청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84. 국내법과 국제법으로 발생하는 이렇게 명백한 의무 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장기간 그의 난민신청 접수가 불가능한 상황을 맞닥뜨렸다는 점에 법원은 주목한다. 또한 원고가 2009년 4월 아테네에 도착한 날짜와 2012년 3월 Greek Council for Refugees가 원고를 대리하기 시작한 날짜 사이에 원고는 당국에 그의 상황 혹은 그가 유엔난민기구의 멘데이트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으며, 해당 사건에 관련하여 제공된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아티카(Attique)의 외국인 관리소(La direction des étrangers de l’Attique) 건물에의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제한되었기 때문이었다.

85. 난민신청 접수의 실질적 가능성은 국제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외국인의 효과적인 보호를 위한 필수조건(sine qua non)이라는 것이 법원의 견해이다. 절차에 대한 장애 없는 접근이 국가 당국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다면, 난민신청자는 해당 절차와 연관된 절차적 보장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방법이 없으며 그들은 언제든지 체포되거나 구금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 만일 난민신청 심사가 효과적이고 신뢰할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절차를 보장한다 하더라도 이는 당사자가 그의 신청을 접수시킬 가능성이 장기간 박탈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시 난민 신청이 이루어지던 환경과 상기 언급된 구조적 문제를 고려했을 때, 법원은 원고가 직접 경험해야만 했을 문제점을 충분히 성립시켰다고 본다. 또한 법원은 원고가 그리스를 떠나 프랑스에 방문한 사실은 이 상황에 문제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86. 이와 같이 법원은 당시 난민 절차의 흠결로 인해 협약 제3조와 결합하여 제13조가 위반되었다고 결론짓는다.

  3. 한국에서의 시사점 – 난민신청 자체가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데, 이는 난민신청절차에 관한 절차적 권리의 침해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난민신청 절차의 흠결로 인해 난민신청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난민협약 및 난민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침해되는 일에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의 출입국사무소 난민과에도 난민신청접수를 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몇시간 혹은 하루종일 기다려야 하며, 사실 그 번호표를 뽑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줄서야 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번호표가 다 동이나면, 난민신청서를 제출하지도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난민법 시행규칙의 개정으로 2019년부터 난민인정신청서가 한글과 영문으로만 접수되는 것으로 바뀌면서 한국어나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난민신청을 하는 일이 곱절로 어려워졌습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고, 영어가 모국어로 쓰이는 나라는 한정적인데 그 둘에 해당하지 않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난민신청을 할 길이 사실상 막히는 것입니다. 서류를 영어와 한국어로밖에 접수할 수 없다면, 그 서류를 작성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통역 서비스를 모든 난민신청자가 장애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이는 유럽인권재판소에서 고문의 금지 조항의 위반이라고 판결한 문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공항과 같은 입국항에서의 난민신청은 회부/불회부 심사를 통해 난민신청을 접수하지 않은채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며 제대로 다퉈볼 기회가 박탈된 채 출국되거나 불회부 처분을 다투는 장기간 동안 공항에서 생계유지수단도 없이 노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지고, 혹은 난민신청의사를 밝혔음에도 제대로 된 이유없이 접수하길 거부하는 등의 문제가 많습니다.이에 더해, 체류기간, 종전 보유 체류자격등에 따라 난민신청을 하자 마자 구금되거나, 체류자격(G-1-5 난민신청자)도 주지 않고 출국명령을 내리거나 하는 형태로 난민신청 자체를 단념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 또한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과 같이 난민신청절차의 흠결로 인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 보호받을 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어필에서 조력하는 난민분의 면접조서를 대신 발급받기 위해 출입국사무소에 간 경험이 있습니다. 업무시간이 6시 정도까지일테니 4시쯤 가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갔던 첫날에는 덮개가 씌워져 있는 번호표 기계를 보고 황망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다시 알아보니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난민과의 업무시간은 다른 사무실 업무시간과 비슷하게 시작되지만 오후가 되면 이미 번호표가 동나기 때문에 난민신청 혹은 그와 관련된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줄 서 있는 사람도 상당수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간 날에는 9시를 조금 넘어서 번호표를 뽑았지만 결국 퇴근시간을 한두시간 앞두고서야 창구 직원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하루종일 출입국사무소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관찰한 결과 알게된 것은, 이러한 출입국사무소에의 방문이 한 번으로 끝나기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챙겨야할 서류가 많아 어려운데 언어의 장벽(과 그 장벽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 출입국 직원들의 태도)까지 더해 무언가 문제가 있어 다시 돌려보내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만약 일을 하거나 돌봐야 하는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새벽부터 하루종일 꼬박 기다리는 일을 몇번이고 반복하기는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체류자격이 만료된 후에 난민신청을 접수하는 이들에게는 그렇게나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면서 난민신청 접수가 이렇게 어렵다면 이는 유럽인권재판소가 판결한 바와 같이 절차적 보장을 침해받는다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난민신청을 한 후에는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후에는 권리 보호가 보장된다 하더라도, 그 신청절차에 접근할 수 없다면 신청을 하려는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의미없는 일일 것입니다.

[캠페이너 조진서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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