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지난 7월 2일, 어필은 경향신문사 별관에서 열린 제3차 이주정책포럼에 참여했습니다. ‘인종차별 철폐와 이주민 인권 보장을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토론회’였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제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후, 매 국회에서 발의되었지만 결국 통과되지 못한 법이었습니다. 이번에 그 제정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있는 만큼, 더 활기차고 열띤 토론회였습니다.
토론회는 1) 차별금지법의 취지와 필요성, 2) 국가인권위의 (가)법안과 입법계획, 3)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 방안에 대한 발제 후, 이주단체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2. 차별금지법이 뭔데?
차별금지법의 목적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며, 차별을 예방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함’이라고 합니다.1)
이때 차별이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병원에서 의사를 뽑는데 의사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고용을 해주지 않으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지만, 의사 자격이 있고 능력도 갖추었는데도 성소수자라서, 장애가 있어서, 인종이 달라서 고용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성별,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피부색, 학력 등 해당 사안과 무관한 개인적 특성으로 사람을 다르게 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3. 차별금지법이 필요해?
가. 차별금지법이 없는 사회
“이주민은 아주 예외적인 판례에 기대거나, 혹은 차별을 견디거나 할 수밖에 없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몽 활동가는 영화 ‘청년경찰’과 난민 인정자의 해고 사례를 들며 차별금지법이 없는 사회의 모습을 설명했습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은 재중동포를 폭력적인 집단으로, 대림동은 우범지대로 그려냈고, 이에 대해 ‘허구’라는 등의 표현도 사용하지 않아 실제 재중동포들이 그러한 집단인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이에 대해 재중동포 60여 명은 차별과 혐오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청구를 했습니다.
쟁점은 차별과 혐오가 구체적으로 어떤 ‘손해’를 입혔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집단이 느낀 소외감과 불편이 ‘손해’가 될 수 있을까. 법원은 이를 인정하여 영화사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차별로 인한 특정 집단 일반의 피해를 인정하는 아주 예외적이고 유의미한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100여 곳의 일자리를 알아본 끝에 호텔 세탁업에 취업한 난민 인정자는 외국인에게 거부감을 느낀 매니저에 의해 부당해고를 당했습니다.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몽 활동가는 이 두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에는 차별금지법이 없으므로 차별과 혐오의 피해자인 이주민은 아주 예외적인 판례에 기대거나, 혹은 차별을 그냥 견디거나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를 겪는 이주민이 아주 많지만, 이들을 보호할 울타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발제자 / (왼쪽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몽,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운영위원장 고기복>
나. 차별금지법의 효과
몽 활동가는 차별금지법은 크게 두 가지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차별과 혐오로 인한 피해를 예방해 줄 것이고, 둘째는 차별과 혐오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어떤 언행이 차별이고 혐오인지 판단할 ‘기준’이 생기고, 그 차별과 혐오를 하지 못하게 하는 국가의 ‘강제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다. 반대의 목소리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문란한 성 질서를 반대하는 것이다.”,
“난민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낯설고 위험한 외국인을 반대하는 것이다.”
몽 활동가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의 주장들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특히 차별금지의 요소에 포함된 성적지향이 주요한 반대 지점이라며 위의 두 반대 논리를 소개했습니다. 동성애와 난민을 반대하는 두 혐오의 논리는 다르지만 같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으면서, 성소수자나 외국인에 대한 단순한 낯섦을 공포로 키워 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에서 동성애를 빼면 찬성한다는 말은 결국 모든 차별과 혐오에 대한 타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4. 국가인권위의 차별금지법 제정 노력
가. “나도 차별받을 수 있구나”
국가인권위는 오래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했다고 했습니다. 논란이 많은 법의 제정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가능한데,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에 대한 비난 등을 보며 나도 차별과 혐오의 객체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나. 평등법(차별금지법)의 내용
국가인권위는 ‘평등법’이라는 이름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다듬은 차별금지법을 제안했습니다. 제2조의 ‘용어 정의’에서 ‘괴롭힘’의 내용인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구체적으로 규정했고, ‘성희롱’의 성립에 성적 수치심을 포함하지 않아 구성요건을 완화했다고 했습니다. 제3조 ‘차별의 개념’에 해당하는 사항들은 예시로 해석해서 더 다양한 종류의 차별을 보호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했습니다. 제11조부터 제30조까지에서 차별적 행위의 모습을 구체화했다고 했습니다. 제31조부터 인권위 진정, 법원의 시정명령, 손해배상청구·가중적 손해배상, 불이익조치금지 등의, 차별에 대한 다양한 구제방법이 규정되었다고 했습니다.
5. 차별금지법에 대한 여러 생각들
가. 대부분의 차별은 어떤 ‘집단’에 대한 차별이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윤영환 대표님은 차별과 혐오의 본질은 ‘특정 집단 일반에 대한 것’이라며, 집단 명예훼손 내지 모욕에 관한 규정이 보충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나. 결국 사회적 인식이 변화해야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님은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근본적이고 제대로 사라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 외국인의 정보 접근성도 필요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허오영숙 대표님은 차별금지법의 다국어 번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 법의 직접적인 적용을 받는 외국인이 한국어나 영문 번역본만으로 법에 대한 온전한 접근이 어려우므로, 외국인의 정보 접근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라.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의 노력이 이어져야
어필의 이일, 정신영 변호사님은 차별금지법은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며,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되는 차별과 혐오를 모두 막지는 못할 수 있으므로, 법 제정 이후에도 차별과 혐오로부터 이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6. 나가며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법 없이, 기분이 나빠도 폭력은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문화를 만드는 일은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법 없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는 일은 매우 힘듭니다.
차별금지법이 생긴다고 해서 바로 차별이나 혐오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나와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가 싫고, 싫어서 괴롭히는 사람은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이 보호하는 어떤 가치가 있다는 것, 차별과 혐오를 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국가가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차별금지법을 꼭 제정해서 한국이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하계, 어필 로스쿨 실무수습생 이우균 작성)
1)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 국가인권위원회, 제1조(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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