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어필은 인권과 아시아기업 리더십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고려대학교 인권센터, 휴먼아시아, 라프토인권재단, 기업과 인권연구소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가 두 번째 세션의 토론에 참여했는데요. 포럼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함께 보실까요?
두 번째 세션은 “기업의 투명성과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인권 친화 경영”이라는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기업과 인권 지원센터 남아시아 지부의 하프릿 카우어 대표가 진행한 첫 번째 발제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인터뷰 영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급박한 사회적 변화를 맞고 있는 오늘날 미얀마에서, 인권 친화적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투명성(transparency)이라고 수치 여사는 거듭 강조했습니다.
경영의 투명성과 기업 정보 공시(Corporate Disclosure)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기업 정보 공시란 기업 내부 사람들이 외부인들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요즈음에는 투자자들이나 주주들뿐 아니라 다른 이해당사자들 또한 기업들에게 정보 공시를 요구하는 추세입니다. 또한 1976년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이후, 기업 인권 책임 관련된 국제적 가이드라인들은 자발적 정보 공시를 넘어서 투명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점차 발전해왔습니다.
미얀마 의류 부문 기업들의 투명성에 대해 논의해볼까요? 업무 환경 증진을 위해 기업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별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이런 개별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공장들의 위치가 공개되는 것이 필수적이지요.
미얀마 경제의 다른 분야들만큼이나, 의류 산업의 소유권 정보는 여전히 불투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사실 전 세계 의류 공급망의 불투명성은 이미 만성적인 현상으로써, 소수 몇 개의 기업들만이 정보를 공시하고 있는 현황입니다. 기업들은 이런 투명성 문제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류 공장들의 이름, 소유주, 그리고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직원들의 인권침해 현황을 매우 파악하기 힘든 것이지요.
따라서, 기업과 인권 지원 센터 [Business & Human Rights Resource Center, BHRRC]는 미얀마 의류공장 근로자들의 현재 인권 실태와 해당 공장에 발주하는 기업들을 조사하고, 기업들이 발주 공장들을 공개할 용의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아웃리치 활동을 나갔습니다.
아웃리치에서 의류 브랜드들이 받은 질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당신 기업의 하청업체와 공급 업체 목록은 공개 열람이 가능합니까? 그렇다면 공유해주세요.” “만약 공개 열람 가능한 목록이 없다면, 앞으로 만들어 공개할 계획이 있습니까? 계획이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업들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방글라데시 협약에 따라 특정 정보를 몇몇 단위에만 공개하겠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공시할 생각은 없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점차 공개 범위와 대상이 넓어지도록 순차적으로 정보를 공시할 것이다.” “1차 공급업체, 하청업체, 면허소유자의 이름과 위치를 공개할 것이다.”
정보 공시를 하기로 결정한다면 기업들이 감내해야 하는 요소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추가적 관리 비용이 발생하고, 정보 공시 자체를 위한 비용 또한 발생할 것이며, 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다른 기업들과 경쟁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 친화적 경영에는 분명 이점도 있습니다. 이해 당사자 간의 관계가 훨씬 개선될 것이고, 직원들을 고용하고 유지하고 동기 부여하는 과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기업 이미지가 좋아지고, 리스크를 감지하고 관리하는 능력 또한 향상될 것입니다.
카우어 대표는 토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기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한 산업을 이끄는 자들, 혹은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누구인가요? 그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죠? 또한, 기업들이 효과적이며 지속적인 정보 공시를 실천해가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할까요?
곧바로 토론자들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옥스팜 인도의 나밋 아가왈 민간부문 어드바이저는 인도의 사례에 방점을 둔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인도 민간 부문의 투명성 문제는 주로 국제적 가이드라인들을 이행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논의되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관련 가이드라인들에 법적 구속력이 없어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대야 한다는 한계가 물론 있지만, 그래도 데이터 축적과 정보 공시 현황 분석을 위한 노력 덕분에 전반적인 운영 투명성은 갈수록 높아지는 중이라고 합니다.
인도를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기업 운영 정보 공시에 대한 기준과 데이터 관리가 아직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아직 덜 체계적인 편이라고 아가왈 어드바이저는 덧붙였습니다. 특히나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책임감과 그러한 요구에 기업들이 반응하는 양상이 국가별로 굉장히 상이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의 정보 공시를 장려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투자자들의 반응입니다. 많은 정보를 공개할수록 더 많은 투자자들이 몰리는 상황은 기업들로 하여금 운영 투명성 증진을 고민해보도록 하지요. 인도에서도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기업들이 상당주의 의무[Due Diligence]를 충분히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주어진 프레임워크를 넘어서는 사고를 하는 것이 기업의 투명성 증진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아가왈 어드바이저는 발제를 마쳤습니다. 인권경영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으로 여겨지는 국제적 가이드라인은 가장 최소한의 바탕선일 뿐이기에, 그 기준을 넘어서는 실천 방안을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하지요.
이어서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가 한국에서의 기업의 투명성 및 공급망 책임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기업의 투명성 확보는 이해관계자들의 원활한 소통을 도모하고 기업인권책임을 준수하면서 기업의 발전 또한 꾀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기업 투명성 확보는 아직도 요원해 보입니다. 기업들의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의무화 등도 아직 논의 중이며, 2016년에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한 기업의 비율은 절반을 조금 웃도는 정도였습니다. 또한, 주요 대기업들이 발간하는 보고서에 국제 관행에 부합하는 정보가 실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직도 삼성은 사내 산업재해 등에 해명하지 않았고, 현대 또한 하청 노동자들의 사고에 대해 해명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공급망 관리 책임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인식이 아직 많이 부족한데요. 유엔기업과인권 실무그룹이 2016년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국 기업들의 하청의존도 증가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습니다. 하청 직원들은 정직원들보다 더 위험한 업무를 도맡는 경우가 많지만 안전장치와 관련 교육이 많이 미흡합니다. 삼성과 엘지의 하청 직원들의 메탄올 중독, 현대중공업 하청 직원들의 산재 등 공급망 관리 부족이 야기하는 문제들이 갈수록 쌓여갑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료, 노동자 부당해고, 열악한 근무환경, 임금인상 파업 중 경찰력 도입 등 한국 기업들의 해외 공급망 관련 문제들도 심각합니다. 기업인권네트워크[KTNC Watch]의 조사에서 한국 정부의 공급망 책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왔는데요. 실제로 한국 NCP(National Contact Point) 는 우즈베키스탄 목화재배현장에서의 아동 및 성인 강제노동 사건에 대해, 1차 평가만 진행한 후 추가 조사 없이 종결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NCP가 속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오히려 ODA를 통하여 우즈베키스탄에 섬유테크노마트를 조성하였고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시민사회는 경영 투명성을 위한 인식 개선 요구를 계속할 것이며, 공시의무 법제화를 위한 노력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시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 상황에서 자발적 공시를 기대하긴 어려우니 공시의무 법제화가 필요합니다. 혹은 정보 공시는 자발적으로 하되, 정보를 공시하지 않았을 경우 그 이유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기업 평판이 경영 투명성에 대한 동기부여로 작용한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김세진 변호사는 발표를 마무리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의 인권 침해에 대해 시민사회가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기업들은 개의치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에서 통하는 naming and shaming은 국내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 것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기업들의 자발적 정보 공시 활성화가 가능할까요?
글로벌경쟁력강화포럼의 강주현 대표가 마이크를 넘겨받아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국제사회, 정부, 기업들의 책임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우선 국제사회는 기업 정보 공시를 의무화할 방법들을 고민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유럽이나 미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과 정책 제안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부는 기업들의 인권 실태를 감시할 책임과 더불어, 한국 기업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전 세계의 바이어 기업들이 점점 인권노동환경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는 추세를 보이는데요. 그만큼 바이어 기업들의 발주 기업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중이기 때문에,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한국 중소 및 중견 기업들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입니다.
기업들의 책임을 논하면서 강주현 대표는 아시아 특유의 가치[Asia value]를 강조했습니다. 아시안 기업들은 대부분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이미 하는 일들을 나서서 알리는 것을 꺼리곤 합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70% 이상의 회사들이 지속가능경영, 윤리경영 등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상 인권경영을 실천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미 실천 중인 인권경영을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활발하게 논의하여 더욱 본격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들이 필요로 하는 비용을 기업만 부담하지 말고, 소비자와 투자자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주장에 강주현 대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였습니다. 우선 기업들은 내부 및 외부 감사를 통한 공급망 관리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고, 시민사회와 인권경영 전문기관들은 전문성을 길러서 기업과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아직도 제게 기업인권은 멀고도 어려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이번 포럼은 인도, 미얀마, 한국 등 다양한 맥락의 사례들을 살펴보며, 막연한 관념으로만 머릿속에 맴돌던 경영 투명성과 인권경영의 밑그림을 더욱 구체화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의무 이행의 제도화와 자발적 책임 실천에 대한 거듭되는 논의를 통해, 기업이라는 주체의 권력이 짓밟는 개인의 삶이 갈수록 적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글 13기 인턴 최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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