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의 끝자락 즈음, 어필은 법조공익모임 나우에서 주최하고 공익변호사모임에서 주관하는 제1회 공익입법아카데미에 참석했습니다. 공익입법아카데미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실 수 있을 텐데요. 최근 공익단체들의 입법운동이 사회적으로 활발해짐에 따라 실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수 많은 변호사, 활동가, 정부관계자들이 모여 입법단계 별로 유용한 실질적 가이드라인과 노하우들을 정리해 매뉴얼이 제작되었고, 올해 처음 열린 공익입법아카데미에서는 이 매뉴얼을 토대로 공익입법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오신 변호사님들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공익이라는 말은 좋은 말이지만 많은 좋은 것들이 그러하듯 좋은 것은 추상적 개념으로 머물 때보다도, 만일 가능하다면, 구체적인 대상으로 실현해 낼 때 우리를 더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공익의 실현의 결과물 중 가장 현실적인 것은 법과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익입법운동은 이렇게 추상적인 공익을 논의의 대상으로 만들고 최종적으로 바람직한 제도로 탄생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또한 현실적으로는 공익입법운동을 통해서 국회의 존재적 기능인 입법활동의 전문성·효율성과 함께 법체계와 사회현실 간의 간극을 보완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데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정책집행을 위해 필요한 법령을 제·개정하는 정부입법과, 국회에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인 국회입법(의원입법)이 그것입니다. 19대 국회임기 시작부터 현재까지(2012.5.30-2016.4.6) 의원발의법안은 16,664 건,정부발의법안(법률, 대통령·총리·부령)은 10,493 건으로1 의원발의법안의 수가 60% 정도 더 많습니다. 법안의 질과 가결비율까지 고려한다면 다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절대적인 숫자로 본다면 국회를 통해 법안이 발의될 때 공익을 위한 입법과 공익적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시행을 위한 자세한 사항들은 대통령령 및 총리령, 부령에 맡겨두게 됩니다. 대통령령 및 총리령, 부령은 정부입법의 일부과정을 거쳐 제·개정되며, 따라서 이 경우에도 의원발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절차와 단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의원입법은 위와 같은 과정를 거쳐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 매우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지만, 그중에서도 ①법안발의의원, ②정부소관부처, ③입법전문위원 입법조사관, ④법안심사소위원회 네 당사자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선 ①법안발의의원 선택은 보다 수월한 입법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여러 소관의 상임위원회에 속해있고 상임위원 임기는 원칙적으로는 2년이지만, 의원에 따라서 해당 업무에 전문성과 애착을 갖고 위원직을 연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위원을 통해서 혹은 해당 상임위원회의 상임위원장, 간사를 통해 발의하게 된다면 보다 추진력 있게 입법활동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임위원은 2년, 국회의원은 4년 임기이기 때문에 임기 초반에 발의를 할 수 있도록 하며 때로는 의원의 보좌관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활동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②정부소관부처와도 많은 대화를 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의 OO국, OO과와 법의 필요성에 대해 소통함으로써 그들의 협조와 지지를 얻어야 추진력 있고 원활한 입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소관부처와의 소통에서는 의원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상임위원회에는 의원이 아닌 전문지식을 가진 위원, 즉 ③전문위원을 두고 있습니다. 전문위원은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안건에 관한 검토보고 업무를 담당하며, 검토보고서의 방향에 따라 법안의 통과여부가 달려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 전문위원을 보좌하고 실무를 담당하는 입법조사관이 있는데, 이들과 법안 발의 단계부터 소통하고 이들이 요구하는 법안과 관련된 보충자료와 전문가 보고서 등을 적시에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보고서를 실무적으로 작성하는 것은 입법조사관이라할지라도 검토보고서 발표가 이루어지는 소위원회에서는 전문위원이 발언하기 때문에 전문위원과 입법조사관 두 단위를 모두 공략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된 ④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제출된 검토보고서와 대체토론 단계 등에서 이루어진 의원들의 발언을 비롯한 심사자료, 참관인들의 발언 내용 등을 토대로 심사가 이루어집니다. 이 지점에서 법안통과의 여부가 사실상 결정되므로 수 차로 거듭되는 소위원회에서 심사자료에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원입법에 있어서 위 네 단계가 가장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선이 되어야할 것은 각 기관에서 요청하는, 혹은 요청할 수 있는 자료에 대해 준비를 철저히 해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료를 미리미리 준비해놓아야 하고, 다만 무작정 많은 내용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실무자들의 편의를 생각해 꼭 필요한 내용만 ‘슬림화’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공익입법을 추진하는 사람으로서 공청회, 대체토론, 소위원회 등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입법절차를 통한 법안의 발의는 의원입법절차보다 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의원입법의 경우 정부입법에서 요구되는 여러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발의를 할 수 있어 초반에는 속도감 있는 추진이 가능하지만, 발의된 후에는 추진동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정부입법은 발의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더라도 위원회 심사단계에서 신속하게 심사되도록 정부와 여당의 모니터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2 긴 호흡으로 수월하게 입법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사실상 정부에서 주도하는 입법이라도 정부입법에서의 여러 단계를 생략하기 위해 의원입법의 형태로 발의되는 법안도 늘어나고 있어 제도운용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도 존재하고 있습니다3.
앞서 말씀드렸듯 추진하던 법률이 성공적으로 제정되더라도 공익입법이 마무리된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법률시행을 위한 자세한 사항은 대통령령 및 총리령, 부령에 맡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이 원래 제안되었던 안보다 많이 후퇴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대통령령 및 총리령, 부령이 원래 법률안의 취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노력 해야합니다4. 행정명령은 기본적으로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지긴 과정이기 때문에 의견반영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부입법 절차에서 거쳐야하도록 되어 있는 입법예고 단계, 규제심사 단계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나 이해관계인으로서 의견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방법에는 국민신문고의 활용, 방문을 통한 의견서전달 등이 있습니다.
법은 문자에 불과하지만 우리 생활의 모든 곳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법은 최종적으로 국회의원들의 투표를 통과하면 공포되지만, 이는 한 절차에 불과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과 신념이 투자됩니다. 우리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권의식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한 사람이라도 더 고려가 되는,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어필이 마주하는 난민법도 이러한 공익입법운동의 결과물입니다. 2004년부터 시작되어 2011년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난민법을 제정하기 위한 여러 분야의 수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분야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입법운동을 결국엔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모든 분들께, 이제 갓 일하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글쓴이는 존경을 표합니다. 아직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행정조치임에도 행정부 직원이 지나치게 큰 재량권을 갖는 등의 문제점이 많지만 이는 개선되어가야 할 사항일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개선될 것입니다.
(11기 인턴 김태욱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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